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116
116화 전야제 Part.4
“아직 해가 완전히 지지 않아서…….”
“위에서 하라는데 해야지. 별수 있나.”
“조명 세팅은 임기응변으로 한다 해도 레이저는 무리입니다. 불꽃도 저 모양이라…….”
전야제 현장을 총괄하는 벤자민이 불꽃 발사대 주변을 바라봤다.
완연한 밤이었다면 화려한 불꽃과 어둠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어야 했을 희뿌연 연기가 무대로 향하는 시야를 막아서고 있었다.
메인 무대와 발사대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고, 시뮬레이션에서는 저 연기를 활용하여 레이저 효과를 극대화할 예정이었다.
어디까지나.
해가 완전히 져서 깜깜해졌을 때여야 가능한 연출이었다.
지금은 그저 메인 무대를 가리는 불청객일 뿐이었다.
검은 하늘에 화려하게 수놓여야 했을 불꽃은 파란 하늘에서 잠시 반짝이고 사라졌다.
저 희뿌연 연기는 어둠 속에서 레이저를 돋보이게 할 스크린이 되었어야만 했다.
그리고 저녁이 되어 불어오는 바람에 흩날리며 무대를 드러냈어야 했다.
이 지역은 해가 지면 산 쪽으로 바람이 불었기에 기획했던 연출이었는데, 갑자기 앞당기는 바람에 모든 것이 틀어졌다.
“반응은 어때?”
“그래도, 불꽃이 터진 후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하기는 했습니다. 소리도 크고, 그래도 번쩍이기는 했으니까…….”
“저게 문제네.”
쉴 새 없이 불꽃을 쏘아 대는 발사대를 노려봤다.
연기는 더욱 짙어졌고, 이젠 발사대가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다.
불꽃을 보기 위해 하늘을 향했던 사람들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오는 순간, 화려한 연출로 시작되어야 할 전야제가 뿌옇게 흐려져 있었다.
해는 아직도 질 생각을 하지 않았고, 연기를 걷어 내 줄 바람도 불어 주지 않았다.
이미 일은 저질러진 후였다.
“이래서 내가 그렇게 반대했는데…….”
벤자민이 이를 부드득 갈았다.
“무대에는 누가 먼저 오르지?”
총괄인 자신이 이런 것도 물어서 알아야 하다니… 그만큼 상황이 급박하기는 했다.
“플록스 잭슨이 바로 오를 수 있다고 합니다.”
“아… 플록스…….”
“윗선에서 바로 결정한 거라서…….”
아차 싶은 부하 직원이 뒤늦게 변명했고, 벤자민의 미간이 좁아졌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전야제 공연이 앞당겨졌고, 그에 따른 현장의 혼란에 대해 항의했을 뿐인데, 총책임인 자신을 제쳐 두고 전야제가 진행되는 중이었다.
불꽃과 함께 시작되는 전야제 이벤트의 첫 아티스트가 크리스 제리였던 만큼, 어차피 EDM 공연에 맞게 세팅된 무대였다.
같은 EDM 뮤지션인 플록스 잭슨이 바로 오르기에는 무리가 없었다.
다만, 라이벌 관계인 둘이었기에 플록스가 크리스 제리의 장비를 그대로 쓸 리 없었다.
“그래서 저렇게…….”
“엔지니어들이 총출동했습니다.”
바쁘게 움직이는 무대 위를 바라보던 벤자민이 한숨을 내쉬었다.
“크리스 제리는 언제 도착한대?”
“25분쯤 후에 도착한다고 합니다. 준비하는 시간까지 최소 30분은 버텨야 합니다.”
이미 폭죽이 터졌다.
사람들은 메인 스테이지로 모이는 중이었고, 그에 합당한 무대가 어서 준비되어야만 했다.
딜레이가 길어질수록 뜨겁게 달아오른 열기는 식게 될 것이었다.
결국, 다른 방법은 없었다.
위에서 그렇게 결정했고 자신은 그것에 따라야 하는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야만 했다.
전야제 무대의 책임자는 어디까지나 자신이었으니까.
벤자민이 고개를 저었다.
“조명 팀장과 레이저 연출 팀, 크리스가 사용하려 했던 예비 무대 엔지니어들까지 전부 불러.”
“예.”
이렇게 된 이상 판을 새로 짜야 했다.
자욱한 연기 속 메인 무대와 마주 보며 자리한 예비 무대를 번갈아 확인한 벤자민이 입술을 깨물었다.
* * *
“운도 좋네.”
매니저의 말에 플록스 잭슨이 이를 보이며 웃었다.
그의 화려한 금니가 번쩍였다.
“운이 아니지. 원래 저 자리는 내가 섰어야 했어. 그 새파란 애송이가 아니라.”
“뭐, 그렇다고 치지.”
뭐라 대꾸하려던 플록스가 콧잔등을 실룩거리며, 희뿌연 연기로 가득한 메인 무대를 바라봤다.
시드니 뒷골목 클럽에서 디제잉이나 하던 놈이었는데 어느새 EDM 황태자라는 타이틀까지 꿰차더니.
결국 이 굉장한 축제의 메인 자리까지 올랐다.
바로 며칠 전까지 열렸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EDM 축제에서도 굉장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온.’
크리스 제리를 다시 태어나게 한 뮤즈.
한국을 방문한 후 크리스의 음악은 완벽하게 뒤집혔다.
간혹 관객들을 놀릴 때 장난 삼아서 했던 트롤링(긴장을 증폭시키다가 갑자기 뜬금없는 음악을 틀어 허탈하게 분위기를 가라앉히는 DJ기법)으로 새로운 장르를 개척할 줄이야.
크리스의 음악은 따라 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독특했다.
무엇보다 다온이 있었기에 가능한 공연들이었지만, 어디까지나 그런 괴상망측한 비트들을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였기에 만들어 낼 수 있는 음악들이었다.
자신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자전거 타기나 수영을 완벽하게 잊어버리는 수준이었기 때문이었다.
방금 크리스와 했던 통화 내용을 떠올렸다.
‘그때 내가 말했던 그가 왔어. 전야제 무대 근처에 있을 거야.’
플록스의 눈썹이 꿈틀댔다.
한국에서 크리스의 음악을 뒤흔들어 놓은 사람에 대한 얘기였다.
눈을 떠 무대를 바라봤다.
크리스가 사용하려던 장비들이 무대 뒤로 밀려났고, 자신의 장비들이 새롭게 세팅되는 광경이 보였다.
자신의 음악에 열광할 사람들을 떠올렸다.
열기는 더욱 뜨거워질 테고, 주최 측은 그 분위기를 깨기 싫을 것이다.
자신만 지치지 않으면, 몇 시간이고 무대를 이끌 수 있었다.
어차피 꼬인 기획이었다.
“어디, 내 음악도 흔들어 보시지.”
자신의 음악은 완벽했다.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었다.
“광란의 밤을 만들어 주지.”
그가 감히 자신의 음악을 건들지 못하도록 최고의 공연을 만들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열기는 함부로 멈추지 못할 것이었다.
“크리스, 오늘 네가 오를 무대는 없어.”
플록스 잭슨의 송곳니가 더욱 반짝였다.
* * *
‘아저씨! 제 매니저라고 대기실에서 기다리시면 돼요. 크리스가 현장에 다 얘기해 놨대요. 오늘은 제 바로 앞에서 보셔야 해요! 알았죠? 꼭이요!’
뿌연 연기를 헤치며 걷던 진혁은 무대 뒤쪽에 만들어진 컨테이너 건물을 발견했다.
‘저긴가?’
진혁의 발이 멈췄다.
방금 있었던 버스킹의 여운은 아직도 심장을 두드리고 있었다.
마음껏 날뛰어도 보란 듯이 따라오던 제니스와 유레이시가 떠올랐다.
너무 즐거웠기에, 현장 요원들의 제지만 아니었다면 쉽게 끝내지 못했을 버스킹이었다.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현장 요원들에게 끌려가던 칼리가 떠오르자 저도 모르게 피식하고 웃음이 새어 나왔다.
신났던 버스킹은 그렇게 막을 내렸고, 때마침 다온에게 걸려 온 전화를 받았었다.
‘얼마나 늘었을까.’
소식은 간간이 전해 들었었다.
영국에서의 공연, 호주와 미국 그리고 DJ들의 성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까지.
EDM이라는 장르에서 그녀는 이미 상당히 높은 위치에 오른 상태였다.
분주히 움직이는 무대 위를 바라보던 진혁은 충기를 데리러 갔던, 그날 그 클럽을 떠올리며 눈을 감았다.
젊음이 내뿜는 뜨거운 열기.
손가락 끝으로 플로어를 뒤흔들었던 순간.
그 비트를 따라 함께 호응해 준 또 다른 천재.
언젠가 한 번 더 해 보고 싶었던 경험이었다.
“다온 양 매니저?”
진혁이 서둘러 눈을 떴다.
다행히 알아 들을 만한 영어였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 * *
“뭐야. 전야제는 8시 시작 아니었어?”
“앱에 알림 떴어. 서프라이즈라는데? 첫 무대는… 와! 플록스야!”
“크리스 제리가 아니고?”
“그렇네? 플록스도 최고지! 아무튼 얼른 움직이자!”
“불꽃 터지는 쪽으로 가면 되는 거지?”
“그쪽이 메인이잖아. 얼른 가자.”
이곳저곳에서 축제를 즐기던 사람들이 폭죽을 향해 분주히 움직였다.
아직 해가 완전히 지지는 않았지만, 굉음과 함께 연이어 터지는 불꽃은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 이 불꽃의 의미가, 이 거대한 월드 뮤직 페스티벌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기에 모두는 흥분하기 시작했다.
메인 무대에 설치된 화려한 조명들이 희뿌연 연기를 가르며 도착한 사람들을 맞이했다.
아직 사람들이 충분히 모이지도 않았는데, 거대한 스피커에서 전자음이 흘러나왔다.
아주 느린 비트의 멜로디가 반복되며 사람들의 걸음을 재촉했다.
‘이제 곧 터져. 이걸 놓칠 거야?’라는 듯 조금씩 빨라지는 박자에.
사람들은 뿌연 연기가 가득한 메인 스테이지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드럼 비트가 섞이고, 현란한 전자음들이 빨라지다가 최고조에 이른 순간, 관객들을 비추며 어지러이 깜빡이던 모든 조명이 꺼졌다.
순식간에 사방이 깜깜해지며 사람들이 숨을 죽였다.
메인 스테이지에 설치된 거대한 스크린이 번쩍하자, 사람들은 탄성을 내질렀다.
쿵.
쿵.
두둥.
뿌연 연기 사이로 모두의 시선을 모은 DJ BOX의 실루엣이 점점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느린 비트의 베이스가 계속해서 울렸다.
비트에 맞춰 번쩍이던 스크린이 하얗게 멈추자.
심장을 간질이는 통통 튀는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점점 비트는 빨라졌고.
플록스 잭슨의 음악을 들어 보지 못한 이들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신호였다.
이제 곧, 뛰어올라야 한다는 것을.
비어 있던 DJ BOX에서 팔이 하나 쭉 뻗어 올라왔다.
까딱이자, 사람들이 준비했다.
환했던 메인 스테이지의 스크린이 갑자기 꺼졌고.
쾅!
내뿜는 불꽃과 함께, 모든 조명이 현란하게 번쩍이며 관객들을 비췄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등장한 플록스 잭슨이 금니를 번쩍이며 손을 치켜들었다.
DROP!
숨죽이던 모두가 뛰어올랐다.
희뿌연 연기 속.
EDM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화려한 스크린 영상과 다양한 조명 연출을 사용할 수 없는 최악의 환경.
미리 맞춰져 있지 않았기에 무대에 설치된 불꽃은 단 한 번만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런 모든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모두의 심장을 쥐락펴락하며 환상적인 오프닝을 만들어 낸 플록스 잭슨이 흡족한 표정으로 마이크를 들었다.
“Let’s have a party time!”
월드 클래스 DJ의 포효가 축제의 시작을 알렸다.
* * *
‘레이저? 필요 없어. 내 음악 하나면 돼.’
플록스의 대답을 떠올린 벤자민이 멍하니 무대를 바라봤다.
역시 EDM의 황제였다.
그 불리한 상황에서 별다른 무대 연출도 없이 자신의 음악 하나로 사람들을 흥분시켰다.
‘딱 한 발만 쏘면 돼.’
불꽃 연출로 고심하던 그에게 플록스가 했던 말이었다.
그땐 고개를 저었는데.
정말로 그 한 발의 불꽃으로 한순간에 사람들을 불타오르도록 만들었다.
“크리스의 무대도 세팅 끝났답니다.”
“아… 그래?”
부하 직원의 말에 벤자민이 고개를 저었다.
플록스의 기세로 봤을 때, 연출자의 지시를 따르지 않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메인 스테이지 하나를 더 세팅한 상태였다.
하지만 과연 저 굉장한 분위기를 끊을 수 있을까?
플록스가 알아서 넘겨주지 않는 한 부드러운 스테이지 체인지는 불가능해 보였다.
이미 사람들은 플록스의 영역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다.
최악의 상황에서 얻은 성공적인 오프닝에 환호라도 질러야 하는데,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 * *
‘와…….’
메인 스테이지의 바로 옆 스태프들의 대기 구역에서 진혁은 탄성을 내뱉었다.
세상은 너무나도 넓었고.
음악은 너무나도 다양했다.
믹스셋만을 사용해 주변 환경과 무대 상황, 관객들의 상태까지 컨트롤하며 자신의 페이스로 끌어들였다.
단순하게 반복되는 멜로디는 중독성이 강했고, 있는 대로 끌어 올려 폭발하는 드랍은 파괴력이 엄청났다.
미친 듯 날뛰는 사람들의 모습에 진혁의 심장이 두근대기 시작했다.
무대의 계단 위, 이 공간을 지배하는 ‘쾌락의 신’을 가만히 바라봤다.
거만하게 턱을 치켜든 그에게서 뿜어 나오는 음악은 사람들을 취하게 했다.
누구나 가지고 싶어 하는, 아름다움, 멋짐, 섹시함, 넘치는 매력, 이 모든 것은 결코 거부할 수 없는 속삭임이었으니까.
저 열광적인 공간에서 그 누구도 벗어나고 싶지 않을 것이었다.
문득.
포모 증후군(FOMO: Fear Of Missing Out)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SNS를 보면 모두가 즐거운 파티를 하고 있는 거 같은데, 나만 혼자 집에 처박혀 있는 것 같은 느낌.
모두가 모인 그곳에 가지 않은, 하필 그날 뭔가 멋진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감정.
자신만 뒤처지고.
무언가를 놓치고.
제외되는 것 같은 불안감.
그렇기에, 지금 저들은 저 공간에 갇혀 버린 것이다.
‘굉장하네…….’
주위를 돌아보니 무대 옆 스태프들도 그의 음악에 빠져든 상태였다.
나만 소외되어서는 안 된다는 그 원초적인 감정을 아주 잘 건드리고 있었다.
흡족한 표정으로 관객들을 돌아보던 무대 위의 그가 문득 아래를 내려다봤고.
진혁과 눈이 마주쳤다.
다양한 음악을 사랑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곳.
그 기대되는 축제의 오프닝부터 이런 광경이라니.
진혁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이 공간은 정말로 굉장해.’
마주친 시선이 떨어지질 않았다.
그가 어깨를 으쓱했고.
‘그런데, 조금 강압적이지 않나?’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즐겨야 할 관객들을 노예로 만들다니.
‘어림도 없지.’
진혁의 입꼬리가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