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le physical therapist RAW novel - Chapter (202)
기적의 물리치료사-202화(202/205)
# 202
기적의 물리치료사 (3)
사람들은 말한다. 흐르는 세월은 유수와도 같다고.
흘러가는 세월이 얼마나 빠른지를 흐르는 물에 빗대어 표현하는 말이다.
꽃피는 봄이 찾아온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무더운 여름이 찾아왔고, 날이 선선해지는 가을인가 싶더니 어느새 온 세상이 꽁꽁 얼어붙는 겨울이 찾아왔다.
물론 겨울이라고 영원하지는 않았다. 세상에 영원한 건 없어서 유난히 차갑고 길었던 겨울도 어느새 지나가고 꽃 피는 봄이 다시 찾아왔다. 순식간에 1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버린 것이다.
1년이라는 시간은 정말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그것은 기적이 운영하는 힐링 센터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일단 규모 자체가 어마무시하게 커졌다. 시작 당시만 하더라도 빌딩에 위치한 8개의 상가 중 1개만 사용했던 힐링 센터는 이제 8개의 상가를 모두 통합해 1층 전체에 걸쳐 영역을 넓힌 상태였다. 무려 300평의 빌딩 1층을 통으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당연히 일하는 직원들의 숫자도 늘어났다. 처음 홀로 운영하다 힘에 부쳐 수정을 영입한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힐링 센터는 직원의 숫자만 30명에 달하는 대형 업체로 몸집을 불리고 있었다.
그 덕분에 힐링 센터는 사람들로 인해 북새통을 이뤘다. 치료를 하는 치료사, 그리고 치료를 받는 회원들이 만들어 내는 하모니가 빈틈없이 센터를 채우고 있었다.
“자! 한 번 더! 한 번 더! 더 더 더!”
“따라오세요. 따라오세요! 눈으로 보시면서!”
“하나! 둘! 셋! 넷! 다섯!”
“아, 진짜 힘드네요. 선생님 조금만 쉬었다가 합시다.”
그리고 그 목소리 사이에서 익숙한 목소리 또한 들려왔다. 바로 기적이었다. 기적은 오늘도 어김없이 자신의 자리에서 담당 환자를 치료하고 있었다.
“자, 스탠딩 포지션 세팅!”
군대 조교와도 같은 기적의 지시에 휠체어에 앉아 있던 석한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휠체어의 한쪽 손잡이를 열어 이동 공간을 확보한 그는 반동을 주어 휠체어 투 배드를 완성했고, 이어 끄응 하는 소리와 함께 몸을 일으켜 세웠다.
덜덜 떨리는 석한의 몸을 살짝 눌러 안정시켜 주며 기적이 말했다.
“오호! 오늘 컨디션 좋은데? 역시 그날이라 그런가?”
그날이라는 말에 석한이 피식 웃었다.
“그날이라고 하니까 내가 마치 여자가 된 기분이다. 그냥 줄기 세포 맞은 다음 날이라고 해 줄래?”
“그날이든 그다음 날이든 아무튼! 오늘 컨디션 좋은데 제대로 한번 걸어 볼까? 오늘은 어떻게, 기록 단축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기적의 말에 일순 석한이 아련한 표정을 지었다. 문득 처음 걸음을 옮겼던 날이 떠오른 것이었다.
“처음 걸음을 옮기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시간을 재면서 걷는 훈련을 하다니…….”
“어? 갑자기 눈물이라도 흘리려는 거야?”
어쩐지 흔들리는 동공을 본 기적이 혹시 모를 눈물을 원천 봉쇄했다.
최근 석한이 부쩍 감정의 기복을 보였기에 사전에 눈물을 차단한 것이었다. 그러나 석한은 개의치 않고 감정을 이어 나갔다.
“네가 뭘 알겠냐? 마냥 서서 걸었던 놈이. 1년을 못 걸었던 사람이 다시 걷는 기분을 네가 어떻게 알겠냐? 혹시라도 이해한다고 말하지 마라. 구름 위를 걷는다는 기분.”
어쩐지 할 말이 없어진 기적은 그냥 쓴웃음을 지었다.
마냥 서서 걸었던 놈이 뭘 알겠느냐는 석한의 말에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은 탓이었다.
농담조로 말했기에, 호소력이 조금 떨어지는 느낌은 있었지만 그야말로 맞는 말이었으니까.
아무리 옆에서 지켜봤다고 해도 휠체어 생활을 해 보지 않은 기적이 석한의 기분을 이해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거봐라. 할 말 없지? 이럴 때는 그냥 잠자코 있어라. 몇 번을 울어도 부족한 느낌이니까.”
어린아이를 가르치듯 말한 석한이 이내 심호흡을 한 뒤 말했다.
“자, 그럼 해 보자. 얼른 따라붙어라.”
기적은 군말 없이 뒤로 따라붙었고, 허리를 살짝 잡은 뒤 시작 신호를 보냈다. 스마트 워치에 시간이 흘러감과 동시에 석한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지난 1년 동안 석한은 정말 많은 피, 땀, 눈물을 흘렸다.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터였다.
하지 마비 판정을 받은 그가 다시 걷기까지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을지 말이다.
그간의 노력이 그의 걸음을 통해서 전해졌다. 한 발, 한 발. 조심스레 걸음을 옮기는 석한의 게이트는 결코 빠르다고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안정성과 자세만큼은 놀라울 정도로 좋았다. 그 누구도 그 모습에서 스파이널 코드 인저리라는 질환을 떠올릴 수 없을 정도로 그는 정석적인 자세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럼에도 기적은 석한의 게이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다리 더 들어야지. 그러다 다리 질질 끌리겠다. 그렇게 해서 시간 단축시켜도 인정 안 해 준다.”
사실 기적은 그 어떤 치료사보다도 게이트의 안정성을 강조하는 치료사였다.
안정된 자세가 나올 수 없다면 절대 게이트를 시키지 않는 것만 봐도 이를 잘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속도에 전혀 비중을 두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제아무리 안정된 자세로 걷는다고 해도 거북이 같은 속도로 걷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저 안정된 자세를 만든 다음에 속도를 붙일 수는 있지만 속도를 붙인 다음에는 안정된 자세를 만들 수 없다는 철학 하에 안정성에 우선순위를 둘 뿐이었다.
기적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계속해서 지적을 했지만 그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반응은 달랐다.
sci에 대해서 잘 모르는 회원들이야 그냥 신기하다고 생각했지만 sci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직원들은 석한의 모습을 보며 연신 놀라움을 토해 냈다.
“진짜 잘 걷는데 센터장님은 아직 만족스럽지가 않으신 모양이네? 모르고 보면 코드 환자 아닌 줄 알 것 같은데.”
“그러니까요. 몇 번을 봐도 정말 믿기지가 않아요. 저 회원님이 정말로 L1 레벨, 아시아 스케일 B 진단을 받은 분 맞아요?”
“그렇다더라. 1년 전만 해도 스탠딩은커녕 시팅도 겨우 하는 수준이었대. 그런 사람을 센터장님이 저렇게 만들었다고 들었어.”
“좀 믿기지가 않네요. L1 레벨은 그렇다고 치고 아시아 스케일 B면 이렇게 회복되는 거는 힘들지 않나요?”
“그렇지. 아시아 스케일 C면 혹시 몰라도…… 조금 과장된 거 아닐까?”
두 사람은 아무래도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시아 스케일 B 판정을 받은 코드 환자가 독립적인 게이트를 한다는 사례는 떠오르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그때였다. 쉬쉬하듯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의 뒤로 일순 그림자가 드리웠다.
“과장된 거 아니에요.”
느닷없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수정이었다.
“아, 팀장님!”
나쁜 짓을 하다 들긴 사람처럼 어쩔 줄 몰라 하는 두 사람을 향해 수정은 싱긋 웃어 보였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죠. 저도 직접 보지 못했다면 믿지 못했을 테니까요. 그런데 진짜예요. 명석한 회원님은 정말로 모터 레벨 L1, 아시아 스케일 B 판정을 받은 환자였어요. 처음에만 해도 혼자서는 앉아 있기도 힘들었죠. 그런데 센터장님한테 치료받으면서 여기까지 온 거에요.”
좌측에 있던 치료사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질문을 던졌다.
“센터장님이 치료 정말 잘하시는 건 알고 있는데…… 아시아 스케일 B 판정을 받은 코드 환자가 저렇게 걷는 일이 정말 가능한 일인가요?”
수정이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요. 의학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죠. 그런데 살다 보면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일도 가끔 벌어지잖아요. 가령 불치병 판정을 받은 환자가 다시 완치 판정을 받는다거나, 혹은 하늘님에게 간절하게 기도했더니 소원이 이뤄졌다거나. 뭐 그런 쪽으로 이해해야 할 것 같아요.”
이번에는 우측에 있던 치료사가 입을 열었다.
“아…… 센터장님 이름대로 완전 기적이네요.”
그러자 좌측에 있던 치료사가 말을 이었다.
“처음에 센터장님 이름 듣고 귀를 의심했는데 이렇게 사연을 듣고 나니 이만한 이름이 없네요. 환자들에게는 센터장님이 기적을 일으키는 하늘님 같은 존재겠어요. 그래서 말인데 팀장님, 어떻게 하면 센터장님처럼 치료 잘할 수 있어요?”
누구보다 많은 시간 기적으로부터 치료를 배운 수정이었다. 덕분에 그녀는 기술적으로나 이론적으로나 기적의 치료를 많이 닮아 있었다.
하지만 왜일까? 많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그녀는 기적과 같은 진전을 끌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왜일까? 왜 나는 안 되는 것일까? 수정은 이전에도 그와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던져 왔다. 그리고 그에 대한 해답을 어느 정도는 얻어 낸 상태였다. 그녀는 그 해답을 치료사들에게 말해 주었다.
“마음?”
“마음요? 무슨 마음요?”
“치료 기술이나 이론은 누구나 배울 수 있어요. PNF건 보바스건, 아니면 센터장님이 쓰는 MF건. 누구나 공부하고 연습하면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잖아요. 하지만 똑같은 치료법을 써도 그 결과는 다르게 나오잖아요? 저는 그 차이가 환자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페이션트 펄스트. 같은 동작을 해도 이렇게 하면 환자가 좋아지겠지? 생각하면서 하는 거랑 영혼 없이 의무적으로 하는 거랑은 다르잖아요?”
“아…… 훌륭한 치료사의 길은 멀고도 험난하네요.”
“그러니까요. 사실 환자를 생각하는 마음은 치료의 기본 중의 기본인데…… 어떻게 보면 그게 제일 어려운 것 같아요.”
수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금 기적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기적은 여전히 석한의 뒤에 바짝 붙어 게이트를 이어 나가고 있었다.
“왼쪽 무릎이 계속 무너지잖아. 자꾸 이럴 거야? 안 되겠다. 잠깐 쉬었다가 왼다리 스트렝스 좀 하고 다시 하자.”
기적은 마침 비어 있던 베드로 석한을 인도했다. 그곳에 석한이 앉았고, 기적이 그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잠시 눈치를 보던 기적이 전방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결혼한다며? 축하한다.”
바로 어제 기적은 명의진으로부터 봉투 하나를 받았다. 순백색의 봉투 안에는 다시 순백색의 내용물이 들어 있었고, 기적은 그것이 곧 명석한과 차지은의 청첩장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석한이 멋쩍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어어. 지은이가 나랑 결혼해 주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냉큼 날짜 잡고 식장 잡았지.”
“왜? 도망이라도 갈까 봐?”
“그럼. 날개만 없지 완전 천사인데 언제 날아갈지 모르잖아.”
“헐?”
난데없는 닭살 멘트에 기적은 흠칫하며 몸을 떨었다. 그 모습을 멋쩍은 표정으로 바라보던 석한이 이내 표정을 고치며 말했다.
“너한테는 미안하다. 그래도 우리 결혼식 축하해 주러 올 거지?”
기적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거기 내가 빠질 수는 없지. 그런데 언제 이렇게 준비를 다 했대? 프로포즈는 한 거야?”
“그럼, 당연히 했지. 나 처음 걸었던 그날. 그날 프로포즈했어. 앞으로 걸어가야 할 인생길, 이렇게 나와 같이 걸어 가줄 수 있겠느냐고.”
기적은 다시 한 번 질색했다.
“어휴, 90년대 프로포즈도 아니고. 나이도 아직 젊은 놈이 멘트가 그게 뭐야?”
계속 당하고만 있기 억울했을까? 눈을 부릅뜬 석한이 회심의 반격을 해 왔다.
“그러는 너는? 너는 프로포즈 어떻게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