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113
113화 전야제 Part.1
창문 아래로 LA 롱비치 해변을 바라보던 제니스가 초인종 소리에 고개를 갸웃했다.
멤버들은 먼저 새크라멘토의 호텔로 떠났고, 딱히 이곳에 찾아올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흠…….”
지금까지 머릿속을 맴돌던 수많은 상념을 잠시 밀어 두고, 거실에 설치된 인터폰을 향해 시선을 보냈다.
누군가의 실루엣이 보였고, 그 얼굴의 주인공을 알게 되자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다시 롱비치 해변으로 시선을 돌렸다.
쾅쾅쾅!
시끄럽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제니스가 이를 악물었다.
“제니스! 여기 있는 거 다 알아! 밑에서 불 켜진 거 확인했어!”
제니스가 주먹으로 벽을 쳤다.
“젠장! 저 자식은 여길 어떻게 알고…….”
이를 악물고 인터폰을 향해 걸었다.
삐.
“그냥 꺼져라. 경찰 부르기 전에.”
-야. 샌프란시스코에서 일부러 여기까지 왔는데 너무한 거 아니냐?
“나 오늘 생각할 거 많다. 그래스 밸리에서 보자.”
-나 여기서 제대로 악 한번 질러 볼까? 응? 옷 벗고 네 이름 부르면서 뛰어다녀 봐?
“바로 경찰 부른다.”
-뭐 맘대로 해. 나도 내 맘대로…….
인터폰 화면 속 그가 웃통을 벗기 시작했다.
“젠장.”
분명 이놈은 경찰 따위를 두려워할 놈이 아니었다. 이 조용한 빌딩 전 층을 요란스럽게 만들고도 남을 인간이었다.
제니스가 도어록 버튼 앞에서 망설이던 손가락에 힘을 줬다.
문이 열렸고.
“헤이! 브로!”
시끄러운 인간이 고요한 제니스의 공간에 들이닥쳤다.
* * *
“유리.”
“응?”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유리가 오빠의 부름에 고개를 들었다.
“이상한데…….”
“뭐가?”
“월드 뮤직 페스티벌에 억지로 나가는 거 아니었나?”
“뭐…….”
“우리 동생 기분이 좋을 리 없는데?”
헨리가 눈을 가늘게 떴다.
무대에 오르기 싫어 망설이던 막냇동생이 제니스의 전화를 받고서 결정을 내렸고, 그 이후로는 연습 때문에 만나지 못했었다.
분명 기분이 가라앉아 있으리라 여겼고, 그래서 새크라멘토에 도착하자마자 일부러 찾아왔는데, 저렇게나 밝은 모습이라니.
이번 축제에 자신이 알지 못하는 뭔가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사실 세컨드 스테이지에 오르는 제니스도 이해되지 않았다.
그 자존심 강한 제니스가 스테빈의 굴욕적인 제안을 받아들였다는 사실도 충격이었다.
소송이 진행 중이긴 하지만 어디 그가 그런 걸 신경 쓰는 사람이었던가.
그냥 거절하는 것이 더 제니스다웠기 때문이었다.
“우리 동생 기분이 왜 이렇게 좋을까?”
“그게… 어… 아니다.”
흔들리는 유레이시의 눈동자를 확인한, 헨리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최근 동생의 머릿속을 뒤흔들었던 사람이 기억났기 때문이었다.
“혹시 그도 오는 거냐?”
“아니야!”
“맹세해?”
“뭐? 뭘?”
“맞지?”
“그게… 아! 야경이 아주…….”
“커튼이나 걷고 감상해.”
“아…….”
“그래서 신났구나.”
“제니스가 비밀이랬는데…….”
“괜찮아. 넌 말 안 했어.”
“아!”
헨리가 피식하고 웃었다.
오빠의 능글맞은 얼굴에 유레이시가 고개를 저었다.
‘예상치 못한 이벤트는 늘 더한 즐거움을 주는 법이지.’
그의 음성이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에이 씨… 깜짝 놀라게 해 주고 싶었는데… 그게 더 재밌었을 텐데…….”
뾰루퉁하게 입술이 튀어나온 동생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던 헨리가 반짝이는 금발에 손을 올렸다.
“사람에게는 기대감이라는 아주 설레는 감정도 있지.”
“아…….”
“이번 축제 진짜 재밌겠다.”
헨리가 인형 같은 동그란 눈을 똑바로 바라보자.
“그치?”
유레이시가 활짝 웃었다.
* * *
“그거 건들지 마라. 허먼에서 특별히 커스텀 한… 야! 그쪽으로 꺾지 말라고!”
“아… 반대야?”
“젠장!”
“야. 안 부러졌어.”
마치 조각 작품 같은 웅장한 사운드 시스템을 만지작거리던 칼리가 눈을 찡긋했다.
“하… 여긴 어떻게 알고… 젠장…….”
“전에 여기 멘션 전망이 죽인다고 자랑하던데? 조얀이?”
“젠장. 그 자식이… 도대체 왜 온 거야?”
“전화를 안 받으니까 그렇지!”
“젠장.”
“거참. ‘젠장’이 없으면 대화가 안 되는 거냐? 우리는? 그래도 함께 한국까지 가서…….”
“함께 가진 않았다. 가서 만난 거지. 닥치고 용건만 간단히 하고 꺼져라.”
짜증이 잔뜩 난 제니스가 골프채를 만지작거렸다.
“오! 맥컬런 60년산이!”
“건들지 마!”
“맛만 보… 어… 야. 골프채 내려놓고… 어허. 진짜 다친다. 그거 제대로 맞으면 사람 죽어 인마. 자! 손 뗐다! 됐지?”
“아무것도 손대지 마.”
“아. 오케이. 오케이.”
“할 말만 해.”
제니스가 골프채를 내리자 번쩍 들었던 팔에 힘을 푼 칼리가 방긋 웃었다.
“이번에 오는 거지?”
“뭐가?”
“천하의 자존심 덩어리 제니스가 세컨드 스테이지를 오케이 했다? 그것도 원수지간이나 다름없는 스테빈이 주최하는 축제에?”
“너도 스테빈 싫어하잖아. 근데 오케이 하지 않았나?”
“나야 메인 스테이지고, 게런티도 빵빵하니까.”
칼리가 손가락으로 제니스를 가리키더니 엄지로 아래를 찔러 댔다.
“넌 게런티도 반값에 초라한 세컨드 스테이지고!”
제니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런 모욕을 감내할 제니스가 아니거든.”
“젠장.”
“오는 거 맞지?”
칼리가 방긋 웃었다.
한국에서 열렸던 하늘 아래 음악 축제에서 만났던 그 무대는 한순간도 잊을 수 없었다.
토끼 인형 탈을 쓴 그가 제니스의 손을 잡았던 그 장면.
관객석 노인들 사이에서 멍하니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그 굉장한 무대가 너무나도 선명하게 떠올랐다.
“이번엔 내가 영접할 거야. 네가 서는 초라한 무대는 그분에게 어울리지 않아.”
“아. 몰라. 알아서 해.”
“이번엔 네가 구경꾼이 되어야 할 거야, 제니스.”
“알아서 하라고.”
“후후. 어쩐지 제니스가 그따위 세컨드에 오른다 했다. 역시 그가 오는 게 확실하군.”
그날 제니스와 토끼 탈을 쓴 그가 만들었던 환상적인 무대는 절대 잊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이번에는 자신의 무대에 그를 초대할 것이다.
그에게는 세컨드 무대 따위가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자신이 서게 될 메인 스테이지가 어울렸다.
“그거 확인하러 온 거야.”
“참 할 일도 없다.”
“그 허먼이 선물했다던 이것도 좀 직접 보고 싶…….”
“만지지 마!”
제니스가 골프채를 다시 들었고, 칼리는 서둘러 현관을 향해 달렸다.
“아무튼 그래스 밸리에서 보자! 먼저 간다!”
현관문이 닫혔고, 씩씩대며 노려보던 제니스가 서둘러 장식장을 바라봤다.
온전한 상태로는 돈을 주고도 구하기 힘든 ‘Macallan 60 Years Old Fine & Rare Whisky’의 자리가 썰렁하게 비어있었다.
“젠장!”
제니스의 고옥타브 ‘shit’이 구슬프게 울려 퍼졌다.
* * *
끝없이 이어진 도로.
초록이 듬성듬성한, 황량한 풍경.
차창으로 확인할 수 있는 모든 시야가 엄청나게 넓었지만, 왠지 모를 외로움도 함께였다.
멀리 황색 대지를 바라보던 시선을 당겨 차창에 비친 얼굴을 바라보던 진혁이 눈을 감았다.
눈을 감자.
마흔넷의 진혁이 씁쓸한 미소로 자신을 반겼다.
어설프게 나뉘었던 경계는 이제 더욱 선명해졌다.
열아홉 진혁이 그의 얼굴을 똑바로 노려봤다.
‘그런 표정 짓지 마. 그건 원래 당신 몫이었어.’
저 씁쓸한 표정이 뭘 뜻하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가족만을 생각해야 했던 가장.
마흔넷의 경험과 기억은 자신의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 열아홉 진혁에게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녀와 눈이 마주쳤고, 그 눈동자에 비친 얼굴을 확인했을 때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마흔넷 가장의 자리는 자신에게 너무나도 벅찬 자리라는 것을.
‘행복하지 않았잖아.’
눈을 뜨자 차창에 비친 얼굴은 어느새 열아홉 진혁의 얼굴로 변해 있었다.
음악을 듣지도 못하며 아등바등 마지못해 살아왔던 삶.
그 고됨 가운데 아내는 쓰러졌고, 딸아이와의 관계는 서먹했었다.
‘그 모든 게 내가 돌아와서 해결됐어.’
진혁이 차창 속 얼굴을 노려봤다.
다시 마흔넷의 그가 나타났다.
‘그런데… 왜 그런 표정이냐고.’
처음 마흔넷 진혁의 기억과 경험을 받아들였을 때, 어른의 감정을 이해하려 했었다.
사실 이해는 되지 않았지만 노력했고, 타협했다.
음악도 없이 버텨 온 그의 삶을 존중했기에 그의 감정이 선택할 법한 음악의 길을 걸었다.
‘당신도 알잖아. 그런 방식으로는 내가 하려고 했던 진짜 음악을 할 수 없어.’
마흔넷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열아홉 진혁도 고개를 저었다.
‘언젠가는 이 자리 다시 돌려줄게. 그땐 당신이 하고 싶은 하모니를 완성해.’
차창에 머물러 있던 시선을 다시 멀리 보냈다.
‘난 열아홉의 음악을 하겠어.’
황량한 황토색 대지가 뒤로, 뒤로, 지나가며 시야에서 사라졌다.
“거의 다 왔다! 저 앞이야!”
운전대를 잡은 충기의 외침에 진혁의 시선이 앞을 향했다.
거대한 애드벌룬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 * *
-야! 대박! 지도 확인한 사람?
└이거 뭐냐?
└여기가 거기 맞지?
└와 기가 찬다.
└캘리포니아에서 버스킹 한 이유가 이거였어?
└그 빨간 점들이 이렇게 모일 줄 상상도 못 했다.
└야! 기사 떴어. 거기 간 밴드들 전부 다 인간 회사가 보내 준 거래!
└오! 진혁느님!
└역시 갓끼 님 클라스다!
└뭐야. 임도유 밴드도 있어.
└나비계곡도 있는데?
└와. 이번 월뮤페 진짜 대박이다.
축제를 2일 앞둔 날 자정.
캘리포니아 전역에 흩어져 있던 붉은 점들이 한곳으로 모였다.
커뮤니티에서 설마설마했던 그 일이 진짜로 벌어진 것이었다.
* * *
넓은 초원이 천막으로 가득 찼다.
캠핑존은 일주일 전부터 개방된 상태였고, 좋은 자리를 맡기 위한 사람들은 이미 며칠째 노숙 중이었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였기에 이곳저곳에선 크고 작은 음악 소리가 들렸다.
작은 텐트 앞 커피 물을 데우며 우쿨렐레를 연주하는 금발의 청년부터 소형 앰프에 제법 구성을 갖춰 작은 공연을 하는 밴드까지.
본 축제가 시작되기 전 자신들만의 축제를 만끽하는 중이었다.
캠핑존 곳곳에서 이어지는 버스킹들로 ‘월드 뮤직 페스티벌’은 시작된 것이다.
“어? 저기도 동양인인데?”
“또 한국 밴드인가?”
“와, 이번에 한국에서 진짜 많이 왔나 봐.”
동양인으로 이뤄진 밴드가 자신들의 텐트 앞에서 공연하는 중이었다.
벌써 네 번째 만나는 한국 밴드였다.
사실 수십의 버스킹을 지나 한 번씩 만나는 거였지만, 대부분이 영어로 된 노래들 사이에서 들린 한국어이기에 더욱 기억에 남았다.
“마지막 날 한국 전용 무대가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긴 한데…….”
“아… 그날 메인 쪽이 하이라이트지?”
“메인뿐만 아니라 세컨드까지 쉴 틈이 없어.”
“아쉽네.”
“근데, 그다지 이름 있는 밴드들은 없던 것 같던데? 그 3월 1일에 공연했던 밴드는 하나도 없어.”
“무대가 어디더라?”
“마이너 존에 포레스트 스테이지일걸?”
“멀다.”
“그렇지…….”
궁금하긴 했지만, 축제 마지막 날은 워낙 쟁쟁한 무대가 넘쳐났다.
“어? 저긴 뭔데 저렇게 사람들이 모여 있지? 얼른 가 보자.”
“오케이!”
어디까지나, 이들은 축제를 만끽하러 온 관객들이었다.
무대들은 모두 급이 나뉘어 있었고, 동시 공연이 대부분이었기에 비싼 티켓의 가치를 제대로 누리려면 가장 거대한 무대를 찾는 것이 옳았다.
“버스킹이라도 즐기자.”
“그래!”
조잘대던 금발의 소녀들이 서둘러 발길을 옮겼다.
전야제를 앞둔 그래스 밸리의 넓은 초원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적당한 기대감, 들뜬 기분, 어떤 장면을 만나더라도 신날 터.
사람들을 비집고 시야가 트이자, 소녀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뜨거운 정도였던 초원에 용광로 같은 장면이 펼쳐졌다.
“맙소사…….”
이런 구석진 곳에서는 절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장면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