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1
1화. 199X 홍대.
199X년 홍대.
인디 1세대라 불리는 밴드들이 클럽을 장악하고 있던 시기.
토요일 오후, 대표적인 랜드마크인 놀이터 근방의 골목은, 사람 하나 지나가지 못할 만큼 빽빽한 인파로 가득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었다면 조금씩 움직일 만도 했는데, 이들의 시선은 한 클럽을 향한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상황을 모르고 진입한 승용차가 경적을 울렸지만,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클럽 앞‘만석’이라는 표지판만을 애타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골목을 들어서지 못한 고급 세단에서 두 명의 남자가 내렸다.
“뭐야!”
“아! 아저씨 밀지 마요!”
“어딜 만져!”
다부진 체격의 남자가 인의 장막을 뚫기 시작했고, 여기저기서 욕설이 들려왔다.
“와. 인기 장난 아니네.”
“그렇다니까요. 얘네 팬덤이 아주 엄청납니다.”
앞서 길을 열던 남자가, 마치 자기 자식 자랑하듯 말했다.
두 남성이 힘겹게 클럽에 도착했고,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젊은이들의 못마땅한 시선이 모였다.
“어? 동구 형님!”
“어이. 고생 많다! 여기 우리 사장님.”
입구를 지키던 덩치 큰 남자는 뒤늦게 발견한, 차가운 인상의 중년에게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네. 반갑습니다.”
“이쪽으로···”
덩치는 쇠사슬로 막아뒀던 입구를 열며 두 남자를 안내했다.
“뭐야? 저 아저씨들?”
“야! 뚫렸다!”
“어?”
“뛰어!”
발을 동동 구르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입구로 모여들었다.
덩치가 쇠사슬을 포기하고 몸으로 막아냈지만, 가녀린 여자의 몸이라도, 수십이 넘게 모이니 속수무책으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야! 다 튀어와!”
무전기에 대고 소리쳤고, 계단까지 밀리던 그의 뒤에 다른 덩치들이 더 달라붙었다.
겨우겨우 막아낸 그의 행색은 이미 엉망이었다.
몇 달 전부터,
매주, 토요일이면 겪는 일.
방금 들어간 사람들이 어떤 결정을 하느냐에 따라 이 짓도 오늘이 마지막일 수도 있었다.
아니, 사실 결정은 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의 무대를 직접 본다면 무조건 데려갈 수밖에 없을 테니까.
‘오늘로 끝이다.’
클럽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바라본 그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
SJ 엔터테인먼트.
한국 최대 연예 기획사.
1세대 아이돌을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으며 그 주가는 사상 최고치로 올라섰고, 업계 2위와의 격차는 어마어마했다.
다만, 회사 내부의 분위기는 다소 회의적인 상황이었다.
회사를 여기까지 끌어올린 그들은,
아이돌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나이가 들어버렸다.
대체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많은 연습생을 키우고 준비했지만, 아이돌만으로는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그 회사 공동 대표이자 총괄 프로듀서 윤석준.
최근 홍대의 팬덤 문화에 관심이 깊어져 이런저런 밴드들의 음악을 들었다.
하나같이 개성 있었고, 광기와도 같은 팬덤은 꽤 흥미로웠다.
하지만, 사업성에는 부적절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들은 자유로움으로 만들어진 음악이었다.
거칠고, 뭔가 미완성인 음악이었기에 가능한 퍼포먼스.
제대로 된 프로듀서가 붙고 깔끔하게 만드는 순간, 그 의미가 퇴색될 것이다.
조잡한 환경에서 만들어낸 앨범의 완성도는 둘째치고, 그들에게서 거친 자유를 빼면 확 끌어당기는 매력이 없었다.
그러던 차에 데모 테이프 하나를 듣게 되었고,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단 네 명이 만들어낸 사운드는 서양권 어딘가의 정상급 밴드라고 여겨도 될 정도였다.
그들의 자작곡 역시 자신이 손댈 곳 하나 없이 이미 완성된 상태였고,
엄청난 고음을 쏟아내는 보컬은 그 자체로 최고 수준이었다.
거기다 저음을 담당한 보컬 역시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음색이었다.
‘이게 열아홉 살의 음색이라고? 거기 다, 한 밴드에 이런 목소리가 둘이나?’
많은 지망생을 보아왔지만, 이런 천재가 둘이나 있는 밴드는 처음이었다.
녹음 된 연주 역시 수준급.
그에, 이렇게 직접 라이브를 보러 온 것이다.
라이브까지 완벽하다면, 락의 불모지인 한국에 대형 뮤지션이 탄생한 것.
그리고, 자신은 그런 스타를 발굴해낸 명장으로 다시 한번 이름을 날리게 될 것이다.
‘꽉꽉 들어찼군.’
매캐한 담배 연기가 자욱했다.
환기가 되지 않아 눈을 따갑게 했고, 목까지 칼칼해지는 탁한 공기.
저마다 담배를 물고 무질서하게 공연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환경에서 라이브를 한다고?’
제대로 된 역량이 나올 리 만무했다.
슬쩍 바라본 스피커와 사운드 시스템의 상태도 그다지 좋아 보이진 않았다.
떨어질 듯 위태한 조명과 조잡한 무대 설비.
이런 곳에서 제대로 된 음악이 나올 리 없었다.
석준은 고개를 저었다.
이런 환경에서는 녹음된 음악의 반만 해 줘도 대단할 정도였다.
공연장의 상태를 살피던 그의 눈에 같은 업계 사람들이 보였다.
“일본 메이저에서 온 애들입니다.”
“일본에서?”
“대충 듣기로, 조건이 어마어마하다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좀 서둘렀습니다.”
석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며칠째 귀찮게 하더라니.
삐—
귀를 찢는 노이즈와 그 날카로운 기계음을 눌러버리는 함성이 동시에 울렸다.
갑작스러운 소음에 석준은 귀를 막았다.
그 함성을 신호로 멤버들이 등장해 각자의 악기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사장님. 저기 저 친구가 보컬입니다.”
기타를 메고 동료들의 사운드를 살펴주는 청년이 보였다.
페이스 좋고. 키도 딱 적당하고.
뭣보다 일반인 특유의 촌스러움이 없었다.
완성된 스타.
외모적 스타성은 멤버 모두 합격선이었다.
“높은음? 낮은음?”
“아. 들어보시면 압니다.”
의뭉스레 대답하는 부하직원을 흘겨봤다.
뭔가 놀리는 듯한 저 미소.
일은 잘하는데, 가끔 보이는 이런 행동은 좀 짜증이 났다.
드럼의 풋 베이스가 쿵쾅 울려대기 시작했다.
일정한 리듬을 타던 그 베이스와 청중의 심장이 서로를 탐색하던 그때.
기타 소리가 울렸다.
좀 탁하게 울리던 기타 사운드가 점점 공간에 퍼지며, 제법 괜찮은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시작되는 속주.
정신없이 움직이는 손가락이 만들어내는 멜로디는, 걸리는 곳 하나 없이 매끄럽게 흘러갔다.
곡도 좋았지만, 저 곡을 자연스럽게 소화해 낸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생각보다 사운드가 좋네?’
이 작은 클럽을 메우는 사운드는 예상을 뒤엎을 정도로 수준급이었다.
싸구려 음향 장비로 이 정도의 음질이라는 말은, 그만큼 프로듀서의 사운드 컨트롤이 좋다는 얘기다.
컨트롤박스를 찾던 석준은 연주를 시작한 기타리스트가 어딘가로 계속해 신호를 보내는 것을 발견했다.
‘응? 저렇게 연주하면서 사운드컨트롤까지?’
석준은 보컬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고, 바삐 움직이는 프로듀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순전히 저 보컬의 요구에 따라 움직이는 듯한 모습.
갑자기, 기타 소리가 멎었다.
그가 멈추자,
소란스럽던 공간에 모든 소음이 사라졌고, 스피커를 타고 작은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석준은 서둘러 무대를 바라봤다.
보컬이 마이크에 입을 가까이했다.
씩 웃으며 윙크한 그가 입을 열었다.
-이제 놀아볼까?-
공연이 시작됐고,
석준의 머리가 하얗게 비어버렸다.
멍하니 벌어진 입은 닫히질 않았고, 비어버린 머리는 제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사장님?”
“어? 아! 어!”
광란의 현장.
그 좁은 무대 위. 그는 사나운 사자였다가, 웅크린 표범이었다가, 하늘로 비상하는 독수리가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한 명이 다 부른 거였어?’
신나서 몸을 들썩이던 부하직원이 그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SJ엔터테인먼트의 서동구 실장.
이미 일주일 전에 이들의 공연을 접하고 호들갑을 떨어대던 그였다.
무조건 직접 봐야 한다며 일주일 내내 귀찮게 했다.
그런 그가 씩 웃었다.
입을 다물지 못하는 석준의 얼굴.
아마도, 이 얼굴을 보기 위해 보컬의 존재를 숨겼으리라.
‘이 새끼.’
석준은 짜증이 밀려왔지만, 그 짜증마저 날려버릴 정도로 이들의 무대는 엄청났다.
테입을 들었던 그 순간, 석준은 두 명의 보컬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낮게 긁는 저음은 심장을 울려댔고, 하늘을 찌르는듯한 고음은 더할 나위 없이 시원했다.
두 음역 모두 흔들림 없이 완벽했었다.
절대로, 한 사람이 낼 수 없는 음역이라 생각했다.
말도 안 되는 음역대.
이런 목소리가 한국에서 나올 줄이야.
“야. 이거 얘네들 오리지널이지?”
“네. 맞습니다.”
“작사 작곡 다 보컬 쟤 혼자 한 거야?”
“네!”
“해외 음원 돌려봤어?”
“들어보셔서 아시겠지만, 아무리 돌려봐도 비슷한 음원을 찾지 못했습니다.”
“다른 애들도 연주 실력이 상당한데?”
“그거 전부 저 친구가 가르친 거랍니다.”
‘가르치기까지?’
예상을 뛰어넘는 능력이었다.
‘이건 뭐. 내가 손댈 게 없는데?’
세기의 천재.
대한민국에서 세계에 내놓을 만한 천재가 탄생한 것이다.
석준은 그제야 청중을 돌아봤다.
울부짖으며 방방 뛰는 소녀들과 정신없이 머리를 흔들어대는 남자들.
흔한 홍대 클럽의 광경이었지만, 억지로 분출해 대는 에너지가 아니었다.
순전히 공연하는 밴드가 뿜어낸 에너지로 만들어진 광기였다.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동작 하나하나가 의미 있었고, 멤버들 간의 퍼포먼스도 완벽했다.
보컬이 손가락을 올리면 저마다의 행동을 멈춘 채 모두가 따라 했다.
보컬이 멈춰 바라보면, 모두가 숨을 죽였다.
마치 종교인 듯,
이곳, 성역에서만큼은 그를 따르지 않는 것이 이단인 양.
모두가 그리했다.
문득 정신을 차리자,
오만하게 꼬여있던 팔짱은 풀어진 지 오래였고, 자신도 모르게 손을 들어 올린 상태였다. 근엄하게 굳어있던 얼굴은 환희에 가득 차 환호하고 있었다.
음악만큼은 감정을 지우고 냉철하게 대해왔던 대한민국 최고의 프로듀서가, 이 작은 공연장에서 나이도 잊은 채 흥분했다.
그런 석준의 모습에,
서동구 전무가 배를 잡고 웃었다.
부하직원의 놀리는 행동에 기분이 나쁠 만도 한데, 이미 벌어진 입은 다른 이들과 같이 함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음악시장에 몸담은 지 20년.
이렇게 심장 뛰는 기분을 느껴본 적이 언제였을까.
어느 날부터 음악은 돈과 직결되었고, 그에게 있어서는 팔아야 할 상품이었다.
이들의 음악에서는, 감히 돈으로 평가할 수 없는 무한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마지막 곡이 끝날 무렵,
보컬과 눈이 마주쳤다.
자신만만한 윙크.
‘어때요?’
이미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있을 것이다. 공연을 보러 오겠다고 알렸었으니까.
그런 자신에게 저런 장난스러운 표정이라니.
‘대범함까지.’
석준은 자신도 모르게 그를 향해 엄지를 치켜들었다.
뭔가에 홀린 기분이었다.
“야! 얼른 나가서 미팅할 카페 찾아. 아니다! 직접 데리고 회사로 가자. 승합차 불러.”
“사장님!”
어울리지 않게 초롱초롱한 부하직원의 눈동자.
“어! 그래! 맞아! 얘네 대박이야!”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석준은 그런 그의 엉덩이를 톡톡 두들겨 업적을 치하했다.
‘녹음하고, 스케쥴 잡고, 뭐 만질 것도 없고, 바로 앨범 뿌리고.’
빠듯하게 하면, 두 달.
두 달 후면 대한민국 음악계에 엄청난 물결이 몰아칠 것이다.
그리고 그 선두에 자신이 서 있겠지.
흥분한 가슴을 쓸어내리며,
자신을 기다리는 보컬에게 다가가던 그때.
천장에 설치된 무대조명이 떨어졌다.
그리고,
세상에 더는 없을 천재가 머리에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