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100
100화 강원도에 뜬 붉은 점
“네? 공연이요?”
“응. 연습했으니까 해 봐야지.”
“에이. 무슨…….”
희철이 눈을 가늘게 떴다.
누구보다 자신의 실력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선생님이었다.
사실 자신을 가르치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그저 유흥거리였을 것이다.
그저 음치 클리닉 정도로 생각했는데.
공연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터미널 라이브 카페 알지? 거기서 일주일 뒤에 할 거야.”
“네?”
농담인 줄 알았는데, 장소에 시간까지 정했다고?
희철의 눈이 동그래졌다.
“사람이 얼마나 모일지는 모르겠네.”
“지… 진짜예요?”
“그럼. 진짜지.”
“어…….”
희철의 심장이 마구 벌컥거렸다.
사람들 앞에서 공연한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아찔했다.
어릴 적 목소리가 크다는 이유 하나로 웅변대회에 나가서, 첫 단어를 내뱉고 그대로 얼어 버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말만 듣고도 이렇게 손이 벌벌 떨리는데, 공연이라니.
“저… 무대 공포증이…….”
“응?”
“다섯 명 이상 한꺼번에 절 바라보면 얼어붙어 버리는 병이…….”
“괜찮아.”
“네?”
“눈 감고 하면 돼.”
“어…….”
과연, 제대로 된 해결책인 건가?
“아니면 뒤로 돌아서 공연해도 되고.”
희철은 눈앞이 아찔했다.
지금 앞에 남은 유일한 선생님과는 제대로 된 대화가 어려울 것 같았다.
그나마 말이 통했던 선생님들은 다들 떠나 버렸다.
가장 동경했던 그가 남았지만.
누굴 가르치는 것은 뭔가 애매했다.
그동안도 직접 시연하거나 발성 정도를 도와줬을 뿐이었다.
나머지 설명이나 이해시키는 건 떠난 두 선생님이 훨씬 더 잘했었다.
“가사고 뭐고 머릿속에서 다 지워질 것 같은데요.”
진혁이 강당 무대로 올라가 희철의 어깨를 잡았다.
그리고 테이블들이 놓인 공간으로 희철의 방향을 틀었다.
“저기 사람들이 가득 찼다고 생각해 봐.”
“아찔하네요.”
“다 너만 보고 있어.”
“아…….”
“자 입꼬리 올려.”
진혁이 멍하니 강당 내부를 내려다보던 희철의 볼을 잡아당겨 올렸다.
“방긋 웃으면 일단 반은 먹고 들어가.”
“그게 무슨…….”
“인사부터.”
진혁이 뒤통수에 손을 올려 밀었고, 희철이 고개를 푹 숙였다.
“이제 저 사람들이 환호하며 박수를 보낼 거야.”
무대 바닥의 나뭇결 모양을 감상하던 희철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봤다.
“방긋!”
진혁이 다시 그의 볼을 잡아당기려 하자 희철이 억지로 미소 지었다.
“그리고,”
스탠드 마이크를 희철의 앞에 세웠다.
“기타 잡아.”
진혁의 말에, 저도 모르게 코드를 잡았다.
“쳐 봐.”
좡.
“어때?”
테이블들을 바라보던 희철이 멍한 눈으로 입을 벌렸다.
‘어라?’
거짓말같이 떨림이 멈췄다.
“여기까지 진행됐으면, 틀리고 싶어도 틀릴 수가 없어. 진짜야. 내가 해 봤어.”
그건 당신 얘기고.
희철은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겨우 삼켰다.
일단 방금 그 떨림이 사라진 순간만큼은 마치 마법과도 같았기에, 마지막 그의 말도 믿고 싶었다.
“네가 치는 기타고, 네가 부르는 노래야. 달라질 수는 있어도, 네가 당당하면 틀린 게 아니야.”
이 무슨 억지란 말인가.
희철이 허탈하게 웃었다.
“잘해야 할 필요 없어. 그냥 재밌으면 돼. 그럼 관객들도 즐거울 거니까.”
뭔가 맞는 말이기는 했기에, 반박은 할 수 없었다.
“날짜는 일주일 뒤다, 알았지?”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따라 저 해맑게 웃는 모습이 왠지 얄미워 보였다.
* * *
“어? 뭐야. 바닷가에 빨간 점이 깜빡이는데?”
“뭐?”
라현이 얼른 핸드폰을 켜고, ‘인간 회사’ 어플을 터치했다.
망망대해 같은 강원도 끝에 붉은 점 하나가 깜빡였다.
확대하자 정확한 위치가 나타났다.
“뭐야. 강씨 아저씨네네?”
그 동네 유일한 라이브 카페.
학창 시절 자신도 몇 번 올라가 본 무대였다.
“와, 이 아저씨도 등록했나 보네. 동해 소년? 동해 중년이 아니고?”
“거기 라이브 카페 사장님이지?”
강릉 출신의 멤버들은 간혹 라현에게 동네 사람들의 얘기를 듣곤 했다.
그중에 기억에 남은 동네 아저씨였다.
아마도 음악을 해 왔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뭐, 그녀의 말로는 동네 모두가 뮤지션이었지만.
“응. 노래는 잘해.”
“근데, 음원도 안 올리고 등록이 되네?”
“그러게? 그런 밴드는 없지 않나?”
“맞아. 다들 심사부터 보잖아.”
라라미용실도 심사에만 일주일이 넘게 걸렸었다.
지금은 한 달도 더 기다려야 한다고 들었다.
보통은 음원을 올리면 자동으로 심사가 들어갔고, 심사를 통과해야 지도에 자신의 공연 위치를 표시할 수 있었다.
“뭐지? 농어촌 특별 전형도 아니고.”
“그러게, 뭐 빽이라도 있나?”
“에이, 그 아저씨가 무슨 빽은… 주문진을 벗어나 본 적도 없는 분인데.”
“아무튼, 저 구석에 빨간 점이 뜨니까 왠지 신기하긴 하다.”
둘은 홀로 외로이 반짝이는 붉은 점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 넓은 땅 구석, 뜬금없이 생겨난 그 점은 굉장히 연약해 보였고, 그렇기에 더욱 응원하고 싶어졌다.
라현이 저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 * *
[와. 진짜. 이해 안 됨. 공중파 아님?]-아무리 아침 방송이더라도 공중파에 나오는 밴드들 수준 좀 보소. 외국에서도 다 볼 텐데, 그냥 서울에서 공연하는 밴드들 소개하면 좋지 않나?
└내 말이. 이젠 까는 재미로 보는 지경임.
└그래도 울 엄마는 신기하게 보긴 하더라. 막 대리 기사 하는 사람도 있고, 배달 일 하면서 밴드하는 사람도 있더라.
└뭐, 열정은 인정.
└아니, 열심히 하는 건 좋은데, 왜 공중파에서 일부러 내보내냔 말이야. 잘못하면 한국 밴드 수준이 하향 평가될 수도 있는 거 아님?
└어디 내놓기 부끄럽기는 하더라.
└어제 가사 틀리고 떠는 애 보면서 내 손발이 다 오그라들더라.
└너무 아마추어들이잖아. 뭔가 연출이라도 좀 제대로 하든가.
└맞아. 그냥 공연하는 장면 하나. 인터뷰 하나 달랑 내보내고 끝이더라.
└그 PD 코탑밴 PD임. 일단 이름은 같음.
└뭐? 코리아 탑 밴드? 좌천된 거임?
└그러게, 이번엔 아침 방송을 말아먹을 작정인가 봄.
└에이. 그때 인간 회사가 등장하지 않았으면 그래도 평타 이상 쳤을걸?
└하긴, 그건 인정.
└어쨌든 그렇게 말아먹고도 또 밴드를 찍네.
└근성도 인정.
└근데 우리 엄마는 꽤 재밌게 봄.
└우리 할머니도!
└어젠 우리 아빠가 인간 회사 홈페이지 물어봤음.
└어른들도 록 음악 듣게 만드는 데 일조한 프로그램임.
└오, 순기능도 있었네.
└아무튼 까는 재미가 있음.
알게 모르게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아침 10시에 시작하는 ‘생방송 오늘은 좋은 아침’의 시청률이 깜짝 상승하기도 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좋은 의미로 찾은 것은 아니었다.
짤방을 만들어 내기도 했고, 방송국 홈페이지에는 조롱 섞인 댓글도 달리기 시작했다.
물론 금방금방 지워졌고, 곧 댓글창이 막히기도 했다.
사람들의 음악을 듣는 수준이 높아졌고, 그 기대치가 올라간 상태에서 지방의 아마추어 밴드들을 소개한다는 건 사실 별 의미가 없었다.
다만, 그렇게 떠들썩했음에도 기사로만 삼일절 공연을 접했던 이들에게는 뭔가 신선하고 새로운 프로그램이기도 했다.
록 음악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별 부담 없이, 꼭지로 지나가는 5분짜리 프로그램으로 록 밴드들을 만난 것이다.
완벽한 공연을 본 적이 없었기에, 열심히 노래하는 그들의 무대도 나름 즐길 거리가 되었다.
간혹, 라이브를 망쳐 표정이 굳은 그들을 안타깝게 바라보기도 했다.
젊은이들이 인간 회사의 지도에 열광하던 때, 그에 편승하지 못했던 어른들은 아침 방송의 ‘내 고장 록 밴드’라는 꼭지 프로그램으로 록 음악에 귀를 틔웠다.
하지만 어른들은 갤러리가 뭔지도 몰랐고, 어딘가의 게시판을 통해 소통하지도 않았다.
그랬기에 인터넷은 언제나 그 프로그램을 까는 얘기들로 도배가 되곤 했다.
“야! 최봄! 그거 보지 말라니까. 또 봤지?”
“후…….”
정태강 PD가 죽상을 쓰고 있는 선임작가의 얼굴을 노려봤다.
꼭지였고 별다른 대본도 필요 없었기에 자신과 조연출 둘만 움직여도 됐는데, 굳이 따라나선 최봄이었다.
처음엔 시큰둥했는데, 비록 인기는 없었지만, 열정 하나만큼은 가득한 밴드들을 하나하나 만나며, 의욕이 스물스물 올라오는 중이었다.
최근은 인터뷰 질문지도 따로 만들고, 그 짧은 꼭지 프로그램에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고품질 자막도 끼워 넣기 시작했다.
‘와… 관객이 여섯 명인데도 공연하네… 그것도 최선을 다해서…….’
최봄이 의욕을 뿜기 시작한, 그날 만난 밴드였다.
물론, 중간에 베이스가 무너졌고, 결국 그 노래가 끝날 무렵엔 모든 악기가 따로 놀게 되었지만.
그들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었다.
그리고 활짝 웃으며 관객들의 조촐한 박수를 받았다.
인터뷰를 따기 위해 무대 뒤로 갔고.
무대 뒤에서 눈물 흘리는 그들을 발견했었다.
고작 프로그램 하나 망쳤다고 세상이 다 끝난 듯 무너졌던 자신이 부끄러워졌었다.
성적이 좋지 않음에도 최선을 다했고.
그렇다고 무관심이 주는 좌절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또다시 다음 주 공연을 계획했다.
최봄은 이들에게서 알 수 없는 다독임을 느꼈고, 팍 식어 버렸던 창작욕을 다시 꿈틀거리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애정을 갖고 애쓰기 시작했는데.
우연히 알게 되어 들어간 게시판에는 조롱과 야유들뿐이었다.
“야. 원래 맛있는 음식에 파리가 꼬이기 마련이야.”
“똥에도 파리는 꼬이죠.”
“에헤이! 말을 해도!”
“그래도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인데…….”
“뭐 무플보다는 악플이 낫다는 말도…….”
“저는 싫어요! 무플이 더 좋아요.”
“야. 나름 관심이잖냐.”
“저딴 관심 필요 없어.”
“하아… 너 그냥 서울로 올라가라. 이건 뭐 가볍게 바람 쐬려고 데리고 왔더니…….”
“후…….”
“한 번만 더 에고서칭 하면 핸드폰 박살 내 버린다!”
최봄이 까만 화면의 핸드폰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사실 억지로 안 보면 마음이 상할 일도 없었고, 지금 이 나쁜 기분도 조금 나아지기는 했다.
다만, 열심히 하는 밴드들을 괜히 방송에 내보내, 그들의 도마 위에 올렸다는 죄책감은 나날이 무거워지고 있었다.
“후…….”
“어차피 이제 몇 동네 안 남았어. 멘탈 잡고, 마무리 잘하자.”
“네…….”
최봄이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야. 그래도 계절 딱 맞춰서 바닷가 오니까 시원하고 좋네!”
땀을 줄줄 흘리며 바람 한 점 없는 땡볕에서 정태강이 오버하며 외쳤고.
최봄은 그제야 표정을 조금 풀었다.
뭐.
언제나.
바다는 참 반가웠다.
* * *
보통 지도는 위치 기반으로 표시되었고, 굳이 손가락을 오므리며 축소하지 않으면 지방까지는 보이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붉은 점이 빽빽한 수도권만으로도 벅찰 지경이었고, 굳이 지방까지 손가락을 뻗지는 않았다.
하지만 위치 기반이었기에 지방으로 여행을 간 사람들이 앱을 열면, 그 주변이 먼저 보일 수밖에 없었다.
“어? 오빠, 이쪽에도 점이 떠 있어.”
“와. 진짜네?”
“동해 소년? 들어 본 적 있어?”
“아니. 새로 올라온 밴든가?”
“뭐야, 노래도 없는데?”
“여기서 가깝네, 내일인가? 시간 맞춰서 가 보자. 궁금하긴 하다.”
“놀러 와서 인간 회사 라이브를 다 만나네.”
“그러게, 그것도 강원도 구석에서…….”
“지도에 띄울 정도면 그래도 잘하겠지?”
“뭐 그래 봐야 지방 밴드지.”
“그런가? 아! 계산. 여기 카드요.”
치킨을 받아 든 남자가 서둘러 카드를 건넸다.
배달 음식을 받다가 대화에 집중하느라 계산하는 걸 깜빡했던 그였다.
“가… 감사합니다.”
카드를 돌려주는 배달 기사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수고하세요.”
펜션 계단을 후다닥 뛰어 내려가는 배달 기사의 뒷모습에 남자는 고개를 갸웃했다.
* * *
‘바다 옆’ 라이브 카페는 터미널 바로 앞 2층 건물의 지하에 있었다.
30년이 넘어가는 건물이었기에, 외벽의 벽돌 모양 타일은 붙어 있는 것이 떨어진 것보다 더 적을 정도였다.
2층의 노래방은 문 닫은 지 오래였고, 1층에만 프랜차이즈 제과점이 들어와 있었다.
건물에 붙어 있는 간판 중에선 그 제과점 간판만 온전한 상태였다.
그 오거리는 주문진에 들어서는 초입이었고, 사람들은 대부분 우회전하여 해변으로 방향을 틀었다.
결국 사람이 모이는 곳은 해변이었다.
아직 초여름이었고, 사람들이 몰릴 시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성수기를 피해 미리 휴가를 온 이들도 있었고, 그중 몇은 바다를 향해 우회전하며 그 오거리 2층 건물을 눈여겨보았다.
사실 기대하는 이들은 없다고 봐야 했다.
지방, 그것도 강원도 끝자락이었다.
그저 호기심이었다.
그렇기에, 공연 시간이 다 되어 그 앞을 기웃거리는 이들은 채 몇이 되지 않았다.
젊은 커플 둘과 여대생 셋으로 이루어진 세 팀이, 허름한 입구에 눈살을 찌푸리며 들어섰다.
각 지방에는 광역시들이 있었다.
인간 회사의 지도가 생겨난 이래 3월 1일 이후 처음으로 강원도에 뜬 붉은 점이었다.
그 점이 깜빡임을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