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111
111화 캘리포니아 해변은 엘도라도
세계 음악 팬들이 기다리던 역대급 월드 뮤직 페스티벌의 3차 라인업이 발표되었다.
최정상급.
빌보드 HOT 100 1위 한두 번 정도로는 명함도 내밀지 못할 정도의 진짜 레전드들의 이름이 차례대로 나열되자 온 세계 음악 팬들이 들썩였다.
마지막으로 준비되었던 사전 예매 티켓 15만 장이 단 5분 만에 매진되는 초유의 사태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세계 정상급의 콘서트들을 한 공간에서 4일 내내 즐길 수 있기에, 엄청나게 높은 티켓값은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이목이 캘리포니아로 집중되던 때, 뜬금없이 인간 회사 홈페이지가 화제로 떠올랐다.
다름 아닌 최근 단행된 소규모 업데이트 때문이었다.
단지 페이지 하나 늘어났을 뿐인, 말 그대로 별거 아닌 업데이트였지만, 그 새로 생겨난 팝업의 내용은 정말로 엄청났다.
기존 ‘대한민국 지도’ 페이지 옆에 함께 뜬 ‘세계지도’는 지금까지 한국에서만 서비스되던 ‘버스킹 후원 시스템’의 세계 진출을 의미했다.
뮤직 페스티벌로 모두의 관심이 쏠린 캘리포니아에 퍼진 붉은 점들에.
그간 저 멀리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관심 두지 않았던 사람들도 하나둘 인간 회사의 홈페이지를 찾기 시작했다.
물론, 팬들에게 있어서는 ‘월드 뮤직 페스티벌’이라는 역대급 음악 축제가 우선이었지만, ‘인간 회사’ 홈페이지의 업데이트 역시 굉장한 흥밋거리였다.
게다가 세계 진출 첫 번째 지역이 역대급 음악 축제가 열리는 캘리포니아라니.
세계 음악 팬들이 술렁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 * *
“세팅 끝났지?”
“어. 일단 위치 등록부터 하자.”
“와, 전부 다 외국인이야!”
“등신아! 여기선 우리가 외국인이야!”
“아…….”
“우선 미션부터 완료하자!”
“영상 켜고!”
“가 보자!”
매주 주말 저녁 신촌 창천 백화점 앞을 장악했던 ‘스톤 브레인’ 멤버들이 상기된 얼굴로 눈앞에 펼쳐진 금문교를 바라봤다.
삼각대에 올려진 핸드폰을 터치하자 그들의 영상이 송출되기 시작했다.
“에… 여기는 그러니까… 뭐더라?”
“라운드 하우스 카페!”
“아… 맞다! 저희는 지금 골든 게이트 브릿지 초입에 있는 라운드 하우스 카페 주차장에 있습니다!”
인간 회사의 영상 송출 사이트는 채팅이 되지 않았다.
다만, 쉴 새 없이 올라가는 후원 알림으로 팬들의 반응을 유추할 뿐이었다.
말 그대로 대박이었다.
“자! 우리 ‘돌머리’들이 드디어 헤비메탈의 본고장 미쿡에 입성했습니다!”
그간 버스킹하며 이렇게 많은 후원을 받은 적이 있었던가?
멤버들 모두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천조국 형님들께! 한국 헤비메탈의 진수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잔뜩 흥분한 멤버들이 동시에 뛰어올랐다.
금문교 초입, 유명한 카페 앞 주차장.
신촌 거리를 뜨겁게 달구던 대한민국 토종 헤비메탈이 포효했다.
* * *
-실화냐? 이거?
└미쳤다! 스톤 브레인이 샌프란시스코에 떴다니!
└이것들아 그만 들어와! 사이트 터지겠다!
└아! 렉 봐! 영상 좀 보자!
└샌프란시스코에 돌머리 말고도 몇 팀 더 있다.
└LA에도 있네!
└샌디에이고에 라라미용실도 노래 시작했어!
└일단 후원부터 박자!
└야! 너튜부에서도 송출한대! 그쪽이 렉은 없어!
└후원하고 너튜브로 ㄱㄱ
└세계 지도 떴을 때부터 설마설마했는데, 그게 실현되다니!
└인간 회사 진짜 대박이다!
└오! 진혁느님이시여!
└드디어 세계 정복 시작이십니까!
└와 진짜 소름이다.
월드 뮤직 페스티벌 D-5.
캘리포니아 대도시 곳곳에서 한국 록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 * *
“어라…….”
석준과 동구가 멍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바라봤다.
‘두 배로 불릴 건데요?’
둘 모두의 머릿속에 진혁의 말이 떠올랐다.
인간 회사의 세계 서비스 첫날, 후원금 매출 현황은 소속 뮤지션들을 미국으로 보내기 위해 썼던 천문학적인 금액의 삼 할 이상을 넘어서고 있었다.
지금도 계속해서 그 숫자는 불어나고 있었다.
“와… 진짜 이게 되네?”
“그러게요.”
이번 월드 뮤직 페스티벌 티켓의 대가로 각 뮤지션에게 주어진 미션.
정해진 장소, 정해진 시간에 버스킹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 발생한 후원금은 미국으로 보내 준 대가로 수수료가 80%였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간의 후원 매출 통계로 봤을 때, 쓴 돈의 20% 정도도 메우지 못하리라 예상했는데…….
“어… 4할 넘었네요.”
첫날 버스킹 시작 단 1시간 만에 40%를 넘긴 것이었다.
지금 미국에서 공연하는 뮤지션들은 유명 밴드들도 아니었다.
선정 조건에 따르면 작년 음원 수입 기준으로 하위에 속해야 했으니까 인지도로 치자면 한참 모자른 뮤지션들이었다.
그나마 라라 미용실만이 코리아 탑 밴드 우승자 출신이었기에 유명할 뿐, 나머지는 다들 고만고만했었다.
그렇기에, 이렇게 어마어마한 성과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와… 이거 애국 후원이죠?”
“우리나라가 그런 건 또 굉장하지…….”
“월드 뮤직 페스티벌도 기대되네요.”
“아… 스테빈 그 인간 똥 씹은 표정은 직접 보고 싶은데…….”
한때, 한국 음반의 미국 진출을 위해 그를 찾았던 그날이 떠올랐다.
단 3분.
한국 최고의 프로듀서로 추앙받던 윤석준이 그와 말을 섞을 수 있게 허락된 시간이었다.
그만큼 세계 음악 시장을 주무르던 카폰 레코드의 벽은 높았었다.
3분 동안 시종일관 고개를 젓던 그의 거만한 얼굴이 떠오르자, 석준은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삼일절에도 통쾌했지만, 이번에는 그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것이었다.
“야… 우리도 가자.”
“그럴까요?”
동구가 기다렸다는 듯 벌떡 일어나 캐비닛으로 움직였다.
“후딱 준비해서… 어? 그 캐리어 뭐냐?”
“준비 다 했습니다! 바로 출발하죠!”
“너 이 새끼 내가 가잔 소리 안 했으면 혼자서 가려고 했지?”
“에이… 형님도 참… 같이 가려고 준비해 놓은 거죠.”
“어? 눈 피하네? 와! 세상에 믿을 놈 하나도 없다더니… 이거 봐! 칫솔도 하나네!”
“거… 참… 쓸데없이 예리하시긴…….”
“와! 나… 이… 새…….”
“저 먼저 나갑니다!”
캐리어를 낚아채 후다닥 달려 나가는 동구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석준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 *
“그래서… 차로?”
“뭐… 그렇다네요.”
황지선이 멍한 얼굴로 창명을 바라봤다.
“공항에서 바로 사라졌어요.”
“미치겠다.”
“저도요.”
샌프란시스코에서 모인 일행은 새크라멘토까지 비행기로 이동해야 했다. 월드 뮤직 페스티벌이 열리는 곳은 거기서도 차로 네 시간을 더 가야 하는 먼 거리였다.
그런데 샌프란시스코에서부터 차로 이동하겠다니…….
“그… 캘리포니아 해안도 가 봐야 하고, 지평선까지 쭉 뻗은 도로를 달려 봐야 한다고…….”
“아… 미친놈들…….”
“그래도 늦지는 않겠죠? 아직 4일이나 남았는데?”
“걔네 영어는 되나?”
“그… 충기 형님이 되지 않을까요? 명색이 재벌 3센데?”
“아! 몰라! 네가 한국 대표니까 알아서 해.”
창명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아… 대표하기 싫다.’
* * *
“역시! 캘리포니아 1번 국도는 엘도라도 컨버터블로 달려야지!”
“와! 이게 미국 짠내구나!”
“맞지? 여기 죽이지?”
“안상정 조사 잘했네! 이대로 쭉 타고 가면 되는 거지?”
“일단 지도는 확인했어. 뭐 충기가 미국에서 생활해 봤으니까…….”
모두의 시선이 충기에게 향했다.
선글라스 속 그의 눈동자가 부르르 떨렸다.
사실, LA에서 반년 정도 살았던 게 전부였다.
영어도 거의 쓰지 않았고, 집 밖으로도 잘 나가지 않았었다.
그 외에는 라스베이거스나 하와이에 놀러 가 본 게 다였다.
물론 통역 격인 매니저도 함께.
“크흠.”
충기가 머쓱한 표정으로 헛기침했다.
“재벌 3세쯤 되면 3개 국어쯤 하지 않나?”
“암. 영어는 기본 장착이겠지.”
“미국 길 같은 건 안 보고도 다 알고 그렇지?”
“뭐… 그렇게까지는…….”
핸들을 잡은 충기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 * *
기타 제작사 화이트 클로져 컴퍼니의 홍보팀장이자 수석 엔지니어인 이안 필립스는 바텐더가 내려놓은 버번 위스키를 단숨에 들이켰다.
그리고 후끈한 숨을 내쉬었다.
이번 월드 뮤직 페스티벌은 그가 기획하고 제작한 어쿠스틱 기타의 마지막 기회였다.
‘아무리 잘 만들어도 팔리지 않으면 무슨 소용인가. 장인 정신? 정신은 필요 없어. 장인의 유명세가 필요하지.’
무조건 이번 페스티벌 무대에 이 모델을 올렸어야만 했다.
그 무대가 어떤 무대가 되었건 간에 사람들에게 이 작품의 소리를 들려줬어야 했다.
그만큼 자신이 있었으니까.
대형 악기사들의 하청이나 맡는 것은 이젠 질렸다.
양산형보단 최고를 만들고 싶었다.
그는 그럴 만한 실력이 있었다.
하지만 복잡한 제작 공정과 고가의 재료 때문에 최소한의 수익만을 남긴다고 해도 책정된 가격이 너무나 비쌌다.
그렇기에 바로 이전에 발표된 모델은 소수의 매니아들에게만 알려졌을 뿐 판매량은 저조했다.
아무리 소리가 좋다고 한들 명품 반열에 든 브랜드들과 경쟁하기엔, 그가 가진 이름값이 너무나도 초라했다.
그의 실력을 믿고 수제 라인업에 기대를 걸었던 투자자들도 이미 떠날 준비를 하는 중이었고, 마지막 지푸라기가 이번 월드 뮤직 페스티벌이었다.
하지만 이번 축제는 너무나 거대했고, 회사에서 지원해 준 홍보비는 대형 악기 회사에 비해 너무나도 초라했다.
결국, 그 어떤 뮤지션에게도 이 기타를 소개하지 못했다.
기회조차 얻지 못함에 분했지만, 이게 현실이었다.
‘뭐가 이안(운이 좋은 사람)이야!’
네 번째 버번을 입에 털어 넣은 그가 쓰게 웃었다.
믿지도 않는 신과 애꿎은 자신의 이름을 원망하며 옆자리에 기대 놓은 기타 케이스를 바라봤다.
대형 브랜드 최고가의 명품에 견줄 만한 역작이건만 그 누구의 선택도 받지 못한 자식과도 같은 기타가 저 안에 있었다.
이미 축제의 주최사인 카폰 레코드에서는 거절당했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페스티벌이 열리는 그래스밸리를 향해 달리는 중이었다.
‘자네 실력은 인정하지만 이미 구축된 정통은 절대 이길 수 없어. 그냥 하청이나 받아서 대량 생산으로 돌리는 게 나아. 더 이상의 투자는 의미가 없어.’
회사 대표의 말을 떠올리며 다섯 잔째 버번에 손을 뻗는데, 입구 쪽이 요란했다.
‘중국어? 아닌데… 아… 한국어다.’
지금 들리는 소리는 얼마 전 음악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어감의 언어였다.
자신에게 이번 기타 모델의 영감을 안겨 준 그 ‘래빗’이 있는 나라여서 익히 알고 있었다.
‘그와 연락할 방법만 있다면…….’
아무리 수소문해도 만나기는커녕 연락조차 닿지 않았었다.
깁슨이나 팬더도 그와의 접촉을 포기했다는 소문까지 들려왔다.
‘후… 이대로 끝인가…….’
그들을 향했던 시선을 거두고 다섯 번째 버번을 들이켰다.
* * *
“야! 무슨 차가 다섯 시간 만에 퍼지냐!”
“이건 충기가 운전을 무식하게 해서 그래.”
“내가 뭘 무식하게 해!”
“차가 꼬진 거야.”
“캘리포니아 해변은 무조건 저 차로 달려야 한다고 말한 게 누군데!”
상정이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컨버터블 엘도라도는 76년형이 최신이야. 이것도 구하는 데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미리 말했으면 상태 좋은 놈으로 구하지! 비행기에서 갑자기 차를 바꿔? 내가 분명히 에스컬레이드로 가자고 했지? 미국은 에스컬레이드야! 응? 이 나라 대통령도 그거 타!”
충기가 씩씩대자 진혁과 장하도 상정을 노려봤다.
“자기들도 차 멋있다고 좋아했으면서…….”
상정이 억울한 듯 중얼거렸다.
“자. 일은 벌어졌고! 여기까지!”
괜히 제 발 저린 장하가 테이블에 올려진 맥주를 다른 이들에게 건넸다.
“야, 원래 미국에선 차도 한번 퍼져 보고…….”
“그 덕에 이런 분위기 좋은 펍도 오고 그런 거지…….”
“근데, 이 근처에 차 구할 만한 데가 있나?”
“아무튼 오늘은 여기서 쉬자. 좋네. 광활한 평야! 외진 술집! 미국 스멜!”
“근데, 그래스 밸리까지 얼마나 남았지?”
“그보다 길은 맞지?”
장하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충기에게 향했다.
“맞겠지. 여기 미국에서 생활하신 분이 계신데.”
충기의 눈이 슬쩍 아래를 향했다.
대충 지도를 봤을 때, 직진만 하면 될 거 같았기에 큰소리쳤는데… 차에 설치된 네비게이션이 먹통 됐을 때 큰소리쳤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막상 갈래 길이 나올 때마다 멤버들 중 가장 가슴을 졸였던 게 자신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길 맞는 거 같은데?”
“응?”
진혁의 말에 나머지 멤버들이 눈을 가늘게 떴다.
“뭘 근거로?”
“저기.”
진혁이 가리킨 방향으로 멤버들이 시선을 옮겼다.
딱 봐도 고급스러운 기타 케이스와 함께인 누군가가 버번을 입에 털어 넣고 있었다.
“충기야! 고고.”
“왜 또 나야!”
“우리 중에 영어는 너만 되잖아.”
“발음이 아주 네거티브!”
“네이티브 새끼야!”
충기를 향한 세 중년인의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미국 경험에 대해 잔뜩 늘어놓으며 거들먹댔던 몇 시간 전의 자신이 후회됐지만, 잔뜩 기대하는 나머지 중년인들의 눈빛을 바라보니 무르기엔 이미 늦은 것이다.
진혁은 비행기도 처음 타 본 상태였고, 상정도 제주도에 갈 때 딱 한 번 타 봤다고 들었다.
장하는 그나마 외국 경험이 있었지만, 대부분 동남아 쪽이었다.
결국 여기서 저 파란 눈의 사내에게 말을 걸 수 있는 사람은 자신 혼자뿐이었다.
충기가 낮게 한숨을 내쉬며 일어났다.
그래도 짧게나마 영어가 되는 것은 자신뿐이었으니.
“야. 차종도 좀 물어보고 만약에 목적지가 같으면 같이 좀 가자고 해 봐.”
속도 모르는 상정이 해맑게 주먹을 쥐어 보였다.
무거운 걸음을 떼며 머릿속에 가물거리는 단어들을 조합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