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105
105화 한국 대표
“제니스가 무대에 오르겠다고…….”
“뭐?”
스테빈이 미간을 좁히며 공연 기획서를 바라봤다.
하위 스테이지의 라인업은 정해진 상태였고, 탑 뮤지션들의 스케줄을 확인하는 중이었다.
팬들에게 질책받지 않으려면.
회사와 소송 중인 제니스에게도 일단은 초대장을 전달해야만 했다.
자신들은 노력했으나 그가 거절하는 모양을 만들어야 했으니.
그래서 메인 무대도 아닌 그 아래 스테이지에 넣었지 않은가.
자신에게 감정이 좋지도 않은 상태였고 메인에도 세우지 않았는데, 그 자존심 강한 제니스가 아무런 항의도 없이 서브 무대에 선다니…….
“그게… 처음에는 시큰둥했습니다. 그랬는데 기획서의 라인업들을 확인하더니 갑자기 참가하겠다고…….”
“세컨드 무대라는 것도 확인했지?”
“네.”
“게런티가 절반에 가까운 것도?”
“네.”
스테빈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원래도 제멋대로인 놈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정말로 예측할 수 없는 결과였다.
“회장님, 이대로 Box-43을 세컨드 무대에 세우면 팬들의 반발이…….”
“후…….”
분명히 거절할 줄 알았는데…….
“그냥 진행해.”
“네. 알겠습니다.”
이번 페스티벌까지 불참해야 앞으로의 소송도 더 끌고 갈 수 있었는데, 일이 꼬여 버린 것이었다.
“호주의 크리스 제리는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왔습니다. EDM 무대는 이대로 마무리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래.”
“Red lizard도 확답이 왔습니다.”
“하… 칼리 그놈도 있었군.”
Red lizard의 칼리도 한국 공연에 참여했던 인물이었다.
맘에 들지는 않았지만, 워낙 극성적인 고정 팬들이 많았다.
이런 큰 페스티벌에서 제외할 만한 팀은 아니었다.
“재즈 쪽 브라이엄과 잭클린은 확답을 줬고, 로이즈는 스케줄이 맞지 않아 불발됐습니다. 그밖에 유레이시는 아직 대답이 없고, 매커튠은…….”
이마에 손을 올린 스테빈이 기획서에 표시된 뮤지션들을 확인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많은 부분이 자신이 원하던 그림대로 그려지는 중이었다.
다만, 몇 부분 어긋난 붓질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한국 팀은?”
“전체 미팅까지는 잡혔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총뮤지션들의 인원과 명단은 오늘 중으로 보내온다고 했습니다.”
다행히 이 부분의 그림은 제대로 그려지는 듯했다.
짜증이 조금은 진정되는 것 같았다.
어쨌거나, 이번 공연의 숨은 목적은 이룰 수 있을 것이었다.
그렇게 봤을 때, 제니스가 무대에 오르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았다.
어디까지나, 제니스 역시 서구권의 뮤지션이었으니까.
이번에는 메인 라인업에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다.
단 한 순간도 다른 무대에 눈을 돌리지 못하도록 만들 생각이었다.
사람들은 멀리 있는 마이너 무대까지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굳어 있던 스테빈의 표정이 조금 펴졌다.
* * *
창명은 앞에 모인 뮤지션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갓끼 님을 만났던 충격이 너무 커서였을까?
지금도 충분히 충격적이었는데, 그날에 비하면 조금 침착할 수 있었다.
다만, 작은 충격도 이렇게 한꺼번에 모이니까 어질어질했다.
강원도 정선에서 활동하는 블루스 밴드에는 C2K와 인간 밴드의 베이시스트가 있었고, 그 팀의 객원 싱어는…….
“그럼 너희가 한국 대표야?”
무려 테일이었다.
그리고 경기 북부에서 활동하던 피아노 록 밴드에는 인간 밴드의 키보디스트와…….
“와, 창명이 출세했네? 맨날 도유네 졸졸 따라다니더니?”
여성 보컬로 황지선이 함께 왔다.
카폰 레코드사의 취지가 무색해질 만큼의 드림 팀들이 모인 것이었다.
“자. 미팅부터 해야지.”
“다 앉죠, 일단.”
“대표님은 여기 앉으시고.”
갓끼 님이 상석을 향해 손을 뻗었고.
창명의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
* * *
[오. 동해 소년 오늘도 라이브 하네?]└6일 연속 아냐? 막 달리는데?
└영상 보니까 많이 늘었더라.
└노노 그래 봐야 통기타 수준은 아마추어임.
└하긴, 그건 어쩔 수 없더라.
└와, 근데 자꾸 보니까 저 뒤통수도 뭔가 정감이 있네.
└근데, 쟤는 왜 맨날 뒤통수만 보임?
└관객 공포증이 있다는 거 같던데?
└아무튼, 목소리는 정말 우렁참.
└되게 단순한데 듣기는 좋음.
└자꾸 흥얼거리게 만들더라.
└중독성이 있음.
└근데 조명 밖의 서브 기타는 왜 맨날 숨어 있음?
└선생님이라던데?
└서브 기타 소리는 꽤 괜찮음.
└그래 봐야 듣보잡 아님?
└뭐 그러니 숨어 있겠지.
└일단 나 다음 주에 강릉 놀러 가니까 그때까지도 공연하면 후원 한번 쏘러 감.
└오. 나는 이번 주 주말에 가는데.
└나도 이번 휴가는 일부러 속초로 잡음. 저기 들리려고.
└진짜 저 목소리는 직접 들어 봐야겠음.
└맞아. 나도 궁금하네.
“오. 인기 많아졌네?”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희철이 핸드폰을 떨어뜨렸다.
다행히 액정은 살아남았다.
“어때?”
해맑게 웃는 선생님의 얼굴이 보였다.
그리고 희철의 입꼬리도 올라갔다.
“그게… 아직도 얼떨떨해서…….”
“그래도 재밌지?”
“그거야 당연하죠.”
“오늘도 가 보자.”
“넵!”
연산홍이 만연한 비탈길을 따라 선생님의 뒤를 졸졸 쫓아갔다.
서울에서 있었던 회의 후 매일같이 무대에 오르고 있었다.
미국으로 떠나기 전 조금이라도 더 경험을 쌓아야만 했고, 앞으로 일곱 번의 공연이 더 남아 있었다.
공연 경험이 늘며 조금씩 여유는 생겼지만, 아직은 조금 겁이 나 선생님과 눈 마주치며 노래해야 마음이 편했다.
“아. 선생님.”
“응?”
“오늘 무슨 방송국에서 온다던데요?”
“방송국?”
“네. 아침 방송이라고…….”
“아… 그게 오늘이었나?”
“인터뷰도 한다고…….”
“흠… 그건 너 혼자 해야겠다.”
“넵.”
오늘은 객석이 얼마나 차 있을까?
최근 손님이 꽤 늘었고.
사장님은 테이블까지 치워 버렸다.
어제 공연에는 마흔 명이 넘게 들어왔었다.
물론 동네 아저씨들 열 명까지 포함해서였다.
하지만 외지에서 일부러 자신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왔다는 것이 너무나도 신기한 희철이었다.
자주는 아니었지만, 커뮤니티 게시판에도 ‘동해 소년’이 언급되기 시작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고래 사냥’ 하나 겨우 불렀었다.
정말로 굉장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타박타박 걷고 있는 선생님의 등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뒤를 돌아본 선생님이 여지없이 방긋 웃었다.
“오냐.”
희철도 활짝 웃으며 걸음을 재촉했다.
* * *
“야. 최봄.”
“네.”
“인터뷰 약속 잡았지?”
“네, 오전에 통화했어요.”
“후… 이 짓도 이제 못 해 먹겠다.”
KSB의 아침 방송 꼭지 ‘내 고향 뮤지션’의 정태강 PD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간 찾아갔던 지방 밴드들의 수준은 암울한 상태였다.
어떻게 편집해 보려 해도 괜찮은 장면이 나오질 않았고, 그저 그들의 열정과 노력에만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었다.
몇 번 독특한 음악을 만나서 그들의 음악성에 대해 코멘트를 넣었다가, 여러 커뮤니티에서 조롱거리가 되기도 했었다.
놀라운 것은.
몇 년간 2%대에 갇혀 있던 아침 방송의 시청률이 무려 4%대에 진입했다는 것이었다.
물론, 좋은 의미는 아니었다.
늘어난 2%의 시청자는 언제나 비아냥거릴 준비가 되어 있었고, 조금의 허점만 보이면 그대로 게시판에 도배가 되었다.
최근 정태강의 한숨이 늘어난 이유였다.
“동해 소년이라고 했나?”
“공연은 몇 번 안 했는데, 커뮤니티에서도 간혹 오르내리고, 인간 회사 지도에도 몇 번 떴던데요? 최근 6연속 공연 중이고요.”
“흠…….”
지금까지 섭외했던 밴드 중 인간 회사에 올라 있는 밴드는 없었다.
문화생활의 사각지대에서 꿋꿋이 자신의 꿈을 펼치는 젊은이들을 찾아간다는 프로그램의 취지에 맞게 광역시를 제외하고, 인구 20만 이상의 도시들도 제외했다.
그러다 보니 인간 회사의 지도에 올라 있는 밴드는 단 한 번도 만나지 않은 것이다.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살짝 기대되기는 했다.
“노래는 들어 봤어?”
“하… 그런 건 PD가 먼저 챙겨야 하는 거 아닌가?”
“한동안 잠잠하더니 이게 또…….”
“아무리 의욕이 없더라도 기본은 합시다!”
“허어?”
“에이… 모지리 PD 따라다니려니까 진짜…….”
“에에?”
정태강이 고개를 갸웃했다.
최근 축 처져 있던 그녀가 저리 깐죽대다니.
“야. 이제 완전하게 포기한 거냐?”
“이미 이 프로그램은 망했어요.”
“그건 맞지.”
“그게 담당 PD가 할 말은 아니지.”
“에이… 씨…….”
“영상 봤는데, 별거 없어요. 인간 회사 지도에 찍혔다길래 기대했는데… 듣기엔 좋은데, 프로라기엔 좀 아쉬운 정도?”
“후… 그럼 그렇지.”
뒷자리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카메라들을 바라봤다.
의욕을 잃은 후, 메인 카메라로만 대충 촬영해 왔던 그였다.
처음 몇 번은 삼각대까지 설치하며 장면을 만들어 내려 노력도 했었는데…….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메인 카메라의 배터리를 확인했다.
선임 작가의 반응을 보아하니.
굳이 삼각대까지 펼칠 필요는 없어 보였다.
* * *
“형님, 이번에도 그냥 진행해요?”
“후…….”
동구의 말에 석준이 한숨을 내쉬었다.
“야. 하지 말란다고 안 할 놈이냐?”
“뭐, 그렇기는 하죠.”
“아… 돈 쌓이는 맛에 요새 행복했는데…….”
석준이 얼굴을 쓸어내리며 진혁이 요청한 금액이 적힌 서류를 바라봤다.
그간 인간 회사에서 – 후원금 수수료로 – 벌어들인 돈은 정말로 엄청났다.
말 그대로 중계 플렛폼 하나로 대박을 낸 것이었다.
영업이익은 이미 모회사인 SJ 엔터테인먼트를 까마득히 앞지른 지 오래였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한국 지도에 점만 찍어 주며 벌어들인 돈이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벌어들인 자금을 그대로 털어먹겠다니…….
서류를 노려보는 석준의 심정은 미칠 것만 같았다.
“야. 일단 법무 팀이랑 상의하고… 후… 아티스트 명단부터 뽑아 보자.”
“네.”
“이게 도대체 뭐 하는 짓인지…….”
“뭐, 또 재밌는 게 떠올랐나 보죠.”
“하아…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자그마치…….”
금액을 확인한 석준이 눈을 찔끔 감았다.
“에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두 배로 불려 준다잖아요.”
“무슨 수로!”
“그걸 내가 아나요? 내가 한 말도 아닌데!”
“누구 놀리냐?”
“형님 돈도 아니면서…….”
“에이 씨!”
“헤헤.”
동구가 머리를 긁적이며 방긋 웃었다.
“근데, 재밌긴 하겠죠?”
“하…….”
어째 웃는 모습도 닮아 가는 모양이었다.
동구의 투실한 볼살로 만들어 낸 표정에서 진혁의 얼굴이 겹치다니.
석준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일단 항공편부터 알아봐. 이제 한 달도 안 남았다. 도저히 안 되면… 전세기라도 알아보고…….”
“숙박은요?”
“당연히 같이 알아봐야지, 시끼야!”
“아! 왜 또 성질내고 그래요!”
“내가 성질낼 사람이 너 말고 또 누가 있어!”
“에이 씨… 동네북도 아니고…….”
“아오! 이게 다 얼마야!”
석준이 서류 속 숫자를 노려보며 머리를 벅벅 긁었다.
* * *
핸드폰을 바라보던 창명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인간 회사 특별 감사 이벤트.]인간 회사의 지도에 점을 찍었던 모든 아티스트는 자신과 같은 팝업을 확인했을 것이다.
그날, 회의에서 나온 그의 말들을 떠올렸다.
‘농담인 줄 알았는데…….’
나이는 많은데, 참 해맑은 사람이었다.
회의의 내용은 공연에 대한 얘기보다는 그들 서로가 추구하는 음악과 관련된 얘기들이 주를 이뤘다.
그러다 미국 공연 얘기가 나왔지만, 한국 스테이지와는 관계없는 말들만 튀어나왔었다.
라인업과 레퍼토리, 순서, 그 어떤 부분도 정해지지 않은 채 회의는 끝이 나 버렸다.
그런데도 그들은 뭐가 그렇게 자신만만한지…….
답답한 표정을 짓고 있던 사람은 본인뿐이었다.
그리고 그와 눈이 마주쳤었다.
‘우리 엄청 재밌게 놀아 볼까?’
해맑게 웃는 그의 얼굴은 마치 마법과도 같아서, 답답하던 부분이 싹 내려갔었다.
‘사람이 많으면 더 재밌을 텐데…….’
그 말의 의미를 그때는 알지 못했었다.
“와…….”
고개를 젖혀 천장을 바라봤다.
“이게 가능한 건가?”
문득.
처음 그들이 홍대에서 등장했던 때가 떠올랐다.
-우리가 가면 쓰고 공연하면 저렇게 못 할 것 같아?
본인이 했던 말이 선명하게 떠오르자 얼굴이 빨개졌다.
자신과는 클래스 자체가 다른 사람이었다.
상상도 하기 힘든, 말도 안 되는 계획을 짰고.
그걸 실제로 해냈다.
“에이 씨… 뭐가 한국 대표야…….”
물론 표면상으론 초대된 밴드 중 가장 큰 커리어를 가진 ‘레몬티 차일드’였지만.
사실상 이번 한국 스테이지에 서는 뮤지션 중, 가장 인지도 없는 밴드가 되어 버린 상태였다.
‘확, 뒤집어 버리자.’
그가 그렇게 말했으니.
이번에도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것이 뻔했다.
‘원래, 원정은 쪽수라도 많아야지 힘이 나는 거야.’
그 말이 이 뜻이었을 줄이야.
창명은 빨개진 얼굴로 허탈하게 웃었다.
* * *
“어? 이거 뭐지?”
“뭔데?”
“야. 이거 스팸 아냐?”
“어… 그러게… 이게 말이 되냐?”
홍대 걷고 싶은 거리에서 공연을 준비하던 밴드 멤버들이 고개를 저었다.
리더에게 온 문자는 전혀 현실성이 없는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야. 티켓은 그렇다고 쳐도, 왕복 비행기값만 해도 얼마야. 거기다 숙박까지?”
“요새 스팸 교묘하다 진짜. 깜빡 속을 뻔했네.”
“괜히 전화하지 마라. 한순간에 통장이고 뭐고 다 털린다.”
멤버들의 말에 리더가 피식 웃으며 꾸욱 눌러 삭제 버튼을 띄웠다.
“야! 잠깐만. 홈페이지에 공지 떴다!”
혹시나 해서 인간 회사에 접속한 다른 멤버가 소리쳤고, 다들 그에게 모였다.
그렇게 그 화면을 확인한 그들은 경악하는 얼굴로 서로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날 이 시간.
인간 회사의 지도에 이름을 올렸던 대부분 뮤지션의 상황은 같았다.
[이건 미쳤다.]뮤지션들만 모인 비공개 커뮤니티에 도배되기 시작한 게시물 제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