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130
130화 똑같아
사실.
무대에 올랐는데 관객이 빠져나가는 장면을 그대로 목격한다는 것은.
무대 위 아티스트에게는 엄청나게 큰 쇼크였다.
뭐지? 다른 무대에서 뭔가 터졌나?
방금 듀엣이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았나?
지선 누님만 보러 왔었던 거냐?
내… 목소리가… 저 양키 놈들에게는 듣기 싫은 소리인가?
전주가 흐를 때.
딱 1초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던 생각들이었다.
단지 그냥 스쳐 갔을 뿐이었다.
20년 동안이나 무대에 오른 경력이 있는데 이 정도로 흔들릴 멘탈은 아니었다.
자신은 이제 막 노래를 시작했고, 아무리 자신의 노래가 싫더라도 저렇게 한 번에 등을 돌리지는 않았을 터.
이 무대가 잘못된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그 증거로 무대 앞의 관객들은 이미 자신의 목소리에 빠져들었지 않은가.
분명히 이 공연과는 상관없는 어떤 이슈가 터진 것이다.
테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 1초의 부정적인 의문들이 한순간에 날아갔다.
무대 외적인 이슈는 어차피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지금 자신만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무대를 선사한다면 그것으로 될 일이었다.
‘무대 짬밥이 몇 년인데.’
피식 웃으며 뒤를 보자.
‘아…….’
벌벌 떠는 강원도 산골 청년의 불안한 트럼펫에.
멘탈 약하기로 소문난 – 한때는 C2K라는 이름을 가졌던 – 드러머는 동공이 마구 흔들리는 중이었고.
데뷔 1년도 채 되지 않은 거대한 덩치의 베이시스트가 그 넓은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있었다.
‘하… 이 양반들. 진짜.’
여유롭게 리듬을 가지고 놀아야 할 블루스가, 잔뜩 경직된 그들을 통해 제대로 흘러나올 리 없었다.
‘다행히 많이 흐트러지진 않았네.’
생각해 보니, 공연에 있어서 초보나 다름없는 저들로서 이 정도 쇼크를 버텨 내는 것만 해도 굉장한 것이었다.
베테랑인 자신도 잠시지만 머릿속이 복잡했으니…….
하지만 그들은 지금 무대에 올랐고.
몇 명의 관객이 남더라도 최선을 다해야만 했다.
‘힘 빼고, 부드럽게 가려 했는데…….’
테일의 목소리가 바닥으로 마구 가라앉았다.
원곡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자 얼빠진 삼인방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마치, ‘너도 쫄았냐?’라는 듯이.
테일이 피식 웃어 보이며 ‘아닌데?’라고 답해 줬고.
‘잘될지 모르겠네.’
목을 긁으며 거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테일의 극적인 변화에 가장 먼저 정신이 든 장하가 리듬을 조금씩 당겼고.
그제야 충기의 스틱이 미친 듯 드럼을 때려 대기 시작했다.
장하가 조금씩 이동해 트럼펫의 청년과 눈을 마주쳤고, ‘정신 안 차려?’라는 살벌한 눈빛을 보내자.
정선 총각 박태용이 화들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며 경직되었던 몸에 힘을 풀었다.
같은 곡이었지만.
훨씬 더 리드미컬하고 끈적한 ‘중독’이 관객석에 내려앉기 시작했다.
사실 블루스 록과 하드 록은 종이 한 장 차이였다.
밴드에서 유일하게 멜로디를 담당하는 트럼펫이 안정을 되찾자.
테일의 목소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할 거친 샤우팅이 솟구쳤다.
이렇게 끈적한 리듬에 저런 목소리라니.
멍하니 무대를 바라보던 관객들이 화들짝 놀라 함성을 질러 댔다.
* * *
“와… 쟤 뭐냐.”
황지선이 멍하니 무대를 바라봤다.
리허설 때도, 간간이 봤던 연습에서도.
단 한 번도 듣지 못했던 목소리였다.
“진짜… 목소리 자체가 반칙이다. 쟤는…….”
“어… 그렇게 따지면 진혁이도…….”
“아. 걔는 애초에 인간이 아닌 거고.”
“그렇긴 하죠?”
“아무튼, 저 구성으로 하드 록이라니… 참! 어떻게 된 일이래?”
테일과의 듀엣 당시, 언덕 위에서 사람들이 빠지는 장면을 그들도 목격했던 차였다.
무대에서 내려오자마자 그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관계자에게 달려갔던 상정이었다.
“그게, 저 스피커 최대 출력으로도 저기까진 제대로 닿질 않는대요.”
“그래?”
“그래서 우리 공연을 너튜브로 들으면서 보던 중이었는데…….”
상정이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너튜브가 터졌대요.”
“아…….”
본래 마이너 스테이지에 할당된 관객석은 미어 터질 지경이었다.
언덕 위의 사람들은 더 가까이 올 수 없었고, 결국 다른 무대를 찾아 떠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지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위에서 바라봐 봤자 코딱지만 하게 보이는 무대였을 거고, 소리조차 제대로 닿지 않았을 것이다.
“에이 씨… 그게 왜 지금 터지고 난리냐.”
“그러게요… 그래도, 지금 이 정도면 마이너 스테이지치고는 성공적인 거죠.”
“하긴…….”
지선이 관객석을 바라봤다.
어제 오전까지만 해도 천 명에서, 많으면 이천 명 정도로 예상했었다.
그런데 제니스의 발언이 기폭제가 되어 이렇게 가득 찬 것이었다.
지금 저 정도만 해도 충분히 성공적이긴 했지만…….
기왕 시작한 거, 이 콧대 높은 축제를 뒤집어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
“진혁이는?”
“오고 있대요.”
이다음 무대까지 떠오르자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너튜브만 제대로 됐더라면 구름 떼처럼 몰려들었을 터였다.
아까만 해도 새까맣게 들어찼던.
이젠 거의 비어 있는 언덕을 바라보자 그 아쉬움은 더욱 커졌다.
뭣보다 너튜브의 먹통으로 깜짝 놀랐을 한국의 팬들을 떠올리니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얼마나 답답할까… 아? 한국?’
“야! 우리 회사!”
“아… 맞다!”
상정이 서둘러 핸드폰을 터치했다.
* * *
[지금 포레스트 스테이지에 올라온 하드 록 밴드 진짜로 엄청나다.]└나도 지금 보고 있는데, 트럼펫이 끼었으면 블루스에 가까운 록 밴드 아닌가?
└보컬이 블루스가 아니잖아.
└아무튼 굉장해. 신인이라면서? 한국은 이런 밴드가 널린 건가?
└뭔데? 노래 잘해?
└직접 듣든가.
└아, 나 아까 언덕에 있다가 내려왔어. 지금 메인 스테이지로 걷고는 있는데, 아쉬워 죽겠네.
└난 그쪽으로 움직이다가 포기했어. 너튜브가 먹통이라서.
└마이너 스테이지 관객석은 왜 그렇게 좁아? 사운드도 엉망이고. 한국 밴드들 엄청나게 잘하던데.
└오, 두 번째 곡 시작했다.
└뭐야, 방금 그 보컬 맞아? 목소리가 엄청나게 부드러운데?
└진짜 한국은 괴물들만 있나? 이런 밴드가 무명이라고?
└와, 덤덤하게 내뱉는 목소리 하나하나가 보통이 아니야.
└완전히 새로운 블루스 장르다.
└더 얘기해 봐. 궁금해 죽겠네.
└공연을 어떻게 글자로 옮기냐. 스포츠도 아니고.
└나 지금 메인 스테이지 앞에서 이거만 들여다보는 중. 뭐라도 좋으니까 중계 좀.
└아무튼 여기 한국 스테이지 완전히 미쳤어.
└아, 멀리서라도 볼까.
└그러지 마.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으니까 굉장히 답답해. 무대도 엄청나게 작게 보이고, 스크린도 너무 작아. 그냥 아쉬운 대로 메인 스테이지나 돌아.
└하긴, 애초에 거기 정원이 오천 명이었던가?
└카폰 레코드 진짜 일을 막 하네. 하다못해 세컨드 스테이지라도 세웠어야 하는 거 아냐?
└노노. 이 정도면 메인급이야.
└나도 인정. 오. 베이스 솔로 굉장한데?
└덩치도 엄청나게 커.
└와, 리듬 쪼개는 게 예술이다.
└역시 래빗의 나라인 건가.
└음악 환상적이다.
└아! 나도 거기서 자리를 잡았어야 했어.
└너튜브 미친놈들! 얼른 일해라!
└아니, 아무리 마이너지만 18인치 스피커 여섯 개가 말이 돼? 칼리가 타고 다니는 그 F-150이 더 빵빵하겠다!
└설비도 너무 열악해. 스크린도 엄청나게 작아.
└거기 간이 화장실도 네 군데밖에 없어. 오천 명이 넘게 모였는데 말이야.
└메인 스테이지 쪽에만 있을 때는 몰랐는데 좀 너무하더라.
└오. 세 번째 곡은 분위기가 확 다른데?
└진짜 저 보컬 목소리 너무 좋다.
└아! 나도 듣고 싶어!
음악 커뮤니티 곳곳에서 한국 스테이지의 실황이 중계되고 있었다.
미리 왔기에 공연을 직접 볼 수 있는 관객들은 저마다 자랑하듯이 글을 남겼고, 미처 자리를 잡지 못해 떠나야 했던 사람들은 그 글들을 읽으며 아쉬움을 달래는 중이었다.
심지어, 메인 스테이지 앞의 관객들도 이 문자 중계에 빠져들고 있었다.
포레스트 스테이지의 첫 무대 때만 해도, 태평양 건너 한국의 실력 있는 신인을 발굴했다며 스테빈 회장을 찬양하는 글들이 많았었는데.
너튜브가 먹통이 되자 마이너 스테이지의 열악함을 지적하는 여론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이 아쉬움에 치를 떨던 중.
[어? 인간 회사 홈페이지에 점이 찍혔어!]게시판의 새로 고침을 마구 누르던 다른 스테이지의 사람들이, 서둘러 인간 회사 홈페이지에 접속하기 시작했다.
* * *
태평양 너머 어딘가에선 엄청나게 뜨거운 축제가 벌어지는 중이었지만, 한국시간은 새벽 세 시였다.
하늘 아래 음악 축제 이후 SJ 엔터테인먼트로 소속이 바뀌어 버린 서버 담당 팀장은 꿀잠에 빠져 있었다.
애초에 음악에는 별 관심도 없었던 그였기에 먼 미국에서 벌어지는 축제는 그저 딴 나라 얘기일 뿐이었다.
그랬는데…….
삐리리리리리.
“어… 이 시간에 왜… 뭐? 뭔 소리야? 디도스 아냐? 갑자기 그렇게 몰려오는 게 말이 돼? 알았어! 일단 지금부터 접속하는 건 적당히 끊고, 서버부터 확충해! 내가 금방 갈게.”
더 이상 딴 나라 이야기가 아닌 것이 되어 버렸다.
* * *
다이아몬드 스테이지의 대기실에서 관객들을 바라보던 바비 댄이 미간을 좁혔다.
오전부터 관객들이 스테이지 곳곳으로 흩어졌다는 얘기는 이미 들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다시 가득 차기 시작한 관객석이었다.
자신이 무대에 오를 시간이 가까워졌고, 그랬기에 흐뭇해하던 차였다.
그랬던 관객석이 다시 술렁이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한 시 방향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저 방향은…….’
분명 마이너 스테이지로 향하는 오솔길이 있는 곳이었다.
다시 고개를 돌리자, 세컨드 스테이지 방향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언뜻 자신이 서게 될 무대 앞이 다시 가득 차는가 싶더니.
그대로 한 시 방향을 향했다.
‘분명, 인지도도 거의 없는 신인 밴드들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제니스가 했던 발언의 여파라고 하기엔 심상치가 않았다.
그저 궁금증만으로 움직이기엔 너무 많은 인원이었다.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봤지만, 여전히 너튜브는 먹통이었다.
계획이 어긋난 스테빈이 어떤 수를 썼을 거라는 추측은, 충분히 신빙성 있는 추리였다.
자존심이 상한 그는 그러고도 남았을 테니까.
마이너 스테이지의 설비만으로는 절대 저 인원을 감당할 수 없을 텐데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이동하고 있었다.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물론, 그래 봤자 메인 스테이지 앞을 채운 관객의 수가 월등히 많았다.
다만, 조금 비어 있는 자리들에 신경이 쓰일 뿐이었다.
‘한국도 제법이군.’
노크 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준비하실 시간입니다.”
“그래.”
바비가 몸을 돌렸다.
‘더 뺏길 수는 없지.’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중절모를 푹 눌러썼다.
이곳은 미국이고.
그가 평생 음악을 해 온 곳이었다.
애초에 겪은 세상이 달랐다.
절대 그 작은 나라의 감성이 더 뛰어날 리 없었다.
피식하고 입꼬리를 올린 그의 눈동자가 빛났다.
저벅저벅.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마이너 스테이지를 향해 달렸던 사람들은 결국 다시 이곳으로 모이게 될 것이 당연했다.
기타를 잡은 그가 이를 보이며 웃었다.
* * *
“그… 창명 형님이 말했는데… 천 명이 넘을 수도 있다고…….”
“그래?”
“네! 와… 진짜 떨린다.”
진혁의 뒤를 졸졸 따르던 희철이 벌컥대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어때? 천 명이 모여 있다는 게 감이 조금 와?”
“음… 어제 서드 스테이지 구경할 때, 대충 봤었어요.”
“만 명은?”
“뭐, 그 열 배겠죠? 아, 제니스 공연 때가 십만 명이었다던데…….”
“그래? 어쨌거나 천 명이나 만 명이나 너한텐 거기서 거기야.”
“그래요?”
“응. 십만 명도 똑같을걸?”
“아… 설마요.”
“진짠데?”
“에이… 거짓말…….”
희철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어…….”
“거봐. 거기서 거기지?”
“그게…….”
“똑같이 엄청나게 떨려. 맞지?”
“아…….”
“내 말 맞지?”
“…예.”
희철의 다리가 힘없이 풀리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