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125
125화 영감의 요정
-너 이 자식! 왜 보고를 안 한 거야?
이안이 황당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바라봤다.
‘하… 꿈 참 실감 나네.’
-유레이시한테 기타를 줬으면! 바로 얘기했어야지! 그러면 우리가 대대적으로…….
“대대적? 뭘요?”
-아니… 지원이든 뭐든…….
“지원은 개뿔…….”
-이봐! 전 세계 신문 1면에 우리 기타가 찍혀 있어! 모든 인터넷 포털에 유레이시의 공연 사진이 걸려 있다고. 이 기세로…….
“더 놀랄 일 말해 줘요?”
-뭐?
이안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오늘, 제니스도 하얀 기타를 메고 무대를 오를 겁니다.”
-어… 어? 뭐라고?
“이보세요, 보스. 아니지, 크로이드!”
-뭐… 뭐야?
“한국의 그 ‘래빗’도 내 기타 소리에 감탄했어.”
그 무섭던 사장에게 호통이라니.
이안이 히죽 웃었다.
-깁슨도 접촉하지 못한 그를? 뭔 꿈 같은 얘기를…….
“이거 꿈이야, 병신아.”
통화 종료를 눌렀고, 참을 수 없는 통쾌함에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월드 뮤직 페스티벌.
아침부터 상쾌한 통화로 축제 2일 차 꿈이 시작되었다.
이대로.
영영 깨고 싶지 않은 꿈이 계속되었다.
* * *
“야, 진혁이 아직도 그러고 있냐?”
충기가 묻자 상정이 고개를 저었다.
“밤새운 거 같던데…….”
“갑자기 무슨 일이지?”
“그 곡들 다듬고 있어.”
충기의 미간이 좁아졌다.
“공연이 내일인데?”
“뭔가 꽂힌 거 같더라.”
“아…….”
충기가 트레일러 출입문을 바라봤다. 아마도 말이 통할 상태는 아닌 듯했다.
“근데…….”
“왜?”
“아니다.”
상정이 고개를 젓자 충기가 고개를 갸웃했다.
“왜? 뭔데 그래?”
“그게…….”
상정은 조금 전 진혁과의 만남을 떠올렸다.
분명, 얼굴은 그대로인데 뭔가 모르게 분위기가 달랐다.
“뭔가…. 옛날 어릴 때 진혁이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 왜 똘끼 있는…….”
충기가 피식하고 웃었다.
“걔 뭔가 꽂혀서 그런 거 아냐? 원래 하나 꽂히면 정신 못 차리잖아.”
“그거랑 조금 다른데…….”
상정이 미간을 좁혔다.
‘너무 온화해.’
뭘 그렇게 만지냐는 상정의 물음에 대한 답이었다.
장난기 가득한 얼굴, 한쪽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그 순간 보였던 진혁의 표정은 얼마 전까지의 진혁과는 확실히 달랐다.
마치 열아홉 살 때 뭔가 큰 사고를 치기 직전의 표정 같은…….
처음 기억이 돌아오고 치킨집으로 찾아왔던 그때 이후,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표정이었다.
철부지 어렸을 때는 간혹 봤었지만 말이다.
도저히 중년의 주름진 얼굴에는 어울리지 않는 표정이었다.
“야! 일단 우리끼리 놀자. 제니스 공연할 때쯤엔 나오겠지.”
충기가 어깨를 툭 쳤고.
마지못해 따라 걷던 상정은 잠시 멈춰 굳게 닫힌 트레일러 문을 가만히 바라봤다.
갑자기 달라진 진혁의 분위기는, 쉽게 떨쳐지지가 않았다.
* * *
월드 뮤직 페스티벌 2일 차.
메인 스테이지의 라인업들은 정말로 ‘역대급’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만한 밴드들이 포진해 있었다.
관객들을 갈팡질팡하도록 만들 정도의 월드 스타들이 세 개의 메인 스테이지를 장악한 것이다.
각각 단독으로도 몇만 관객을 동원할 수준의 공연을 해 온 팀들이었고, 그만큼 2일 차의 입장객 수도 가장 많았다.
그랬기에, 관객들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그 중심으로 모일 수밖에 없었다.
모든 편의시설이 집중되어 있었고, 동선 역시 메인 스테이지들을 오가기에 최적화되어 있었다.
그 세 개의 무대만 왔다 갔다 즐기는 것만 해도 벅찬 축제가 되어 버린 것이다.
철저하게 메이저 아티스트들을 대거 포진한 이상.
인디 아티스트들을 중심으로 놓으며 다양한 음악을 선보이는 보통의 록 페스티벌들과는 전혀 다른 성격이었고.
이는 거대 자본주의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 주고 있었다.
돈이 되는 무대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
세계 최대의 음반 회사 카폰 레코드사의 회장인 스테빈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긴 축제였다.
그렇다 보니, 그 많은 관객은 모두 메인에 묶여 있을 수밖에 없었고.
첫날 그 많은 관객 중 세컨드 스테이지 이하 다른 무대들을 찾은 사람들은 고작 10%밖에 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어제 공연에서 두 번이나 큰 이슈가 터져 버렸다.
축제를 찾은 사람들은 당연하다는 듯 거대한 무대만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그 메인에선 오늘도 뭔가가 터져 줄 테니까.
결국, 이 축제는 그 세 개의 메인 스테이지를 위한 축제나 다름없었다.
* * *
“와우. 오늘은 더 많네?”
“어제 그런 일들이 있었으니까.”
“하긴, 어제 칼리는 진짜로 굉장했지.”
‘The who are’의 보컬 로니아 벤 젝클린이 무대를 향해 다가오는 인파를 바라봤다.
‘The who are’는 오랜 기간 정상에 군림하던 ‘Box-43’이 앨범 활동을 멈추며 주춤하자 그 자리를 치고 올라간 밴드였다.
스테빈의 집중적인 지원에 힘입어 현재 빌보드 핫 100에 세 곡이나 올려놓은 팀이었다.
로니아가 고개를 들어 저 멀리 있는 세컨드 스테이지를 바라봤다.
“한순간이네.”
“맞아.”
매니저의 대답에 로니아가 피식하고 웃었다.
그 잘나가던 제니스가 저런 초라한 무대에 서다니.
그렇게 잘났다는 듯 스테빈에게 대항하더니, 자존심 따위 모두 버리고 투항했다는 사실은 조금 실망스러웠다.
“들리는 말로는 게런티도 평소의 절반에 가까운 금액이라더라.”
로니아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리버풀의 기적을 일으킨 지 채 일 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저렇게 꼴사나운 꼴이라니…….”
사실 ‘Box-43’의 명성만큼은 최고점을 찍은 상태였다.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사건을 일으켰었으니까.
그런 제니스를 단번에 뒷방으로 밀어내다니.
모든 프로모션에서 배제된 ‘Box-43’의 새 싱글 앨범은, 자신의 곡들이 세 곡이나 들어간 빌보드 Hot 100의 말석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스테빈의 카폰 레코드가 가진 엄청난 힘에 새삼 소름이 돋았다.
“잔인하군.”
“뭐, 그 녀석이 자초한 일이지.”
“흠…….”
“이 바닥에서 스테빈은 신이야.”
“신이라…….”
“거슬러서는 살아남을 수 없어. 그게 제아무리 제니스라도…….”
“협박이네?”
“그렇게 들렸나?”
“뭐, 아니면 말고.”
로니아가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자신도 스테빈이 없이는 이렇게 높은 자리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었다.
반대로 스테빈이 손을 놓는다면 언제라도 한순간에 추락한다는 말이기도 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구경 다 했으면 대기실로 가자.”
“네에, 네. 가시지요.”
저 멀리 세컨드 스테이지에서 시선을 거둔 로니아가 쓰게 웃었다.
회사가 정한 방향은 절대적으로 따라야만 했다.
그게 이 바닥의 진리였다.
‘덤볐으면 이겨야지. 꼴사납게…….’
당연한 일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튀어나오는 원망은 어쩔 수 없었다.
* * *
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에 제니스가 고개를 들어 조얀을 바라봤다.
“제니스, 이제 세 시간 남았…….”
퀭한 눈, 붉은 흰자위, 말라 버린 입술, 푸석한 머리.
형편없는 몰골의 제니스를 안쓰럽게 바라보던 조얀이 그의 앞에 흩어진 악보들로 시선을 옮겼다.
“어… 설마…….”
“세트 리스트 새로 짜자.”
“완성한 거야?”
마른 입술에 침을 묻힌 제니스가 활짝 웃었다.
“애들 불러올게.”
조얀이 서둘러 뛰쳐나갔고, 제니스는 흩어진 종이들을 바라봤다.
‘내가 성급했어.’
옥상의 공연에서 그와 만난 후, 새롭게 변한 자신의 우주를 서둘러 선보여야만 했다.
그렇게 완성된 음악으로 그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그런 마음으로 ‘희망’을 담았었다.
하지만.
대중들은 제니스의 희망을 외면했다.
아무리 회사의 지원이 없었다지만, 이번 앨범은 제니스의 이름값에 비하면 너무나도 초라한 성적이었다.
하늘 아래 음악 축제에서 처음 선보였던 그 곡은, 결국 빌보드의 어떤 차트에도 오르지 못했다.
‘어째서…….’
처음으로 온전한 자기 자신을 알게 된 곡이었는데, 사람들에겐 그 감정이 전달되지 않은 것이었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해도 찾을 수 없었던 그 답을.
껍질을 부수고 날개를 활짝 펼친 유레이시에게서 볼 수 있었다.
그 길로 숙소에 틀어박혔고.
공연 세 시간 전.
뒤늦게 찾은 답을 겨우 정리할 수 있었다.
제니스가 피식하고 웃었다.
그의 눈앞.
열일곱의 제니스가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젓고 있었다.
* * *
“어… 저쪽이지?”
“조금 먼데?”
“이제 곧 다이아몬드 스테이지에 ‘The who are’ 오를 차례 아니야? 저기 갔다가 다시 오기엔…….”
“그래도 ‘시계태엽’은 듣고 싶었는데…….”
“아이 씨. 동선을 왜 이렇게 만들어서…….”
아무 고민 없이 메인 스테이지만을 돌면 되었던 사람들이 잠시 고민해야 할 시간이 찾아왔다.
원래라면 당연하게 메인 스테이지에 올랐어야 했을 ‘Box-43’이 세컨드 스테이지로 밀려났기 때문이었다.
“근데, 이번 앨범은 뭔가…….”
“맞아. 좀 뜬금없었지?”
“한국 왔다 갔다 하더니 갑자기 바뀌었어.”
세상을 향한 분노로 만들어진 절규가 담긴 강렬한 메시지는 제니스만의 전유물이었다.
세상이 돌아가는 꼴에 지친 젊은이들은 그 엄청난 샤우팅이 만들어 내는 통쾌한 일침에 빠져들었었다.
그렇기에 제니스의 목소리는.
더 분노해야 했고.
더 절규해야 했다.
예고되었던.
세상 모든 종교를 조롱하겠다던 앨범은 갑자기 발표가 중단되었고.
그 이후 나온 싱글은.
전혀 ‘제니스’답지 않았다.
너무 따뜻했고, 너무 행복했으며, 세상 모든 것을 품에 안으려 했다.
다른 누군가의 곡이었다면 아름다웠을지 몰라도.
제니스가 그래서는 안 됐다.
실컷 세상을 조롱하더니, 갑자기 자기 멋대로 화해를 해?
팬들에게 있어서 이것은 배신이었고, 기만이었다.
그렇게.
제니스가 만난 새로운 세상은 외면당했었다.
“야. 그냥 메인에 있자. 자리도 힘들게 잡았는데.”
“그게 낫겠지?”
“맞아. 로니아 이번 노래 굉장하더라.”
“그래, 여기서 뭉개자!”
망설이던 사람들은 결국 대부분 메인 스테이지를 선택했다.
첫째 날과 마찬가지로.
아니, 첫째 날보다 더.
메인 스테이지를 제외한 다른 곳으로 가는 길들은 한산했다.
* * *
[데크레이터 공연 작살이다!]└뭐야! 뭐 터짐?
└아! 나 크리스탈 스테이지 보고 있었는데.
└조금 있으면 더후아 시작한다. 대기 타!
└와, 이거 뭐 채널 돌리기도 바쁘네.
└진짜 역대급 라인업이다.
└야, 잠깐만, 지금 제니스 시간 아니냐?
└그렇네?
└일단 창 하나 더 띄워야겠다.
└제니스는 응원해 줘야지.
└이번 축제에서 세컨드 무대에 서는 건 좀 충격이었다.
└그러게… 그래도 그동안 해 온 짬밥이 있는데.
└근데, 이번 축제 메인이랑 세컨드랑 급 차이가 너무 나네.
└무대부터 거의 두 배 차이 남.
└뭐 원래 예전부터 월뮤페는 메인 스테이지만 볼만했었음. 다른 록 페스티벌이랑은 태생 자체가 다름.
└하긴, 쟁쟁한 메이저들만 모아 놨으니…….
└아무튼 난 제니스 보러 간다.
└나도 창 하나 더 띄워야겠다.
└아… 제니스 이대로 밀려나면 안 되는데.
└그러게.
네트워크상에서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세컨드 스테이지를 응원했지만.
클릭 한 번과 100미터가 넘는 거리를 이동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말이었다.
공연이 임박했지만.
제니스가 오를 무대 앞은 천 명이 조금 넘는 관객만이 보일 뿐이었다.
* * *
“와…….”
조얀이 탄성을 질렀다. 그리곤 피식하고 웃어 버렸다.
“우리 데뷔하고 이렇게 아담한 공연은 처음이네.”
2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넓은 초원에 듬성듬성 서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예상보다 더 적은데?”
무대 뒤에서 현장을 살피던 조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렇게 조촐한 공연을 하게 될 줄이야.
세계 최고의 드러머라는 칭호를 가진 그에게 있어서는 정말로 색다른 경험이었다.
“이거, 우리 꼴이 말이 아니다.”
허탈하게 뱉은 말과는 달리.
그의 눈은 빛나고 있었다.
고개를 돌리자.
하얀 기타를 안고 땅에 주저앉아 있는 리더가 보였다.
완성된 그 곡이 떠올랐다.
멤버들 앞에서 속삭이던 그 덤덤한 목소리.
조용히 뒤에 깔린 어쿠스틱 기타 소리.
조얀은 저도 모르게 탁자에 손가락을 올렸고, 그 멜로디에 리듬을 더했었다.
나머지 멤버들도 저마다 자신의 파트를 생각하며.
그가 마지막에 찾아낸 조각과 함께할 악보를 떠올렸다.
애초에 세계 최고의 세션들이 모인 팀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리더가 찾아낸 조각의 최종 모양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가능했던 즉흥적인 작곡이었다.
제니스가 찾아낸 앙상한 조각에 살이 붙기 시작했었고.
그렇게 공연 한 시간을 앞두고 완성된 곡은 정말로 굉장했다.
때론 일 년을 고민하며 다듬고 다듬은 앨범보다,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곡 하나가 더욱 큰 울림을 주곤 했다.
예술을 하는 이들에게 간혹 찾아온다는 ‘영감’을 주는 요정.
그들은 그 요정을 만난 것이었다.
조얀의 심장이 두근댔다.
저 멀리 메인 스테이지 방향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 커다란 함성에 조금 동요한 듯 두리번거리는, 세컨드 스테이지 앞의 사람들이 보였다.
조얀이 제니스에게 다가갔다.
메인 스테이지의 함성은 더욱 거세졌고.
“오늘 후회할 사람 많겠는데?”
세컨드 스테이지 앞의 사람들이 저마다 핸드폰을 꺼내 들여다보며.
그 함성과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기 시작했다.
“너희는 선택받은 거고.”
제니스의 앞에 멈춰 선 조얀이 하얀 이를 드러냈다.
“가자.”
제니스가 고개를 들었다.
초췌한 그의 얼굴이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