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12
12화. 혁명
“과···. 과장님?”
“응?”
“아··· 아닙니다.”
유민석은 방긋 웃는 상사를 보고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주변을 살피니, 모두의 시선이 자신을 향해 있었다.
이 많은 사람 중 조진혁 과장에게 말을 붙일 수 있는 사람이 자신뿐이라니···.
민석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 나도 궁금하다고!’
동료들의 반짝이는 눈빛이 너무나도 부담됐다.
“야! 오늘 조진혁 오퍼 아냐?”
상무에게 불려갔던 곽정수 차장이 사무실로 들어오며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다시 찾아온 사무실의 정적.
이번엔 차갑게 식기도 전부터 뜨겁게 달아오른 공기.
또 무슨 일이 벌어질까?
모두가 귀를 쫑긋 세웠다.
“오퍼라 하심은, 불법적으로 수술방에 들어가는 것을 말씀하시는 거죠?”
“뭐?”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한 곽정수 차장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너 뭐 잘못 먹었어?”
“부장님도 그렇고, 차장님도 그렇고, 제가 먹은 것을 참 궁금해하시는군요. 어제는···.”
누군가 구석에서 ‘치킨’이라고 수군댔다.
“오!”
진혁이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려, 방긋 웃은 뒤 끄덕였다.
“네. 어제는 치킨을 먹었습니다.”
곳곳에서 끅끅거리는 소리가 났다.
도저히 웃음을 참을 수 없는 몇몇이 심호흡하듯 숨을 몰아쉬었다.
“뭐? 이 새끼···.”
눈썹을 치켜세운 곽정수가 주변을 둘러봤다.
“뭐야? 분위기 왜 이래? 단체로 미쳤어?”
서류철을 벽에 탁탁 치며 성질을 내 봤지만, 이미 열기로 가득 찬 사무실을 식힐 수는 없었다.
“야! 조진혁!”
“조진혁 과장.”
“뭐?”
“나이도 저보다 어리신데, 직급 붙여서 불러주시지요. 아주 기본적인 예의입니다.”
“하···. 뭐 이딴···.”
진혁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입사 동기지만, 나이는 한 살 아래.
진혁이 혼자 고생한 납품 계약을 날름 자기 공으로 올려 먼저 과장으로 승진.
회식 자리에서 본사 여직원들 옆에 앉아 주접을 떨어댔던 기억.
상무에게 온갖 아양을 떨어, 다음 부장 승진 1순위.
“됐고, 얼른 오퍼나 나가.”
“곽정수 차장님? 제게 불법적인 업무를 지시하신 거 맞나요?”
“그게 뭔 헛소리야! 그거 매번 하던 거잖아! 너 진짜 돌았어?”
“‘너’말고. 조진혁 과장.”
“···!”
“분명히 방금 알려 드렸는데···.”
진혁이 저벅저벅,
곽정수 차장의 앞에 가서 섰다.
정수는 진혁이 가까이 오자 고개를 들어 올릴 수밖에 없었다.
‘이··· 이 새끼 키가 원래 이렇게 컸나?’
진혁은 그를 내려 보다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곽정수 차장님. 밖에서도 ‘너’라고 하면, 형아가 때찌 합니다.”
“뭐··· 뭐? 너 당장 잘리고 싶어?”
“여기 회사 복지가 꽤 좋아서, 함부로 자르지는 못할 텐데요?”
“하··· 나 이 새끼. 어디 가지 말고 그대로 있어. 이게 회사 생활을 이따위로···.”
“퇴근 시간까지는 자리에 있을 예정입니다.”
사무실 전체가 웃음을 참는 소리로 가득했다.
곽정수가 이를 부드득 갈았다.
입사 동기.
어떤 무시를 해도 그저 묵묵부답.
공을 가로챘을 때도, 따지지 않았던 샌님이었다.
자신이 먼저 진급했고, 아무리 핍박해도 대꾸하나 하지 않았다.
막 대해도 되는 존재.
정수에게 있어서 진혁이라는 존재는 그래도 되는 사람이었다.
나름 스트레스가 심한 직종이었다.
그 화살이 부하직원에게 향하는 것은 당연했고, 그중에서도 자기보다 한 살이나 많은 인간을 막 대할 수 있다는 것은 묘한 쾌감까지 주었다.
노래방에서 억지로 마이크를 넘겨서 당황하게 만드는 것도 꽤 재밌었다.
눈엣가시 같은 인간.
처음부터 그를 싫어하진 않았다.
다만, 진급에 눈이 멀어 그의 공을 가로챘을 때 보인 그 눈빛.
따지지도 않았고, 화를 내지도 않았다.
그저 가만히 바라볼 뿐.
그때부터였다.
알 수 없는 열등감이 시작된 것은.
그 열등감은 어느새 적개심으로 바뀌었고, 교묘한 괴롭힘은 계속됐다.
까다로운 병원을 넘겼고, 성질 더러운 인간들의 접대에 배정했으며, 다들 하기 싫어하는 ‘오퍼’에 꼬박꼬박 이름을 올렸다.
그렇게 괴롭혀도,
지각 한 번 하지 않고, 꾸역꾸역 회사를 나왔다.
하는 일에서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았고, 회사 생활은 모난 곳 없이 깨끗했다.
그를 괴롭히면 괴롭힐수록 부하직원들 사이에서 조진혁의 평판은 점점 좋아졌다.
앞에서 티 내지는 않았지만,
뒤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이 더욱 짜증을 불러왔다.
하지만, 업무만큼은 철저했던 지라 선은 넘지 않고 있었는데, 이번은 주어진 업무를 거부한 것이다.
‘책상을 빼버려야겠어.’
뭘 잘못 먹고 이렇게 막 나가는지는 몰라도, 더 말을 섞어 봐야 부하직원들 앞에서 웃음거리만 될 뿐이었다.
“그래. 퇴근 시간까지는 있어야지.”
곽정수는 비릿하게 웃으며 몸을 돌렸다.
자신과 비슷한 이유로 조진혁을 싫어하는 장두창 부장을 떠올렸다.
나이로 자신을 먹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부장에게 얘기하고, 제대로 된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하게 할 것이다.
핸드폰을 들어 부장의 번호를 찾았다.
그가 이미 뒷골을 잡았다는 것은 알지도 못한 채.
***
“과장님?”
“응?”
“어쩌시려고 그러십니까?”
“뭐가?”
“저기···. 회사 그만두실 생각이십니까?”
오늘 있었던 일은,
그것으로밖에는 설명되지 않았다.
그만두는 마당에 그간 쌓였던 울분을 마음껏 뿜어대는 것.
모든 직장인이 머릿속에만 넣어뒀을 뿐, 실제로 하기는 어려운 그 통쾌한 판타지.
그렇다고는 해도,
그간 보아왔던 진혁의 성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내가 그만둬야 하나?”
“네?”
“오늘 내가 한 말 중에 틀린 거 있어?”
“어···.”
민석은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틀린 건 차장님이랑 부장님이지.”
“그··· 그렇긴 해도···.”
“말을 하지 않으니까 그게 당연한 게 된 거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진혁이 그렇게 말하니 민석은 더 이해할 수 없었다.
제일 말하지 않았던 게 누군데.
심지어 뒤에서 까는 자신들에게 ‘그냥 참고 넘기자.’라고 하지 않았던가?
뭔가 좀 억울했다.
“그만두실 것도 아니면, 도대체 뭘 하려고 그러시는 겁니까?”
진혁이 방긋 웃으며 주먹을 쥐어 보였다.
“혁명.”
해맑은 상사의 얼굴에,
민석은 할 말을 잃었다.
***
-잘 지내?-
‘어··· 오랜만이네?’
창천 물산 부사장 김우희는 어제 걸려 온 전화 때문에 밤새 심란했다.
-그···. 충기좀 만날 수 있을까?
잠시 설렜던 가슴이 차게 식었었다.
하긴, 세월이 너무 흘렀다.
‘내가 이혼한 건 알고 있을까?’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이미 자신 때문에 죽을 위기를 넘긴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는 기대감을 품는 것조차 미안한 일이었다.
‘후···. 우선 이 멍청한 인간부터···.’
얼른 인터폰을 눌렀다.
“네. 저예요. 오빠 정신 차렸나요?”
***
“상무님! 애가 완전히 미친 거 같더라니까요?”
“네! 저보고는 자르려면 자르라고···.”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 조진혁이?”
“상무님! 지금 바로 보안실 가시죠!”
“CCTV 보시면 아실 겁니다.”
둘이 같은 처지가 된 것을 알게 된, 장두창과 곽정수는, 씩씩거리며 박찬영 상무에게 모든 일을 보고하고 있었다.
물론, 살을 덧붙여서.
“와! 주먹 쥐고 확 다가오는데, 내가 패버릴 수도 없고···.”
“맞아! 그 새끼 일부러 나 열받게 해서, 직장 내 폭행 같은 걸로 엮으려고 한 게 분명해.”
박찬영 상무는 짜증 나는 눈으로 둘을 바라봤다.
“야. 그럼 뭐, 책상이라도 빼?”
둘의 눈이 반짝였다.
아무리 바퀴벌레 같은 조진혁이더라도 책상까지 빼버리면 그 수모를 견딜 수 있을까?
“근데···. 조진혁이 업무에서 배제하면 백업돼?”
장두창과 곽정수가 서로를 바라봤다.
조진혁 과장이 맡은 업무들은 대부분 까다로운 것들.
바로 밑의 유민석은 그 업무들을 처리할 능력이 되질 않았다.
그렇다고 조진혁 과장이 퇴사하지도 않았는데, 다른 부서의 과장급을 빼 올 상황은 아니었다.
지금 회사는 대규모 납품을 준비하는 단계.
모두가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결국, 확실하게 퇴사시키지 않는 한,
그 업무들은 고스란히 곽정수가 맡아야 하는 부분.
“어떻게···. 책상 빼?”
곽정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책상을 뺐는데도 사표를 쓰지 않으면?
“새끼들. 없는 말 지어내지 말고, 조진혁이한테 잘해. 그래도, 그놈 있으니까 니들이 편한 거야 인마.”
“그게··· 없는 말은···.”
“야! 오퍼나 리베이트 터지면 누가 뒤집어쓸래? 붙임성 하나 없는 만년 과장 꼬박꼬박 월급 주면서 붙잡아 놓는 이유 몰라?”
“아···.”
“자기가 사표 써서 티오 비기 전까지는 본관에서 인원을 빼 오지도 못해. 그렇다고 막 잘라? 부사장님 결제 니네가 받을래?”
속이 터졌지만,
방법을 달리해야 했다.
부서의 책임자 둘이 눈빛을 교환하며 어떻게 곯려 먹을지 고민하던 때,
상무실의 인터폰이 울렸다.
“왜?”
-본사에서 사장님 출발하셨답니다.-
“어? 갑자기?”
박찬영 상무가 서둘러 풀어뒀던 넥타이를 집었다.
“야! 니들 얼른 가서 사무실 정리해. 그··· 혹시라도 술 냄새 나는 놈 있으면 외근으로 돌리고···. 복장 상태 확인 잘해! 사장님 눈에 띄면 작살난다.”
하원 메디컬의 사장은 영업맨 출신답게 격식을 확실히 차리는 사람이었다.
전에도 이사 한 명이 와이셔츠 단추를 풀어 헤친 채 다니는 모습을 보고, 그대로 잘라 버린 적도 있었다.
“네! 상무님!”
서둘러 상무실을 나온 둘은 눈을 맞추며 입꼬리를 올렸다.
***
열아홉의 진혁은 하나는 인정했다.
사회에 녹아들 수밖에 없었던 진혁은 그래도 그 나름대로는 반항하고 있었다.
남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위로 오르던 때,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했다.
부당한 것은, 자기 선에서 해결했고, 부하직원들에게 떠넘기지 않았다.
상사가 자신을 아니꼽게 생각하는 것이 보여도 절대 꼬리 흔들지 않았다.
그렇게 15년이나 버텨온 것이다.
‘대단하네···.’
결혼했고, 아이가 생겼다.
가장이라는 무게는 엄청났다.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는 쥐꼬리만 한 월급의 의미는 거대했다.
가족이 살 집과 먹을 것을, 부족하지 않게 유지할 최소한의 조건.
아이가 어린이집에 들어가며 아내가 일을 시작했지만, 세상은 훨씬 더 많은 돈을 요구했다.
그러다 아내가 쓰러졌다.
그렇게 몇 년간 홀로 버텨온 것이다.
‘그래. 그건 인정해. 그렇지만···.’
회사라는 시스템에는 보호장치가 있었다. 하지 않아도 될 것은, 거부할 수 있는 권리는 있었다는 말이다.
처음에는,
당장 회사를 그만둘 생각이었다.
음악만이 머릿속에 가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세 대출 이자.
지난달 카드값.
은서 학원비와 용돈.
각종 공과금.
식비.
생활용품.
보험금으로 지원은 되지만, 만만치 않은 아내의 병원비.
당장 그만뒀을 때,
퇴직금을 계산해보니 마음 놓고 음악만 할 수는 없었다.
회사는 다녀야 했다.
하지만, 진급을 목적으로 둔 것이 아닌 이상, 일로서 누군가에게 인정받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해야 할 일만 하자.
그것만으로도 많은 것이 편해질 것이다.
진혁이 그간 해온 일들은 모조리 불법과 부조리가 섞여 있는 것들.
암묵적으로 동의 된 시스템 밖의 일들.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따지는 것만으로도, 하지 않아도 될 일들이었다.
마흔셋의 조진혁을 가장 괴롭혔던 두 사람에게 나름의 선을 지키며 복수했다.
어떤 방식으로 보복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다지 겁은 나지 않았다.
그들 역시 회사의 시스템 안에서 벗어나는 행동은 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안전장치가 있는 한, 어떤 보복이 오더라도 자신 있었다.
‘아···. 상쾌하다.’
아침 출근길에 느꼈던 짜증이 조금 해소됐다.
뿌듯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자, 부하직원들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진혁을 훔쳐보던 반짝이는 눈빛들이 제자리로 돌아갔다.
뭔가 모르게 활기찬 키보드, 서류를 넘기는, 복사기가 움직이는, 사무용 의자의 삐걱거리는,
사무실의 리듬들.
모두가 제각각이지만, 익숙하게 어우러지는 소리.
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눈 감은 진혁에게서 나지막한 혁명의 음악이, 회사가 만들어 내는 소리와 어우러지며 작게 울려 퍼졌다.
‘야. 들리지?’
‘와···. 진짜 노래 잘하시네?’
‘뭔가 가슴이 웅장해진다.’
‘내 말 맞지? 사람이 확 달라졌지?’
‘진짜 조과장님 다시 봤어.’
‘차장과 부장을 동시에 물 먹이다니···.’
‘와. 혁명이라고? 지렸다.’
민석과 동료들이 속닥댔다.
사무실에 혁명을 알리는 봄 내음이 가득했다.
모든 직장인의 판타지가, 머리를 울려대며 속삭였다.
‘하지 않아도 될 일은 하지 마.’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말해.’
‘누려야 할 것을 누려.’
‘한두 명이 해선 소용없어.’
‘비겁한 침묵이 사라지면 돼.’
‘모두가 같은 목소리를 내. 그러면 바뀔 거야.’
‘그들이 틀린 거니까.’
‘틀린 걸 바로잡는 것.’
‘혁명.’
누가 언어로 표현하는 것도 아닌데,
머릿속에 새겨지듯 박히는 혁명의 문구.
모두의 심장이 두근댔다.
***
장두창과 곽정수는 이유는 얘기하지 않고, 직원들에게 사무실 정리를 시작하라고 했다.
슬쩍슬쩍 복장 상태를 확인했지만, 조진혁 과장 외에는 별다른 특이사항은 보이지 않았다.
물론 자신들도 크게 깨지긴 하겠지만, 사장의 눈 밖에 난 조진혁 과장은 징계를 먹게 될 것이다.
뭐가 되었건, 징계만 먹일 수 있다면 다른 부서에서 인원을 빼 올 수도 있었다.
이렇게 빨리 기회가 찾아오다니···.
사무실 정리를 마무리하는 직원들을 보며, 둘은 몰래 주먹을 맞부딪쳤다.
“아! 사장님 이쪽으로···.”
박찬영 상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곧, 이상인 사장을 필두로, 이사진과 전무 그리고 부사장이 뒤를 따랐다.
그 소리에 깜짝 놀란 직원들이 각자의 복장을 점검하다가 황급히 누군가를 바라봤다.
“응? 왜?”
모두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혁명의 선구자가 해맑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아차···.’
상황을 파악한 민석이 황급히 부서 최고 책임자들을 노려봤지만,
이미 사장을 위시한 임원진은 기획 영업팀에 들어선 후였다.
민석이 망연자실한 얼굴로 진혁의 풀어헤쳐진 와이셔츠를 바라봤다.
고개를 들던 새싹이 움찔거렸다.
혁명의 따스함은,
봄의 꽃을 피우기엔 너무나도 짧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