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128
128화 Let me hear your scream!
“싫은데?”
해맑게 웃는 진혁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노벨 문학상의 후보에도 올랐던 그 ‘바비 댄’을 모르진 않을 것이었다.
그의 입으로 직접 이름도 말했으니, 당연히 알고 있다고 봐야 했다.
그런 그와 말이라도 섞으려는 유명 인사들은 세상에 넘쳐 났다.
물론, 앞에 있는 저 해맑은 동양 중년인이 특별한 사람이긴 했지만, 그래도 예의라는 것을 중요시하는 나라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단칼에 거절이라니.
제니스의 시선이 천천히 바비에게로 옮겨 갔다.
저 웃고 있는 얼굴을 보니, 자신이 통역하기도 전에 제멋대로 해석을 끝낸 듯해 보였다.
물론.
긍정적이고,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으레 했을 당연한 대답으로.
하긴.
다시 진혁을 바라봤다.
저렇게 해맑게 웃고 있으니…….
“얘기를 시작하면 꽤 길어질 것 같은데 말이야. 어떤가? 여기 앉아서 얘기할까? 아니면 자리를 옮겨서?”
“어… 그게…….”
이제 막 공연을 끝내고, 녹초가 된 자신에게 너무나도 고된 통역이었다.
“바비… 그게 말이지. 어… 너무 갑작스럽기도 하고… 그러니까, 지금 급한 일이 있다고도…….”
“흠… 내가 한국어를 전혀 알지 못하긴 하지만, 그렇게 길게 얘기한 것 같지는 않은데…….”
눈치 빠른 영감탱이 같으니…….
“설마… I don’t want to?”
황당한 표정의 바비가 진혁을 바라봤고, 제니스의 이마에 굵은 땀줄기가 하나 흘러내렸다.
“표정은 그게 아닌 것 같은데… 어째서?”
“후… 왜 싫냐는데요?”
진혁이 바비와 눈 마주치며 방긋 웃어 주었고.
“재수 없어서.”
제니스는 자신의 이마를 짚었다.
맞는 말이긴 했지만.
애도 아니고, 이렇게 막 나가는 사람은 아니었는데…….
“지금도 저 표정이랑 정반대의 말을 한 것 같군. 그렇지 않나?”
이 늙은 영감은 왜 이리 눈치가 빠른지…….
“하아… 바비, 일단 오늘은…….”
“아니, 대답을 들어야 하겠는데?”
바비 댄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고, 제니스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 영감탱이가 제대로 ‘빡쳤음’을.
“제니스, 먼저 갈게. 우리도 내일 준비를 해야 해서. 그리고 저 아저씨 웃는 얼굴 진짜로 꼰대 같아.”
“아…….”
“희철아, 가자.”
고개를 살짝 까딱한 진혁이 몸을 돌렸고, 제니스가 자신의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어떻게 수습하라고…….’
바비 댄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기실을 나가는 두 동양인을 황당하게 바라봤다.
“이봐, 제니스. 통역…….”
“어… 만나게 되어서 영광이었다고…….”
“그게 아닌 거 같은데…….”
“젠장.”
헝클어진 머리칼에 가린 제니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눈치 빠른 영감탱이…….
* * *
“선생님?”
“왜?”
“아깐… 왜…….”
“아, 바비 댄?”
“네.”
그다지 팝을 듣지 않았던 희철도 그 이름은 알고 있었다.
간혹 눈에 띄었던 기사만으로도 세계적으로 얼마나 유명한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미국 음악의 선구자, 포크 록의 전설, 대중성과 예술성을 모두 가진 최고의 싱어송라이터.
대충 떠오르는 수식어들이었다.
아니, 대단한 사람이라는 건 둘째치고 으레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지켜져야 할 예의라는 것은 있었다.
더군다나, 동방예의지국에서 자란 어른 아닌가.
나이도 그 할아버지가 훨씬 더 많을 텐데…….
방금 자신이 듣기에도 무례한 말투는 – 표정은 전혀 그렇지 않았지만 – 지금까지 보아 온 선생님과는 전혀 매치가 되지 않았다.
“그냥 좀…….”
“네?”
“선민의식이라고 알아?”
“아! 들어는 봤지만, 의미는 확실하게 모릅니다! 나쁜 건가요?”
“선택되었다고 믿는 사람들이 가지는 우월감. 쉽게 말하면, 자뻑에 취한 인간들이지.”
“아…….”
“자신이 알고 있는 것만이 진리라 믿고 있으니, 자꾸만 가르치려고 들어.”
“그러니까… 아까 그분이…….”
진혁은 마음 한구석에 밀어 뒀던 마흔넷의 자아를 바라봤다.
“그게 맘에 들지 않아.”
피식하고 웃었다.
“난 네가 뭘 많이 알지 못해서 좋아.”
“네? 아… 그… 칭찬이신가요?”
“그래서 자신의 느낌을 그대로 내뿜는 것에만 필사적일 수 있지.”
“저기… 무슨 말인지…….”
“어! 맞아! 지금 그 표정! 그래서 좋아. 넌 참 가진 게 없어!”
“그… 기분이 참… 묘한 게…….”
“칭찬 맞아.”
“그… 그렇죠?”
“내일, 아무것도 모르는 네가 저 재수 없는 얼굴을 깜짝 놀라게 할 거야.”
“어… 갑자기…….”
걷다 보니 어느새 진혁의 트레일러 앞이었다.
문을 열고.
“자. 그러니까 오늘 밤새우자.”
진혁이 바닥에 잔뜩 깔린 악보를 향해 팔을 뻗었고.
“이… 이게 다 뭐죠?”
“네가 부를 노래들.”
희철의 머릿속이 어지러워졌다.
“선생님… 공연이 내일인데…….”
“하면 돼.”
진혁이 해맑게 웃었다.
* * *
[역시! 우리 갓끼 님은 신이야!]└제니스의 세상을 창조하셨지!
└노노 창조는 제니스가 했고, 이끄셨지!
└아무튼 그게 그거임.
└이번에 갓끼 님 사단 멤버들 제대로 터졌음.
└칼리에 유레이시에 제니스까지!
└근데, 사단은 아니지 않음? 진혁느님 소속도 아니고…….
└이미 정신적으로는 갓끼 님에게 종속된 거임.
└난 인정!
└이미 해외 사이트에서도 갓끼 님이 언급되기 시작했음.
└유레이시와 제니스야 원래 친했다고 해도 칼리까지 붙이려면 갓끼 님밖에는 없지.
└기사도 떴음.
└이건 뭐, 국위선양을 넘어 전 세계를 이롭게 하시는구나.
└아… 가슴이 벅차오른다!
└크으! 주모!
제니스의 마지막 멘트는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다.
-세기의 천재들을 각성시킨 그는, 과연 음악의 신인가?
유명 음악 칼럼니스트인 브룩스 레일리가 적은 글이 시작이었다.
칼리, 유레이시, 제니스의 공통점은 한국의 공연에 참여했다는 것.
그리고 ‘그’와의 접촉 이후 몰라보게 달라졌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추리한 그의 글에, 칼리의 ‘정확했어 브로!’라는 코멘트와 유레이시가 누른 ‘엄지손가락’은 모든 추측을 기정사실로 만들어 버렸다.
그렇게, 그대로 기사가 되어 인터넷에 뿌려졌다.
축제에 몰려 있던 관심은 고스란히 ‘음악의 신’에게 옮겨 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엄청난 관심은 있는지도 몰랐던 포레스트 스테이지의 마지막 날 공연까지 이끌었다.
해외 뮤직 커뮤니티들에서는 굉장한 기대감을 표출하기 시작했고.
[제발 그만해, 미친놈들아.] [레몬티 형아들 빼면 거기 밴드들이 우리나라 최약체라고!] [딴 데 가! 거기 볼 거 없어! 진짜야!]정작, 그들을 응원해야 할 국가에선 불이 붙어 버린 관심을 어떻게든 꺼 보려고 시도했다.
축제 2일 차.
밤새 혼돈에 빠진 네트워크 세상이었다.
* * *
‘어…….’
차 문을 닫다가 찧은 손이 너무나도 아팠다.
이안은 문득 자신의 몸을 확인했다.
신나게 뛰어다닌 다리는 쥐가 날 지경이었고, 편한 신발을 신지 않았기에 발 여기저기엔 물집이 잡혀 쓰라렸다.
‘설마…….’
꿈이 아닌 건가?
갑자기 떨어 대는 핸드폰 진동에 화들짝 놀랐다.
“어… 사장님?”
-이봐! 지금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이거 꿈…….”
-도대체 한국의 재벌과는 어떻게 연결이 된 거야?
“네?”
-청강! 한국 재계 1위의 그 기업이 투자 제안을 해 왔단 말이야!
“에이…….”
-하하하! 내 자네가 일 한번 터뜨릴 줄 알았어! 제니스도 자네 기타를 들고 무대에 오르더니, 대기업의 투자까지!
“아…….”
-아무튼 마지막까지 잘 즐기고! 자네 계좌에 격려금 두둑이 넣어 놨으니까 올 때는 편하게 비즈니스석으로 오라고!
그 짠돌이가 격려금?
끊어진 핸드폰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던 이안이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이게 꿈이 아니라면.
하늘 높이 떠 있는 애드벌룬을 바라봤다.
축제 3일 차.
‘화이트 래빗’을 든 ‘그’가 무대에 오를 날이었다.
서둘러 축제장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매번 향했던 메인 스테이지로 가는 넓은 대로가 아니라.
숲에 가려져 잘 보이지도 않는 오솔길 쪽으로.
* * *
축제의 열기가 더해지며, 이곳저곳에서 축제에 대한 평이 쏟아졌다.
처음부터 실시간으로 중계가 되었기에 많은 비평가가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각 무대에 대한 평가부터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음악 관련 평론가들은 수많은 텍스트를 뿌려 댔다.
월드 뮤직 페스티벌 역사상 가장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전체적인 평은 단 하나의 사안에 막혀 부정적인 메시지를 남겼다.
-어째서 스테빈은 한국의 ‘그’를 부르지 않았는가.
-일본 투어 때의 앙금이 남아 있었다는 루머는 사실인가.
-일부러 한국의 무명 밴드들만을 섭외했다는 소문도…….
-제니스의 무대도 회사와의 분쟁 때문에…….
역대급으로 가장 성황리에 치러졌고, 이제 마무리만을 남겨 두고 있는 축제였지만.
스테빈의 얼굴이 그리 밝지 않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메인 스테이지에서의 이탈률이 심상치 않습니다.”
“흠…….”
“거의 5 대 5 수준으로…….”
기획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관객들의 관람 문화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노골적으로 메인에 집중시켜 배치한 각종 편의시설로는 거스를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사람들이 다른 스테이지들로 옮겨 가며, 여기저기서 불만들이 속출했다.
화장실의 개수부터, 불편하게 꼬인 동선에, 메인 스테이지에 비해 너무나도 초라한 무대 설비까지.
월드 뮤직 페스티벌 홈페이지 게시판은 수많은 불만으로 얼룩져 있었다.
메인 스테이지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허술함을 사람들이 알게 된 것이었다.
스테빈의 미간이 좁아졌다.
“포레스트 스테이지에도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모였습니다.”
“그렇군…….”
이건,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일부러 수준 낮은 밴드들을 초대했으니, 이제 막 생겨난 흥미는 그들의 실력을 확인한 순간 흐지부지될 것이 뻔했다.
마이너 스테이지뿐만 아니라, 다른 스테이지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결국, 사람들은 더욱 화려한 것에 끌리기 마련이었고.
오전 무대가 끝나기 전 다시 메인을 향해 움직이게 될 터였다.
그래도 오점은 남기지 말아야 했다.
“이동되는 편의시설들은 다시 배치하고, 움직이는 사람들을 도울 현장요원들도 더 충원해.”
“네.”
“푸드 트럭들은 간격을 넓혀서 외곽 지역까지 커버할 수 있도록 지시해.”
“네. 알겠습니다, 회장님.”
“이제 마지막 날이야. 사고 없이 마무리되도록 신경 써.”
“네.”
부하 직원이 나갔고.
스테빈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3일 동안 총동원 관객 수 150만을 넘긴 상태였다.
3일 권을 끊은 사람들의 중복 집계를 뺀다고 해도, 100만 명을 넘긴 것이다.
실로 어마어마한 관객 수였다.
숫자로는 엄청나게 성공한 공연이었지만.
스테빈이라는 이름은 전 세계에서 조롱거리가 되고 있었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그와 접촉해 메인 스테이지에 오르는 누군가와의 콜라보라도…….
지친 얼굴의 스테빈이 탁자 위 핸드폰을 바라봤다.
* * *
“어때?”
“뭐가 어때요?”
테일의 태연한 대답에 황지선이 후욱 하고 숨을 내뱉었다.
“와, 너도 진짜 강심장이긴 하다. 난… 이거 봐, 손도 막 떨리고…….”
“자요.”
“응?”
테일이 작은 금색 원통을 내밀었다.
“저는 벌써 두 개나 먹었어요.”
“아… 우황청심환…….”
“얼른 드세요, 꼭꼭 씹어서.”
“땡큐.”
지금까지 음악을 해 오며 이 무대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단독 공연이나 합동 공연은 수도 없이 해 봤던 둘이었다.
다만.
그때 만났던 관객은 자신들만을 보러 왔던 사람들이었다.
당연히 반응이 좋을 수밖에 없었고, 그만큼 이런 떨림도 없었다.
하지만.
이곳에 모인 사람 중에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무대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포레스트 스테이지의 객석은 약 오천 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었다.
이미, 그 공간은 가득 찼고, 주변 언덕 위에도 사람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만 명은 넘겠는데?”
“그러게요.”
“내가 첫 빠따네…….”
“제가 두 번째고요.”
합동 공연을 할 때면 언제나 마지막 하이라이트 무대를 독차지했던 둘이었다.
졸지에 오프닝을 맡게 된 두 사람이 눈을 마주치며 피식하고 웃었다.
황지선이 청심환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다가 꿀꺽하고 삼켰다.
“관객 조금 빠져도 내 잘못은 아니다!”
테일이 피식하고 웃었다.
“설마요.”
악기 세팅을 끝낸 무대 위 상정이 지선을 바라봤다.
“파이팅!”
테일이 내민 주먹에 자신의 주먹을 맞댄 황지선이 입꼬리를 올렸다.
“효과 좋네.”
사뿐사뿐 계단을 올랐다.
한 계단, 한 계단, 무대에 가까워질수록 소심한 떨림은 기분 좋은 흥분으로 바뀌었다.
-아. 아.
마이크를 확인하고.
-안녕하세요. 한국에서 온 신인 밴드 그린내입니다!
한국 최고의 여성 아티스트에서.
신인 밴드 그린내의 보컬이 된.
나이 오십을 코앞에 둔 그녀가 상큼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반가워요, 여러분!
나긋나긋한 그녀의 목소리에 관객석이 술렁거렸다.
곳곳에서 환호 소리가 들리기는 했지만.
‘에이, 이게 아니지.’
황지선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Let me hear your scream!
그녀가 우렁차게 소리치자.
관객석이 들썩일 정도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드디어 한국 대표들의 무대가 막을 올렸다.
* * *
[뭐야! 황지선 아님?] [미친!]계속해서 한국 무대의 존재를 지우려 했던 그 나라의 네트워크도 삽시간에 불타오르기 시작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