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104
104화 선생님?
상수역에 도착한 진혁은 너무나도 변해 버린 주변 풍경을 감상했다.
허름한 건물들이 가득했던 골목들은 새롭게 단장하여 깔끔한 카페 거리가 되어 있었고, 곳곳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이전 홍대 버스킹 때는 합정역을 향해 움직였었기에 보지 못했던 광경이었다.
‘이쪽이었나?’
‘드림캐쳐’라는 레이블에 대해선 전에 동구 아저씨에게 설명을 들은 적이 있었다.
취지도 좋았고, 운영 방식도 마음에 들었었다.
인디 뮤지션들로만 이루어진 레이블이라니.
너무나도 자유로울 그들의 집합체를 떠올리며 걷다 보니, 깔끔한 5층 건물 앞에 다다랐다.
희철은 이미 도착했을 것이다.
‘미국이라…….’
진혁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예전에는 상상도 해 보지 못했던 무대였다.
한국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넓은 땅이었고, 그렇기에 언어도, 문화도, 관습도, 음악도 서로 달랐다.
세계적으로 이름 있는 페스티벌이니 아마도 각국의 사람들이 모일 것이었다.
피부색과 언어는 다를지 몰라도 결국 인간들이었다.
아픔이 있고, 슬픔이 있으며, 사랑도 있고, 즐거움과 행복 역시 똑같이 느끼는 인간이었다.
그들도, 그들만의 우주가 존재할 터.
각기 다른 인종과 문화들이 한데 모이는 축제였다.
‘얼마나 재밌을까?’
입꼬리를 올린 진혁이 회전문에 들어섰다.
* * *
“아… 그럼 뒤에서 기타 치시던 분이 선생님이야?”
“아. 네!”
창명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안절부절못하는 희철을 바라봤다.
영락없는 초보 티가 팍팍 났다.
“그래서 그 선생님은 언제 오신다고?”
“거의 다 오셨을 텐데…….”
희철이 마른 입술에 침을 발랐다.
어차피 선생님께서 이곳에 오시면 정체는 바로 알려질 것이었다.
그럼 그냥 말해 버려도 되지 않을까?
처음 들었던 생각이었다.
하지만 얘기할 타이밍을 놓쳤고, 상대도 딱히 ‘선생님’의 정체에 대해 묻지는 않았다.
일단은 선생님께서 처음에 걸었던 ‘비밀 유지’라는 조건도 있었고.
여기까지 이어진 대화에 뜬금없이, ‘우리 선생님이 조진혁 님이신데!’라고 으스대는 꼴도 우스웠다.
‘아… 빨리 좀 오시지.’
희철이 통 창문 쪽을 힐끗 바라봤다.
“흠… 그 선생님이라는 분이 오셔야 얘기를 진행할 수 있겠지?”
“아… 네. 금방 오실 겁니다.”
창명이 한숨을 내쉬었다.
카폰 레코드 측에서 찍은 밴드만 아니었다면, 지금이라도 약속을 무르고 싶을 정도였다.
시간을 정하지는 않았지만, 멤버들이 따로 오는 이유로 기다려야 하는 상황을 경험하게 될 줄이야.
‘신인 주제에…….’
자신을 만나러 오는 밴드들은 언제나 먼저 모여서 대기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이처럼 자신이 기다리게 되는 상황은 처음 겪는 일이었다.
‘후… 월드 뮤직 페스티벌만 아니었어도.’
자꾸만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촌뜨기를 살짝 노려본 창명이 낮게 한숨 쉬었다.
자신이 불편한 심기를 마구 드러냈지만, 상대는 알아먹지도 못하는 듯했고, 그게 더 짜증이 났다.
“요즘 같은 시대에 포크 음악을 하게 된 계기가 뭐지?”
“아. 제가 할 줄 아는 악기가 통기타밖에 없어서요.”
“그… 그래?”
사실 통기타도 할 줄 안다고 하기엔 너무 서툴지 않나?
“그리고 선생님께서도 제 목소리에는 통기타가 너무 잘 어울린다고…….”
“뭐, 그렇긴 한데…….”
“그리고 포크송이야말로 모두가 함께하기 좋은 음악이라고 하셨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
“저도 통기타가 좋습니다!”
“그래도, 좀 올드하지 않나?”
“옛날 음악도 엄청나게 좋습니다!”
“아… 물론 그렇긴 한데…….”
“역시!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응?”
“좋아하실 줄 알았습니다!”
“아?”
“모두가 좋아하는 음악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선생님이?”
“네! 맞습니다!”
“아…….”
해맑게 웃으며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까만 청년을 바라보던 창명이 고개를 저었다.
사실 그의 통기타는 엉망이었고, 그가 추구하는 음악 역시 너무 올드했다.
그 부분을 지적하려 시작한 대화였는데…….
어쩌다 대화가 이렇게 흘러간 거지?
“아니, 나도 포크송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지금 동해 소년이 하는 음악은…….”
표정을 굳히며 다시 말을 꺼내던 창명이 갑자기 울린 핸드폰의 화면을 확인했다.
통화 버튼을 누르고.
“왜?”
-야! 로비 난리 났어! 빨리 내려와 봐!
진키의 다급한 목소리에 창명이 벌떡 일어났다.
* * *
5분 전.
처음 이 건물에 들어선 진혁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로비에는 자유분방한 젊은이들이 한가득 있었고.
그들의 음악에 대한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로비 구석에서 홀로 일렉 기타를 만지작거리는 친구도 보였고,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탁자를 톡톡 두드리는 이도 보였다.
태블릿을 하나 두고 열띤 토론을 하는 중인 친구들도 있었고, 노트에 뭔가를 끄적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SJ 엔터테인먼트에서는 느껴 보지 못한 느낌이었다.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던 진혁이 벽에 걸린 통기타를 발견하고는 방긋 웃었다.
“어? 어떻게 오셨어요?”
진키가 서둘러 다가섰다.
워낙 오픈되어 있는 건물이라서 간혹 잡상인들이 들어오곤 했었다.
아무리 봐도 이 공간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랬기에 어떻게 행동하는지 살피는 중이었는데, 장식용으로 걸어 놓은 통기타에 손을 뻗기에 제지하려 나선 것이었다.
“아… 이거 주인이신가요?”
진키는 왠지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얼굴에 고개를 갸웃했다.
“장식용이긴 한데…….”
“만져 봐도 돼요?”
“네?”
“여기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그가 주변을 둘러보며 해맑게 웃었고.
그제야 진키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 혹시…….”
“한 번만 쳐 봐도 될까요?”
“아! 네!”
저 얼굴, 저 해맑은 표정.
그가 확실했다.
진키가 입을 쩍 벌린 채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잠깐의 조율.
조율을 마친 흡족한 그의 미소.
이곳 로비에서 통기타 소리가 울리는 것은, 그다지 특별한 일은 아니었기에 사람들은 딱히 관심을 보내지 않았다.
곧.
통기타를 시작하게 되면 반드시 외워야만 했던.
기본적인 코드가 반복되었고.
역시나.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단지, 진키만이 멍하니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가장 기본적이면서, 그렇기에 가장 귀에 익은 리프.
통기타 교습소에 들어서면 매번 들려오는 소리였다.
그랬기에, 음악을 만들 때 가장 피해 가려고 했던 패턴이었다.
그래서 어쩌면 가장 익숙하면서도 치지는 않았던 소리.
‘아…….’
진키는 문득 떠오른 느낌을 정의했다.
편안함.
언제 끼어들어도 충분히 함께할 수 있는 음악.
그가 콧노래를 흥얼거렸고.
진키 역시 저도 모르게 그 소리에 동참했다.
창밖을 바라보며 기타를 치던 이도, 태블릿을 만지작거리던 사람들도,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던 이도, 노트에 무언가를 끄적이던 사람도.
저도 모르게 흥얼거리다가 화들짝 놀라 로비 중앙을 바라봤다.
무언가에 홀린 듯 움직였고.
‘드림캐쳐’의 사옥이 생겨난 이래 처음으로 모두가 로비 중앙으로 모였다.
다들 개성 넘치는 뮤지션들이었고, 그렇기에 음악적 취향은 너무나 다양했다.
그런 이들이 같은 음악에 취해 집중한 것이었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앉아 통기타를 치며 흥얼거리던 등산복 아저씨가 고개를 들어 방긋 웃었다.
“어? 지… 진혁?”
“맞지?”
“와! 대박!”
모두의 눈이 동그래졌다.
멍하게 주변을 둘러보던 진키가 서둘러 핸드폰을 꺼냈다.
* * *
“뭐야? 포크 록?”
조얀이 고개를 갸웃하며 소파에 앉은 제니스에게 다가갔다.
단순한 멜로디에 목소리만 우렁찬 노래.
묘하게 끌리는 부분은 있었지만, 뭣보다 서툰 통기타의 소리가 꽤 거슬렸다.
예전의 제니스였다면 당장에 핸드폰을 집어 던졌을 정도의 ‘잡음’에 가까운 소리였다.
그런데도 제니스의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다.
조얀이 궁금해할 만했다.
“한국 노래네?”
“응.”
“너무 서툰데?”
“그렇지?”
“뭐 하러 그런 건 듣고 있지?”
“종탁이 보내 준 거야.”
제니스가 태블릿의 방향을 조금 꺾어 조얀에게 향했다.
“막 끼어들고 싶지?”
“어? 뭐…….”
조얀이 미간을 좁혔다.
방금 제니스의 물음을 듣고서야 방금 느꼈던 알 수 없는 감정을 정의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뭔가 살짝 갑갑한 느낌이었는데…….
“듣고 보니 그렇네. 제니스.”
“의도했다면 굉장한 거겠지?”
“의도했다고 보기엔 너무 서툰데?”
기타도 서툴렀지만, 뭣보다 목소리 자체가 노련해 보이지는 않았다.
뭔가 투박하면서도…….
“기타 소리가 하나 더 있어.”
“응?”
워낙 귀에 거슬리는 연주였고, 그 소리에 집중하는 바람에 놓친 서브의 소리가 그제야 들려왔다.
“아. 서브는 깔끔한데?”
아르페지오 기법으로 조용히 뒤를 받치는 그 테크닉은 상당한 실력이었다.
“여기 봐 봐.”
화면 구석 어두운 부분에 누군가가 기타를 튕기고 있었다.
“아… 이 형님 또 재밌는 거 하는 중이었네?”
조얀도 제니스처럼 방긋 웃었다.
‘동해 소년.’
분명 조만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 포크 록 밴드의 이름이었다.
* * *
“유리, 이번에는 카폰의 입장도 생각은 해 줘야 해.”
헨리 찰스 데이비드가 뾰루퉁한 표정의 유레이시를 가만히 바라봤다.
“네가 신의를 가볍게 여기는 사람으로 비쳐선 안 돼.”
“신의 따위를 지켜야 할 상대는 아니지 않아? 제니스한테 하는 것만 봐도…….”
“물론, 네 말이 맞아. 다만, 그들은 언론을 다룰 줄 알지. 직접적으로 공격할 수는 없어도, 작은 뉘앙스 하나로 대중들을 현혹할 수는 있어. 우리 측에서 대응하지 못할 정도로 교묘하게 말이지.”
“후…….”
“이번 한국 공연 때문에도 말이 많이 나왔어. 너도 알잖아? 왕실은 정치적인 어떠한 행동도 해서는 안 돼.”
“알아.”
“그 공연은 정말 최고였어. 그리고 클라이맥스는 네가 만들었지. 그건 엄청났어.”
헨리가 방긋 웃으며 시무룩해진 유리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일단, 무대에는 올라가는 게 맞아.”
“그렇긴 하지만…….”
유레이시는 그날 눈앞에 펼쳐졌던 수십만의 관중을 떠올렸다.
자신의 선창에 그들의 목소리가 더해졌던 그 순간은 아직도 그녀의 가슴을 두근대도록 만들었다.
그 후유증은 엄청났다.
더 대단한 무대를 만나고 싶었고, 그렇게 모두가 함께하는 곡을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아직 그 갈피도 잡지 못한 상태였다.
한국에서 자신의 곡을 그 자리에서 바로 편집해 들려줬던 그가 떠올랐다.
지금까지 그녀가 해 왔던 음악들이 너무나도 하찮게 여겨졌던 그 순간이 선명했다.
그래서.
그녀는 예전 자신이 만들었던 곡들에 대한 자신감이 바닥으로 내려앉은 상태였다.
무조건 더 굉장한 곡을 만들어야만 했다.
그래야만 이 빌어먹을 무기력증에서 탈출할 수 있을 테니까.
이 고민을 이해해 줄 유일한 사람인 제니스는 – 자신은 1년 동안 준비했던 앨범을 엎었다고 말하며 – 재수 없는 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아마도 ‘리버풀의 기적’ 때였을 것이다.
유레이시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이렇게 자신감이 떨어진 상태로, 이전 곡들을 레퍼토리 삼아 월드 뮤직 페스티벌의 메인 무대에 설 수 있을까?
언제나 당당하고 자신감 넘쳤던 그 모습으로?
“유리, 저번 카폰 레코드사의 투어도 맘대로 불참했어. 이번에도 무대에 서는 걸 거부해서 문제가 생긴다면, 가문의 어른들이 너의 음악 생활을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어.”
헨리가 유레이시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그도 사촌 동생의 심정을 모를 리 없었다.
어릴 적 그녀에게 록 음악을 알려 준 사람이 다름 아닌 자신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녀가 이번 한국행에서 느꼈을 감정들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굉장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던 그녀가 금세 시무룩해진 이유도 알 수 있었다.
그렇게나 자신만만했던 그녀였기에 좌절감도 컸을 것이다.
“난, 네가 계속해서 음악 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넌 아직 어리고, 앞으로 드러날 잠재력은 무궁무진해.”
안 그래도 벼르고 있던 가문의 어른들이 나선다면, 더 이상의 자유는 허락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문제를 만들어서는 안 돼.”
“…알았어.”
가문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지지해 주는 사촌 오빠의 말에 유레이시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탁자 위 부르르 떨고 있는 핸드폰의 화면을 바라본 유레이시가 서둘러 손을 뻗었다.
* * *
“아… 그…….”
창명은 방긋 웃으며 악수를 청하는 상대의 손을 잡고 서둘러 고개를 숙였다.
이 까까머리의 선생님이 그 갓끼 님이었을 줄이야.
“여… 영광입니다!”
“아, 선배님이 그러시니까 부담되네요.”
“아닙니다! 말씀 낮추셔도 됩니다!”
“그럼, 말 놓을게.”
해맑게 웃는 그를 바라보던 창명이 슬쩍, 희철을 흘겨봤다.
이런 엄청난 사실은 처음부터 얘기했어야지…….
괜히 뜨끔한 희철이 고개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