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10
10화. 출근
[천상의 목소리.] [이번엔 힙합? 그가 못하는 음악은 무엇인가.] [한국 최고의 세션이 뭉친 밴드. C2K의 프로젝트 밴드는 슈퍼밴드.] [또다시 1위! 세월을 무색하게 하는 저력.]편견을 갖지 않기 위해 기사를 보기 전, 친구의 음악들은 다 들었다.
진혁은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왜 블로그를 보라고 했는지 알겠다.’
기사들은 모두 찬양 일색이었다.
조금이라도 불리한 타이틀은 존재하지 않았다.
블로그를 뒤져봤지만, ‘C2K’에 관한 내용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는 않았다.
부정적 뉘앙스의 몇 타이틀을 발견했지만,
이미 글이 삭제된 후였다.
밑바닥, 아주 아래에서 커뮤니티의 글을 몇 개 찾을 수 있었고, 현재 친구의 상태가 어떤지 조금 알 수 있었다.
‘여전히 재밌게 사는구나.’
만나는 것은 장하가 알아서 할 것이다.
‘아. 기대된다.’
진혁이 침대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
“아빠! 나 친구 만나러 가!”
“어? 어. 늦어?”
“음···. 조금?”
신발을 신는 딸아이를 바라봤다.
치마 길이로 실랑이를 벌일 만했다.
“그···. 옷이···.”
“아! 뭐래! 이건 터치 안 하기로 했잖아!”
“어···. 그랬나.”
“자, 봐봐!”
은서가 짧은 스커트를 확 올려버렸다.
진혁이 화들짝 놀랬다.
“속바지 보이지?”
“아···.”
“걱정 마시지요! 꼰대 아저씨!”
은서가 방긋 웃으며 진혁의 손을 잡았다.
“갔다 올게요!”
“응. 조심히 다녀와.”
현관문이 닫혔고, 진혁은 은서가 잡았던 손을 펼쳤다.
‘기타를 치는구나.’
여자아이의 손끝치고는 두툼한 느낌.
물집이 반복되며 생긴 굳은살.
진혁이 방긋 웃었다.
***
창천 그룹.
최근 건설업과 유통업을 확장하며 재계 상위권에 발을 걸친 재벌가.
계열사 중 창천 물산의 대주주인 김우희 부사장실에 불려간 직원은 고개를 숙인 채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블로그도 아니고, 기사 하나 못 잡아서 상황을 이렇게 만들어?”
“그게···. 직접 언급하지 않아서 모니터링에 걸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후···. 나도 이러는 거 우스워. 아는데! 이거 하라고 당신들 월급 주는 거잖아?”
“죄송합니다.”
“기사는 바로 내렸고?”
“네.”
“마케팅팀에 그쪽 언론사에 들어간 광고 재검토하라고 해요.”
“네. 알겠습니다.”
“이게 뭐 하는 짓인지···. 휴일인데 불러내서, 미안해요. 나가 보세요.”
“네. 부사장님.”
부하직원이 나가고, 김우희는 테이블 위 보고서를 신경질적으로 바라봤다.
[C모 가수. J모 밴드. K모 가수. 대형 기획사들의 음원 사재기 논란. 세계무대에 나서는 대한민국 대중음악 이대로 괜찮은가?]-·········이는 자금만 받쳐준다면 어떤 음원이든 1위로 올릴 수 있다는······ 재벌가의 취미생활에 재능있는 뮤지션들이 기회를 잃게 되어······-
┗이거 딱 봐도 C는 C2K아님?
┗재벌 얘기 나왔으니 빼박이지.
┗그 아재 아직도 저럼?
┗흙수저는 웁니다.
┗······
┗···
특정하지 않았다 뿐이지, 댓글만 봐도 사람들이 누굴 떠올렸는지 확연히 알 수 있었다.
“후···. 진짜 그만할 때도 됐잖아. 오빠야.”
삼남 일녀 중 막내 우희는,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첫째 오빠와 둘째 오빠보다 막내 오빠를 가장 많이 따랐다.
재벌가에 태어나 그들만의 세상에서, 어릴 때부터 냉혹한 교육을 받아야 했다.
일반인들에게 허용되는 감정적인 부분은 그들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모든 것을 가진 듯 보일지라도,
사실은 숨이 막히는 하루하루였다.
할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틀을 결코 벗어날 수 없었고, 그렇게 첫째 오빠와 둘째 오빠는 훌륭히 어른들의 기준에 맞춰갔다.
‘야. 이게 락이야.’
언제나 클래식이 울려 퍼지던 턴테이블에서 쿵쾅거리는 시끄러운 소리가 흘러나왔다.
‘괜찮아. 어른들도 하나 없는데.’
중학교 1학년인 막내 오빠는 달랐다.
‘와! 유실장 아들 있지? 걔가 락밴드 한 대!’
오빠에게 붙여진 밀착 경호원 얘기였다.
중학생인데, 이미 경호실 어른들의 훈련을 따라잡았다고 했다.
그런 그가 알려준 음악.
초등학교 4학년에 불과했던 여자아이에게 오빠가 보여준 일탈은 충격적이었다.
‘오빠! 걸리면 어떡하려고.’
‘괜찮아. 너만 조용하면 돼.’
고등학생이 된 오빠는 밤이 되면 높은 담을 넘었다.
그나마 걱정이 덜된 것은, 밀착 경호원과 함께하는 일탈이었기 때문이었다.
감정 표현이 극도로 절제된, 담장 안의 우희는 그런 오빠가 부러웠었다.
자신은 과연 저런 용기를 낼 수 있을까?
그녀에게 당시 오빠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곧, 모든 사실을 알게 된 할아버지의 불호령에, 자신들은 절대 이 담장을 벗어날 수 없다는 현실을 뼈저리게 알게 되었지만.
밀착 경호원이 바뀌었고, 모든 일상을 감시했다.
살면서, 그토록 좌절한 오빠를 본 적이 없었다. 자해하기도 했고, 자살 소동도 두 번이나 있었다.
할아버지는, 오빠의 방에서 발견된 수상한 주사기에 결국 고집을 꺾을 수밖에 없었다.
그 주사기는 사실 우희가 보건실에서 얻어온 것이었는데···.
그날, 오빠의 얼굴에 만들어진 환한 웃음이 마치 어제처럼 선명했다.
그 거대한 할아버지를 무너뜨린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심장이 뛰었다.
오빠의 음악 활동은 조건부였다.
성인이 되면 바로 유학을 떠나는 조건.
그렇게 오빠는 그 담장을 벗어날 수 있었다.
오빠가 가장 빛났던 그 일 년을 떠올리자 우희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신나서 들려준 그 밴드의 음악이 귀에 선했다.
그리고, 어느 공연 날.
‘시발! 어떻게 이런 일이···.’
오빠가 다시 좌절했다.
매일같이 술을 먹었고, 결국 손대지 말아야 할 것에도 손을 댔다.
강제로 미국으로 쫓겨났지만, 다시 돌아온 오빠는 더욱 엇나갔다.
‘혼자 하면 돼.’
이미, 가문에서 버려진 존재였다.
이젠 그를 말릴 사람도 없었다.
그의 미래를 걱정해줄 사람도 남지 않았었다.
완전히 망가지고 나서야 찾은 진짜 자유였다.
그렇게, 두 번째 음악 생활이 시작됐었다.
여기까지 떠올린 그녀는 눈을 가리고 있던 손을 치웠다.
“할 만큼 했잖아···.”
그녀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탁자 위의 서류를 신경질적으로 밀어낸 그녀가 일어났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어?’
저장되지 않은 번호였지만, 끝자리는 분명히 알고 있는 숫자.
하필,
이럴 때 이 사람의 연락이···.
아랫입술을 잘근 씹으며 핸드폰을 들었다.
***
진혁은,
딸을 가진 아빠가 감내해야 하는 인내심을 실감했다.
밤 열 시가 지나자, 1분이 한 시간처럼 느껴졌다.
몇 번이고 핸드폰을 들었지만,
아침에 은서의 입에서 나온 ‘꼰대 아저씨!’라는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아니. 도대체 중학생이 이 시간까지 뭘 하길래···.’
마흔넷의 진혁이 마치 낄낄대는 것만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열아홉 진혁은 이런 초조한 감정을 단 한 번도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제나 쿨했고, 언제나 자신만만했다.
세상은 그를 중심으로 돌아갔었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은서를 중심으로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초조하게 거실 창밖을 바라봤다.
‘어?’
기타 케이스를 맨 길쭉한 청년이 은서와 걸어왔다.
뭐가 그리 좋은지 깔깔대며···.
‘연습하다 왔구나···.’
상혁의 꽉 막힌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진혁은 ‘꼰대’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서둘러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초조한 얼굴로 맞이하면 분명 부담스러워할 것이다.
마치, 걱정 따윈 하지 않았다는 듯 의연한 모습을 보이리라.
서둘러 침대에 누워 자는 척을 했다.
삐삐삐삐 삐리릭.
“어? 아빠 자나?”
은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와! 딸내미가 이 시간까지 안 들어오는데 잠을 자? 걱정도 안 되나? 전화도 한 통 없고.”
은서가 툴툴거리며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어둠 속.
눈을 반짝 뜬 진혁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
은서가 방으로 들어가고, 진혁이 억울함에 이불을 부여잡았을 때,
익숙한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다.
자신만 알고 있는 에튀드.
‘아. 유투부.’
낮에 친구의 정보를 찾을 때 봤던 영상들.
열아홉 진혁에게 생소한 정보가 쏟아졌다.
‘와. 엄청난 세상이구나.’
훨씬 더 재밌어진 세상이었다.
방금의 억울함은 이미 잊었다.
신난 얼굴의 진혁이 눈을 감았다.
엉망진창인 분노와 그를 달래는 작은 새의 지저귐이 아주 작게 들려왔다.
‘엉망이네.’
그날 그녀가 없었다면, 엉망진창으로 끝났을 피아노 연주.
어서 빨리 앨범을 만들고 싶어졌다.
***
침대에 엎드려 이불을 뒤집어쓴 은서는 몇 번이고 봤던 영상을 또 재생했다.
‘와. 진짜 대단하다.’
신유정의 채널에 업로드된 오피셜영상.
처음 봤던 조잡한 스타그램 영상과는 달리 화질도 좋았고, 음질도 깨끗했다.
뭣보다,
키보드를 치는 현호 오빠가 극찬한 에튀드.
은서는 처음 듣는 곡이었다.
하지만, 그 곡에서 느껴지는 자유로움은 그대로 전해졌다.
깔끔한 에튀드에 이어져서일까?
스타그램으로 들었던 것보다, 훨씬 더 강렬하게 느껴지는 후반부 연주.
자꾸만 들어도 질리지 않았다.
비록 뒷모습만 보일 뿐이었지만, 격한 감정에 흔들리는 어깨가 너무나도 멋져 보였다.
그리고, 그 감정을 잠재운 신유정이라는 피아니스트도 대단했다.
이미 구독은 누른 상태.
다른 영상들도 모두 대단했다.
다만, 지금 흘러나오는 이 연주만큼이나 충격적인 영상은 없었다.
‘댓글은 보지 마라.’
오빠들이 했던 말.
하지 말라면 더 하게 되는 것이 당연한 법.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영상을 찬양할지, 은서도 함께 느끼고 싶었다.
그리고,
은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
신유정의 유투부 채널.
업로드 하루도 되지 않아, 30만을 넘겼다.
평소 그녀의 영상이 일주일은 지나야 찍히는 조회수였다.
확실히, SNS 예고편의 위력이 대단했다.
문제는,
원래 신유정의 팬 이외에 새로운 사람들이 너무 많이 유입되었다는 것이다.
이 영상으로 신유정을 처음 알게 된 사람들도 많았다.
당연히,
댓글이 지저분해질 수밖에 없었다.
┗와 무슨 연기를 저렇게 티 나게 하냐?
┗저거 맞춘다고 연습 겁나 했겠다.
┗공연계획 있다는 말 사실임?
┗위에 알바들 공연 열어달라는 거 보면 사실인 듯.
┗아니, 연출해 놓고 처음 보는 사람이라고 우기면 되는거임?
┗그게 좀 뻔뻔하네.
┗그냥 솔직히 얘기해도 연주가 워낙 훌륭해서 조회수 잘 나올 텐데.
┗뭐 예술병 걸린 거지.
┗요새 주작이 판을 치네.
┗남자 얼굴도 안 나오지 않음? 아마 유명 피아니스트일 듯.
┗뭐. 연주는 수준급임.
┗나도 레슨하는 쌤한테 들었는데, 저거 자기도 소화할 수 없다고 들었음.
┗아니. 잘하는 건 알겠는데, 괘씸하게 주작하니 문제지.
┗그건 맞지.
“누나···. 영상 내릴까?”
얼굴을 감싸 쥔 신유정이 한숨을 내쉬었다.
“환장하겠네. 법적으로 대응할 수도 없고···.”
신기수가 신경질적으로 마우스를 두드렸다.
물론, 옹호하는 팬들도 많았고, 연주 자체에 감동한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곳곳에 숨어있는 악의 섞인 댓글들은 그런 분위기를 삽시간에 흩뜨렸다.
이전에도 간혹 악플은 있었지만, 이렇게 많지는 않았다.
유정이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연락처를 받지도 못했고, 누군지도 알지 못한다.
그를 다시 만날 수만 있으면, 해명 영상이라도 찍을 수 있을 텐데.
지금으로선 답이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뒷모습밖에 없으니 지인이 나타날 리도 만무했다.
“그냥···. 지금이라도 썸네일 자막 뺄까?”
-갑자기 등장한 불청객.-
-처음 만난 피아니스트와의 즉흥 듀엣.-
“후···.”
유정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 자막을 뺀다는 것은 조작을 인정하는 꼴이다.
“어? 누나!”
기수가 유정을 불렀다.
“뭐. 왜?”
힘겹게 고개를 든 유정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이거 봐봐.”
기수가 손가락으로 모니터를 가리켰다.
┗이 아저씨 찐임! 피아노 치기 조금 전에 나 일하는 데서 노래 부르고 나갔음. 뒷모습이지만 확실함. 저 장소 나 일하는데 바로 앞임.
┗뭐래 주작 확실해 졌구만.
┗저 시간 바로 전까지 술 먹다 나갔다니까? 진짜임.
┗구라 즐.
“어떻게···. 물어볼까?”
유정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 사례한다고 해.”
“알았어.”
기수가 그 댓글에 비밀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
“아빠! 먼저 나갈게! 출근 잘해!”
은서가 후다닥 뛰어나갔다.
그제야 멍한 표정의 진혁이 정신을 차렸다.
‘아···. 출근해야 하는구나.’
시계를 보니···.
“지각이네?”
마흔셋의 진혁이 꾸짖는 것 같았다.
사실,
열아홉 진혁에게 이 정도 지각은 큰일 축에도 들지 않았지만, 마흔셋 성실한 가장을 존중하기로 했다.
서둘러 씻고, 옷장 앞에 섰다.
몇 벌 되지 않는 옷.
무심코 어제까지 입었던 면바지를 들었다가 아차 하며 정장을 바라봤다.
“흠···.”
어느 정도까지 허용될까?
와이셔츠 위로 올라온 벨트가 맘에 들지 않았다. 바지 속 와이셔츠를 꺼냈고, 목에 있는 넥타이를 풀러 자켓 주머니에 넣었다.
거울 앞에 선 진혁이 입꼬리를 올렸다.
곤란한 상황에 바로 대처할 정도까지는 노력했다.
회사 생활에 대한 기억들이 마구 밀려들었다.
‘와. 어떻게···.’
현관을 나서며 진혁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등신이냐.’
마흔셋의 진혁이 뭔가 따지듯 감정을 쏟아냈지만, 정장을 입은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양보한 열아홉 진혁이었다.
‘회사 생활은 내가 알아서 한다.’
출근이 좀 짜증 났지만,
이건 이거 나름대로 기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