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114
114화 전야제 Part.2
“와… 소리 좋네요?”
“유리는?”
“지금 오고 있대요.”
제니스는 진혁이 건넨 기타를 이리저리 살펴봤다.
도착했다며 자신을 찾길래 어떤 중요한 일인가 했더니, 새로 장만한 통기타를 자랑하려고 부른 것이었다.
아주 잠깐 만져 본 것뿐이었지만 적당히 만들어진 기타가 아니었다.
현을 터치하자 처음 보는 브랜드라고는 믿기지 않을 굉장한 소리를 만들어 냈다.
물론 앰프에 물려 봐야 정확하게 알 수 있었지만, 지금 확인한 소리의 80%만 스피커로 전달된다면 기존의 프리미엄급 기타들을 압도할 정도의 수준이었다.
기타의 소리에 심취하느라 정신이 없던 제니스가 고개를 들었다.
멀리서 힐끗거리는 사람들이 몇 보였다.
“유리까지 오면 난리 나겠는데…….”
“응?”
해맑게 신난 진혁을 바라보던 제니스가 피식하고 웃었다.
“어? 저기 유리… 아… 저 자식은 왜 또…….”
가까이 다가오는 금발의 소녀에게 인사를 건네려 손을 들던 제니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 몰래 오려 했는데… 뭔가 눈치챘는지 자꾸만 따라와서…….”
유레이시가 옆에서 실실거리는 스토커를 노려봤다.
* * *
기타 케이스를 양손에 든 이안이 그린 에어리어로 향했다.
‘이안, 기타 더 있어?’
친구들에게 기타를 소개해 주겠다는 진혁의 말에 주차장으로 가서 남은 기타를 챙겨 오는 길이었다.
어차피 트렁크에 처박아 두느니 어떤 무대라도 올라가는 게 나았다.
자신이 처음에 ‘레몬티’를 언급했으니 그들일 가능성이 컸다.
그린 에어리어에 진입하자 모여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마이너 스테이지에 오르는 팀들의 트레일러가 있는 구역인 그린 에어리어는, 일반인들의 캠핑존과 붙어 있었다.
그렇기에 간혹 기웃거리는 팬들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렇게 치부하기엔 너무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뭐… 누가 버스킹이라도 하나?’
사람들을 헤치며 나아가 시야가 확보되자.
‘어… 어?’
상상도 하지 못했던 장면이 펼쳐져 있었다.
* * *
“뭐야? 제니스 맞지?”
“와! 제니스가 여기 왜 있지? 여기 마이너 트레일러존 아냐?”
“저 동양인은 누구지?”
“글쎄… 동양인들은 워낙 비슷비슷하게 생겨서…….”
“어? 저기 도착한 사람 유레이시 아냐?”
“그 옆에 칼리도 있다!”
“뭐야!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야?”
캠핑존 중에서도 외곽에 자리한 그린 에어리어가 떠들썩해지기 시작했다.
웅성대는 소리는 더욱 커졌고, 누군가 올린 SNS 사진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린 에어리어 엄청난 사건 터짐. 제니스와 유레이시를 코앞에서 볼 수 있음. 아, 칼리도.
* * *
“내 건 왜 없어?”
“응?”
“왜! 내 기타는 없냐고!”
“야. 생각 좀 하고 투덜대라.”
“뭐?”
“그 시끄러운 세트 리스트 중에 어쿠스틱으로 할 수 있는 게 있어?”
“없어! 그래도!”
“게다가 넌 베이스잖아!”
“기타도 칠 줄 알아!”
“돼지 목의 진주야.”
“뭐? 돼지?”
제니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와. 근데 이 기타 너무 이쁘다.”
유레이시가 하얀 기타를 꼭 끌어안고 활짝 웃었다.
“한번 쳐 봐.”
티격태격하는 제니스와 칼리를 바라보던 진혁이 그녀가 안고 있는 기타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그때 손봐 주셨던 곡을…….”
유레이시가 풀밭에 털썩 주저앉아 조율을 시작했다.
제니스도 서둘러 기타를 어깨에 걸쳤고, 씩씩대던 칼리는 캠핑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조금 거들어도 되지?”
“영광입니다.”
유레이시의 대답에 진혁이 방긋 웃었다.
“여러분들 제 신곡이에요!”
마이크도 없었고, 그다지 크지 않은 그녀의 목소리에 가까이 있던 이들이 화들짝 놀라 환호했고, 멀리 있던 이들은 내용도 모른 채 뒤이어 환호했다.
그리고.
그 환호에 사람들이 더 모이기 시작했다.
* * *
“이것들이 진짜!”
새크라멘토에서 진혁 일행을 기다리다 도착이 늦은 황지선이 이를 부드득 갈았다.
“아니! 그쪽으로 바로 가면 간다고 말을 하든가!”
눈치를 보던 창명이 움찔했다.
“만나기만 해 봐라. 아주 작살을… 어? 저쪽 우리 트레일러 쪽 아냐? 웬 사람들이…….”
갑자기 터져 나온 환호에 황지선의 발이 멈췄다.
“설마…….”
“저 방향에서 저 정도 인파면…….”
묵묵히 뒤따르던 테일이 지선의 어깨를 잡으며 씨익 하고 웃었다.
“뭔가 시작했나 본데요?”
* * *
인형 같은 얼굴의 유레이시가 눈을 감고 기타를 쳤다.
제니스와 진혁이 그녀의 전주를 유심히 들었고, 그녀의 목소리가 울리자 그제야 그 선율의 뒤를 받쳤다.
연습한 곡도 아니었지만, 세 사람의 호흡은 제법 그럴싸했다.
셋의 연주가 조금 흐트러질 때면 유레이시의 목소리가 그 중심을 잡았다.
어쿠스틱 기타 세 대뿐인 즉흥적인 버스킹에 사람들이 숨을 죽였다.
숲이 들썩일 정도의 환호는 거짓말처럼 사라졌고, 사방은 너무나도 고요했다.
맑은 기타 소리와 청아한 그녀의 목소리만이 울릴 뿐이었다.
1절을 마친 유레이시가 천천히 눈을 떴다.
방긋 웃는 진혁과 눈이 마주쳤고.
‘어때요?’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스트로크가 더욱 강렬해졌고, 유레이시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원래라면 2일 차 메인 스테이지에서 선보였어야 할 그녀의 신곡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더 강렬한, 더 열정적인 그녀의 목소리가 숲 전체에 울려 퍼졌다.
항상 단정했고, 품위 있었던 그녀가 풀밭에 아무렇지 않게 앉아서 부르는 노래는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울림을 주고 있었다.
폭발하듯 솟구치던 그녀의 목소리가 한순간에 가라앉았고, 피크를 움직이던 그녀의 오른손이 점점 느려졌다.
속삭이듯 후렴구를 중얼거리던 그녀의 입이 멈췄다.
잠시의 여운, 산새들의 지저귐이 들려왔다.
“감사합니다!”
그녀가 방긋 웃으며 모여든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자.
침 삼키는 것조차 잊었던 사람들이 한 박자 늦게 박수와 함성을 쏟아 냈다.
전야제 공연을 1시간 앞둔 시점.
가장 구석진 그린 에어리어.
이미 축제는 시작되었다.
* * *
첫 번째 곡을 마치고 화기애애한 세 사람을 노려보던 칼리가 트레일러 뒤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화면을 터치했다.
분명 메인 스테이지에서 그를 영접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준비했는데…….
너무 갑작스럽게 일이 터져 버렸다.
이대로라면 이번에도 자신은 그의 무대에 끼지 못하게 될 것이었다.
“로빈! 당장 그린 에어리어로 튀어와! 뭐? 설명할 시간 없어! 내 차 끌고 와! 당장!”
씩씩대며 트레일러 뒤에서 걸어 나오는데, 두 번째 곡이 시작됐다.
“젠장!”
이를 부드득 갈다가.
“흠! 흠! 아! 아!”
목을 풀었다.
“나도 알아, 이 곡!”
그때 그 산꼭대기에서의 축제 때는 척에게 붙들려 끼어들지 못했지만, 오늘은 방해할 사람도 없었다.
서둘러 그들의 무대에 뛰어들었다.
* * *
엄청나게 충격적인 즉흥 무대.
트레일러에 바짝 붙어 사람들의 시선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이안의 얼굴은 혼이 나간 사람 같았다.
그 한국의 무명 기타리스트가 소개해 준다던 친구들이 제니스와 유레이시였다니.
소리나 들어 보자고 시작한 즉흥적인 공연은, 어느새 이 거대한 축제의 메인이벤트급으로 부풀어 오른 상태였다.
지금 이 상황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제니스가 속한 카폰 레코드는 오래전부터 깁슨사의 파트너였다.
그렇기에 제니스도 깁슨의 최상위 커스텀만을 사용해 왔다.
그런 그가 망설임도 없이 자신이 만든 기타를 받아 들었다.
‘아. 내가 지금 소속사랑 소송 중이라서 협찬 계약이고 뭐고 상관없어.’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충격이었는데.
‘와, 색깔 진짜 예쁘다!’
대형 악기사들이 가장 함께하고 싶어 하는 1순위가 바로 유레이시였다.
하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았었고, 그녀는 스카핀이라는 회사의 핑크색 어쿠스틱 기타를 택했었다.
모두가 예상하지 못한 의외의 선택이었고.
자신의 회사 화이트 클로져보다는 컸지만, 영세한 회사였던 스카핀을 단 1년 만에 대형 악기사 반열에 올려 놓았었다.
그 도도하고 까다로운 영국 여신이, 자신이 만든 화이트 래빗을 품에 꼭 끌어안은 것이다.
‘꿈이지?’
꿈도 이렇게까지 비현실적으로 꿀 수는 없었다.
‘어디서부터지?’
고속도로를 달리다 들렸던 그 허름한 펍에서부터 시작인가?
‘아… 그렇지. 그렇게 조용하고 완벽한 Highway Star가 존재할 리 없어. 거기부터구나. 내가 많이 취했었구나. 바에서 뻗은 건가? 모텔까지는 걸어간 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허탈하게 웃었다.
‘이 꿈은 언제 깨는 거지?’
트레일러에 기댄 몸이 스르르 아래로 내려갔다.
‘꿈이라도 기분은 좋구나.’
활짝 웃으며 두근대는 심장을 만끽했다.
여기에 ‘래빗’도 등장한다면 정말 최고의 꿈이 될 터였다.
* * *
시작 부분은 원작자에 대한 예의였다.
제니스가 서브 파트를 연주했고, 고개를 끄덕인 진혁이 비어 있는 메인 멜로디를 채웠다.
자연스럽게 첫 소절은 진혁의 몫이 되었다.
맑은 목소리가 경건하게 울리자 관객 중 몇몇이 탄성을 질렀다.
이젠 Box-43의 대표곡이 되어 버린 ‘시계태엽’이었다.
갑론을박이 아직도 끊이지 않았지만, 그 ‘리버풀의 기적’은 최근의 음악사에서 가장 굉장한 사건이었다.
그리고 제니스는 그 곡의 원작자가 따로 있음을 인정했었다.
관객 중 한국에서 열린 ‘하늘 아래 음악 축제’를 봤던 사람들이라면 잊을 수 없는 목소리.
‘래빗?’
이 경건한 울림을 방해할 수 없어 입 밖으로 내지는 못했지만,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 같은 장면이 떠올랐다.
하얀 토끼 인형이 제니스의 무대에 올랐던 그 장면이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동양인의 얼굴을 제대로 기억하기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도대체 저 사람이 누구길래 제니스와 유레이시 그리고 칼리까지 한자리에 모인 거지?’
방금까지 모두의 머릿속에 떠 있던 물음표였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가 울리기 시작한 순간.
모든 의문이 해소되었다.
‘그가 왔다.’
모두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의 소절이 끝났고, 그때의 무대가 그대로 재현되듯 강렬한 스트로크와 함께 제니스가 목소리를 높였다.
마치 과거 그때의 그 무대와 완벽히 같은…….
‘어? 쟤가 저기서 왜 나와?’
제니스의 노래를 덮어 버릴 기세로 등장한 거친 음성이 관중들에게 현재를 일깨워 줬다.
오늘의 ‘시계태엽’은 완벽히 다른 버전이었다.
* * *
-미친! 지금 너튜브 보는 사람!
└오! 진혁느님이시여!
└외쳐! 갓끼 님!
└갓끼 님!
└갓끼 님!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셨어!
└버스킹으로 씹어 먹기 시작하셨다.
└세계에서 최고로 호화로운 버스킹이다!
└아! 후원하게 채널이나 열어 주지!
└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오신 거냐!
└한국 밴드 응원차 가신 건가?
└칼리 목소리 죽인다! 제니스를 압도하는데?
└야. 원래 저 곡이 헤비메탈이었냐?
└제니스 고음이랑 묘하게 어울리긴 하네.
└와, 버스킹으로도 그냥 레전드를 만드시는 갓끼 님! 크으!
└유레이시 목에 핏대 섰어!
└저 조합 진짜 대박이다!
└우리 진혁느님이 있어서 가능한 조합이지.
└미쳤다 진짜!
└아. 저런 엄청난 생라이브를 직관하다니!
└역대급 월뮤페라더니 진짜로 흥미진진해졌는데?
└진혁느님이 월뮤페도 접수하시는 거냐?
└외쳐! 갓끼!
└갓끼 님!
└갓끼!
북태평양 너머 대한민국도 덩달아 들썩이는 순간이었다.
* * *
“허허…….”
부하 직원의 보고에 서둘러 영상을 확인한 스테빈이 허탈하게 웃었다.
그가 등장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한국 밴드들을 불러들인 이상, 관객으로서 그가 나타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전야제도 하기 전에 이렇게 튀어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한국밴드들의 공연 때 게스트에 대한 부분을 확실히 해 둘 필요가 생겼다.
지금은 그저 버스킹이라 어쩔 수 없지만, 무대에 오르는 것은 막아야만 했다.
3월의 그날을 떠올린 스테빈이 이를 악물었다.
어쨌거나 불안 요소는 미리 차단해야 했다.
“이미 올라온 세트 리스트를 함부로 변경하는 것은 명백한 계약 위반임을 다시 한번 공지하고, 앵콜 역시 정해진 범위를 넘어서지 못하게 해. 사전에 알려 오지 않은 게스트가 무대에 오르는 일 없도록 확실하게!”
“예! 회장님.”
“그리고 관객들 규정 사항도 단속 제대로 해. 무대가 아닌 곳에서 50W를 초과하는 앰프로 버스킹하는 사람들은 누가 됐든 경고 없이 중단시켜.”
음악 축제인 만큼 아티스트들도 많이 왔고, 여기저기서 그들이 벌이는 버스킹도 축제의 한 축을 담당했다.
그렇지만 다른 관객들의 휴식을 방해하거나 본 공연에 영향 끼칠 정도의 소음은 발생해서는 안 됐다.
그래서 휴대용 앰프는 50W 출력까지만 허용했었다.
하지만 너무 빡빡하게 단속하다간 관객들의 원성을 살 수도 있었기에 적당한 선에서 묵인하고는 했었다.
“현장 인원들에게 바로 전달해.”
“예! 회장님.”
스테빈의 미간이 좁아졌다.
이걸로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잠깐… 크리스 제리 바로 준비되나?”
‘그’의 등장이 더 이상 퍼지기 전에 사람들의 시선을 빠르게 돌릴 방법이 필요했다.
“그게… 아직 호텔에 있을 겁니다.”
“아…….”
“전야제를 앞당기려고 하십니까?”
눈치 빠른 부하 직원의 말에 스테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폭죽부터 바로 준비하고… 플록스는 어딨어?”
“플록스 잭슨은 자기 트레일러에 도착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 그럼 플록스에게 연락 넣어. 전야제 앞당긴다고.”
전야제 첫 무대는 EDM 무대였다.
본래 크리스 제리가 그 화려한 오프닝을 맡았었지만, 시간이 촉박했다.
크리스 제리가 등장하기 전까지 전 세계를 호령했던 플록스 잭슨이라면 충분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크리스 제리는 어떻게 할까요?”
“당장 출발하라고 해.”
화려한 레이저와 함께할 EDM 무대들을 연이어 터트린다면 사람들은 다른 곳에 고개를 돌리지도 못할 것이었다.
“메인 무대부터 바로 세팅해.”
“예. 알겠습니다!”
저런 버스킹 정도야 화려한 전야제가 시작되면 묻혀 버릴 것이었다.
사람들은 더욱 크고 화려한 것에 이끌리기 마련이니까.
메인 스테이지가 열리기 시작하면 저 정도 버스킹은 사람들의 귀에 들리지도 않을 것이었다.
“전야제 총책임자가 누구였지?”
“벤자민입니다.”
“얼른 전화하라고 해.”
고개를 돌려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너튜브 화면을 노려봤다.
사람들은 더욱 늘어났고, 그들의 작은 공연은 계속해서 이어지는 중이었다.
“서둘러!”
스테빈이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