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118
118화 전야제 Part.6
“조명 셋 확인했어?”
“네!”
“레이저 연출 팀에 구성 바뀐 거 전달했지?”
“아까 프로그래밍 끝났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불꽃 세팅은?”
“그건 아까 총괄님이 확인하셨다고…….”
“아… 그랬지.”
열기로 가득 찬 관객석만큼이나 무대 뒤도 엄청나게 뜨거웠다.
전야제 총괄 벤자민이 가쁜 숨을 고르며 방금 막을 내린 플록스의 무대를 바라봤다.
크리스 제리가 도착한 것을 알렸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았었다.
관객들의 열기는 너무나 뜨거웠고, 그런 분위기에서 순순히 내려올 플록스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시간을 정해 놓은 부분도 아니었고, 예정된 공연도 아니었기에 그가 끊지 않고 계속한다면 제지할 수단도 없었다.
EDM 무대는 다른 공연들처럼 곡과 곡 사이에 텀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쉼 없이 이어지는 디제잉을 중간에 뚝 자를 수는 없는 법이었으니까.
만일 그런 짓을 저질렀다간 그대로 관객들의 분위기는 싸해질 것이 분명했다.
당연히 그냥 무대를 내려올 리 없으리라 생각한 벤자민은.
큰 기대 없이 인이어를 통해 반대편 무대의 준비가 끝났다고 알렸고.
그 고집불통이 분위기를 띄우며 자진해서 크리스에게 바통 터치를 했을 때는 정말 자지러지는 줄 알았다.
순순히 스피커의 주도권을 넘기지 않으리라는 생각으로 느긋하게 준비하던 엔지니어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급히 준비한 레이저는 제때 쏘아졌고, 때마침 바람도 불어와 시야를 가리던 연기도 날아갔다.
지이잉.
스피커가 묵직하게 흔들렸다.
미리 체크하지 못했던 사운드도 문제는 없어 보였다.
크리스 제리의 첫 곡이 큰 사고 없이 스피커를 통해 터져 나오는 순간에.
관객들과는 조금 다른 의미로 환호를 지른 벤자민이었다.
심호흡했고.
세차게 들락거리던 가슴이 조금 진정되었다.
문제없이 돌아가는 크리스 제리의 무대를 확인했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 뒤 고개를 돌렸다.
모든 조명이 꺼진 채 자신의 할 일을 다한 무대가 보였다.
지금까지 그런 얼굴의 플록스를 본 적이 없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는 후련한 표정으로 무대에서 내려오던 모습은 아직도 눈앞에 선명했다.
그런 굉장한 곡을 고작 땜빵 오프닝에서 터뜨리다니.
방금 관객들의 엄청난 반응이 떠오르자 벤자민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미리 준비된 연출이었을까?
일단은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연기 속에서 벌어진 일이었기에 관객들은 제대로 보지 못했겠지만, 나름 괜찮은 연출이었다.
립싱크였겠지?
아마도 처음 부분은 직접 낸 소리였을 것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반복되는 허밍은 너무나도 완벽했고, 리듬 역시 딱딱 들어맞았다.
분명 첫 소절 이후로는 믹스셋으로 틀었을 터였다.
어찌 되었건 굉장한 무대였다.
검은 하늘에 촘촘하게 펼쳐진 레이저를 바라봤다.
이제야 졸였던 마음이 조금 풀어진 벤자민이 미소 지었다.
-치직, 칙.
-투. 원. 파이어.
가슴팍에 달랑달랑 매달린 무전기가 소리를 냈고.
크리스 제리의 무대에서 불꽃이 쏘아졌다.
* * *
꼬불거리는 머리카락은 미역 줄기처럼 얼굴 여기저기에 엉겨 붙어 있었다.
공연 중 던져 버린 선글라스는 어딜 갔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젠장, 세상에서 단 세 개뿐인 크롬하츠 한정판 커스텀인데.’
온몸이 땀에 젖어 축축했고.
전신이 녹아내리는 듯 힘이 빠졌다.
이렇게 미친 듯이 공연했던 적이 언제였던가.
이렇게 미련 하나 남겨 두지 않고 무대를 내려온 적이 있었던가?
무대에서 내려오던 마지막 계단에서 결국 털썩 주저앉았다.
헝클어진 머리칼 사이 어수선한 시야에 누군가가 다가왔다.
그가 내민 마이크를 받아들고.
“푸하!”
후련한 숨을 내뱉었다.
“어때. 단 한 번도 놓치지 않았어.”
대답 없이 방긋 웃기만 하는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뭐야. 못 알아들었어?”
맞다. 그는 영어를 못 했었지.
플록스가 고개를 저었다.
이 정도는 알아듣겠지?
“땡큐.”
손을 내밀었고.
“유어 웰컴.”
그가 손을 뻗어 마주 잡았다.
“렛츠 고.”
저 멀리 크리스의 무대에서 불꽃이 쏘아졌다.
“오케이.”
이젠 자신이 즐길 차례였다.
* * *
[와, 전야제 오프닝부터 찢었다.]└나 원래 플록스 비호감이었는데, 다시 봤음.
└한물갔어도 월드 클래스임.
└진짜 굉장했다.
└그런데 이 곡은 피처링이 다 해 먹은 거 아님?
└진짜 그 허밍 장난 아니었음.
└누구지?
└중독성 대박임.
└플록스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던데? 이제 빅 룸 하우스로 가는 거임?
└노노, 트로피컬 느낌이 더 강했음.
└뭔 소리임. 막 꼬이면서 터지는 드랍 못 봤음? 백 퍼 트랩임!
└진짜 장르가 애매하긴 하다.
└뭐가 됐든 듣기 좋으면 그만임.
└이번 곡 발매는 언제지? 또 듣고 싶다.
└아무튼 마지막에 렛미히얼 어쩌구 할 때 완전 대박. 끝까지 깔끔하게 지렸어.
└야! 우리 크리스 형님 시작한다.
└오! 다온!
└여신님 등장이다.
└역시 크리스가 최고지!
└다온 누나!
└근데 이 실시간 영상은 작년 하늘 아래 음악 축제 따라 하는 거 아님?
└뭐 그 덕에 우린 방구석에서 즐기는 거잖음.
└우리 갓끼 님이 세계 음악 축제의 표준을 만든 거임.
└결국 외쳐야 되는군!
└소리 질러!
└갓끼 님!
└갓끼 님!
└갓끼!
[근데 갓끼! 외치다 보니까 갑자기 또 칼리 욕하고 싶네. 왜 거기서 초를 쳐서!]└뭐, 자기도 뭔가 해 보고 싶었겠지.
└난 지금 생각해 보니까 갓끼 님한테 손 뻗을 때 조금 귀엽기도 했음.
└그래 얘들아. 아까도 미친 듯이 깠으니까 이젠 봐주자. 걔도 갓끼 님 추종자 아니냐.
└크으. 제니스와 칼리를 양쪽에 거느리시다니, 갓끼 님 클래스 지리네.
└유레이시도 있음.
└지리고 또 지리고 오지는 부분임.
월드 뮤직 페스티벌의 실황은 너튜브를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되고 있었다.
유료로만 볼 수 있는 공식 채널 외에도 스트리머들의 촬영까지 허용했기에 사람들은 더욱 실감 나게 현장을 즐길 수 있었다.
작년부터 한국에서 열렸던 축제를 따라 한다는 비난도 있었지만, 어쨌거나 그 덕에 월드 뮤직 페스티벌을 향한 세계 음악 팬들의 관심은 더욱 뜨거워졌다.
전야제의 오프닝부터 수십만 명의 사람이 너튜브로 몰려들었고, 네트워크를 통한 열기 또한 엄청났다.
그 공식 채널 영상에 현란한 레이저가 수놓이기 시작했다.
* * *
여성 아티스트는 EDM의 세계에서 흔하게 만나 볼 수 없었다.
무의미하게 노브를 만져 대고 엉망진창의 바이브를 만들며.
단지 가슴을 드러낸 섹시한 옷을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화제가 되는 아티스트는 제외하고 말이다.
그런 세계에서 갑자기 나타난 동양인 여성 DJ는 어딜 가나 화제가 되었다.
언제나 헐렁한 후드티를 입고 모자를 푹 눌러쓴 채 크리스 제리의 음악을 흔들었고, 그 독특한 비트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그런 그녀가 간혹 고개를 들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면, 그 인형같이 예쁜 얼굴에 더욱 열광했다.
장르의 공식을 뒤흔들어 게임의 룰 자체를 바꿔 버린 그녀는 어느새 여성 DJ계의 심볼로 우뚝 선 상태였다.
오늘도 여지없이 강력한 베이스와 절묘하게 어울리는 그루브로 사람들의 심장을 움켜쥐었고.
크리스 제리가 터뜨렸다.
엉망진창 트롤링과 같았던 리듬들은 철저하게 계산된 곳에서 한데 모여 사람들을 뒤흔들었다.
관객들의 분위기를 살피던 크리스가 다온을 바라보며 약간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바로 가자.’
다온이 끄덕였다.
오늘의 공연에 예열 따위는 필요 없었다.
이미 엄청나게 뜨거워진 초원이었다.
* * *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냐.’
후끈한 열기로 달아오른 사람들을 바라보던 크리스가 고개를 저었다.
관객들의 분위기가 평소와는 완연하게 달랐다.
플록스와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성은 너무나도 달랐고.
그렇기에 그의 공연이 끝난 후 바로 다음 무대에 오를 때면 기어를 바꿔 끼울 시간이 필요했었다.
하지만 오늘 관객들은 이미 ‘자유’라는 기어를 넣은 상태였다.
도저히 플록스의 영역에서 갓 헤어 나온 사람들이 아니었다.
도착해서 들었던 그 굉장한 곡이 떠올랐다.
전체적으로 듣지 못해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자신과는 또 다른 방향으로 ‘자유’를 찾은 것 같았다.
‘조금 더 흔들까?’
다온과 눈을 마주쳤고.
그녀가 턱짓했다.
그 방향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다온을 처음 만났던 날.
자신을 뒤흔들어 놨던 ‘래빗’이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평생 해 왔던 모든 음악을 송두리째 뒤집은 장본인.
그의 무대들을 영상으로 보기는 했었지만.
실제로 다시 만난 것은 그날 이후 처음이었다.
크리스 역시 방긋 웃으며 인사를 건네려는데.
그의 뒤로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아… 너도 만났구나…….’
이제야 그 굉장한 곡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완벽한 허밍의 주인공도.
‘어때? 결코 거스를 수 없는 신의 손길을 만난 소감이?’
여지없이 반짝이는 금니가 보였다.
그 미소는.
더는 오만하지 않았고.
더는 강제적이지 않았으며.
완전한 자유를 알게 된 눈부신 반짝임이었다.
* * *
“와, 반응이 엄청난데?”
스테빈이 과장되게 팔을 벌리며 활짝 웃었다.
“신곡인 것 같습니다.”
급박하게 끼워 넣은 땜빵이었고, 어차피 크리스 제리가 도착할 때까지만 관객들을 묶어 놓을 수단이었다.
한때는 세계 EDM의 트랜드를 이끌어 가는 기둥이었지만, 최근 발표한 앨범들의 성적은 한참 부진했기에 한물갔다고 여겼었다.
새롭게 등장하는 EDM 뮤지션들은 넘쳐 났고, 돈이 되지 않는 아티스트를 계속해서 끼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그렇기에 이번 축제에서도 떠오르는 태양인 크리스 제리에게 메인을 넘긴 것이었다.
그런 그가 이렇게나 강력한 한 방을 날릴 줄이야.
“이번에 마이애미 작업실에서 만든 건가?”
“최근에 거기서 지냈으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피처링은? 음색을 보니… 아르티? 브래들리?”
“아마도, 아닌 듯합니다. 아르티는 솔로 작업 중이고, 브래들리는 예전에 갈라서고 파리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
스테빈이 현란한 레이저에 어지러이 갈라지는 밤하늘을 바라봤다.
그는 음악을 돈으로 환산하는 인생을 살아왔다.
그렇게, 성공한 삶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확신할 수 있었다.
방금 플록스의 곡에서 들려온 그 허밍이 지닌 가치는 정말로 굉장했다.
“신인인가…….”
“만일 기존 가수였다면 매니저가 마케팅으로 활용하려 했을 겁니다. 최근 플록스의 성적은 좋지 않았으니까요.”
“그랬겠지.”
“괜찮았습니까?”
“괜찮은 정도가 아니네.”
아직, 음색의 가치를 제대로 판단하기엔 경험이 부족한 부하 직원이었다.
“세상엔 수많은 목소리가 있지. 그중 돈이 되는 목소리를 찾는 게 우리의 일이야. 단지 목소리 하나면 돼. 나머지는 회사가 알아서 하니까. 좋은 곡을 구하고, 마케팅부터 프로모션까지,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스타로 만들면 돼. 그래서 우린 귀를 활짝 열고 누구보다 빨리 그 목소리의 가치를 계산해야 하지.”
“예. 회장님.”
그 무대의 마지막 곡은, 발매하는 순간 무조건 대박이었다.
그리고 그 곡의 메인은 아직도 귀를 간지럽히는 그 콧노래였다.
“플록스가 아직 안 죽었군.”
그런 환상적인 음색을 찾아내 곡을 만들어 왔을 줄이야.
작곡이야 플록스가 했을 테지만, 그 음표를 소화해 낸 콧노래가 완성한 곡이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대어였다.
무조건 돈이 되는 음색.
“플록스에게 물어봐. 직접 만나 봐야겠군.”
“예! 회장님.”
스테빈이 흡족하게 미소 지으며 사람들로 가득한 메인 에어리어를 바라봤다.
한국에서 온 그의 버스킹에 발끈하여 갑작스럽게 당겨진 전야제는 스테빈으로서도 부담이었다.
준비되었던 모든 것을 새롭게 세팅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그저 큰 이슈 없이 관객들의 호응만 불러와도 성공이라 여겼었다.
그런데 이렇게나 굉장한 오프닝이라니.
시작부터 느낌이 좋았다.
* * *
“그러니까 지금 이 영상이 1999년도 영상이라는 거죠?”
“예. 당시에는 한국의 홍익대학교 앞에 있는 클럽에서 공연했었습니다. 맴버도 그대로고요. 현재 이 클럽은 사라졌고, 당시 그곳에서 일했던 사람을 수소문해서 겨우 구한 영상입니다. 당시 8mm VCR로 촬영된 거라서 화질은 엉망이지만 어느 정도 복원은 가능할 것 같습니다.”
노트북 화면을 유심히 바라보던 앨런이 고개를 끄덕였다.
좁은 라이브 클럽에 빼곡하게 들어선 사람들은 날뛰는 중이었고.
작은 무대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열아홉 진혁의 모습이 보였다.
“당시 데모 테이프도 확보했습니다.”
정태강이 – 임도유를 닦달해서 안상정을 통해 얻어 낸 – 테이프를 앨런의 앞에 들이밀었다.
“모두 몇 장면이죠?”
“공연 영상 세 개에 리허설 영상 두 개입니다.”
“괜찮네요.”
영상 플레이 리스트를 확인하던 앨런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건 왜 보류죠?”
“아… 그건 리허설 영상인 걸로 보이는데, 뭐랄까… 조금 충격적이기도 하고…….”
“네?”
“그… 왜 그런 거 있죠. 젊은이의 치기랄까…….”
정태강이 머리를 긁적였다.
영어로 이 단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 한국에선 중2병이라고 하는데…….”
“예?”
“일종의 사춘기 같은…….”
“사춘기라…….”
“근데, 그게 좀 세게 오는 애들도 있거든요.”
앨런이 마우스 패드를 터치해 ‘hold off’라고 쓰인 항목을 클릭했다.
노트북 화면에 자글거리는 노이즈가 가득 찼다.
곧, 짐승의 하울링과 같은 울림이 이어폰을 타고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