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131
131화 바다를 향해
-지금 삼백만 명이 넘었습니다.
“트래픽 확보돼?”
-이게 한 영상에 전부 모인 거라서 지금도 아슬아슬합니다.
SJ 엔터테인먼트 홍보 팀에는 비상이 걸린 상태였다.
주진만 팀장은 공식적으로는 홍보 팀 소속이었지만, 주 업무는 인간 회사 홈페이지의 서버 관리였다.
큰 행사만 아니라면 언제나 여유 있었던 서버였다.
실시간 영상 스트리밍이었지만, 서버를 분산시켜 놓았기에 꼬이는 일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분산시켜 놓은 것이 독이 되었다.
“아니, 미리 뭔가 언질이라도 주든가…….”
액셀을 콱 하고 밟았다.
“서버 통합은 어렵나?”
새벽 시간 한산한 강변북로를 감상할 틈도 없었다.
-분산된 서버를 당장 다시 모으기에는… 시간적 여유가 없습니다.
갑자기 나타난 과속 카메라에 급하게 속도를 줄인 주진만이 한숨을 내쉬었다.
방법이 없었다.
아니, 여러 가지 수가 있긴 했지만, 그렇게 대처하는 사이에 이미 그 공연은 끝나 있을 것이었다.
“일단은 거기서 끊어. 사이트가 터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게 나아.”
“네! 알겠습니다.”
팀장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대규모 공연 때는 외부 업체의 지원으로 해결해 왔었기에, 지금 이 사태는 회사 자체적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다.
동시 접속자 삼백만 명.
현재 회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 * *
“어? 뭐야. 난 튕겼는데?”
“난 들어가졌어.”
“접속 인원 제한이라고 뜨네.”
“아… 갑자기 몰려서 그런가?”
“여기까지 미친듯이 뛰어왔는데…….”
“일단 이걸로 같이 듣자.”
언덕 위의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했다.
먼저 접속하고 뛴 사람들은 영상을 볼 수 있었지만, 도착하고 나서 뒤늦게 확인한 관객들은 사이트의 진입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이어폰으로 듣던 사람들이 블루투스를 해제하자 핸드폰의 작은 스피커로 감미로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조금의 소음에도 묻혀 버릴 음량이었기에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숨을 죽였다.
언덕 위.
새로운 관람 문화가 만들어 낸 임시 객석은.
함성도 환호도 지를 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관객석이 되어 버렸다.
* * *
[난 접속 성공함!]└아! 젠장! 괜히 너튜브 새로고침만 죽어라 눌렀네! 근데, 진짜 테일 맞지?
└맞음. 음악도 그렇고 목소리가 제대로 미쳤음.
└그게 문제가 아님. 드러머가 C2K임! 베이스도 그 덩치 큰 아저씨고! 인간 밴드 총출동임.
└와, 이런 빅 이벤트를 놓치다니.
└야. 다른 방송 플랫폼으로 재송출하면 안 되는 거임?
└인간 회사에 그건 법적으로 불가하다고 공지되어 있음.
└아, 미치겠다. 진짜.
└아무튼 한국 스테이지 제대로 미쳤다. 이건 뭐 국가 대표를 넘어서 아시아 대표급인데?
너튜브가 먹통이 되며 안타까운 탄성만이 터져 나오던 한국의 새벽도, 일부지만, 다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 * *
테일은 다시 거뭇해지기 시작한 언덕을 바라봤다.
완전한 신인으로 돌아가 관객들을 만난다는 것은 굉장히 신선한 경험이었다.
고작 오천 명 남짓의 사람들을 앞에 두고 이렇게까지 흥분하게 될 줄이야.
정말 최고의 공연이었다.
마치, 지금껏 이룬 모든 능력 그대로 과거로 회귀하기라도 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테일’이라는 타이틀을 지운 순간, 평생 내 보지 못했던 목소리에 도전할 수 있었다.
조금 어설퍼도 됐고, 음정이 불안해도 괜찮았다.
지금 이 무대에서 자신은 신인 록 밴드의 보컬이었으니까.
‘아…….’
이다음 무대에 서야 할 진짜 ‘신인’은 어떤 기분일까?
제대로 서 있기는 한 걸까?
이번 무대도 듀엣으로 체인지 될 예정이었다.
테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또 해 볼까?’
스탠드 마이크를 꽉 움켜잡았다.
그리고.
무대 옆, 조명이 빗겨 간 공간을 바라봤다.
그늘 속 눈을 찔끔 감은 희철이 보였다.
마지막 곡이 시작되기 전, 저 왕 신인 쫄보를 무대로 불러올려야만 했다.
‘정신 안 차려?’
테일의 미친 듯한 고음이 희철을 향해 터져 나갔다.
* * *
“와, 진짜 엄청난데?”
“이런 굉장한 노래를 이 작은 스피커로 들어야만 하다니.”
“조용히 좀 해. 안 들리잖아.”
“아… 미안.”
마음껏 열광조차 하지 못하는 언덕 위의 관객들이었다.
지금 저 작은 무대에서 펼쳐지는 공연은, 핸드폰의 스피커로 들려오는 소리만으로도 정말 엄청났다.
한국어로 된 노랫말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곡의 느낌은 그대로 전달이 되었다.
마치 순수 음악의 연주곡 같은 느낌이었다.
끈적한 리듬과 멜로디에 얹어진 목소리는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악기였다.
허우적대며 중독에 빠뜨리는가 싶더니, 그 늪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을 알려 줬다.
그리고 그들이 나아가야 할 희망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미 언어의 장벽은 무너진 상태였다.
다만, 더는 인간 회사의 홈페이지에 접속할 수 없었고, 여러 사람이 한데 모여 핸드폰의 작은 음량으로만 즐기기에는 너무 답답한 상황이었다.
그들의 무대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있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이렇게 머리를 맞대고 핸드폰만을 바라보기엔 얼마 남지 않은 이 축제가 너무 아까웠다.
작은 화면 속 ‘희망을 향한 발걸음’이 거의 끝나갈 즈음.
조금씩 사람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 * *
마이너 스테이지를 향해 달리던 사람들의 발걸음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인간 회사의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글만 믿고 뛰었는데, 그마저도 차단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이 하나둘씩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좁은 길의 입구에서 발생한 병목현상은 다시 한번 관객들을 망설이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갈팡질팡하던 때.
-정말로 오랜만이네.
다이아몬드 스테이지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세대를 아우르는 미국 대중음악의 정점.
빌보드 뮤직 어워드 34개의 상을 싹쓸이한 유일한 뮤지션.
빌보드 메인 스트림 록 차트 23주간 1위를 기록한 싱어송라이터.
살아 있는 팝의 전설인 그가, 10년 만에 무대에 오른 것이었다.
마이너 스테이지를 향하던 사람들이 몸을 돌렸다.
거대한 스크린에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드는 그가 보였다.
흔들던 손을 멈추고 주먹을 쥐자.
무대 뒤편에서 폭죽이 쏘아져 올라갔다.
그의 기타 소리가 웅장한 스피커를 타고 울려 나오기 시작했다.
-다들 반가워.
메인 스테이지의 모든 관객이 함성을 질렀다.
* * *
“자, 심호흡.”
“후우. 후우.”
“매일 봤던 풍경이야.”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희철이 황당한 표정으로 진혁을 바라봤다.
“바다라고 생각해.”
“바다요?”
“밀물이 막 밀려왔다고 생각해 봐.”
‘밀물은 동해가 아니라 서해에서… 난 본 적도 없는데…….’
“거센 파도가 언덕을 넘고 있어.”
‘무슨 쓰나미도 아니고, 파도가 그렇게 언덕까지 넘지는…….’
잘못된 자연현상에 대한 부분을 지적하기도 전에 진혁이 희철의 어깨를 잡았다.
“그냥 사람으로 만들어진 바다야.”
희철의 몸을 관객 쪽으로 돌렸다.
“마구 질러 대도 그 끝에 닿을 리 없는 바다.”
“아…….”
“고개 들어.”
가득 찬 관객석이 보이자 눈을 찔끔 감았다.
“지금 네가 할 수 있는 건 소리 지르는 것밖엔 없어.”
“후우…….”
“눈 뜨자.”
게슴츠레 눈을 뜨자.
무대 위 테일과 눈이 마주쳤다.
도저히 그의 입에서는 나오지 않을 법한 거친 고음이 마치 호통인 듯 희철의 귓가를 마구 때려 댔다.
한 발짝을 겨우 옮겼다.
다리가 미친 듯이 후들거렸다.
발끝에 조명이 걸쳤고, 화들짝 놀라 다시 당겼다.
“이젠 도망도 못 쳐.”
‘그건 아는데…….’
“여기서 도망치면, 아마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기 어려울걸?”
맞는 말이었다.
전 국민이 놀려 댈 것이 뻔했다.
마지막 곡의 전주가 흐르기 시작했고, 이제는 망설일 틈도 남지 않았다.
입술을 질끈 무는데.
작지만.
자신에게만은 확실히 들리는 콧노래가 귓가에 닿았다.
초여름, 끈적한 짠 내.
저 멀리 보이는 수평선에 걸친 몽글몽글 적란운.
거세게 다가왔다가 하얀 거품을 남기며 사라지는 파도.
방파제 끝의 적막함 속에 고고하게 흐르는 바다의 멜로디.
멍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자.
언제나처럼 선생님은 해맑게 웃고 있었다.
“걸어, 바다를 향해.”
희철의 발이 저도 모르게 움직였다.
“내가 뒤에 있어.”
갑자기 밝아진 세상.
조명 아래 선 희철이 앞을 바라봤다.
형형색색의 물결이 바람을 기다리며 넘실대고 있었다.
* * *
[뭐야. 동해 소년은 그냥 동해 소년이야?]└그런가 본데?
└쟤 동공 풀렸다.
└아… 잘 나가다가… 갑자기 퀄리티가…….
└차라리 순서를 바꾸지.
└일단 보자. 뭔가 있겠지!
└어? 마이크 앞에 섰다.
└진짜로 동해 소년은 다른 게 없는 거야?
└다른 게 있을 수가 없지. 쟤는 쟤 하나잖아.
└하긴…….
└뭔가 아쉽긴 하다.
└일단 응원은 하자!
└그 쟁쟁한 밴드들 사이에서 도망 안 치고 올라간 게 어디야.
└그래! 그거만 해도 어디냐.
└파이팅!
다른 밴드들에서 엄청난 보컬들이 등장했기에 기대감이 커서였을까.
그래서인지, 희철의 모습을 확인한 사람들의 실망은 더 컸다.
여기까진 한국의 반응.
“이번에도 듀엣으로 체인지인가?”
“그런가 봐. 다음 팀 보컬 나오잖아.”
“어쿠스틱이다.”
“이번에도 환상적일까?”
“굉장하긴 한데, 이렇게 작게 들으니까 많이 불편하네.”
“다이아몬드 스테이지에 바비 댄 올라올 때 되지 않았나?”
“아… 맞다.”
“어쩌지?”
“듀엣까지만 듣고…….”
핸드폰을 향해 숙여 있던 머리들이 갑자기 들어 올려졌다.
“어?”
분명, 핸드폰에서 나온 소리는 아니었다.
‘여기까지 들릴 리가?’
언덕 위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황당한 표정으로 저 멀리 작은 무대를 바라봤다.
* * *
희철이 넘실대는 물결을 바라보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여긴 바닷가.’
선생님은 성당에서 연습할 때의 목소리를 ‘볼륨 100’으로 알고 있었지만.
‘내가 가장 편안하게 노래했던 곳.’
사실은 자신의 목소리가 가장 컸던 곳은.
방파제 끝 빨간 등대 뒤였다.
자신이 가진 건 목소리밖에 없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소리 지르는 것밖엔 없는 것이었다.
기타를 바로 쥐고.
부푼 가슴속 공기를 있는 힘껏 밀어냈다.
최대 출력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자.
멀리, 저 멀리.
그 파장은 넘실거리며 퍼져 나갔고.
고요하게 자리만 잡고 있었던 언덕 위 물결까지 일제히 출렁거렸다.
* * *
‘어라?’
테일이 황당한 눈으로 희철을 바라봤다.
목청이 큰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였을 줄이야.
갑자기 터져 나온 묵직한 저음이, 혼신을 다 쏟아 올려 친 자신의 샤우팅을 그대로 삼켜 버렸다.
그래도 짬이 있는데, 이대로 밀릴 수는 없었다.
스탠드 마이크를 뽑아 양손으로 감싸 쥐었다.
본래는 서서히 잔잔하게 바뀌어야 했을 무대였지만.
테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언제 이렇게 소리를 질러 본단 말인가.
목소리 끝이 갈라져도 상관없었고, 음정이 흔들려도 괜찮았다.
악기의 음량을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지금 테일은 이제 막 프로에 들어선 애송이였으니까.
어차피, 마지막 곡.
목이 완전히 가 버린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그래. 해 보자.’
넘실대는 물결에 거친 고음이 천둥처럼 내리꽂혔다.
* * *
보안 카메라의 화면을 향한 스테빈의 입이 쩍 벌어졌다.
고르고 고른 신인 밴드들의 정체가 적힌 서류들이 책상 위에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다.
‘제시카 황’과 ‘대희 박’의 정체는 정말로 충격적이었다.
그 무명 밴드의 보컬리스트들이.
언젠가 동양 진출을 위해 조사했던,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가수들의 영어 이름일 줄이야.
뭣보다.
가장 경계했던 인간 밴드의 세션들이 만든 팀들이었다니.
어째서,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것인가.
스테빈이 얼굴을 감쌌다.
게다가 저 엄청난 성량을 가진 보컬은 또 누구란 말인가.
그, ‘테일’의 목소리를 그대로 집어삼키고 있지 않은가.
마치 기교 따위는 필요치 않다는 듯, 진성 그대로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악기 소리는 이미 무의미해진 지 오래였다.
거대한 파도가 몰아쳤고, 그 위에 천둥이 내려앉았다.
저 작은 스테이지를 중심으로 마치 거대한 태풍이 몰아치는 것만 같았다.
언덕 위 관객들이 고개를 들어 무대를 바라보는 것을 보니, 아마도 저곳까지 소리가 닿은 모양이었다.
도대체 저 음향 설비로 어떻게 저 언덕까지 닿은 거지?
만일 언덕에 막히지 않았다면…….
그대로 다이아몬드 스테이지의 관객석까지 닿았을 수도 있었다.
스테빈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저 순응해야 한단 말인가.’
신의 장난이 아니고서 어찌 이렇게 흘러갈 수 있는 거지?
게다가.
‘그’는 등장도 하지 않았는데?
파르르 떨리는 손가락 사이로 다른 모니터를 바라봤다.
다행히도 다이아몬드 스테이지는 가득 차 있었다.
‘저걸로, 마지막 자존심은 지킨 것인가.’
미국 록의 전설 바비 댄의 화려한 무대가 막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