miracle physical therapist RAW novel - Chapter (147)
기적의 물리치료사-147화(147/205)
# 147
흑심을 품은 사람들 (7)
“아!”
허경숙이 내지른 목소리는 탄성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분명한 고통이 수반되어 있었다.
“왜 그러세요, 어디 아프세요?”
“모르겠어요, 다리가 갑자기 아프네요.”
기적은 혹시나 자신이 근육을 만지다 허경숙을 아프게 한 것이라고 생각해 동작을 멈췄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허경숙이 만지고 있는 곳은 그가 운동을 진행하던 부위와는 차이가 있었다.
“어? 거기가 아프세요?”
“아, 모르겠어요. 그냥 다리가 전체적으로 좀 아파요.”
“지금도요?”
“지금은 괜찮아지긴 했는데 약간 뻐근한 느낌이에요. 뜨거운 느낌도 있고.”
갑작스런 엄마의 비명에 수연, 지연 자매가 한달음에 달려와 걱정스런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기적의 눈빛도 걱정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지금으로써는 딱히 원인을 찾기가 힘들었다. 병원처럼 무슨 검사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 하죠. 집에 돌아가서 쉬시면서 통증이 발생하는지 어떤지 지켜보자고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허경숙은 걱정스런 대답을 남기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후로 며칠 동안 허경숙은 통증을 호소하지 않았다. 하지만 기적의 걱정스런 눈빛은 점점 진해져 갔다.
처음 일주일 동안 급속도로 좋아지던 허경숙의 상태가 통증을 호소한 날 이후로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었다.
기적은 그 이유가 갑작스레 찾아왔던 다리 통증에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정확히 그날을 기점으로 변화가 찾아왔으니까.
“혹시 그날 다리에 있던 통증 또 생긴 적 있으셨어요?”
허경숙이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
“그게…… 네…….”
“왜 말씀 안 하셨어요? 제가 다음 날에도 물어봤고, 언제든지 통증이 생기면 말씀해 달라고 했잖아요.”
기어들어 가는 듯한 목소리가 허경숙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날은 정말 문제가 없었어요……. 그 다음 날 저녁 무렵에 통증이 있었는데…… 금방 괜찮아져서 그냥 괜찮아지겠지 하고…… 그런데 통증이 계속 생겨서…….”
“휴…….”
기적은 짧게 한숨을 내쉰 뒤 입을 열었다.
“어떤 증상이든 이상 증상이 있으면 바로바로 말씀해 주셔야 해요, 아셨죠?”
“예예, 알겠습니다.”
잔소리는 거기까지. 고개를 갸웃한 기적이 화제를 전환시켰다.
“그런데 왜 그럴까요? 왜 통증이 찾아올까요? 그걸 알아내야 하는데…… 통증이 어떤 식으로 찾아오세요? 평소랑 다른 느낌 받으신 적은 없고요?”
“음…… 평소랑 다른 점이라면…… 다리가 좀 뜨거운 느낌이에요.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장딴지 부분이 가장 아프고…….”
“다리가 뜨겁다? 장딴지 부분이 아프고요?”
“네, 지금은 그래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뭐 좀 찾아볼게요.”
양해를 구한 기적은 스마트폰을 꺼내 의학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사이트에 접속했다. 그리고 SCI 환자의 합병증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기적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장딴지 부분에 통증…… 다리가 뜨거운 증상…….’
뭔가를 염두에 둔 기적이 허경숙을 향해 말했다.
“다리, 다리 좀 걷어 보실래요?”
그 말에 허경숙이 허리를 숙여 다리를 걷어 보였다. 다리를 이리저리 살피던 기적은 한층 심각해진 얼굴로 다리를 만져 보았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그의 표정에 자책감이 어렸다.
‘내가 왜 이걸 몰랐지…… 다리에 부종이 있어. 다리에 부종…… 뜨거운 다리…… 장단지 통증…… 혈전이 생긴 거야, 다리에 혈전이 생긴 거라고……. 조금 더 다방면으로 접근했어야 하는 건데……. 근재교육만 생각하다가 중요한 걸 놓쳐 버렸어. 허경숙 님이 조금 더 일찍 말해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물론 허경숙이 미리 말해 줬다면 좋았을 거다.
하지만 허경숙은 SCI 환자다. 물론 아시아 스케일 D 환자로 감각 신경과 운동 신경이 상당 부분 남아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SCI 환자인 것이다.
당연히 감각과 운동 능력이 일반인과 같을 수는 없다. 미리 말하지 못해서 아쉬워하기보다는 지금이라도 말해 줘서 고맙다고 생각하는 편이 좀 더 맞다.
기적이 이를 모를 리 없었다. 애써 아쉬운 마음을 달랜 그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지금은 환자가 놀라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허경숙 님, 제가 살펴본 결과 다리에 혈전이 생긴 것 같아요.”
“혈전요? 혈전이 뭔가요, 그거 무서운 건가요?”
“아아아, 아닙니다. 그냥 피가 조금 덩어리 진 거예요. 물론 이게 경우에 따라서는 무서울 수도 있는데 아직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일단 병원에 가셔서 검사를 받아 보셔야겠어요. 검사 받으시고 약을 받으셔야 할 것 같아요.”
“음…….”
허경숙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돈에 대한 걱정이 마음을 무겁게 만든 것이었다. 검사를 받으려면 돈이 필요할 텐데 자신에게는 그럴 만한 여유가 없었으니까.
“잠시만요.”
이를 잘 알고 있는 기적이 잠시 자리를 떴다. 그리고는 스마트폰을 들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곧 수화기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주인공은 최병렬이었다.
-아이고, 오랜만입니다. 바쁘신 분이 이 시간에 어쩐 일로 전화를 다 했습니까?
“국장님, 안녕하셨죠? 뭐 좀 여쭤 보고 싶어서요.”
-아! 그래요? 뭐든 물어 보세요.
“저희 센터 회원님 중에 SCI 환자가 한 분 있는데요. 이 분 다리에 혈전이 생긴 것 같아서요. 검사를 조금 받아 봤으면 하는데…… 이분이 사정이 좀 어려우시거든요.”
-어? 사정이 어려우신 분이 10만 원씩 내면서 치료를 받아요? 혹시 보험이 있으신가? 보험이 있으면 걱정할 게 없을 텐데? 요즘은 어지간한 검사 다 보험이 되니까.
“아녀, 보험이 있으면 이렇게 전화도 안 드렸죠. 지금은 사연이 있어서 제가 그냥 무료로 봐 드리고 있어요. 제가 궁금한 거는 혈전 검사를 받아 보려면 돈이 얼마나 들까 하는 겁니다.”
최병렬이 음~ 하고 시간을 끌다 말을 이었다.
-내가 알기로 혈전은 혈관 초음파나 MRI 촬영을 통해서 알 수 있는데…… 이건 가격이 너무 비싸고……. CT가 있긴 한데…… 촬영을 해서 혈전이 나올까 모르겠네…….
일순 최병렬의 목소리가 멀어졌다.
-저기 지원아, CT 촬영으로 혈전도 나오나? 아, 그래? 조영제? 요오드화 조영제? 심장질환? 오케이.
그리고 목소리는 이내 다시 가까워졌다.
-저기 실장님, CT 촬영으로도 혈전을 확인할 수 있답니다. 그런데 조영제를 투입해야 하는데 혹시 환자분이 심장 질환이 있으려나? 조영제라는 게 심장 질환이 있으면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우리 직원이 그러네.
“아, 그렇습니까?”
최병렬은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에잇 하고 말을 이었다.
-일단 우리 병원으로 오라고 해요. 아무래도 전문의하고 상담을 받아 보고 결정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내가 돈 많이 안 나오도록 알아서 잘해 줄 테니까 돈 걱정 말고 오시라고 해요. 서로 돕고 살아야지.
“그렇게 해 주셔도 괜찮겠습니까?”
-허허허, 원래는 그렇게 안 하지. 그런데 힘들 게 사시는 분이라면서요. 그러면 도와줄 수 있지. 대신에 우리는 따로 돈 나올 때가 있잖아. 거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지. 허허허.
최병렬이 말하는 돈 나올 곳이란 아마도 의료보험공단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를 눈치챈 기적은 한결 편해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그럼 환자 바로 보내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기적은 다시 허경숙과 얼굴을 마주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잘 아는 병원이 있는데 그곳과 이야기가 잘됐으니 가서 검사를 받고 오라고. 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처음 허경숙은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다. 또 민폐를 끼칠 수 없다며 자꾸만 주저한 것이다.
하지만 설득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자꾸 이러면 오히려 저한테 민폐라는 말과 딸들의 설득에 마음을 바꾼 것이었다.
“그러면 검사받고 오세요. 요 앞이니까 찾아가시기 어렵지 않을 거예요. 가서 제 이름 꼭 말하시고요. 검사 받으시면 저한테도 문자 하나만 남겨 주세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감사 인사를 한 세 사람은 이내 센터를 나섰다. 세 사람의 발걸음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요양 병원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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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예상은 적중했다. 허경숙이 병원을 떠난 지 약 3시간 후, 장문의 문자가 한 통 날아들었다.
-선생님, 저 수연이에요. 바쁘실 것 같아 전화 대신 문자 남깁니다. 검사해 봤는데 엄마 혈전이 맞았어요. 그래도 다행히 심하지는 않대요.
아직 초기라 약물 치료로 얼마든지 혈전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다고 하셨어요. 초기에 아주 잘 찾아왔대요. 의사 선생님이 그러더라고요. 보통 SCI 환자들은 이 질환을 제때 찾아내지 못한다고요. 이 시기에 찾아낸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고요.
진짜 선생님께 뭐라고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조금 뜬금없는 말이지만…… 사실 저나 지연이 모두 태어나서 한 번도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아 본 적이 없거든요. 그런데 올해는 정말 제대로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것 같아요. 물론 그 선물은 선생님이고요. 선생님께서 크리스마스이브에 저희 집에 찾아와 주셨잖아요. 그게 저희 가족에게는 기적이었어요. 크리스마스의 기적! 그러고 보니 마침 선생님 이름도 ‘기적’이네요. 처음에는 조금 웃기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 생각하니 정말 잘 지은 이름 같아요. ~.~
쓰다 보니 너무 길게 썼네요. 물론 선생님에 대한 감사한 마음은 그 어떤 긴 글로도 다 할 수 없겠지만…… 선생님의 안녕한 시간을 위해서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저희 가족에게 선물로 다가온 선생님, 사랑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장문의 메시지는 그렇게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끝을 맺고 있었다. 글을 모두 읽은 뒤 스마트폰을 내리는 기적의 표정에는 잔잔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
얼마 전 연탄 봉사를 할 때 기적은 야구 선수 김대규에게 말했었다. 작은 발걸음이 결국은 큰 변화를 일으키는 법이라고.
그리고 그 말은 틀리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연탄을 나누고자 했던 작은 마음이 결국은 기적을 일으켰으니까. 만약 엄동설한에 흑심(연탄)을 품은 사람들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기적도 일어나지 않았을 터였다.
‘그랬더라면 허경숙 님은 영원히 걷지 못했을 지도 모르지. 만약 그랬다면 두 자매는 어떻게 됐을까?’
그 덕분에 기적은 생각했다. 그날 자신들이 배달한 것은 단순한 연탄 한 장이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꽁꽁 얼어붙은 사람들의 마음을 녹일 따뜻한 희망일지도 모르겠다고. 그리고…… 이 엄동설한에 흑심을 품길 정말 잘했다고.
‘부디 그 마음이 다시 얼어붙지 않기를. 부디 따뜻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기를.’
기적은 가볍게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