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129
129화 꿀 성대
한 계단.
‘하던 대로만 하자.’
한 계단.
‘하던 대로만 하자.’
무대에 오르자.
‘하지만, 이런 무대는 처음인데?’
자신을 모르는 관객들 앞에 선다는 게 이렇게 두려운 것이었나?
우황청심환의 효능은 마음을 평온하게 유도하고, 심장으로 과도하게 몰린 열을 내리며 심기와 정신을 맑게 해 준다.
다만.
약효가 퍼지기까지는 1시간 정도 걸리므로.
미리 먹어 두는 것이 좋다.
이런 사실도 모르고 진정되었다고 생각했던 심장이 마이크 앞에 서자 다시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보통, 그녀가 올랐던 공연들은 자신이 등장하기만 해도 환호가 쏟아졌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동안 만났던 관객들과는 달랐다.
무대에 올라 마이크를 잡았지만.
웅성거리기만 할 뿐 그 누구도 소리치지 않았다.
‘그래도 짬이 있지.’
-아. 아.
마이크부터 확인하고.
-안녕하세요. 한국에서 온 신인 밴드 그린내입니다!
‘이쯤이면 소리 좀 질러 줘야 하지 않나?’
-반가워요. 여러분!
이 황지선이 인사를 두 번이나 해야 하다니.
‘여기 관객들은 매너가 영…….’
띄엄띄엄 환호가 들리는 방향으로 시선을 보냈다.
딱 봐도, 이번에 ‘인간 회사’가 초대한 한국 밴드로 보이는 이들이었다.
그들을 확인하고 비로소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아차… 여기 미국이었지…….’
한국말로 인사하다니.
‘이런 초보적인 실수를…….’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Let me hear your scream!
그제야 관객들이 함성을 질러 왔다.
키보드의 멜로디가 들려왔고.
금방이라도 터질 듯 두근대던 심장은, 그대로 그녀의 에너지가 되어 폭발했다.
마흔여덟 왕년의 아이돌이 온 힘을 다해 뛰어올랐다.
* * *
[황지선 실화임?]└와 씨! 너튜브 보다가 지렸음.
└누나가 저기서 왜 나옴?
└저 누나 나이 좀 있지 않나? 뭐 저리 발랄함?
└40대 후반임.
└와, 진짜 개깜놀.
└관객 많이 모인 거 보고 괜히 우리나라 밴드들 싸잡아서 욕먹을까 봐 개쫄았는데 지선 누님이 나올 줄이야.
└어? 근데 저 키보드 스티커 많이 본 거 아님?
└하얀 스티커? 저거 인간 밴드 공연 이후로 여기저기서 팔지 않음?
└나도 샀음.
└잠깐! 다들 키보드에 조명 비칠 때 잘 봐.
└어?
└진짜 인간 밴드?
└와! 대박!
└미쳤다. 그린내 리더가 키보디스트였지?
└맞네! 치킨 아저씨!
└최약체인 줄 알았는데, 한국 최강이 등장하다니.
└노래 시작한다!
└일단 즐기고 다시 모이자!
* * *
중학교 3학년.
한창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 프로듀서였던 삼촌에 이끌려 연예계 생활이 시작되었다.
삼촌 덕에 무명 시절도 거치지 않았다.
데뷔하자마자 국민 여동생이 되었고, 앨범을 낼 때마다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다만, 그랬기에 평범한 여자아이들이 겪었을 법한 경험을 전혀 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녀는 상상해야만 했다.
그녀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던.
사춘기 풋풋한 첫사랑을.
그녀가 만들어 낸 상상 속 첫사랑은 세상에 없는 것이었기에.
비현실적으로 순수했고.
꿈같이 아름다웠으며.
뭣보다.
지금도 상상 중이었기에.
현재 진행형이었다.
* * *
“와. 키보드 록이야?”
“저 여자 보컬 목소리 정말 좋은데?”
“저게 한국어구나. 뭔가 어감이 예쁘다.”
“이거 사랑 노래 맞지?”
“멜로디 진짜 좋다.”
“신인 밴드라고 하지 않았나? 엄청나게 잘하는데?”
심장을 간질이는 멜로디에 황지선의 목소리가 얹어지자.
관객들의 마음을 몽글몽글 녹여 댔고.
아련한 추억이 되어 버린 그 풋사랑이 눈앞에 펼쳐졌다.
당장 어떤 누구라도 잡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어지는 순간이었다.
* * *
간주.
상정의 손가락이 정신없이 움직였다.
황지선에게는 상상 속 사랑이어서 현재진행형이었지만, 상정은 실제로 현재진행형이었다.
자신이 속한 밴드 리더에게 푹 빠져 있던 그 누나에게 애태웠던 순간들.
처음 내민 그녀의 손을 잡았던 그날.
어설펐던 프러포즈.
꿈만 같았던 결혼식.
사랑의 결실로 탄생한 보물.
익숙해지며 처음 그 설렘과 두근거림은 점점 무뎌져 갔지만.
사랑의 방식이 조금 달라졌을 뿐.
매 순간이 첫사랑이었다.
노래에 서툰 자신이 불러야 했기에 더하지 못했던 음표들이 황지선의 목소리를 만나 날개를 달았다.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아름다운 사랑을 꿈꾼다.
이것저것 재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감정에만 충실할 수 있는.
결과가 어찌 되든 후회하지 않을 그런 사랑.
오늘.
모두의 가슴속에 사랑을 외칠 수 있는 용기를 심어 줄 것이다.
시간과 사랑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맘껏 사랑해,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허스키한 그녀의 목소리가 메아리치듯 울려 퍼졌다.
* * *
스테빈이 멍한 표정으로 중계 모니터를 바라봤다.
저 능숙한 무대 활용과 노련한 목소리는 전혀 신인의 그것이 아니었다.
당장 세컨드 스테이지, 아니 메인 스테이지에 세워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실력이었다.
언어의 장벽까지 모두 무시한 채 사람들의 감정을 뒤흔들고 있었다.
공식적인 공연은 세 번의 버스킹이 전부라고 하지 않았던가?
스테빈은 무대 위를 누비는 한국에서 날아온 디바를 바라봤다.
엄청난 가창력으로 뿜어내는 에너지는 정말로 엄청났다.
‘잠깐…….’
애초에 작은 규모로 설계된 스테이지였다.
저 소형 스피커로는 절대로 언덕 위에 있는 관객들까지 닿을 수는 없었다.
서둘러 다른 모니터로 시선을 돌려, 보안 카메라에 찍히고 있는 현장 영상을 찾았다.
그리고 언덕 위를 살폈다.
저마다 이어폰을 끼고 핸드폰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아…….’
너튜브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이게 이렇게 독이 될 줄이야.’
사람들이 다른 스테이지들로 이동하며 메인 스테이지에 빈 곳이 보이는 상황도 이런 이유일 것이었다.
‘메인에 쏟아부은 돈이 얼만데…….’
어디까지나 사람들은 가장 화려한 무대를 봐야 했다.
그래야 이 축제를 세계 최고로 기억할 테니까.
음향 설비도 제대로 되지 않아 너튜브로 사운드를 들어야 했다는 말은 나와서는 안 될 일이었다.
서둘러 인터폰을 눌렀다.
“너튜브 담당자 당장 호출해.”
-네. 회장님.
조금 노골적이더라도 회사의 이미지가 더욱 중요했다.
현장을 생중계하고 있는 너튜브 화면을 노려봤다.
그 ‘래빗’까지는 용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부러 고르고 고른 무명 밴드까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려서는 안 될 일이었다.
사실 오기일 뿐이라는 것은 자신도 인정하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꼬인 건가…….’
스테빈이 쓰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 * *
세컨드 스테이지의 사람들이 저마다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니스가 말한 ‘신’의 나라에서 온 밴드의 무대에선 대체 어떤 음악이 나올까?
‘분명 신인이라고 했는데…….’
궁금함에 잠시 터치했던 실시간 영상이었는데.
생소한 언어로 펼쳐지는 무대는 정말로 엄청났다.
지금 자신의 앞에서도 열정적인 공연이 펼쳐졌지만.
차마 뒤로 가기 버튼을 터치하지 못하고 볼륨을 올려 버렸다.
그리고 망설이기 시작했다.
이번 축제의 동선은 상당히 비효율적이었다.
세컨드 무대에서 서드 무대를 가려면 무조건 크리스탈 스테이지를 거쳐야만 했고, 서드 무대에서 저 마이너 무대까지 가려면 또다시 다이아몬드 스테이지를 지나야만 했다.
그렇기에, 메인 스테이지를 거치며 그 자리에 멈춰 선 사람들이 많았었다.
애초에 메인에 모이도록 설계된 동선이었다.
‘지금 뛰기 시작한다면…….’
적어도, 저 무대가 끝나기 전에는 도착할 수 있을 것이었다.
어차피 공연은 핸드폰으로 볼 수 있었지만.
언덕 위, 핸드폰을 바라보며 한 템포 늦게 환호하는 사람들에 시선이 멈췄다.
‘나도 저 현장에 있고 싶어.’
관객들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 *
‘역시…….’
땀에 젖어 무대 위를 뛰어다니는 황지선을 바라보던 테일이 피식하고 웃었다.
‘무릎도 아프다더니…….’
시선을 옮겨, 꽉 들어찬 관객들을 바라보고, 고개를 조금 들어 저 멀리 언덕 위 사람들도 확인했다.
언덕 위는 지금도 사람들이 들어차는 중이었다.
초록 대지가 형형색색의 사람들로 칠해지고 있었다.
‘이거 부담되는데?’
테일은 저도 모르게 꼭 쥐고 있었던 주먹을 폈다.
붉게 달아오른 손에는 땀이 흥건했다.
이렇게 긴장한 상태로 무대에 오르는 게 얼마 만이지?
테일의 심장이 마구 뛰어 댔다.
우황청심환이 감당할 범위를 넘어섰다.
테일의 발이 달싹였다.
지금 당장이라도 무대에 뛰어들고 싶은 심정이었다.
몸은 자꾸만 들썩였고.
‘그린내’의 환상적인 공연이 너무나 길게만 느껴졌다.
예상보다 훨씬 더 많아진 관객들 때문인가?
평소만큼만 한다면서 평소보다 훨씬 더 굉장한 무대를 만들어 낸 지선 선배 때문인가?
자신을 모르는 이들을 만난다는 설렘 때문인가?
테일이 흥분을 가라앉히려 이를 악물었다.
조금만, 참자.
조금만.
-Thank you. Thank you, everyone.
숨을 할딱거리는 그녀의 감사 인사가 들리자 테일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린내의 마지막 곡의 전주가 흐르기 시작했다.
* * *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하지.”
“그게, 기술적으로는 충분히 변명할 수 있지만…….”
“예전에도 몇 번 그런 사고가 있었던 걸로 아는데?”
“그때는 트래픽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해서…….”
“오늘도 그런 걸로 하면 되지 않나?”
“아…….”
스테빈이 손가락으로 탁자를 톡, 톡, 두드렸다.
“할당된 트래픽에 예상외로 많은 사람이 모였다. 그리고 그 대처에 시간이 조금 걸렸다. 딱 여기까지야.”
“하지만…….”
“기술적으로 할 수 있는 걸로 아는데? 자연스럽게 말이지.”
“물론, 되기는 합니다만…….”
“그럼 그렇게 하지.”
너튜브 담당자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자신이 떠들어 봐야 소용없는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회사에서 스테빈의 결정은 절대적이었다.
그가 노려보는 화면을 힐끗 바라봤다.
작은 마이너 스테이지를 구름처럼 감싼 사람들이 보였다.
‘사실 스테빈은 한국 밴드들의 미국 입성을 두려워한다.’
‘인간 밴드를 초청하지 않은 것은 스테빈의 아집이다.’
‘일부러 실력 없는 밴드들을 초청해 한국 전용 무대를 할당했다.’
그간 회사 내에 떠돌던 소문이었다.
하지만 한국 밴드가 예상을 뒤엎고 엄청난 무대를 보여 주자, 스테빈이 굉장한 신인들을 발굴해 냈다며 여론이 바뀌는 중이었는데.
지금 스테빈의 얼굴을 보니 그 루머들은 사실이었던 모양이었다.
저렇게나 초조해하는 세계 문화 권력의 최상위 포식자라니.
“지금 당장 움직이게.”
“네… 회장님.”
너튜브 담당자가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 * *
[와! 너튜브 실시간 시청 인원 실화냐?]└렉 때문에 채팅도 안 돼. 미쳤다 진짜.
└그린내 노래 진짜 좋다.
└아! 이런 명곡을 방구석에서 들어야만 하다니!
└뭐야! 벌써 마지막 곡이야?
└어? 마지막 곡은 듀엣인가? 누가 올라오는데?
└잠깐만! 저 목소리…….
└와… 설마…….
└테일이야? 테일 맞지? 진짜 맞아?
└이거 미친 거 아냐?
└스테빈 욕 엄청나게 했는데! 이렇게 굉장한 무대를 숨겼다고?
└와! 스테빈 형님 대인배였네!
└어? 그런데 갑자기 왜 이렇게 끊기지?
└미친놈들아, 그만 들어와!
└아악! 난 멈췄어!
└다른 크리에이터들 영상도 똑같아.
└빨리 너튜브에 문의 넣어 봐!
└뭐 이렇게 끊겨!
황지선이 활짝 웃으며 테일을 향해 손을 뻗었고, 둘의 하모니가 시작되던 시점부터 너튜브 중계 채널이 버벅거리는 사태가 발생했다.
태평양 건너 새벽 시간 뜬 눈으로 열광하던 사람들의 속이 터져 나가는 순간이었다.
마찬가지로 너튜브를 보며 마이너 스테이지로 이동하던 관객들의 빠른 발걸음도 느려지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트래픽 증가로 인해 장애가 발생하여 신속하게…….
갑자기 뜬 공지와 함께.
작은 화면 속 무대는 완전히 멈춰 버렸다.
* * *
그린내의 마지막 곡은 듀엣곡이었다.
황지선과 테일의 목소리가 무대를 꽉 채우는 동안, 신디사이저로 내던 멜로디가 경쾌한 트럼펫 소리로 점차 바뀌었다.
둘의 호흡이 너무나 환상적이어서 관객들은 드럼 소리가 사라진 것도 몰랐다.
그사이에 드럼 구성이 바뀌었고, 세팅을 마친 충기가 가벼운 터치로 끼어들었다.
두 보컬의 1절이 끝났고, 세션들을 바라보던 사람들은 어느새 엄청나게 키가 큰 사람으로 바뀐 베이시스트를 확인할 수 있었다.
간주가 흐르며 황지선이 조금씩 무대 뒤로 이동했고.
테일이 활짝 웃으며 무대 중앙을 차지했다.
황지선의 목소리가 점차 사라졌고, 묵직한 베이스 소리와 함께, 참고 참았던 흥분이 그대로 터져 나왔다.
-반갑습니다!
그가 덤덤하게 내지른 인사에 무대 앞 관객석이 들썩였다.
‘와, 굉장한데?’
테일의 심장이 쿵쾅댔다.
밀고 당기는 끈적한 리듬과 경쾌한 트럼펫에 한국 대표 꿀성대의 콧노래가 얹어졌다.
황지선이 말랑말랑하게 만들어 놓은 분위기를 마구 녹이기 시작했다.
분위기 체인지도 부드럽게 진행되었고, 테일의 컨디션도 최상이었다.
제아무리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고 해도, 이대로 모두를 중독시킬 자신이 있었다.
관객들의 어깨가 리듬에 맞춰 흔들리는 것을 감상하던 테일이 고개를 들었다.
‘어라?’
무대의 스피커에서 전달되는 분위기와는 전혀 딴판으로 어수선해진 언덕 위 사람들이 보였다.
심지어, 계속해서 채워지던 초록색 관객석에 빈자리가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다.
분명히 그린내의 공연 때는 저 뒤에 있는 사람들의 반응도 대단했었는데…….
‘동요하지 말자.’
테일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 이곳에선 철저히 무명인 자신이었다.
무대 앞의 관객들을 천천히 둘러봤다.
‘그런데도 이 정도나 모였으니…….’
그의 부드러운 음성이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지금 등 돌린 사람들 실수하는 거야.’
테일이 지긋이 눈감고, 목젖을 떨었다.
한국 최고의 꿀 성대로 만들어 내는 블루스 록이 관객석에 엉겨 붙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