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110
110화 세계지도
그동안 쉬지 않고 공연하며, 무대 위에서의 떨림은 상당히 괜찮아졌다.
주문진 라이브 카페에서는 자신이 스타트만 끊으면 다들 알아서 놀았었다.
그 왁자지껄한 소음 속에서 자기만의 노래를 부르면 그만이었다.
그에게 공연이란 그랬었다.
그의 음악은.
결국 청중들이 완성품으로 만들어 냈다.
그저 그렇게 어울리며 공연했을 뿐이었다.
그런 희철에게 있어서 이 공간의 무게감은 상당했다.
자기보다도 어려 보이는 친구들의 능숙한 연주와 몸짓들, 그 발랄한 음악에 입혀진 한국 최고의 여가수 황지선의 노래는 굉장했다.
거기에 이어진 블루스 밴드의 무대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끈적한 리듬과 트럼펫 소리와 함께한 국민 꿀 성대 테일의 담백한 목소리 역시 정말로 환상적이었다.
넋을 잃고 바라보다 보니.
이제 갓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강원도 청년의 차례가 되어 버렸다.
이미 공연한 두 팀과는 클래스 자체가 달랐다.
그 압박감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났다.
떨리는 손가락은 둔탁한 소음을 만들어 냈고, 아차 하며 내지른 목소리는 그대로 갈라져 버렸다.
첫 소절이 끝났지만, 등 뒤 그 누구도 흥얼거리지 않았다.
온전히 자신의 목소리만이 공간에 울렸고,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분위기였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고.
결국.
두 번째 소절을 놓쳐 버렸다.
‘내가 도대체 여기에 왜 있는 거지?’
넋을 잃은 희철은 자신을 빤히 바라보며 방긋 웃어 주는 선생님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라이브 카페에서 공연할 때만 해도 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었다.
자신의 노래를 들었던 모두가 즐거워했으니까.
정신없이 시간이 흘렀고,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서는 첫날.
맞닥뜨린 현실은 너무나도 가혹했다.
이 공간, 미국으로 가는 팀 중.
함량 미달의 보컬은 본인 하나뿐이었다.
“야. 쟤 아직도 우냐?”
“놔둬. 울고도 남지.”
“인터뷰 보니까 세계 제패할 기세던데…….”
‘아… 인터뷰…….’
희철의 몸이 더욱 움츠러들었다.
“자자. 일단 숙소로 갔다가 여섯 시까지 모이자. 레퍼토리도 상의하고, 순서도 정해야 하니까.”
스튜디오가 한동안 부스럭대다, 문이 여닫히는 소리와 함께 고요함이 찾아왔다.
혼자 남았지만.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바보! 멍청이!”
마냥 들떠 있었던 한동안의 자신을 질책했다.
“나 따위가! 미국을…….”
“도망치고 싶어?”
“악! 깜짝이야!”
화들짝 놀라는 바람에 고개를 들자 뿌연 시야에 누군가가 가득 찼다.
“서… 선생님…….”
“도저히 가능할 거란 생각이 안 들지?”
희철이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지선이 누나는 삼십 년 가까이 노래했어. 테일이도 이십 년이 다 됐지. 레몬티의 창명은 십오 년째래.”
“알아요…….”
“그런 사람들 앞에서 폼이나 잡으려고 하니까 망하지.”
바닥의 나뭇결을 세던 희철의 눈이 동그래졌다.
“할 수 있는 걸 해야지. 이제 막 음악을 알게 된 너만 할 수 있는 거.”
“네?”
“잘했잖아? 강원도에서.”
도대체 뭘 잘했다는 거지? 희철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그냥 솔직하게 네가 가진 목소리를 내면 돼. 그들과 같은 노련함과 실력은 너의 몫이 아니야. 암. 수십 년 지나도 넌 지선이 누나나 테일이 될 수 없어.”
‘와… 뼈 제대로 때리네.’
“마찬가지로, 지금 그들은 이제 막 음악을 시작한 너의 진솔함을 따라 할 수 없지.”
선생님이 통기타를 들었고, 귀에 익은 코드를 짚기 시작했다.
“나도, 따라 할 수 없어.”
매일같이 연습하던 코드들이 울리자 마음이 조금 편안해지는 것도 같았다.
“경험을 거듭할수록 최선을 찾게 돼. 요령이 생기고, 조금 더 괜찮은 길을 알게 되지. 한번 그 길을 알게 되면 괜히 돌아가지 않아. 그게 노련함이야. 그렇게 되는 건 당연한 거고, 어쩌면 조금 서글픈 거야.”
“서… 서글퍼요?”
“노련해질수록 점점 순수한 도전과는 멀어지니까.”
기타 치는 것을 멈춘 선생님이 방긋 웃었다.
“서툴 수 없어. 그 정도 위치가 되면.”
‘이건 또 무슨 소리지?’
희철은 맥락이 툭툭 끊기는 말들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나이가 들어가고 경험이 늘수록 서툼을 경계하게 되지. 그만큼 소심해져.”
“소심이요? 아까 그분들이?”
“자신이 소화할 수 있는 맥시멈을 넘기 힘들지. 그들은 완벽해야 하니까.”
뭔가 알 것 같으면서도 아리송했다.
“넌 완벽할 필요가 없어.”
조금 전까지 세던 바닥 나뭇결의 개수가 백을 넘어갔고, 헷갈리기 시작했다.
“꼰대질은 여기까지. 나도 제대로 정리가 안 되네. 이게 참… 안 하던 걸 하려니까…….”
‘아… 어쩐지…….’
순간 희철은 피식하고 웃을 뻔했다.
“이제 좀 혼나 보자.”
“네?”
“내가 볼륨 줄이는 걸 언제 가르쳐 줬더라?”
“아…….”
“왜? 여기서 네 목소리 제대로 내면 시끄러울 거 같았어?”
“그… 그게…….”
“후…….”
“그… 공간도 좁고…….”
진혁이 짐짓 엄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기타 들어.”
얼떨떨한 표정의 희철이 통기타를 받아들었다.
“음… 볼륨 100으로 가자.”
“지… 지금요?”
“아무도 없잖아? 성당에서 연습하던 때처럼 질러.”
희철이 굳게 닫힌 스튜디오 문을 바라봤다.
방음은 제대로 되어 있을 터였다.
“말했다. 라이브 카페 말고, 성당에서 지르던 소리라고.”
“네!”
선생님의 입꼬리가 올라갔고, 희철이 두어 번의 헛기침으로 목을 풀었다.
“명심해. 넌 서툴러도 돼.”
조금 전의 대화가 아직도 이해되지 않았지만, 지금 선생님이 하신 말은 뭔가 모를 용기를 줬다.
“가자. 최대 볼륨!”
희철이 기타를 고쳐 잡고 눈을 감았다.
* * *
“음… 대책을 세워야겠는데?”
황지선이 손가락으로 이마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이번에 월드 뮤직 페스티벌에 오르는 팀원 중 가장 연장자가 입을 떼자 로비에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모였다.
“경험이 부족하단 건 미리 들었지만…….”
“동네 행사도 아니고, 그래도 한국 대표로 오르는 무대인데…….”
“벌써 저렇게 긴장하면 어렵지 않을까요?”
“그냥 삑사리 수준이 아니었는데…….”
“일단 진혁이 올라오면… 야. 너희는 표정이 왜 그래?”
잔뜩 가라앉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너무나도 평온한 얼굴의 세 사람에게 모두의 시선이 모였다.
“얼레? 웃어?”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간 상정이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황지선이 인간 밴드의 세션들을 차례로 바라보며 눈썹을 꿈틀댔다.
고개 돌린 상정에 시선을 멈춘 그녀가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히 뭔가 있었다.
“뭐야. 뭔데 그래?”
“그게…….”
옆얼굴을 찔러 대는 지선의 시선에 상정이 입을 달싹이는데.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 봐도 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뿐이네…….
어디선가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계단에서 노래하나?”
“아까 걔지?”
“목소리는 좋네. 저음인데도 꽉 찼어.”
“가 보자.”
사람들이 로비 구석의 계단 쪽으로 움직였다.
“어? 없는데요?”
반 층을 내려갔고.
노래는 더 커졌다.
또 반 층을 내려갔다.
노래방을 개조한 스튜디오가 있는 지하 1층에 다다른 사람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지하 1층에서 들린 소리라고?”
테일이 황당한 표정으로 복도를 바라봤다.
“음정이 꽤 괜찮아졌는데?
“목소리는 더 커졌네…….”
“그러게…….”
인간 밴드 출신 삼인방의 대화를 지나쳐 서둘러 스튜디오 방향으로 걸었다.
“무… 문도 닫혀 있는데요?”
“이거 스피커 아니지?”
테일이 멍한 표정으로 지선을 바라보는데.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
클라이맥스가 울리자.
계단에서도 한참 떨어져 있는 스튜디오의 입구를 바라보던 지선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와… 무슨 성량이…….”
그의 공연을 직접 봤던 임도유 역시 입을 쩍 벌렸다.
* * *
“어째 오늘은 조용하네?”
“가가 서울 갔다던디?”
“소원 풀었구먼, 우리 동굴이.”
“허허. 동네가 다 조용하네.”
“쩌렁쩌렁한 소리가 안 들리니 뭔가 허전하구먼.”
말린 명태를 다듬던 아주머니들이 저 멀리 언덕 위 성당을 바라봤다.
* * *
“해 봐.”
진혁이 희철의 옆구리를 찔렀다.
“아아아아아아.”
공간을 가득 메우는 희철의 발성.
“와… 굉장하네…….”
황지선이 박수를 ‘짝’ 쳤다.
“얘가 그 동네에서 별명이 동굴이야. 동굴에서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 같다고 동네 할머니들이 붙여 주신 별명.”
그냥 내지르는 소리도 아니고, 아주 낮게 깔린 저음의 무게가 엄청났다.
“주문진에서 공연할 때보다 더 큰 거 같은데?”
임도유가 엄지를 세우며 말했다.
“아. 라이브 카페에선 볼륨 40이었어.”
희철의 머리를 쓰다듬던 진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아깐 안 그래도 긴장했으면서 해 본 적도 없는 볼륨 10짜리 목소리를 내려고 해서 그런 거야.”
“그럼, 조금 전에 고래사냥의 볼륨은 몇이야?”
“볼륨 100으로 지르랬는데…….”
쓰다듬던 그대로 뒤통수를 팍 밀어 버린 진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한… 80 정도?”
희철이 얼굴을 붉히며 고개 숙였다.
“음역은 어때?”
“좀 좁아. 근데, 들어서 알겠지만 딱 좋은 영역이야.”
진혁이 방긋 웃었고,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로 훈련받은 베이스 음역의 성악가들도 저런 목소리는 내지 못한다.
타고난 목소리.
저 꽉 찬 울림의 무게는 부족한 기교 따위는 메우고도 남았다.
통기타 하나 들고 무대에 서야 하는 원맨 뮤지션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무기는 목소리였다.
스튜디오에 모인 뮤지션들은 우렁차지만 낮게 읊조리며 – 지하에서 한 층을 넘어 – 들려온 고래사냥 초반부를 떠올렸다.
포크 록에 정말로 잘 어울리는 목소리였다.
“자. 이제 아까 다 못한 노래 들려줘야지.”
진혁이 통기타를 어깨에 두르며 방긋 웃자, 희철이 머리를 긁적이며 뒤로 돌았다.
* * *
캘리포니아 중부 그래스벨리 하늘에 떠 있는 헬리콥터에서 아래를 바라보던 스테빈이 입꼬리를 올렸다.
광활한 초원 지대에 완성되어 가는 무대들이 보였다.
이제 얼마 후면 저 아래 사람들이 가득 찰 것이다.
이번 축제는 스테빈으로서도 처음 시도하는 규모였다.
메인부터 세컨드 무대를 장식할 정상급 뮤지션들만 해도 30팀이었고, 그 외 마이너 무대까지 하면 150팀이 넘었다. 3박 4일간 모든 무대에선 음악이 멈추지 않을 터.
지금껏 지구상 그 어떤 페스티벌도 이렇게 거대하지는 못했다.
1차와 2차 라인업 발표가 끝났고, 이미 사전 오픈 티켓 10만 장은 매진된 상태였다.
아직 발표되지 않은 3차 라인업에는 록 역사상 전설이라 불리는 이들이 포진해 있었다.
그때 풀릴 티켓은 15만 장.
현장 티켓까지 하면 최소 35만 명은 이곳으로 향하게 될 것이었다.
스테빈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는 두 차례의 브리티시 인베이전을 최전선에서 맞이했던 인물이었다.
미국 록의 부흥기에 음악을 알게 되었고, 몰락을 뼈저리게 경험했으며, 영국 록이 미 전역에 울려 퍼질 때 그들을 등에 업고 살아남았다.
그를 이 자리에 있게 해 준 영국 록의 침공이었지만, 당시 미국 음악 문화의 주도권을 무기력하게 내줬던 치욕은 결코 잊을 수가 없었다.
현재 미국과 영국의 음악에는 경계선이 사라진 상태.
그 경계선을 애써 지운 것은, 함락당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마지막 눈속임이었기도 했다.
영국의 음악은 인정해야만 했다.
비틀즈를 앞세워, 롤링스톤즈, 딥퍼플, 레드제플린, 퀸까지 굵직한 밴드들이 미국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넘어왔다.
그렇게 미국 문화를 점령했었다.
“왜 또 표정이 그렇지?”
묵직한 목소리에 스테빈이 고개를 저었다.
“그냥, 또 옛 생각이 나는군.”
“흠…….”
영국의 록이 미국을 점령하고 문화를 뒤흔들 때도 지금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정상에서 버텼었다.
“바비, 파티는 어땠지?”
“뭐, 즐거웠지.”
영국의 록은 컨트리 록과 포크 록 장르만큼은 흔들지 못했었다.
바로 이 거물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젊고, 패기가 넘치더군.”
카폰 레코드의 또 다른 주인인 바비 댄이 방긋 웃었다.
“패기라… 누가 또 자네에게 실례를 범했군.”
“예상보단 약한 실례였어.”
“제니스 아니면 칼리겠군.”
“진짜 별거 아니었어.”
스테빈이 피식 웃었다.
“참. 한국에게 마지막 날 스테이지 하나를 통째로 줬다면서?”
바비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나?”
스테빈은 대답 대신 아래로 검지를 뻗어 천천히 움직였다.
메인 스테이지에서 세컨드로 이어지는 대로를 따라가다가 서드 스테이지를 지나고 좁은 길을 따라 작은 스테이지들에 머문 손가락이 조금 더 움직였다.
그리고 그 스테이지들을 둘러싼 초원 사이 보일 듯 말 듯 한 오솔길 너머 작은 공터들이 보였다.
아직 무대도 만들어지지 않은 공간에 시선을 멈춘 바비가 하얀 치아를 드러냈다.
“일본에서 많이 분했나 보군.”
스테빈이 어깨를 으쓱했다.
“자네 성격도 참 고약해.”
미국 록의 자존심이자 전설의 인물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 *
“어? 이거 뭐야?”
“왜?”
“인간 회사 지도가…….”
“와! 대박!”
홍대 지하철역을 나서며 오늘 즐길 공연을 찾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췄다.
바글바글한 지하철 입구 여기저기서 핸드폰을 확인하며 웅성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세계지도 뭐냐?”
“여기는 뭔데 새빨갛지?”
새로 생긴 팝업 페이지에 세계지도가 펼쳐졌고, 일본을 지나 태평양 너머 넓은 땅덩어리 여기저기에 붉은 점들이 찍혀 있었다.
월드 뮤직 페스티벌이 일주일 남은 어느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