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112
112화 Highway Star
이안은 갑자기 다가온 동양인을 바라봤다.
처음 펍으로 들어올 때부터 떠들썩했고, 자신에게 영감을 줬던 나라의 언어였기에 주의가 그쪽으로 쏠리기는 했었다.
“아… 맞습니다. 저도 그래스 밸리로 가고 있습니다.”
상대방의 발음이 부정확해 세 번이나 듣고 나서야 목적지가 같음을 알게 되었다.
“근데, 무대에 오르신다고요?”
마이너 무대의 마지막 날 라인업이 떠올랐다.
한국의 인디 밴드들로 채워졌다는 무대.
마이너 무대도 유심히 살폈었기에 확실히 기억났다.
상대방의 서툰 영어에 의하면 아마도 그 무대에 오르는 밴드인 듯했다.
‘아…….’
이안의 눈이 반짝였다.
그 신인들로만 구성된 라인업 중 유일한 중견 밴드가 기억났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레몬티’도 아시겠네요?”
“물론이죠.”
“아… 실례지만, 친하신가요?”
“뭐, 그렇다고 봐야죠?”
한국은 위계질서가 확실한 나라로 알고 있었다.
이들이 나이는 많아 보였지만, 어디까지나 신인 밴드일 테고, 레몬티는 꽤 오랜 경력을 가지고 있는 베테랑 밴드였다.
그의 호쾌한 대답이 살짝 미심쩍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아야만 했다.
“혹시 부탁을 좀 드려도 되겠습니까?”
“부탁이요?”
한국에서의 악기 시장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최근 음악적으로도 인지도가 올라간 상태였고, 특히 ‘고가품’에 대한 소비가 남다른 나라였다.
깁슨도 고급 라인의 한정판 커스텀을 내놨을 때 한국에서 톡톡히 재미를 봤었다.
그 ‘레몬티’라는 밴드는 한국의 인디 신에서도 굉장히 높은 위치에 있다는 정보가 기억났다.
그들에게 이 기타를 줄 수 있다면…….
어쩌면, 그 ‘래빗’에게도 닿을 수 있을지 모른다.
“자리를 한번 만들어 주셨으면 합니다.”
“뭐, 자리야 어렵지 않은데… 무슨 일로?”
“아… 제가 사실은…….”
이안이 자식과도 같은 기타를 쓰다듬었다.
* * *
“도착은 잘했대?”
“예. 선생님.”
이른 아침 대한 음반 협회에 도착한 협회장 진백철은 비서에게 그들의 소식부터 물었다.
그가 한창 활동하던 시기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일이었다.
마냥 동경하며 카피하기에 급급했고, 그들의 자유로운 음악을 미칠 듯이 부러워했었다.
당시 한국은 서구권에 비해서 다소 폐쇄적인 사회구조였기에 더욱 숨 막히는 나날들이었다.
70년대부터 한국에서 제법 이름을 알렸던 그의 밴드도 그들의 나라에선 명함조차 내밀지 못하는 그저 수십만 명의 청중 중 하나였다.
그런 꿈의 무대에 선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반세기가 지났고.
한국 아이돌 그룹이 빌보드를 점령하는 것을 바라보며 전율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전 세계인에게 록으로 주목받는 나라가 될 줄이야.
아이처럼 흥분해 가빠지는 심장을 달래며 자리에 앉았다.
커피를 내려온 비서가 협회장의 얼굴을 살폈다.
붉게 충혈되어 퀭한 눈.
분명 어제도 캘리포니아 전역에 퍼진 한국 밴드들의 버스킹을 감상하느라 잠을 설친 모양이었다.
초췌해 보였지만, 오랜 시간 그를 보좌해 온 비서였기에 그가 지금 얼마나 즐거운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 원작자들에게는 잘 설명했고?”
“네. 공중파 방송에서도 몇 번이나 커버한 곡들이고, 그 곡들이 불릴 무대가 무대이니만큼…….”
“노래를 부르게 될 사람의 정체도 알려 줬나?”
“그 편이 설명하기 쉬워서…….”
진백철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들도 흥분했겠군.”
그의 말에 비서의 어깨가 쫙 펴졌다.
“아주 많이 흥분했습니다.”
사실, 대한민국 음반 시장에 있어서 누군가의 곡을 커버한다는 것은 저작권 협회에 통보만 해도 가능한 일이었다.
음악 저작권의 사후 승인제라는 시스템 때문이었다.
사후 승인제란 저작권자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음악 저작권 협회가 승인을 내리면 해당 음악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제도였다.
그러니 그들의 음악을 사용하는 것에 법적인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커버를 거절한 곡은 세트 리스트에서 제외하겠다는 진혁의 말에 바쁘게 움직인 것이었다.
한국 음악계의 관행을 그는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오래된 폐단이긴 하지…….’
진백철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꿈의 대륙에서 한국의 곡이 울려 퍼지는 광경을 상상이나 했던가.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지금 대한민국 음악의 원로 중 어느 누가 그의 부탁을 거절할 수 있단 말인가.
아마 그들 모두 진백철과 같은 마음일 것이었다.
“후… 설레서 잠을 잘 수가 있어야지.”
“그러시다가 정작 공연 날 쓰러지십니다.”
“버스킹은 오늘이 마지막이라더군. 오늘까지만 무리해 보지.”
진백철이 아이처럼 웃으며 영양제를 입에 털어 넣었다.
* * *
“그러니까 기타 회사란 말이지?”
“어… 나인투 악기사 OEM업체래. 자체 브랜드를 기획했는데 홍보가 이뤄지지 않아서 투자가 어려운가 봐.”
진혁이 서글서글하게 웃음 띤 파란 눈의 사내를 바라봤다.
“기타 한번 볼 수 있을까?”
“어… 물어볼게.”
충기가 묻기도 전에 분위기를 감지한 이안이 기타 케이스를 들어 테이블에 사뿐히 올렸다.
버클을 조심스럽게 하나하나 풀었고, 뚜껑을 열기 전 고개를 들어 진혁과 눈을 마주쳤다.
그의 행동 곳곳에 자신이 만든 기타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확연히 드러났다.
그렇기에 진혁의 표정도 진지해졌고, 그렇게나 대단한 물건을 선뜻 공개해 줌에 고개 숙여 감사를 표했다.
동양인의 예의 있는 행동에 흡족해진 이안이 뚜껑을 열었고, 하얀색 바디의 어쿠스틱 기타가 번쩍이며 나타났다.
“측 후판에 아프리카 블랙 우드를 사용했으며, 아치형 바디는 모두 손으로 깎아 만들었고, 상현주 하현주는 엄선된 상아로… 접합부는 저희만의 기술이고…….”
마치 갓 태어난 아기를 쓰다듬듯 조심스러운 손길과 함께 속사포 같은 설명이 이어졌다.
“뭐래?”
진혁이 묻자, 충기가 움찔했다.
기타를 소개하느라 흥분한 이안의 말은 너무 빨랐고, 알아들은 것은 몇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뭐… 영혼을 깍아서 만들었다고… 아프리카는 블랙? 이거 피부색 얘기인가? 어… 아무튼 뭔 나무로 만들었대. 저기 붙인 데는 무슨 본드를 썼다는데…….”
둘의 대화를 가만히 듣던 이안이 기타를 꺼내 들었다.
이 앞에 앉은 해맑은 중년인만 기타리스트라고 했다.
아무리 인지도 낮은 신인 밴드의 기타리스트일지라도 분명히 이 기타가 품은 남다른 소리를 알아챌 수 있을 것이었다.
자신이 만든 작품에 대해 예를 표해 준 것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한국의 무명 기타리스트에게 자신의 걸작품을 내밀었다.
“쳐 보세요.”
“감사합니다.”
충기가 통역하기도 전에 진혁이 그 기타를 받아들었다.
때 묻지 않은 흰색 바디를 손바닥으로 한번 쓸어 본 진혁이 가장 굵은 줄을 튕겼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그 떨림이 멈출 때까지 소리를 음미했고,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스럽게 넥에 손가락을 감아 조율을 시작했다.
이안은 그 한 동작 한 동작을 유심히 바라보며 귀를 기울였다.
장인은 장인을 알아보기 마련.
자신이 기타를 만드는 장인이라면,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저 남자는 소리의 장인이었다.
오픈된 여섯 개의 줄을 연달아 건드려 조율을 마친 진혁이 옅게 미소 지으며 눈을 떴다.
“와… 소리 좋다.”
단 한 번도 악기를 가려 본 적이 없는 진혁이었다.
손에 잡히면 어쨌거나 그가 원하는 소리를 만들 수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악기에 대한 욕심도 없었는데…….
왠지 이 음색을 놓기 싫어졌다.
다시 눈을 감고, 지판에 손가락을 붙였다.
* * *
샌프란시스코에서 새크라멘토로 향하는 80번 US Highway.
지평선과 맞닿은 도로 끝만을 바라보며 달리던 세미 트레일러가 고장 나 깜빡이는 네온사인 아래에 멈춰 섰다.
주차장이 한산한 것을 보니 이 모텔에는 분명히 빈 방이 있을 터.
가볍게 목을 축이고 쉴 생각으로 모텔에 달린 작은 펍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호오. 엘도라도 컨버터블?”
보기 드문 빨간색 클래식카를 감상하며 펍의 문을 열었고, 보통의 분위기와는 뭔가 다른 느낌에 고개를 갸웃했다.
“흠… 여긴 주인도 없나…….”
텅 빈 바를 바라보던 그가 벨을 누르려던 손가락을 멈췄다.
술집에서 틀어 놓은 음악이라 여겼는데, 바에 설치된 스피커에선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서둘러 음악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구석을 향한 사람들의 등이 보였다.
‘어? 분명히 아는 곡인데?’
홀린 듯 걸음을 옮겼다.
소리는 더 가까워졌지만, 머릿속은 더 혼란해졌다.
‘설마… 딥퍼플?’
확실했다.
-I love it and I need it. I bleed it.
‘그런데, 이 부분이 이렇게 불린다고?’
8기통만큼이나 세상 가장 시끄러운 곡이 차분한 어쿠스틱으로 연주되고 있었다.
곡의 정체를 알게 되자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서둘러 사람들의 틈새에 끼어들었다.
거친 고음으로 뻗어 내야 하는 구간을 더 높은 음정으로 부드럽게 만들어 버렸다.
이 목소리의 주인공이 너무 궁금해졌다.
뒤꿈치를 들어 사람들의 머리 너머를 바라보니.
‘맙소사. 동양인이라고?’
황량한 고속도로 옆 외진 모텔의 작은 펍.
십여 명의 관객을 앞에 두고 세상 가장 차분한 ‘Highway Star’가 울려 퍼졌다.
곡이 끝났고.
펍의 주인장이 ‘free today’를 외쳤다.
* * *
“통화됐어?”
“네. 차가 퍼져서 다른 사람 차 얻어 타고 오는 중이래요.”
“아… 진짜 피 말린다.”
황지선이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얼마나 걸릴 거 같대?”
“축제 시작 전에는 도착한다던데요? 숙소 주소 보냈어요.”
“후… 아무튼 네가 고생이 많다.”
“뭐…….”
창명이 머쓱하게 미소 지었다.
사실, 낄 수만 있었다면 자신도 밴드 멤버들과 함께 그 ‘또라이 짓’에 동참하고 싶었다.
하지만 허울뿐이라도 한국 대표라는 위치였기에 책임져야 할 부분들이 발목을 잡았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자기네 밴드는 책임져야 하는 거 아냐?’
왠지 모를 부러움에 투덜대던 창명이 구석에 찌그러져 있는 낙동강 오리알을 바라봤다.
까까머리의 청년이 잔뜩 불안한 표정으로 손톱을 물어뜯는 중이었다.
“휴… 너도 참 고생이 많다.”
창명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 *
“봤냐? 미국은 역시 에스컬레이드야!”
넓은 뒷좌석에 앉은 충기가 시트를 팡팡 쳤다.
“아! 알았다고!”
“야. 이따가 네가 운전하기로 했다면서! 잠이나 좀 자.”
“그놈의 에스컬레이드! 벌써 여섯 번째 말했다.”
이안은 – 알아듣지도 못하는 언어로 – 티격대는 소리에 저도 모르게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동양인의 나이는 가늠이 잘되지 않았지만 언뜻 40대라고 들었는데, 하는 행동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뭣보다 그에게 있어서 동양인이란, 진중하고 무게감 있는 이미지였기에 저런 장난스러운 모습들은 더욱 신선한 느낌이었다.
룸미러로 키득대는 그들을 바라보다가 어제 그 기타리스트에 시선이 멈췄고, 이안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아… 만들어 뒀던 곡이 아니라, 방금 즉흥으로 만들었다고…….
어설픈 통역을 잘못 알아들었다 쳐도 어제 그 노래는 정말로 굉장했다.
‘어떻게 저런 사람이 무명일 수 있지?’
그 충격적인 ‘Highway Star’가 떠오르자 핸들에 걸쳐 놓은 팔에 소름이 올라왔다.
지금 이안은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었다.
‘장인 정신? 정신은 필요 없어. 장인의 유명세가 필요하지.’
사장이 했던 말에 동의해야 하는 것일까?
‘레몬티’가 가진 한국에서의 유명세는 어제 모텔에 돌아가서 인터넷을 통해 다시 확인했다.
한국의 탑 밴드는 ‘나비계곡’과 ‘임도유 밴드’ 그리고 ‘레몬티’, 거기에 이안이 간절하게 기타를 전해 주고 싶은 그가 이끄는 ‘인간 밴드’까지였다.
어쨌거나 ‘레몬티’ 역시 한국에서의 인지도로만 봤을 때는 탑에 속해 있는 것이었다.
인디 아티스트들을 모아 놓은 레이블의 수장이기도 했고, 경력도 상당했다.
그에 반해 어제 그 기타리스트가 속해 있는 ‘동해 소년’이라는 포크 록 밴드는, 정식 앨범조차 내지 않은 완전한 신인이었다.
사실 어제 그 공연 이후 혹시나 해서 밴드명을 물어보고선 실망했었다.
‘조금 닮은 것 같았는데…….’
동양인의 생김새는 구별하기가 참 어려웠다.
‘하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스타가 스태프도 대동하지 않고 저리 허술하게 움직일 리가 없었다.
이안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자신이 만든 기타를 한국 사람들에게 알리려면, 무조건 ‘레몬티’의 무대에 올리는 것이 정답이었다.
하지만 어제 그의 ‘Highway Star’가 계속해서 귓가를 맴돌았고, 이미 마음은 저 무명 기타리스트에게 기울었다.
‘장인의 유명세?’
진짜 제대로 된 장인이라면 그따위 만들어진 유명세 따윈 뭉개 버릴 수 있을 것이다.
사장의 말에는 도저히 동의할 수 없었다.
마음이 확실하게 정해지자 머릿속이 맑아졌다.
이 ‘화이트 래빗’의 주인은 운명처럼 나타난 것이었다.
이안의 입꼬리가 올라가며 액셀 위 올린 발에 무게를 실었다.
“봤냐? 이게 바로 미국 8기통 소리야!”
“아! 알았으니까 좀 자라고!”
알아들을 수 없는 타국의 언어는 긴 여행을 지루하지 않게 하는 경쾌한 엔진 소리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