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127
127화 싫은데?
지금까지 열렸던 월드 뮤직 페스티벌 중, 세컨드 스테이지의 관객석이 가득 찼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만큼 이 축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메인 스테이지에 모든 것이 집중되어 있었다.
그런데.
관객석이 가득 차는 것도 모자라 주변까지 사람들로 가득했다.
작년까지의 월드 뮤직 페스티벌이었다면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었지만.
이번 축제는 실시간으로 생중계되었다.
그렇기에.
메인 스테이지 앞에 있던 사람들이 세컨드 스테이지에 울려 퍼진 제니스의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그 절망에 술렁였고.
그 분노에 발걸음을 옮길까 고민했으며.
머릿속 톱니바퀴가 빠져 버리자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뛰어가서 만난 그의 새로운 세상은 정말로 굉장했다.
너무 멀어서 무대가 보이진 않았지만, 그 처절한 삶 끝에 만난 그의 세상을 응원하려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모여들었다.
축제 2일 차.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무대는 제니스의 세컨드 스테이지였다.
엄청난 환호도.
파격적인 퍼포먼스도.
충격적인 고백도 없었지만.
관객들은 제니스의 담담한 목소리에 빠져들었다.
세상에 분노해 반항하는 젊음의 아이콘이었기에 제니스는 항상 강해야 했고, 거칠어야만 했었다.
하지만 오늘 그는 처절하게 몸부림치는 나약한 인간이었고, 두려움에 으르렁대는 헐벗은 짐승이었다.
그랬기에 ‘시계태엽’의 의미는 더욱 강렬했고.
결국 만나게 된 그의 세상은 너무나도 포근했다.
무대 위.
모든 조명이 꺼지고, 제니스만을 위한 한 줄기 빛이 내려왔다.
-그가 알게 해 준 세상이야.
두 손을 모으고 관객석 어딘가를 바라봤다.
-Pray to my god.
제니스가 눈을 감자 한 줄기 빛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숨죽였던 관객석이 기다렸다는 듯 폭발했다.
* * *
“허어…….”
스테빈이 참았던 숨을 내뱉었다.
베네딕토 신부님이 데려왔던 반항기 넘치던 그 꼬맹이를 떠올렸다.
허름한 기타 하나로 스튜디오 전체를 흥분하게 만들었던 그 천재.
비록 지금은 틀어졌지만, 당시 만났던 소년의 음악은 정말로 엄청났었다.
사업을 떠나.
순수한 음악만으로 감정이 흔들렸던 그때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세월이 지나며 희석되었던 그 설렘이 다시 한번 심장을 두드려 댔다.
그 천재에게 메인 스테이지와 세컨드 스테이지라는 갭의 차이는 어차피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것이었다.
“와우. 한 방 먹은 얼굴이네?”
“바비…….”
“정말 굉장하군.”
스테빈의 옆에 서서 창밖을 바라보던 바비가 하얀 이를 드러냈다.
“라이브라는 게 그래. 간혹,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장면을 만들어 내지.”
“…….”
“저 표독스러운 녀석을 저렇게 따뜻하게 만들다니…….”
바비가 오랜 친구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나도 만나 보고 싶군.”
스테빈이 체념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칼리를 보며 갸우뚱했고, 유레이시의 무대에 깜짝 놀랐어. 그리고 오늘…….”
바비가 수많은 사람으로 둘러싸인 무대를 가리켰다.
“제니스를 보며 확신했지.”
바비의 말에 스테빈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는 확실히 뭔가가 있어.”
“그래…….”
“건너 들었을 때는 인정할 수 없었지만, 직접 보고 나니 어쩔 수가 없군.”
스테빈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한 번은 우연일 수 있고, 두 번째는 운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세 번째까지 가게 되면 그것은 거스를 수 없는 진리가 되기 마련이었다.
“자리를 만들지…….”
바비가 스테빈의 어깨를 작게 두드렸다.
스테빈이 월드 뮤직 페스티벌 역사상 가장 초라하게 변해 버린 메인 스테이지 쪽을 바라봤다.
사람들이 빠져나가며 식어 버릴 줄 알았는데.
그들의 무대들은 더욱 불타올랐었다.
‘The who are’의 무대는 역대급이라 불릴 정도로 열정적이었고, ‘킨트 웨이스트’도 자신에게 남은 모든 역량을 쏟아부었다.
절대, 그들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다만 제니스가 보여 준 세상이 더욱 강렬했기에 어쩔 수 없는 결과였다.
그리고 제니스를 그 세상으로 이끈 것이 ‘그’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인터폰을 눌렀다.
-네. 회장님.
“한국의 SJ 엔터테인먼트 대표에게 연락을… 아니지. 연락처를 알아봐 줘. 내가 직접 전화하지.”
-네. 알겠습니다.
바비가 고개를 삐딱하게 세우며 스테빈을 바라봤다.
“지금 여기 축제에 와 있지 않은가?”
스테빈이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비즈니스에는 절차라는 게 있는 거니까.”
바비가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 * *
손을 들어 힘차게 흔들던 진혁이 활짝 웃었다.
“저… 저거 선생님 얘긴가요?”
핸드폰을 바라보던 희철의 눈이 동그래졌다.
제니스가 펼쳐 낸 세상에서 언어는 그다지 큰 장벽이 되지 않았다.
그 따스한 감정은 음악 그 자체로 다가왔으니까.
다만, 중간중간 영어로 말했던 멘트들은 핸드폰 속 채팅창을 통해 그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있었고.
뒤늦게 상황을 파악했던 것이었다.
희철이 멍한 얼굴로 진혁을 바라봤다.
“어때?”
“네? 뭐 가요? 선생님이 엄청나게 대단하다는 거요?”
“아니. 그거 말고.”
진혁이 피식 웃으며 희철의 어깨를 잡았다.
그리고 무대 쪽으로 고정한 뒤.
“내일은 우리 차례야.”
“아…….”
“할 수 있겠어?”
‘아뇨!’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말하지는 못했다.
내내 신경도 안 쓰다가 대뜸 공연 보러 가자고 데려오더니, 이런 엄청난 부담을…….
“사람들의 상상력은 굉장해.”
“네?”
“겪어 보지 않은 것들은, 때론 더 큼지막하게 머릿속에 자리 잡곤 하지.”
“어… 방금처럼요?”
“맞아. 제니스는 담담하게 연주했지만, 사람들의 눈앞에 나타난 그 부랑자 아이는 더욱 처절했을 거야.”
“아…….”
“그 아이를 이해해 보려 하는 마음이 생긴 순간, 더욱 몰입할 수밖에 없어.”
희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자신이 겪었던 일이었으니까.
“내일 우리가 해야 할 일이야.”
“네… 네?”
화들짝 놀란 희철이 뒤로 돌아 진혁을 바라봤다.
언제나처럼 방긋 웃고는 있었지만, 뭔가 장난기 가득한 얼굴이었다.
“할 수 있어.”
“어… 제가요?”
“응!”
단호한 대답.
아까 자신도 저렇게 단호하게 ‘아뇨!’라고 말했어야 했다.
“가자. 제니스한테 인사하고, 우리도 준비해야지.”
희철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공연이 끝난 무대를 바라봤다.
다른 무대도 아니고.
이 엄청난 공연을 겪은 지 얼마나 됐다고, ‘내일은 우리 차례’라니.
그런데 저렇게 방긋 웃고 있는 얼굴을 향해 ‘못 해요.’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문득, 정신없이 휘둘렸던 요 몇 달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어마어마한 일들이 연속으로 터졌었고.
왠지 이번에도 엄청난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빨리 와.”
“네? 아! 네!”
멍하니 무대를 바라보던 희철이 서둘러 달리기 시작했다.
언제나처럼 거대한 등이 까까머리 청년을 기다리고 있었다.
* * *
“형님! 그냥 전화하자니까요?”
“야. 내일 공연으로 정신없을 텐데… 나중에 공연 다 끝나면 연락하자.”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즐겨, 새끼야!”
윤석준이 서동구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일 이딴 거, 다 잊고! 응? 그냥 철없이 즐기자고! 응?”
“아무리 철이 없다고 해도, 그 나이에 꽃무늬 셔츠는 좀…….”
“야! 이게 인마! 어? 마이애미… 어?”
“마이애미는 여기서 반대고요. 여긴 캘리포니아!”
“아무튼 인마!”
“거, 창피하니까 좀 멀리 걸읍시다.”
“새끼가 또… 어? 이거 뭐야.”
“뭐, 왜요?”
석준이 핸드폰 화면을 확인했다.
“누구야?”
알지 못하는 번호였다.
“받지 마요. 괜히 보이스… 허. 받지 말라니까.”
“쉿… 여보세요? 어… 헬로우… 아… 후 아 유?”
“뭐야. 영어예요?”
“와… 왔?”
윤석준이 화들짝 놀라며 벌떡 일어났다.
서동구는 갑자기 깜짝 놀라며 영어로 대화하는 석준을 가만히 바라봤다.
통화하는 내용으로 봐서는 누군가와 약속을 잡는 듯했다.
짧은 통화가 끝났고.
“왜요? 누군데요?”
“스… 스테빈 회장.”
“예? 뭐요?”
석준이 저 멀리 고고하게 서 있는 중앙 통제실을 가리켰다.
“만나잔다.”
“예? 언제요?”
“여기 와 있다고 하니까… 지금 당장 보재.”
동구가 서둘러 석준의 꽃무늬 셔츠를 잡아 뜯듯 벗겼다.
“이거 벗고! 재킷! 어… 안 챙겼지. 뭐 있지? 아! 웬 반바지! 아오! 진짜!”
넋이 빠진 윤석준을 앞에 두고 부산하게 허둥대는 멧돼지였다.
* * *
제니스의 공연이 끝났다.
세컨드 스테이지로 모여들었던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만, 모일 때는 서서히 모였지만, 한꺼번에 움직이려 하니 메인 스테이지로 향하는 길이 꽉 막혀 버렸다.
“어? 저쪽에도 길이 있는데?”
한산한 방향을 확인한 사람들이 행렬에서 이탈하기 시작했다.
“이쪽이 서드 스테이지 가는 길이네?”
“저쪽으로 가면 마이너 스테이지야.”
“아… 이쪽에도 길이 있었구나.”
“이왕 이렇게 된 거 그쪽이나 구경하고 갈까?”
그제야 다른 스테이지의 존재를 알게 된 사람들이 하나둘 방향을 틀었다.
“새로운 것도 좀 들어 보지 뭐.”
“그래. 생각해 보니까 메인 스테이지에서 나오는 노래들은 다 들어 본 것들이잖아.”
“와, 이쪽 길 꽤 이쁜데?”
“저기 저 밴드는 뭐지?”
“아일랜드 밴드래!”
“가 보자!”
축제의 기획까지는 메인 스테이지에 집중하겠다는 스테빈의 의도가 노골적으로 반영되었지만.
즐기는 문화는 결국 관객들이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메인 스테이지에 집중되었던 사람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 * *
중앙 통제실에서 나온 바비가 타박타박 걸었다.
머릿속에서는 칼리가 만들어 낸 무대와 유레이시의 찬란한 날갯짓 그리고 제니스가 펼쳐 낸 아름다운 세상이 어지러이 돌아다녔다.
사실 무시했던 것은 맞았다.
출신 국가, 나이, 경험, 이제 막 데뷔한 신인…….
이유는 차고도 넘쳤다.
그랬기에 반짝하는 이슈로 치부했었다.
하지만.
더 이상 오를 데가 없어 보이던 천재들을 한 단계 더 높이 올려놨다.
그 셋에게 보여 준 그의 음악은 과연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어떤 방식으로 그들을 각성시킨 거지?
바비는 순수한 궁금증이 생겼다.
스테빈이 진행할 ‘비즈니스’의 성과를 기다릴 인내심 따위는 없었다.
지금 당장 그를 만나야만 했다.
만일 자신이 ‘그’라면,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저 멀리 사람들이 걸어 나오는 곳이 보였다.
바비의 입꼬리가 올라가며 걸음걸이가 빨라졌다.
* * *
땀에 젖은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제니스가 고개를 들었다.
예상했던 표정 그대로 ‘그’가 서 있었다.
별다른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의 해맑은 미소만으로 충분했다.
‘어땠어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최고였어.’
제니스가 활짝 웃었다.
“내일 기대할게요.”
“얘한테 말해.”
“바… 반갑습니다!”
새까만 까까머리가 서둘러 고개를 숙였다.
“목소리 진짜 좋네.”
“가… 감사합니다!”
생각보다 더 순박해 보이는 모습에 제니스가 피식하고 웃었다.
안절부절 떨리는 눈동자에, 어디 둬야 할지 모르는 손은 갈팡질팡했다.
“이거, 저래서 무대에 서겠어요?”
“응. 잘할 거야. 그치?”
“네… 네?”
제니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기타 실력은 조금 나아졌을까?
그 불안하던 음정은?
아직도 뒤돌아서서 공연하나?
많은 의문이 떠올랐지만.
태연하게 웃고 있는 ‘그’의 얼굴을 보고는 모두 지워 버렸다.
“그럼, 내일…….”
갑자기 대기실의 문이 열렸고.
미소 띤 노인이 중절모를 벗으며 들어왔다.
* * *
“아… 그러니까 HB를 만나고 싶으시다는…….”
“뭐,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자면 그 보컬을 만나고 싶은 거죠.”
윤석준이 슬쩍 손목시계를 바라봤다.
이미 3분은 훌쩍 넘어간 상태였다.
미국 진출을 위해 그를 만났던 그때가 떠올랐다.
당시 자신에게 주어졌던 시간은 고작 3분이었다.
그렇게나 높았던 카폰 레코드의 벽은.
생각보다 많이 낮아져 있었다.
“흠… 이유는요?”
석준이 소파에 등을 붙이며 다리를 꼬았다.
“그의 공연을 기획해 보고 싶습니다.”
“아…….”
‘내일이면 당신이 기획한 무대에 오르는데?’
목구멍까지 튀어나오는 말을 겨우 참아 낸 석준은 서둘러 음료가 담긴 컵을 들었다.
한 모금 마시며 진정한 뒤.
“전달은 해 보겠습니다. 다만, 그가 선택할 문제라서…….”
“아, 그렇군요. 한국은 기획사의 입김이 상당히 강하다고 알고 있었는데요.”
“물론, 우리 회사 소속 가수니까 제가 한마디 하면 당연히 무대에 오르겠지요. 다만, 저희는 자유롭게 활동하는 것이 원칙이라서…….”
석준의 옆에 서 있던 동구가 쿡쿡대는 바람에 석준의 눈썹이 살짝 떨렸다.
“제가 알고 있던 한국 연예계와는 조금 다르군요.”
“어디까지나, 아티스트 본인의 의지로…….”
동구가 또다시 쿡 하는 소리를 흘렸고, 석준이 쓰읍 하며 옆을 노려봤다.
‘그냥 자기가 맘대로 못 하는 거면서.’
동구가 웃음을 참기 위해 허벅지를 꽉 붙들었다.
“그럼 전달이라도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그 전에, 한번 만나 보고 싶다고도…….”
“예. 그 말도 전달하죠.”
“그럼, 축제 즐겁게 즐기시죠.”
“네. 감사합니다.”
스테빈이 손을 내밀었고, 석준이 가볍게 맞잡았다.
허리를 숙이지도 않았고, 머리를 낮추지도 않았다.
세계 최고의 음반 제작 회사 카폰 레코드의 수장을 이렇게 내려다보게 될 줄이야.
꼿꼿하게 일어나 노인의 얼굴을 바라보며 방긋 미소 지었다.
“좋은 소식 기다리겠습니다.”
“네. 그럼.”
석준이 문을 향해 걸었다.
슬리퍼가 끌리지 않도록 사뿐사뿐.
동구가 빌려준 면바지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조심조심.
근엄한 표정을 유지하며.
‘근데 이 새끼는 왜 자꾸 키득거려?’
입을 막고 눈에 힘을 잔뜩 준 동구를 노려봤다.
* * *
“어… 그러니까 이쪽은…….”
“바비 댄.”
진혁이 제니스의 소개를 잘랐다.
흰색 꼬불거리는 턱수염을 만지작거리던 그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하하. 반갑네.”
손을 내밀었고, 진혁이 맞잡았다.
“반갑습니다.”
바비의 흰 눈썹이 살짝 꿈틀댔다.
인사 정도는 영어로 할 줄 알았더니…….
“얘기를 좀 나눌 수 있을까?”
제니스를 힐끗 바라봤다.
바비의 눈짓에 제니스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얘기 좀 하자는데요?”
유창한 한국어로 통역하자.
“싫은데?”
진혁이 방긋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