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121
121화 한계점
칼리는 무대 아래를 찬찬히 돌아봤다.
선글라스 속 오른쪽 눈이 욱신거렸고, 터진 아랫입술은 아직도 따끔거렸지만…….
‘제니스 개자식!’
기분은 최고였다.
세상의 주인공이 된 이 느낌은 절대로 끊을 수 없는 마약과도 같았다.
무대에 오르고.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을 불러 대고.
까딱이는 손짓 하나에 열광한다.
눈앞의 모든 것들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
“어이. 머저리들.”
오직 나만이 주인인 왕국.
“내 세상에 잘 왔어.”
칼리가 턱을 치켜들자.
거대한 무대가 들썩일 정도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양손을 까딱이며 그들의 흥분을 더욱 부추겼다.
칙. 칙. 칙. 칙.
드럼의 하이햇 소리가 울렸고.
챙!
크래쉬가 터지자.
까딱이던 손으로 베이스를 움켜쥐었다.
두둥.
세상에 더는 없을 황홀한 순간.
칼리가 마이크에 입을 가져갔다.
세계적 밴드 Red lizard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 * *
[와! 칼리 미쳤다!]└첫 곡부터 핏대 세웠는데?
└Red lizard 몇 곡이지?
└여덟 곡!
└처음부터 저러면 목이 버텨 내나?
└근데, 선글라스는 왜 쓴 거임? 공연 때 선글라스는 처음인 거 같은데?
└스크린 화면 잘 보면 아랫입술 근처가 빨개. 꼭 누구한테 맞은 거처럼 부은 거 같지 않아?
└에이, 천하에 누가 공연 앞둔 슈퍼스타 얼굴을 때렸겠어.
└하긴. 아무튼 공연은 진짜 멋지다.
└와, 베이스 솔로 들어간다!
└진짜 미쳤다. 항상 제니스 아래라고 생각했는데, 칼리도 어마어마하네.
└괜히 슈퍼스타겠어? 우리나라에 왔을 때 쩌리 취급당해서 그렇지, 쟤도 월드 스타임.
└난 원래 Red lizard 팬이라서 예전 공연도 다 챙겨 봤는데, 오늘은 더 굉장한데?
└맞아. 오늘만 살 거같이 노래하네.
└첫 곡부터 사람들 다 자지러졌어.
└새삼 갓끼 님의 위용을 다시 느낀다. 저런 인간을 고작 세션으로 부려 먹었었다니.
└어제 버스킹에서도 백 보컬이었음.
└막판에 사고도 쳤고.
└그건 이제 묻어 두자.
└아무튼 칼리 진짜 지린다.
└월클은 월클이구나.
한국.
금요일 새벽 4시.
잠을 포기한 이들이 칼리의 음악에 흥분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커피는 필요 없었다.
모두가 잠든 시간.
이어폰을 귀에 꽂은 이들이 조용히 열광하며 머리를 흔들었다.
* * *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자신만의 한계점을 설정해 둔다.
계속되는 경험을 거쳐 가장 안전하고, 성공 확률이 높은 지점을 선택하게 된다.
그렇게 ‘모험’과는 멀어지게 되곤 했다.
간혹, 어떠한 계기로 한계점을 넘어서기도 하는데.
그 위로 고개를 내밀어 본 이들은, 또 다른 세상을 마주하게 된다.
더 높은 곳을 알게 된 자신감과 함께하는 다이내믹한 삶의 시작이었다.
지금의 나보다 더 대단한 내가 있다는 사실을 직접 경험하게 되면.
잊고 지냈던 ‘모험’이 꿈틀대며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더 이상 ‘실패’라는 단어가 두렵지 않은 상태가 된 것이다.
Red lizard의 멤버들은 칼리의 갑작스러운 리드에 넋이 나간 상태였다.
그 한계점 근처.
거기까지만 해도 세계에서 먹어 주는 팀이었다.
그렇기에 원곡을 넘어서지는 않았던 리더였다.
간혹 분위기에 휩쓸려 연습 때 이상의 무대가 만들어지곤 했지만.
휩쓸릴 분위기조차 만들어지지 않은 첫 곡 첫 소절부터 저렇게 막무가내로 질러 대다니.
굉장히 당황스러웠고, 그 미친 리드에 따라가기 급급했지만.
멤버들 모두의 입꼬리는 올라갔다.
이렇게 두근거리는 게 얼마 만이지?
이렇게 조마조마하며 공연한 적이 있었던가?
살얼음판을 걷는 듯 한계점 너머를 넘나드는 리더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됐다.
어쩌면, 오늘 이 공연이 지금까지 중 최고의 공연이 될 수도 있었다.
제니스의 뛰어난 외모와 엄청난 천재성에 가려져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는 못했지만.
자신들의 우락부락한 리더도 엄연히 천재의 반열에 들어가는 인간이었다.
Red lizard의 음악은 한층 더 정교해졌고.
칼리의 뒤를 받치는 멤버들도 모두가 볼 수 있었다.
자신들 앞에 펼쳐진 ‘모험’의 세계를.
* * *
공연을 앞둔 시점.
칼리는 생각했다.
처음, 한국에서 그를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를 천천히 되뇌었다.
그 산속의 축제에선 준비도 되지 않은 채 어설프게 끼어들었었고, 그 해변 공연에는 세션으로 참여했었다.
3월 1일의 그 굉장한 축제에서도 자신을 드러낼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불만은 없었다.
모두, 그 나라 사람들의 축제였으니까.
하지만 이곳에서까지 들러리가 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자신의 애마까지 동원했던 거였는데.
망할 진행요원들에게 제지당했다.
생각해 보니.
그에게 단 한 번도 자신이 주인공인 무대를 보여 준 적이 없었다.
애초에 그를 이 무대로 불러올린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수많은 관객 사이를 헤치고 이 무대까지?
아니, 애초에 저 많은 사람 틈에서 그를 찾아낼 수나 있을까?
그 산속에서 열렸던 축제와 전혀 다른 조건이라는 것은 이미 인정했었다.
그렇다고 미리 그와 계획을 세울 수도 없었다.
그날 그 장면은 미리 맞춰 둔 무대 연출 따위로는 절대로 만들 수 있는 장면이 아니었으니까.
이도 저도 되지 않는다면.
오늘.
자신이 주인공인 무대를 제대로 보여 줄 생각이었다.
앞으론, 세션 따위로, 백 보컬 따위로, 자신을 뒷전에 두지 못할 것이다.
내가 만든 최고의 세상을 선사해야지.
그 세상을 만나서 방긋 웃어 줄 그를 떠올리자.
무대에 오르기 전부터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아드레날린이 솟구쳤고.
당장이라도 폭발할 듯 온몸이 달아올랐다.
그 상태로 무대에 올랐기 때문에.
첫 곡부터 터져 버렸다.
제니스에게 맞은 눈두덩이는 욱신댔고, 터진 입술은 아직도 따가웠지만.
오늘, 처음 바라본 한계점 너머의 세상은 정말로 환상적이었다.
그에게 인정받기 위한 발버둥이 만들어 낸 기적이었다.
이대로 질러 대다가 쓰러져도 좋았다.
멘트도 하지 않았다.
이 느낌을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쉬는 타임도 없이, 칼리의 두 번째 세상이 이어졌다.
‘보고 있지?’
수많은 관객, 그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 그를 향해 포효했다.
‘어때! 나의 세상이?’
결성된 지 8년.
그동안 Red lizard가 해 왔던 공연 중.
최고의 공연이 펼쳐지는 중이었다.
* * *
“어… 조금 늦었나?”
상정이 저 멀리 다이아몬드 스테이지를 바라봤다.
“동선도 파악 안 됐는데 괜히 서드 스테이지까지 가서…….”
“북유럽 감성 어쩌고 끌고 간 게 누군데!”
“아무튼…….”
무대 위.
칼리의 목소리는 이미 맛이 가 있었다.
“쟤 많이 힘들어 보이는데?”
“지금이 몇 곡째지? 마지막은 아닐 텐데?”
“설마… 오버 페이스?”
핸드폰을 보던 상정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다섯 곡?”
“뭐야. 다섯 곡 만에 퍼진 거…….”
“쉿.”
진혁이 친구들의 대화를 중지시켰다.
“주변을 봐 봐.”
“응?”
목이 터져라 ‘칼리’를 연호하며 마구 울부짖는 사람들이 보였고, 이는 직접 보지 못한 공연 초반부가 얼마나 굉장했었는지를 잘 알려 주는 광경이었다.
무대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도 이럴 진데.
무대 바로 앞의 분위기는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스피커를 타고 나오는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갈라질 듯 위태위태했고, 스크린에 비친 칼리는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같이 불안하게 휘청였다.
저 처참한 무대는 공연 자체만으로 봤을 때.
완벽한 실패작이었다.
아직 세 곡 이상이나 더 남은 시점에 리타이어 위기라니.
하지만.
스탠드 마이크에 의지해 가쁜 숨을 쉬는 그의 얼굴은.
세상 누구보다 빛나는 미소를 띠고 있었다.
“와, 분위기 보니까 초반에 부른 곡들이 장난 아니었나 본데?”
“아… 아쉽네.”
충기와 장하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고.
“아니.”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최고의 곡은 지금부터야.”
방긋 웃으며 무대를 바라보는 리더의 모습에 나머지 멤버들이 침을 꼴깍 삼켰다.
저렇게 지쳤는데, 더 대단한 뭔가가 있다고?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음악에 대한 한 진혁의 말은 허투루 들을 수 없었다.
모두의 시선이 무대를 향했다.
“잘 봐 둬. 지금 흐르는 이 곡이 오늘 공연의 하이라이트야.”
진혁이 해맑게 웃으며 양팔을 높이 들어 흔들었다.
저 먼 무대에서 보일 리 없었지만.
단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길에 이 악물고 도전하는 용감한 이를 향한.
진심 어린 응원의 몸짓이었다.
* * *
제니스에게 맞은 입술이 다시 갈라진 것인가.
아니면 목구멍을 타고 넘어온 것인가.
입안에 찝찌름한 향이 가득했다.
‘미친 거지.’
세계 톱 밴드의 보컬이 이런 큰 무대에서 오버 페이스라니…….
여기서 끊고, 멘트를 하며 페이스를 늦춘다면 마지막 곡까지는 적당히 얼버무릴 수도 있었다.
아니,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이 미친 질주에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는 것만이 정답이었다.
선글라스 속 시야가 마구 흔들렸다.
문득, 자신과 함께 8년을 지내 온 멤버들의 표정이 궁금해졌다.
힘겹게 고개를 돌려 흐릿한 시야의 초점을 바로 잡았다.
혼자서 미친 듯이 달렸으니, 화가 잔뜩 났을까?
선글라스 너머, 오랜 친구들의 얼굴이 보였다.
‘아… 이놈들도 미친놈들이었지.’
8년간의 수많은 공연 중.
가장 빛나는 얼굴들이 칼리를 맞이했다.
드럼을 치던 로빈이 재촉하듯 턱을 치켜들어 보였다.
그제야, 알 수 있었다.
당장이라도 멎을 것 같은 목소리와 약간만 정신을 놓아도 쓰러질 듯 만신창이인 몸이었지만.
본인의 얼굴도 저들과 똑같이 빛나고 있다는 것을.
‘해도 돼?’
언제는 허락받고 저질렀던가?
멤버들이 피식하고 웃었다.
칼리가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스탠드 마이크를 꽉 잡고, 풀려 버린 다리를 곧게 폈다.
눈에 힘을 주니.
울부짖는 사람들이 보였다.
칼리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입술이 마이크에 닿았고.
마지막 남은 기력을 끌어모았다.
있는 힘껏, 목을 긁었다.
거친 짐승의 포효가 세상을 뒤덮었다.
세상에서 가장 처절했고, 그래서 더욱 아름다운 소리가 그만의 세상에 퍼져 나갔다.
한계를 넘어 만난 세상은, 예상보다 훨씬 더 굉장했다.
자지러지는 관객들을 바라보던 칼리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 * *
칼리가 쓰러지며 공연은 중단됐지만, 사람들의 함성은 더욱 커졌다.
스태프들이 무대 위로 올라가 상황을 수습하는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도, 칼리를 연호하는 관중들의 목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사실 이런 큰 축제, 그것도 메인 스테이지에서 벌어진 공연 중단이라는 사태는 정말로 엄청난 사건이었다.
하지만 오늘 있었던 모든 공연을 통틀어 가장 크고, 가장 길게 이어진 함성은 이 공연이 결코 실패작이 아니란 것을 확연히 말해 줬다.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부수고, 그 너머 또 다른 빛을 만나는 그 순간을 수십만 명이 함께 목격한 것이다.
세 곡째부터 목소리가 갈라지며 불안정해졌지만, 사람들의 심장은 더욱 조여졌었다.
이미 세계 상위권에 자리한 밴드가.
결국엔 무너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멈추지 않고 걸으려 했던 그 길.
처절한 발버둥이 만들어 낸 마지막 소절의 의미는 엄청났다.
그 한 걸음 한 걸음의 무게는 칼리의 목소리를 통해 사람들에게 전해졌고.
이 미완성의 공연은 세상에서 다시는 만나기 힘든 전설이 될 수 있었다.
* * *
VIP룸에서 메인 스테이지를 지켜보던 제니스가 고개를 저었다.
비록 마지막까지 가지 못하고 리타이어 되기는 했지만, 한계점 너머 새로운 세상을 만난 칼리에게 박수를 보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고 쓰러졌으니, 얼마나 후련할까.
무대 아래에서 활짝 웃고 있을 그가 떠오르자, 제니스의 심장도 두근댔다.
‘내일은 내 차례군.’
그가 온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날부터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
그래 본 경험은 없었지만.
가장 존경하는 스승에게 과제를 검사받는 학생의 심정이 이럴까?
지금까지는 그의 세계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자신만의 세상을 그에게 보여 줄 수 있는 날이 온 것이다.
칼리도 그랬겠지만, 제니스 역시 온전한 자신의 무대를 보여 준 적이 없었다.
몸이 달아올랐고, 심장은 더욱 두근댔다.
‘아… 너도 이랬겠구나.’
그러니까 그렇게 첫 곡부터 폭발할 수 있었던 거였다.
제니스가 벌떡 일어났다.
지금 자신과 같은 심정일 금발 소녀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크리스탈 스테이지였던가?’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