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le physical therapist RAW novel - Chapter (178)
기적의 물리치료사-178화(178/205)
# 178
교수들의 세미나 (4)
기적은 유만석의 휠체어를 끌고 강단으로 올라갔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나이에 대한 선입견일까? 아니면 곽태성의 데모에 집중하느라 기력을 너무 소비한 것일까? 그도 아니면 식사 후에 밀려오는 식곤증 때문일까? 사람들은 집중력이 크게 떨어진 듯한 모습이었다.
스리슬쩍 기지개를 켜는 사람이 보였고, 하품을 하는 사람들도 더러 보였다.
기대감이라고는 1도 찾아보기 힘든 모습. 그렇게 기적은 어려운 상황에서 치료를 시작했다. 차트를 화면에 띄운 상태에서 그의 설명이 이어졌다.
-이름 유만석, 나이 55세, 윌리스 서클 내 출혈로 우측 반신마비, 그리고 3개월. 우측의 근력 상태는 대체로 페어 마이나. 현재 치료사의 보조하에 싯 투 스탠드 동작을 주로 수행하는 중이라고 차트 내에 나와 있습니다. 실제로는 어떤지 살펴보겠습니다.
시스템은 사라졌지만 기적의 능력은 여전했다.
차분하고 듣기 좋은 톤의 목소리에 기적을 바라보는 이들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하품을 하던 사람들이 없어졌고, 분위기는 몰라보게 조용해졌다.
적막이 흐르는 홀 내에서 기적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출발은 앞서 말했던 데로 싯 투 스탠드였다. 평소 주로 했던 동작을 기준점으로 삼아 치료를 시작한 것이었다.
-어떻게 일어나셔도 좋으니까 한번 몸을 일으켜 보실게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는지 유만석이 되물었다.
“아, 아무렇게나요?”
-네. 뭐 저를 잡으셔도 좋고 팔로 베드를 짚으셔도 좋고, 케인을 사용하셔도 좋고, 어떤 방법이든 한번 몸을 일으켜 보세요.
그제야 고개를 끄덕인 유만석이 몸을 움직였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기적의 도움을 받는 방법이었다.
건측 손으로 기적의 몸을 잡고 몸을 일으키려 한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그리 좋지 못했다.
불안한 것일까? 아니면 힘이 달리는 것일까? 어느 쪽이든 그는 몸을 완전히 일으키지 못하고 도로 베드에 주저앉았다.
그 동작을 유심히 살펴본 기적이 입을 열었다.
-차트에 나와 있는 대로 혼자서는 싯 투 스탠드가 불가능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싯 투 스탠드가 어려운 이유가 발바닥과 지면의 어뎁테이션에 있다고 느꼈습니다. 우선은 이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발바닥과 칼프 머슬을 세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설명을 마친 기적이 유만석의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러고는 건측의 발바닥을 붙잡고 일련의 동작을 펼치기 시작했다.
-자, 이렇게 움직이실 거예요. 제가 움직이는 동작 잘 느끼시고 주도적으로 움직여 보세요.
그 모습을 한쪽에서 지켜보던 도미닉이 일순 눈을 빛냈다.
‘PNF 패턴을 적용하는 건가, 어?’
처음에만 해도 그는 기적이 PNF 패턴을 적용한다고 생각했다.
PNF의 콘셉트대로 건측을 이용해 환측을 치료하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움직이는 모습과 궤적, 그리고 그립을 보니 PNF와는 분명하게 달랐다. 그는 저도 모르게 뇌까렸다.
‘뭐지? PNF는 저렇게 움직이지 않는데. 이게 무슨 치료법이지?’
만약 그 목소리를 기적이 들었다면 바로 이렇게 답했을 터였다. MF 치료법, 바로 기적의 촉진법이라고.
몇 차례 동작을 마친 기적이 유만석의 발을 공들여 세팅했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한번 몸을 일으켜 볼 것을 지시했다.
-자, 한번 일어나 보실게요. 이번에도 마음대로 한번 일어나 보세요.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유만석이 습관적으로 팔을 내밀어 기적의 옷자락을 잡았다. 그러나 몸을 일으키는 순간 유만석은 깨달을 수 있었다.
“어어! 이게?”
굳이 기적의 옷자락을 잡을 필요가 없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몸이 너무나도 쉽게 일으켜진 것이다.
“어어어!”
유만석은 너무 놀라 어어어! 하는 소리만 반복했다. 다만 지켜보는 사람들은 지금의 상황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했다.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그들로서는 유만석의 손에 얼마만큼의 힘이 들어갔는지를 알 수 없었던 것이다.
기적은 그런 사람들을 위해 다시 한번 싯 투 스탠드를 진행했다.
-이번에는 저를 잡지 말고 일어나 보실게요.
사람들이 확실히 볼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 준 상황에서.
이에 따라 유만석이 다시 한번 다리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읏차! 하는 기합성과 함께 몸을 일으켜 세웠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환자 스스로 몸을 일으켜 세운 것이다.
“어어?”
“뭐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그제야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불과 3분 전만 해도 치료사를 붙잡고도 몸을 일으키지 못하던 이가 돌연 몸을 일으켜 세웠으니 말이다.
기적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지만 이거 짜고 하는 거 아니냐고 묻는 이들마저 있을 정도였다. 기적이 3분 만에 끌어낸 진전은 그 정도로 사기적이었다.
한 교수가 손을 들고 물었다.
“교수님, 그런데 방금 치료 무슨 치료법을 사용하신 겁니까? 처음에는 건측에 접근하시는 것을 보고 PNF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네요? 어떻게 보면 보바스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전혀 새로운 치료법 같기도 해서…… 무슨 치료인지 궁금합니다.”
눈썰미가 뛰어난 사람들은 기적의 치료법이 기존에 본 적이 없는 치료라는 것을 눈치챈 듯했다. 숨길 이유는 없었기에 기적이 말했다.
-MF, 미라클 파실리테이션이라고 제가 제 이름을 따서 만들어 낸 치료법입니다.
“아? 이 치료법을 교수님이 직접 만들어 내셨다고요? 정말입니까?”
-예. 치료를 하다가 이렇게 하면 어떨까 싶어서 적용해 봤는데 효과가 아주 좋더라고요. 해서 제가 이름을 붙여 줬습니다.
치료법을 직접 만들어 냈다는 기적의 말에 홀 내에 웅성거림은 급속도로 커져 갔다.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까지 한국의 물리치료사들은 수동적으로 해외의 치료법만을 숭배하고 따라왔으니까.
직접 치료법을 만들어 낸다는 생각은 어느 누구도 하지 못했는데, 눈앞의 젊은 교수가 이걸 해냈다고 하니 놀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한 사람은 얼굴이 흑빛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바로 곽태성이었다.
‘저 자식이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제깟 놈이 무슨 치료법을 만든다고?’
그러거나 말거나.
기적은 치료를 이어 나갔다.
-제 가설이 맞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보시면 발바닥과 지면이 잘 접촉하고 있습니다. 두 발이 지면과 잘 접촉하니 안정성이 올라가고, 이 안정성이 환자분의 몸을 일으켜 세운 것입니다.
설명을 곁들인 기적이 치료를 이어 나갔다.
싯 투 스탠드를 몇 번 더 반복하고, 다리를 들어 올리는 동작을 유도한 그는 잠시 치료를 멈추고 입을 열었다.
-음, 무릎 신전의 마지막 범위에서 움직임을 가져갔고, 이를 통해 다리에 힘을 길렀습니다. 보시면 알겠지만 처음과 달리 칼프 머슬이 완전히 길어졌고, 몸의 밸런스 또한 환측인 오른쪽으로 많이 넘어온 걸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기적의 말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발뒤꿈치가 바닥에 완전히 접촉해 있고, 스탠딩 발란스 또한 몰라보게 오른쪽으로 넘어왔다는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기적이 말을 이었다.
-이 모습을 보니까 한번 걸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충분히 걸을 수 있다고 생각되는데, 교수님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말에 누군가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바로 걷는다고요? 이제 겨우 일어섰는데요?”
기적은 질문의 요지가 무엇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섰으니 걸어야죠. 물론 곧바로 정상적인 게이트는 기대하기 힘들 겁니다. 그래도 한번 해 볼 생각입니다. 환자분이 워낙 젊으시고 상태가 마일드하셔서 자꾸만 도전해 보고 싶은 욕구가 생기거든요. 일단 해 보고 안 되면 문제가 무엇인지 나름대로 가설을 세워 보고, 또 이 가설을 한번 해결해 보려고 합니다.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끊임없이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을 해결한다는 기적의 말이야말로 물리치료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콘셉트였기 때문이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기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동 베드를 올려 유만석이 팔을 올려 두기에 적당한 높이를 맞춘 그는 다시 환측으로 넘어가 정확한 게이트 동작을 훈련시켰다.
“이곳을 찍으시고,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시고. 다시 찍으시고,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시고. 아셨죠?”
그리고 언제나와 같이 치료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걷는 것보다 몇 배는 더 중요한 것이 어떻게 걷느냐입니다. 한 번 생성된 걸음걸이는 바꾸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저 역시 병원에서 근무할 당시 엉망으로 교육을 받고 온 환자들 게이트 수정하느라 엄청 애를 먹었었습니다. 아시죠? 만드는 것보다 고치는 게 더 어렵다는 거. 여기 대학 병원에서 근무하시는 실장님들 많이 오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는 거 알고 있지만 갓 수술한 환자들 치료할 때 이 부분에 좀 신경을 써 주시면 감사할 것 같습니다.
설명을 이어 나가는 동안에도 기적은 동작을 반복했다. 반복하고 또 반복하고. 똑같은 동작을 무료할 정도로 반복시키는 이유는 하나였다. 반복을 통해 뇌가 기억하도록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똑같은 동작을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마침내 기적이 동작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발바닥이 얼추 똑같은 곳을 찍는 것 같은데요. 제자리걸음은 여기까지 하고 한번 걸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기적은 유만석의 손에 케인을 쥐어 주며 말했다.
-자, 이걸 사용해서 걸어 볼 거예요. 제가 뒤에서 보조해드릴 거니까 걱정 마시고 걸어 보세요.
유만석은 긴장이 되는지 꿀꺽 침을 삼켰다. 하지만 앞서 경험한 기적의 모습 때문일까? 그는 밀려드는 두려움도 이겨 내고 발을 떼기 시작했다.
“…….”
다만 그 시작은 좋지 못했다. 그렇게 많이 연습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원점으로 돌아간 것처럼 발걸음이 엉망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실망하기에는 아직이었다. 기적이 재빨리 걸음을 중지시킨 후 말을 이었다.
-걸음이 다시 엉망이 되었네요. 제가 유심히 살펴봤는데요. 저는 이 문제가 모터 러닝에서 온다고 봤습니다. 동작이 조금 바뀌었기 때문에 학습된 동작이 초기화되어 버린 것이죠. 이럴 경우, 당황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 자세에서 다시 동작을 연습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저 혼자서는 조금 위험할 것 같아서…… 저…… 조현진 교수님? 저 좀 잠깐 도와주시겠습니까?
기적의 말에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던 조현진이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네, 알겠습니다.”
조현진에게 보조를 부탁한 기적이 좀 전에 했던 동작을 반복했다.
앞을 찍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고, 다시 앞을 찍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고. 일관된 동작을 무수히 반복시켰다.
지켜보던 사람들이 서서히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저렇게 똑같은 동작을 반복시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괜한 시간 낭비인 것 같은데. 이제 겨우 선 사람이 어떻게 바로 걸을 수 있겠어. 치료 잘하는 건 알겠는데 이건 무리지.’
완전히 흑빛으로 물들었던 곽태성의 얼굴도 어느 정도 본래의 색을 되찾았다. 기적의 치료가 지지부진한 듯하자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그러한 생각은 오래지 않아 뒤바뀌고 말았다. 기적의 지도하에 유만석이 한 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