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103
103화 상경
세계 최고, 최대의 페스티벌을 꼽자면, 영국의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과 미국의 월드 뮤직 페스티벌이 있었다.
여기에 ‘최대’로만 봤을 때는 한국의 하늘 아래 음악 축제가 이름을 올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나 세계적 인지도로 봤을 때 위 두 개의 페스티벌이 가장 유명했다.
그만큼 세계적으로 유명한 뮤지션들이 참여했고, 간혹 마이너 무대에서 슈퍼 루키가 탄생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세계 뮤지션들은 이 축제 무대에 오르는 것으로 자신의 위치를 가늠하곤 했다.
록 밴드뿐만 아니라 재즈와 블루스 EDM까지. 세계에서 알아주는 모든 장르의 아티스트가 모이는 것이었다.
작년 한국에서 열린 축제의 여파로 올해는 훨씬 더 거대하게 치러질 예정이었고, 마련된 스테이지만 해도 스물네 개에 달했다.
한국에서 촉발된 록 밴드 붐은 전 세계를 강타했고, 사람들은 주최 측인 카폰 레코드사에서 발표될 아티스트 명단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악연에 가까웠지만, 그 나라 덕택에 이번 페스티벌은 최다 관중 수 기록을 갈아 치우게 될 것이 뻔했다.
* * *
“섭외 명단 보냈습니다.”
“반발은 없겠지?”
“네. 예전부터 우리 무대에 서고 싶었던 밴드라서, 어떠한 요구라도 들어줄 겁니다.”
스테빈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일단 레몬티 차일드라는 밴드는 기본 이상은 했다.
메인 무대의 쟁쟁한 뮤지션들과 경쟁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한국의 밴드를 데려왔다는 생색 정도는 낼 수 있었다.
사실 관객들이 원한 밴드는 다른 밴드였겠지만.
때마침 다른 밴드들이 모두 앨범 작업에 들어갔다는 것이 좋은 핑계를 만들어 줬다.
“한국의 무대가 기대되는군.”
“네. 재밌을 겁니다.”
스테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한국 밴드들의 수준이 꽤 높아진 것에 조금 놀랐었다.
그들은 매일같이 사람들 앞에서 공연했고, 실력이 향상될 수밖에 없었다.
적당한 수준에서 고르려 했지만, 그가 원한 것은 한국의 음악을 기대한 이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 주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조금 노골적이지만 완벽한 신인 위주로 리스트를 만들었다.
원래도 관객들의 호응이 낮았던 마이너 무대였다.
그 무대를 한국 전용으로 배정했다.
월드 뮤직 페스티벌 역사상 한 나라를 테마로 무대 하나를 모두 넘긴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 빌어먹을 봄의 굴욕을 떠올린 사람들은, 카폰 레코드의 통 큰 결정에 박수를 보내올 터.
그리고.
그 단독 무대에서 제대로 된 실망을 맛보게 될 것이다.
벌써 눈앞에 그 광경이 그려지는 듯했다.
공연 횟수가 몇 번 되지 않는 신인 뮤지션들만 골랐다.
스테빈이 직접 그들의 영상을 확인하기도 했다.
아마추어를 벗어나지 못한 그들의 실력은, 자신의 의도가 너무 노골적으로 보이지 않을까 하는 걱정마저 들 정도였다.
하지만 한국을 향한 뜨거운 열기를 식히려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만 했다.
그 봄이 떠오를 때면.
빌보드에 올라 있는 한글조차 꼴도 보기 싫은 그였다.
스테빈의 입꼬리가 더욱 올라갔다.
* * *
“명단 확인했지?”
“후…….”
진키의 말에 창명이 한숨을 내쉬었다.
“뭐, 그쪽에서 처음에 우리한테 얘기했던 취지에는 맞는데…….”
“이거 진짜 암울하네…….”
“일단 다 불러들여서 연습이라도 좀 시켜야겠다.”
“그러게, 공연 횟수가 다섯 번을 넘긴 팀이 없네?”
“영상들은 다 봤어?”
“뭐, 동해 소년이야 요새 조금 뜨길래 봤지. 목소리는 좋더라.”
“기타가 엉망이지.”
“맞아. 서브가 더 잘 치더라.”
“나머지 팀들은 어때?”
“장르가 애매해. 하난 블루스에 또 하난 피아노 록이야. 동해 소년도 포크 록이고.”
“뭔가 빵 터뜨릴 라인업이 아니긴 하지.”
“서울에도 인지도 낮은 팀들이 많은데, 왜 죄다 지방 팀들로 골랐지?”
“그러게나 말이다.”
그들이 보내온 메일을 노려보던 창명이 고개를 저었다.
“일단은 연락부터 돌리자. 뭐, 까라면 까야지.”
어렵게 찾아온 기회였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라인업을 맞춰 줘야만 했기에 다른 선택은 없었다.
남은 기간은 한 달.
어떻게든 그 축제에 어울릴 만한 프로 밴드로 만들어야만 했다.
만일, 그 수많은 다국적 관객 앞에서 엉망인 무대를 선보였다간 한국에서 매장당할 수도 있었다.
“후…….”
생각해 보니 자신들은 단 한 번도 해외 축제에 대표로 나가 본 적이 없었다.
몇 년 전 임도유 밴드를 따라 함께 참여했던 후지 록 페스티벌이 마지막이었다.
일장기를 찢어 버린 그 과격한 퍼포먼스 이후로는 그 어디에서도 초청된 적이 없었다.
처음 섭외 요청이 왔을 때만 해도 날아갈 기분뿐이었는데, 이제야 ‘한국 대표’라는 말의 무게가 절실하게 느껴진 창명이었다.
* * *
일명 밤톨.
박태용은 하루하루가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불과 몇 달 전만 하더라도 전당포 똘마니였던 자신이었는데, 지금은 당당한 ‘뮤지션’이 된 것이다.
그것도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그 밴드의 멤버들이 만든 팀에서.
“좋아. 이 부분 한 번 더 가 보자. 조금 더 끈적하게! 알지? 밤톨?”
“네? 네! 끈적!”
오늘도 보람찬 연습의 시작이었다.
섬세한 터치의 드럼이 깔렸고, 묵직한 베이스가 뒤를 받치자 절로 어깨가 들썩였다.
투둥.
입에 트럼펫을 가져갔고.
둥.
베이스의 신호로.
자신만의 무대가 펼쳐졌다.
화려하고 경쾌한 멜로디를 마구 뿜어 대다 보면, 가슴에 쌓인 후회들이 모두 씻기는 듯했다.
이 치유의 거리 정중앙 무대에서 벌써 두 번이나 공연했다.
무대에서 모든 조명을 독차지했던 그 순간은 정말로 짜릿한 경험이었다.
사실 태용은 알고 있었다.
저 두 사람이 만들어 내는 저 현란한 리듬이, 이 음악의 원천인 것을.
그렇기에 자만하지 않았고, 선을 넘지 않았다.
“야! 릴렉스! 저 시키 또 지멋대로 흥분하네!”
아, 사실은 무서운 게 더 컸다.
“죄송합니다. 기분이 좋다 보니까네…….”
오늘도 꾸지람으로 시작이었다.
“어? 잠깐 전화.”
“누구야?”
“아, 우리 객원가수.”
“오!”
드디어 자신들의 밴드에 보컬이 합류하게 되었다.
뭔가 조금씩 완성되어 가는 기분이 너무 좋았다.
도대체 보컬은 누굴까?
태용이 궁금한 얼굴로 두 명의 리듬 파트를 바라봤다.
* * *
“와, 삼촌 완성된 거예요?”
“이번 음악도 완전 달달합니다!”
상정은 수능을 포기한 세 꼬맹이를 흐뭇하게 바라봤다.
성과가 나오기 전까지 부모님들에게는 비밀로 해 달라는 아이들의 부탁에 연습실을 좀 멀리 잡았다.
거기다 공연은 훨씬 더 동떨어진 곳에서 했다.
예전부터 해 보고 싶었던 장르였다.
기타를 뺀 채 키보드가 중심인 밴드.
음악에 자신의 젊은 시절을 입혔다.
진혁이 부른 JH의 ‘당당한’은 사실 상정에게는 해당하지 않았다.
본래 짝사랑이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상대의 주변을 맴돌기만 할 뿐이었고, 그렇기에 더 애절해야 옳았다.
친구가 불렀던 노래는 짝사랑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리고 자신과 선하가 사랑을 시작했던 그날의 그 음악을 기억해 냈다.
달달하게 누구라도 잡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어지는 그런 음악.
그런 말랑거리는 음악이 하고 싶었다.
“근데, 이 파트는 여자 키네요?”
“어. 맞아.”
“피쳐링 해 줄 사람 있어요?”
“응. 전화해 보려고.”
상정이 방긋 웃었다.
* * *
오늘은 선생님이 서울에 가셨다.
매주 하루 이틀은 사모님이 계신 병원으로 가셨다.
희철은 자신이 끄적거린 노트들을 바라봤다.
속에서 나오는 대로 적어서 다듬고 다듬으면 그럴싸한 글이 되곤 했다.
느낌 가는 대로 코드를 잡고 줄을 튕겼고, 거기에 맞춰 흥얼거리면 노래가 되었다.
그 과정이 너무나도 신기했고, 그래서 마구 끄적였다.
물론, 모든 노래가 맘에 들진 않았다.
방금 찢어서 구겨 버린 저 종이 뭉치처럼.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파도를 바라봤다.
방파제에 부닥쳐 내는 소리는 같은 듯하면서도 매번 달랐다.
눈을 감고 그 소리에 집중하다 보면 음악처럼 들리기도 했다.
‘파도가 리듬이고, 갈매기는 멜로디야.’
아직 선생님처럼 들리지는 않았지만, 아주 조금씩 알 것도 같았다.
눈을 감은 희철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매번 포근하게 모래사장을 감싸 안고 돌아가는 하얀 물결.
수억 년 동안 계속되었을 일방적인 포옹.
뭔가 따뜻한 감정이 솟아올랐다.
갑자기 울린 문자 소리가 떠오른 악상을 방해했다.
“뭐야?”
옆에 뒀던 핸드폰의 화면을 바라봤다.
[안녕하세요. 드림캐쳐 기획사입니다. 귀 밴드는 월드 뮤직 페스티벌에 초대되었으며 통화가 가능한 시간대에…….]희철의 미간이 좁아졌다.
‘월드 뮤직이 뭐지? 신종 보이스피싱인가?’
고개를 갸우뚱하던 희철은 ‘드림캐쳐’라는 단어에 눈이 번쩍 떠졌다.
라현이 누나가 소속됐다던 그 소속사의 이름이었다.
서둘러 핸드폰을 들었다.
* * *
진혁은 아내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젠 제법 초점이 잡혔고, 분명히 자신을 바라보는 눈동자였다.
입술도 살짝 움직일 수 있었고, 손가락 끝에는 힘도 들어갔다.
이젠 깨어났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었다.
정체되어 있지 않고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기에, 곧 표정을 만들어 내는 것도 가능할 거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때 말했던 애가 곡을 만들기 시작했어.”
진혁이 아내의 손을 주물렀다.
“그, 포크 록 알지? 밥 딜런! 딱 그 느낌이야.”
그녀의 눈동자가 살짝 떨렸다.
“너도 보고 싶지?”
눈꺼풀이 살짝 내려갔다가 올라왔다.
“조만간 세상 사람들이 그 아이의 노래를 흥얼거리게 될 거야.”
그녀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아마도 응원의 뜻일 터.
진혁이 방긋 웃으며 그녀의 손등에 얼굴을 묻었다.
“재밌겠지?”
서둘지 않고 천천히.
지금은 마주 바라볼 수 있는 눈동자와 손끝의 작은 힘조차 너무 소중했다.
마흔셋 진혁의 기억은 고스란히 받았지만, 어른이 된 그녀와 직접 얘기를 나누고 싶었다.
삶에 대해.
지나온 시간에 대해.
함께 이루어 낸 은서라는 우주에 대해.
지나온 세월을 함께 돌아볼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존재였다.
부부란 그런 것이었다.
함께 이뤄 왔기에 함께 나눌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자신과 꼭 닮은, 해맑은 미소를 다시 볼 수 있는 그날이 너무나도 기대됐다.
한참 그녀 손끝의 온기를 느끼던 진혁이 고개를 들었다.
때마침 협탁 위의 핸드폰이 울렸다.
“응?”
까까머리 까만 꼬맹이였다.
* * *
“당장 온대.”
“그렇겠지.”
“정선은?”
“어… 강원도 억양인 사람이 받았는데, 멤버들한테 물어봐야 한다던데?”
“하… 이게 물어볼 일인가?”
창명이 고개를 저었다.
그들 평생에 이런 기회는 다시 없을 기회일 것이다.
세계 모든 뮤지션이 꿈꾸는 페스티벌 무대였다.
그들이 직접 초대했다는데…….
“그… 양주에 있다던 그 밴드는?”
“거기도…….”
“응?”
“일단 생각해 보겠다던데?”
“와… 뭐냐. 진짜. 이게 생각할 일이야?”
“뭐, 너무 큰 무대라서 겁이 난 건 아닐까?”
“아…….”
진키의 말에 창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가능성이 컸다.
자신도 지금 벌어진 상황에 정신이 아찔했으니까.
사실 임도유 선배에게 전화해서 도움을 청해 보려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왠지 모를 자존심이 결국 통화 버튼을 누르지 못하게 만들었다.
언제나 그에게 기대기만 했었기에, 이번만큼은 혼자의 힘으로 해내고 싶었다.
함께 가는 밴드 중 비슷한 수준이라도 있었다면, 서로 도움을 줄 수도 있었을 텐데…….
지금 라인업으로는 절대적으로 기대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얼굴을 쓸어 내린 창명이 표정을 굳혔다.
“이제 당황한 얼굴은 금지다.”
“어. 알았어.”
가장 기둥이 되어야 할 자신이 겁먹고 당황하는 모습을 보여선 안 됐다.
신인 밴드들이고, 이제 공연도 몇 번 경험해 보지 못한 초짜들이기에, 지금의 자신보다 훨씬 더 겁먹었을 것이다.
그러니 선뜻 초대에 응하지 못한 것일 테지.
지금부터는 강한 모습만을 보여야만 했다.
창명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겁을 먹어 아직 결정하지 못한 두 밴드의 연락처를 바라봤다.
* * *
“어… 그러니까. 서울역에서… 4호선을 타고… 삼각지에서 6호선으로… 상수역까지 가서…….”
희철이 어질어질한 머릿속을 진정시키며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강원도에서 쓰던 버스 카드도 되겠지?’
불안한 눈빛으로 지하철 입구를 바라봤다.
태어나서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은 처음 봤다.
아, 북양양 나들목의 그 공연은 빼고.
도로도 넓었고 그 넓은 도로엔 자동차들이 빽빽했다.
건물들은 어찌나 크고 높은지.
그토록 바라던 서울에 발을 디뎠지만.
생각보다 더 어지러웠고.
생각보다 특별하지는 않았다.
희철이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지하철 입구를 향해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