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108
108화 신의 뜻
록 음악은 본래 흑인들의 문화인 블루스와 백인들의 문화인 컨트리의 영향으로 탄생한 로큰롤이 그 뿌리였다.
앨비스 프레슬리가 등장하며 상업적인 정점을 찍었고, 초기만 하더라도 흑인 록 음악가는 많았었다.
하지만 당시 그들이 부르짖던 자유와 젊음의 저속한 표현들은 기성세대들에게 엄청난 반감을 샀고, 보수적인 미국 사회는 흑인 음악에서 유래한 로큰롤을 더 이상 좌시하지 않았다.
시끄러운 음악, 파격적이고 폭력적인 퍼포먼스, 노골적이며 선정적인 가사들, 껄렁껄렁한 무대 매너는 결국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음악으로 치부되기 시작했다.
결국 보수 세력에 의해 미국에서는 록 음악의 암흑기를 맞았었다.
그러다 다시 록의 부흥이 시작된 것은 브리티시 인베이전이라 불리는 영국 록의 미국 침공이었다.
미국 사회에 있어서 피부색에 대한 노골적인 시각을 답습했었고, 보수 세력에게 제대로 공격받았던 경험을 토대로 새로 맞이한 록 문화는 많이 달라졌다.
흑인 음악에서 유래했지만, 가장 크게 맞이한 부흥기에 세계 사람들이 만난 대형 록 그룹들은 결국 대부분이 백인들이었다.
그렇게 ‘록’이라는 장르는 어느샌가 백인들의 전유물이 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미국의 록에 동양인이 끼어들 자리는 없었다.
세계의 많은 젊은이가 한국의 록 음악을 알게 되었지만, 미국의 골수 록 팬들 사이에선 반짝이는 신선함 정도로 치부하는 여론이 상당했다.
60년대 비틀즈와 롤링스톤즈의 음악을 들으며 록을 맞이한 이들에게 있어서, 한국 밴드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냉정했다.
영어를 쓰지 않다니…….
미국인들에게 있어서 언어의 장벽은 매우 컸다.
세계에서 자막을 가장 싫어하는 나라였으니까.
그렇기에 오랜 시간 록 음악을 이끌어 온 거장들 역시 한국의 록 음악에 냉소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번 월드 뮤직 페스티벌의 메인 무대에 오르는 최정상급 아티스트들이 모인 파티.
그곳에서도 최근 한국 록 음악에 대한 얘기는 끊이지 않았다.
“환경의 차이야.”
“흠…….”
“그들에게 지평선 끝까지 이어진 도로가 있나? 사막은? 라스베이거스가 있어? 반나절이면 나라 끝에서 끝까지 가지 않나? 그것도 자동차로 말이지.”
세 차례의 브리티시 인베이전에서도 살아남은, 미국 록의 전설 바비 댄이 아티스트들로 시끌벅적한 플로어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중에서도 그와 동등한 높이로 잔을 맞댈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물론 엄청난 퍼포먼스였지. 그들의 역사를 이해하고, 그 가사들이 주는 의미를 알게 되니 더욱 대단하더군. 다만, 그건 말 그대로 ‘퍼포먼스’야. 그들의 나라였기에 가능했고, 그들에게 의미가 있는 날이었기에 만들어 낼 수 있는 무대였어. 그 굉장함에 사람들은 감동했고. 그 모든 걸 아주 잘 활용한 ‘쇼’였지.”
“그렇게 보였나?”
바비 댄이 자신의 오랜 친구 클로이를 바라보며 방긋 웃었다.
자신과 평생을 경쟁해 온 또 다른 미국 록의 전설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깊은 음악은, 진실된 가슴에서 나온다.”
그가 들고 있는 잔에 자신의 잔을 갖다 대며 말했다.
“자신이 경험한 것들, 그 속에서 느낀 감정들, 그것들이 다양하고 진솔할수록 음악의 깊이는 더욱 깊어진다. 자네가 한 말이지.”
클로이의 표정은 더욱 가라앉았고, 바비는 고개를 저었다.
“흉내 내고, 연기해서 만들어 낸 이야기는 오래 남지 못해.”
위스키를 단숨에 털어 넣은 클로이가 빈 잔을 바라봤다.
“그의 음악은 좀 다르던데…….”
“맞아. 그 합동 공연은 정교한 톱니바퀴처럼 완벽히 맞물렸고, 정말로 굉장했어. 그렇게 많은 소리가 뭉쳤는데도 교묘하게 서로를 침범하지 않았지. 대단한 재능이야.”
“그저 음악적 재능이다?”
바비가 클로이의 잔에 위스키를 따랐다.
“자네가 극찬했던 시계태엽의 원곡도 오랜 기간 이어져 내려온 그레고리안 성가를 편곡한 거야. 그리고 그 시계태엽 이후 그가 만든 기적은 또 뭐가 있지?”
클로이가 새로 채워진 잔을 바라봤다.
사실 그도 궁금한 부분이었다.
공연의 규모는 날이 갈수록 엄청나졌는데, 정작 그의 음악은 처음 들었을 때처럼 충격을 주지는 못했다.
제니스가 보내 줬던 영상 속 그 조잡한 연주가 떠올랐다.
한국의 부랑자들을 위해 즉흥적으로 만들어졌다던 노래는, 제니스를 통해 ‘리버풀의 기적’을 만들어 냈지 않은가.
그때 만난 엉망진창인 공연은 정말로 엄청났고, 이후로 홀린 듯 그들의 행보를 지켜봤다.
“음악적 재능은 엄청나. 그건 인정할게.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는 거지. 그가 이곳에서 태어나 이 넓은 세상을 경험했다면, 훨씬 더 엄청났을 거야.”
“경험이라…….”
“클로이 자네도 나이를 먹으니 판단이 흐려지나 보군. 신선함으로 반짝이는 폭죽에 자꾸만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는 걸 보니까 말이야.”
“폭죽이라… 화려하지만 금방 사라져 버릴 거라는 말이지?”
사실 클로이도 걸리는 부분은 있었다.
기대치가 너무 높아져서였을까?
분명 엄청난 공연들이었지만, 처음 느꼈던 감정 그 이상을 만나지는 못했다.
“한국은 드라마나 영화들도 꽤 잘 만들지. 아주 재밌더군. 다만, 그들이 외계인의 침략을 막아 내는 히어로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그런 이야기로 세계 모두를 이해시킬 수 있을까? 어쩔 수 없는 환경의 차이야. 그들이 가진 경험으로 만들어진 소재는 결국 한정될 수밖에 없어.”
충분히 이해했음에도 노회한 늙은이의 노파심 가득한 설명이 지루하게 이어졌다.
“그들이 가진 세상은 세계 모두를 품고 설득하기엔 너무나도 좁아.”
클로이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엔 들지 않았지만, 그의 말은 구구절절 맞는 말들 뿐이었으니까.
“이제 이해됐어?”
“응. 이해했어.”
갑작스럽게 끼어든 목소리에 미국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하다는 두 거장의 고개가 돌아갔다.
“제니스?”
클로이의 위스키 잔을 뺏어 든 제니스가 방긋 웃었다.
“미국이라는 땅덩어리와 영어라는 언어에 갇힌 당신의 세상이 좁다는걸.”
“응?”
“곧 알게 될 거야. 우리가 얼마나 좁게 살아왔는지.”
제니스가 바비의 잔에 자신이 들고 있는 잔을 부딪쳤다.
“그의 세상은 결코 좁지 않아.”
바비의 흰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바비, 난 당신의 음악을 좋아해. 정말이야. 하지만 존경하지는 않아. 당신의 세상은, 나까지 품을 수는 없었으니까.”
“그를 존경한다고 했더군. 인터뷰에서 말이야.”
천방지축 제니스의 입에서 존경이라는 말이 나왔었다.
갑자기 느껴지는 왠지 모를 질투에 바비가 헛웃음을 지었다.
이건 자존심의 문제기도 했다.
현세대 최고의 아이콘인 제니스.
단 한 번도 누군가를 존경한다거나, 누구에게 영향을 받았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처음으로 존경이라는 단어를 붙인 인물이, 아이돌이나 만들어 내는 그 작은 나라의 누군가라니.
“그를 만난다면 당신도 존경하게 될 거야. 그건 자연의 섭리 같은 거니까.”
“자연의 섭리?”
“그가 이 대륙에 발을 딛는 순간, 고여 있던 미국의 음악도 변화할 거야.”
“이봐 제니스 우린 두 차례의 브리티시 인베이전을 겪어 본 사람들이야. 끝끝내 미국의 록을 지켜 냈지. 언제나 세계 문화의 중심은 이곳이었어. 이제 미국은 그 어떤 침공도 허용하지 않아. 하물며 동양의 끝에 붙은 한국의 침공 따위는 경계 대상도 되지 않지.”
둘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클로이가 고개를 저었다.
지금 앞에 선 이 악동은 언제든 터질 준비가 되어 있는 폭탄이었고, 미국 음악계의 전설이라고 피해 갈 폭발은 아니었다.
그 제니스가 처음으로 존경이라는 단어를 붙인 사람을 바비는 어떻게든 깎아 내리고 있었다.
그걸 참아낼 제니스가 아니었다.
소동이 일어나기 전에 이 대화는 이쯤에서 끊어야 했다.
“후… 제니스.”
더 말하려던 바비에게 손바닥을 내밀고, 제니스를 바라보니…….
분명 굳어 있을 줄 알았던 그의 얼굴이 방긋 웃고 있었다.
“침공은 인간이 하는 행위지.”
제니스가 여유롭게 웃으며 이를 드러냈다.
“지진이나 허리케인은 신의 뜻이야.”
바비의 눈이 동그래졌다.
“막거나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니야.”
위스키를 단숨에 털어 넣은 제니스가 클로이의 앞에 잔을 내려놓았다.
“그저 순응해야 할 거야.”
그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제멋대로였던 제니스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다니.
아무래도 제대로 미친 듯했다.
멍한 표정의 바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 *
[대박. 이 라인업 실화임?]└뭔가 잘 그려진 명화에 한글로 낙서한 느낌임.
└이런 듣보잡들이 한국 대표라고?
└심지어 동해 소년은 밴드도 아니잖아?
└이거 카폰 뮤직이 한국 멕이는 거임.
└이런 뻔히 보이는 수작에 넘어간다고?
└아니 인간 밴드도 아니고! 나비계곡이나 임도유도 아니고!
└그 원래 월뮤페 마이너 스테이지는 인지도 없는 밴드들이 서긴 했었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세계 사람들이 한국 수준을 그 정도로 볼 거 아님?
└공연 횟수도 몇 번 안 되는 밴드들만 교묘하게 골랐네.
└월뮤페 홈피 보니까 제일 구석에 있는 스테이지야. 그것도 마지막 날 하루만 배정했어. 그날은 메인 스테이지에 괴물들만 나올 텐데! 완전 파리만 날리겠네.
└아침 방송에 나왔던 동해 소년 인터뷰가 실제로 일어나다니!
└야. 그때 제로투 춘다던 애들 어디 갔냐?
└아! 박제해 놨어야 했는데!
└좋은 구경 놓쳤네.
└아무튼 월뮤페에 한국 전용 스테이지가 생긴 건 엄청난 일인데, 라인업이 저따위라니.
└레몬티도 미친 거 아님? 저 멤버들을 오케이 했다고?
└역대급 월뮤페에 역대급 듣보잡이구나.
└일단 한국 대표로 나가는 거니까 응원은 하자, 얘들아.
└이게 응원해서 될 일이냐? 급이 다른데!
└야. EDM 스테이지에 크리스 올라 있더라.
└오! 다온?
└여신님?
└스타그램 보니까 지금 호주에 있던데? 같이 움직일 듯!
└불행 중 다행인 건가?
└차일드 애플도 세컨 스테이지 2일 차에 있음.
└그나마 다행이네.
└근데 월뮤페는 결국 록 밴드가 메인 아님?
└그게 제일 아쉽다.
└제발. 지금 우리나라로 쏠린 시선들 망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평타만 치자.
└아! 진혁느님은 어디 계시단 말인가!
└세계를 평정할 기횐데!
└갓끼 님! 제발!
라인업 발표 후 커뮤니티 게시판은 온갖 부정적인 글들이 넘쳐났다.
그도 그럴 것이, 영상이나 음원도 제대로 남기지 않았으며, 실질적인 공연 횟수도 몇 되지 않는 뮤지션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경기도 양주에서 공연하던 키보드 록 밴드 ‘그린내’, 정선 치유의 거리에서 활동하는 블루스 밴드 ‘담장 너머’, 마지막으로 주문진에서 공연하던 포크 록 밴드인 ‘동해 소년’까지.
모두가 신인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활동 성적이 빈약했다.
그나마 있던 조잡한 영상들은 라인업 발표와 함께 모두 내려갔기 때문에, 그들의 음악이 어떤 음악인지 직접 들은 사람들도 극소수였다.
외국인들에게는 한국의 밴드라는 것만으로도 흥밋거리가 될 수도 있었겠지만, 정작 가장 가까이에 있는 한국 록 팬들은 일찌감치 기대를 접어야만 했다.
자세한 내막을 알지 못하는 팬들 사이에서 만들어진 여론은 어쩔 수 없었다.
이런 분위기가 점점 커질수록.
정태강 PD의 심장은 더욱 방망이질 쳤다.
“아…….”
임도유에게 ‘동해 소년’에 대한 소스만을 받았을 뿐인데.
“어떻게… 이렇게…….”
국장에게 올린 기획안을 전면 수정해야 할 상황이었다.
“하나같이…….”
카폰 레코드 스테빈 회장의 꼼수가 엿보이는 한국 라인업이었는데, 어떻게 뽑기를 해도…….
“그… 축제 전까지는 절대로 예고도 하지 않을 거고, 다큐 형식이라서 귀찮게 인터뷰나 그런 거는 따지도 않을 거야. 맞지? 형?”
임도유가 옆구리를 쿡쿡 찌르자 화들짝 정신을 차린 정태강이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
“네. 먼지처럼! 방해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정태강의 심장이 벌렁거렸다.
동해 소년의 뒤에 진혁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엄청났는데, 황지선에 테일과 C2K라니.
지금 발표된 라인업에 엄청난 실망감을 느끼고 있을 팬들이 만나게 될 굉장한 반전을 떠올리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듣보잡 밴드라 생각한 이들의 정체가 한국 대중음악계의 대표들이라니.
강원도 태각시의 K2 리조트 지하에 모인 얼굴들을 바라보자 다큐멘터리의 제목을 다시 떠올려야만 했다.
‘상륙?’
살짝 고개를 저었다.
‘침공?’
이것도 아니었다.
문득, 이들이 처음 등장했던 응수동 축제 바로 전의 버스킹 때에 한국 음악계에 퍼졌던 단어가 떠올랐다.
‘자연재해!’
정태강은 선임 작가 최봄이 떨리는 손으로 수첩에 끄적이는 것을 힐끗 바라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자신이 최고로 아끼는 작가였다.
-록의 본고장에 몰아칠 한국이라는 태풍.
그들은 대비도 하지 못한 채 어마어마한 태풍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정태강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