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117
117화 전야제 Part.5
EDM은 다른 음악 장르에 비해 접근하기가 쉬웠다.
그렇기에 신인 아티스트가 마구 쏟아지는 장르이기도 하다.
최근 주류 음악 시장을 장악해 가고 있는 EDM의 인기 덕분에 더욱 많은 뮤지션이 뛰어드는 중이었다.
그중에서도 플록스 잭슨은 특출 났다.
첫 앨범부터 세계 모두를 열광시켰고, 19세라는 어린 나이에 정상에 올랐다.
그 이후 10년 가까이 가장 높은 자리를 고수했다.
트로피칼 하우스, 트랜스, 하드 스타일, 덥스텝.
그가 앨범을 낼 때마다 EDM의 주류 장르는 바뀌었다.
모두가 아름다움을 원하지.
모두가 멋지고 싶어 해.
다들 매력적인 게 좋지?
그의 메시지는 너무나 당연한 말들이었고, 그랬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그 공간에서 자신은 멋지고 아름답고 매력적일 수 있었으니까.
화려한 조명도, 환상적인 무대 연출도 필요 없었다.
그저 빵빵한 사운드와 DJ BOX만 준비되어 있다면 모두를 열광시킬 수 있었다.
지금 이 넓은 초원은 자신의 영역이었고.
이 공간에 발을 디딘 이상 그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을 것이었다.
소외되기 싫어 미쳐 날뛰는 관객들.
누구보다 돋보이고 싶은 욕망은 전염병처럼 퍼져 나가 모두를 감염시켰다.
이 공간에선 모두가 흔드는 거야.
고조되던 비트가 뚝! 멈췄다.
수만의 관객이 숨을 죽이자.
플록스의 손끝이 까딱였고.
DROP!
폭발했다.
마구 뛰어오르며 열광하는 관객들을 흡족하게 바라보다가 문득 아래로 시선을 보냈고.
자신의 영역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눈과 마주했다.
음악으로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
차갑게 식은 무언가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은 순수한 호기심이었다.
차차 의아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고.
불쾌감이 올라오다가.
곧 탄성이 튀어나왔다.
‘역시 당신이었군.’
플록스가 어깨를 으쓱했다.
‘어때? 나의 영역이?’
그가 고개를 저었고.
‘그래?’
플록스가 금니를 번쩍였다.
* * *
플록스는 처음부터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미국에서 열리는 축제에 따라온 매니저가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하다니.
대기실로 들어온 그 남자를 유심히 살피기 시작했다.
여느 평범한 동양인으로 보이는가 싶었는데, 눈빛만큼은 뭔가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간혹 까딱이는 손가락, 그에 맞춰 바닥을 탁탁 치는 발.
기분 좋은 리듬이었다.
계속되는 시선에 그저 방긋 웃으며 고개를 까딱하는 모습.
확신할 수 있었다.
절대 다온의 매니저가 아니라는 것을.
마치 자신을 처음 봤다는 듯한 표정이었기 때문이었다.
EDM과 관련된 사람이 자신을 몰라볼 리 없을 테니까.
그는 매니저 따위가 아니라.
특별 초대 손님이었다.
* * *
“방금 플록스와 눈 마주친 저 사람은 누구야?”
벤자민이 스태프 하나를 불러 소리쳤다.
방금 무대 위에서 보인 그의 제스처는 그냥 넘길 부분이 아니었다.
“크리스 제리와 함께 공연하는 다온이라는 DJ의 매니저라고 들었습니다.”
“DJ다온의 매니저라고……?”
공연 중인 플록스가 10초 이상 시선을 준 사람의 정체가?
절대로 그럴 리 없었다.
벤자민은 꼿꼿이 서서 무대를 바라보는 동양인을 유심히 살펴봤다.
플록스의 음악에 활활 타오르는 공간에서 그가 서 있는 부분만 차갑게 격리된 듯한 분위기였다.
‘아…….’
다온과 연결되는 나라.
그 나라에서 벌어졌던 엄청난 공연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조금 전 그린 에어리어를 떠들썩하게 만들며 등장했다던 그에게까지 생각이 뻗어 나갔다.
‘설마…….’
머릿속을 정리하기도 전.
무대 위의 플록스가 아래로 마이크를 던졌다.
* * *
해가 조금 넘어가긴 했지만 바람은 불어 주지 않았고, 무대 근방의 자욱한 연기는 가실 줄 몰랐다.
무대 위 플록스를 비추고 있을 대형 스크린은 뿌옇게 가려져 보이질 않았다.
화려한 불빛도, 멋진 무대 연출도 볼 수 없었지만, 플록스의 음악만으로도 사람들은 열광했다.
그의 공간에서 소외되어서는 안 되었기에.
더욱 흔들었고.
더욱 높이 뛰어올랐다.
그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만 하면 모두가 멋지고 아름다울 수 있었으니까.
잠시 멈칫하는 순간, 자신만 뒤처질 것이라는 공포가 더욱 사람들을 부추겼다.
그래서 더욱 열광했다.
잠시도 틈을 주지 않고, 쉴 새 없이 귀를 때리던 전자음이 뚝 끊기며 베이스음만이 퉁 퉁 남았다.
‘뭐지?’
사람들이 준비했다.
이제 곧 DROP이 터지고 다시 뛰어야 할 테니까.
그걸 놓쳐서는 안 됐다.
뿌연 연기 속 무대를 바라보던 사람들이 숨죽이던 때.
부드러운 허밍이 살랑하고 불어왔다.
* * *
크리스 제리의 말은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
믹싱 테이블을 처음 만졌다는 사람이 그의 음악을 흔들었다?
그리고 그 세계적인 DJ가 그 한 번의 흔들림으로 깨달음을 얻었다?
어쨌거나, 한국에서의 공연과 다온의 합류 이후 크리스의 음악은 완전하게 달라졌기에 어느 정도까지는 인정해야 했다.
자신을 제치고 월드 뮤직 페스티벌 EDM 스테이지의 메인을 차지할 정도로 성장한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크리스 제리가 한국에서 만났다던 다온의 스승에게 무언가 있기는 한 것이다.
언젠가 다온에게 제대로 묻기로 결심했었다.
항상 확신에 차 있던 자신의 음악에도 그가 끼어들 부분이 있을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가 갑자기 나타났고.
자신의 음악에 고개를 저었다.
‘그래?’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뭐 별거 아니면 마이크 볼륨을 죽여 버리면 될 터.
‘어디 해 봐.’
마이크를 던졌다.
* * *
모두의 욕망은 당연했다.
누구나 그렇게 되고 싶었으니까.
사람들끼리의 거리는 SNS를 통해 더욱 가까워졌고, 비교는 더욱 쉬워졌다.
그 작은 화면 속 그들은.
매 순간 파티였고.
매 순간 여행이었고.
매 순간 아름다웠다.
때문에.
자신도 그렇게 되어야만 했다.
그렇게 보여 주는 것을 강요받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절대로 멈춰서는 안 됐다.
누군가도,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 테니까.
그 작은 화면 속에 비추어지는 자신은.
매력적이어야 했고.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삶이어야 했다.
자신은 주목받아야 했으니까.
지금 스피커에서 울리는 음악에 중독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 욕망을 가감 없이 드러내 채워 주는 음악.
이 음악이 추구하는 화려함은 SNS와 닮아 있었다.
그랬기에, 저런 열광이 가능한 일이었다.
진혁은 감탄했고.
동시에 아쉬웠다.
이 공간에 속했기에 가질 수 있었던 아름다움은…….
강요로 만들어진 가짜였기 때문이었다.
마이크를 받아 든 진혁이 방긋 웃었다.
‘beautiful’의 어원은 잘 알지 못했지만.
‘아름다움’이라는 한글이 가진 가장 신빙성 있는 어원은.
‘자기답다.’였다.
이 공간에서 당신들은 자기다웠는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가짜로 만들어진 자존감은 안전한가.
진혁이 마이크를 입에 가져갔다.
눈을 감았고, 부드러운 콧노래가 흐르기 시작했다.
음악은 즐기는 거야.
강요당하는 게 아니지.
진혁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 * *
단순하지만 듣기 좋은 멜로디가 반복되었다.
‘뭐야? 트롤링인가?’
듣기엔 좋았지만, 지금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열광하며 뛰어오를 준비를 하고 있던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지금껏 자신들이 알아 왔던 플록스의 음악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베이스가 조금씩 빨라졌고, 들려오던 허밍의 속도도 빨라졌다.
‘와, 이 느낌도 좋은데?’
어서 터뜨려 줘.
더욱 돋보이게 뛰어오를 거야.
빨라지는 리듬에 사람들의 심장이 달아올랐다.
여느 때와 같이 자신을 매력적으로 만들어 줄 DROP이 튀어나올 타이밍이었다.
‘어라?’
그런데, 지금 내가 즐기고 있는 건가?
갑자기 든 의문에 뛰어오르려고 준비하던 무릎에 힘이 빠졌다.
문득, 숙제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멍한 찰나.
DROP이 터졌고.
아차.
뛰어오르지 못했다.
한순간 그의 영역에서 벗어났고, 두려움에 심장이 두근댔다.
만일 이곳에서 소외된다면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그런데.
뛰어오르지 못했는데도.
허탈하리만큼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열광하는 이들에게서 멀어졌지만, 즐거움은 변하지 않았다.
듣기 좋은 허밍이 계속되었고.
그제야 떠오른 의문의 답이 어렴풋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군중심리에 의해 전염된 강박적인 흥분을 걷어 내니.
온전히 음악 그 자체만을 즐길 수 있었다.
자신만의 감정으로.
‘와, 이번 플록스 음악 대박인데?’
무대 위를 바라보며 터뜨려 주기만을 바랐던 DROP은 더 이상 필요 없었다.
그냥 내가 즐기면 되는 거니까.
허밍의 음색은 더욱 강렬해졌고.
그에 따라 어지럽게 튀어나오는 전자음이 귀를 때려 댔다.
어떠한 준비도.
어떠한 신호도 없이.
자신만이 느끼는 DROP이 마구 터져 댔다.
* * *
“크리스! 이쪽으로!”
스태프의 뒤를 따르던 크리스 제리가 고개를 돌려 뿌연 무대를 바라봤다.
자신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EDM의 기둥.
세계 트랜드의 선두 주자가 공연 중이었다.
이번 축제의 메인은 자신이 차지했지만, 언제 뒤바뀌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만큼 플록스가 만들어 낸 음악들은 대단했으니까.
하지만.
‘굉장한데?’
오늘은 대단함, 그 이상이었다.
‘언제 이런 엄청난 곡을 만들었지?’
한 달 전 벨기에에서 열렸던 EDM 페스티벌인 ‘Tomorrow land’에서 만났던 그가 절대로 아니었다.
크리스가 허탈하게 웃었다.
이런 곡을 숨기고 있었을 줄이야.
쉴 새 없이 터져 대는 DROP은.
마치, ‘이만큼 준비했으니까 네가 알아서 즐겨.’라고 말하는 듯했다.
항상 중력처럼 당연하다는 듯 강제적으로 끌어당기던 그의 음악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무대 위 그의 표정이 궁금했다.
아직도 연기는 자욱했고.
대형 스크린은 뿌옇게 가려져 있었다.
“크리스!”
“아… 갈게!”
걸음을 옮기기 전 플록스의 영역에서 자유롭게 뛰어노는 관객들을 바라봤다.
과연, 이 분위기를 끊고 넘겨받을 수 있을까?
자신의 장비가 세팅된 무대를 향해 걸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쩌면, 이 전야제 오프닝에서 자신의 음악이 스피커로 전해지지 못하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 * *
음악 관련한 트로피를 받을 때마다 이빨 하나씩을 금으로 바꿨다.
그러다 보니 윗니는 모두 금으로 번쩍이게 되었다.
콧수염 아래 번쩍이는 윗니를 훤히 드러내며 거만하게 웃는 얼굴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다.
언제나 딱, 윗니까지만 드러냈었다.
그런데.
오늘.
경악으로 벌어진 그의 입은.
좀처럼 보기 힘든 누런 아랫니까지 훤히 드러난 상태였다.
꼬불거리며 내려온 레게 머리 사이로 굵은 땀줄기가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소금기에 절여져 시야를 가리던 선글라스는 이미 던져 버린 후였다.
무대 아래 마이크를 쥔.
그가 주도하는 멜로디에 필사적으로 따라붙느라 죽을 맛이었다.
인이어로 들려오는 사운드는 관객들에게 들리는 사운드와 달랐다.
거대한 스피커로 증폭되어 허공에 뿌려 대는 소리는 필연적으로 과장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자신에게 들리는 그의 목소리는 원음에 가까웠다.
그래서.
팔에 돋은 소름은 당연했다.
관객들은 이미 녹음되어 있는 믹스셋을 리스트에 걸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 기계적일 정도로 완벽하게 구사되는 허밍이 즉흥적인 라이브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할 터.
경악으로 벌어진 입이 희열 가득한 웃음으로 바뀌었고.
그가 주도하는 음악을 받치는 손은 더욱 빨라졌다.
‘젠장.’
또 비트를 비틀었다.
서둘러 BPM 레버를 만졌다.
처음 그의 허밍이 시작되었을 때만 해도, 너무나 서정적이어서 자신의 공연에는 어울리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그 반복되는 허밍에 이끌려 버렸다.
그렇게 따라가다 보니, 곧 그가 하려는 음악을 이해했다.
-절대 거스를 수 없었어.
농담처럼 넘겼던 크리스 제리의 말이 떠올랐다.
‘진짜였구나.’
모니터에 뜨는 믹스셋 리스트를 쉴 새 없이 살폈고, 그가 이끄는 길에 어울릴 블록들을 추려 냈다.
그리고.
정신없이 맞춰지는 복잡한 퍼즐 위에.
자신도 서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게 진짜 라이브구나.’
어느새 관중들과 함께 음악을 즐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해는 완전히 넘어갔고.
하늘은 까맣게 물들었다.
조명은 더욱 밝게 번쩍였고.
뿌연 연기 너머 열광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더 이상 자신의 DROP에 끌려다니는 관중이 아니었다.
자신만의 느낌 그대로 뛰어오르는 얼굴들에는.
지금까지의 공연으로는 만들어 내지 못했던 진짜 환희가 가득했다.
무언가에서 해방된 그들의 모습에, 플록스의 가슴이 벅차올랐다.
해가 지자 바람이 불어왔다.
무겁게 자리했던 연기가 흩어지기 시작했다.
* * *
정신없이 귀를 때리던 비트가 점차 늘어지다가 멈추자.
정신없이 뛰어놀던 사람들이 숨을 골랐다.
땀에 흠뻑 젖은 얼굴에 시원한 바람이 와 닿았다.
뿌옇던 시야가 조금씩 선명해졌고.
무대 뒤, 대형 스크린에 플록스의 모습이 클로즈업되었다.
양팔을 벌리고.
그의 얼굴은 하늘을 향한 상태였다.
천천히 카메라를 향해 내려온 그의 얼굴은 환희에 가득 차 있었다.
‘어?’
분명 플록스가 맞는데, 뭔가 이질적인 얼굴이었다.
윗니를 보이며 거만하게 웃어야 할 그가.
콧잔등을 찡그리고.
아랫니까지 드러내며 활짝 웃고 있었다.
“Let me hear you scream! World Music Festival!”
사방에서 레이저가 번쩍이며 쏘아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