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133
133화 한국의 포크 록
-제… 최고 장점이요?
-응!
-헤헤… 그게 뭔데요?
-만만해.
-아…….
-누구나 만만하게 덤빌 수 있는 목소리야.
-…칭찬이죠?
-당연하지.
* * *
듀엣이 끝나고 혼자서 무대의 조명을 독차지하게 되자.
사실 굉장히 떨렸다.
‘그렇게 연습했는데…….’
바들대는 손가락은 자꾸만 다른 현을 건드렸고, 그 어설픈 잡음은 고스란히 스피커를 타고 전해졌다.
당황해 가빠진 숨소리는 어찌 그리 큰지.
가까스로 두 번째 곡의 1절까지 마치고.
‘아차.’
2절의 시작을 놓쳐 버렸다.
‘어……?’
분명 자신은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관객석 여기저기서 자신이 불러야 할 노래가 흘러나왔다.
‘이… 이게… 떼창?’
진짜 유명한 뮤지션들이나 경험한다는…….
손가락의 떨림이 멈췄다.
초원 한가운데 주문진 라이브 카페의 전경이 펼쳐졌다.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해 왔던 자신의 공연은.
항상 떼창이었다.
* * *
관객들은 정말로 신기한 경험을 하는 중이었다.
‘내가 저 가수의 노래를 알고 있었나?’
게다가 가사까지도 생소한 한국어였다.
그런데도 자신도 모르게 따라 부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비록, 제대로 된 발음을 내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왜 이렇게 익숙하지?’
단순한 구조의 노래들은 그저 흥얼거리는 것만으로도 제법 따라 할 만했다.
점점, 노래에 심취하기 시작했고.
어느새 자신이 무대에 올랐다는 느낌이 들었다.
흥얼거림이 점점 커졌다.
가사만 정확하게 알 수 있다면 더 크게 부를 수 있을 텐데…….
‘잠깐…….’
지금 이 무대의 주인공은 자기 자신이었고.
어쨌거나 노래를 부르는 주인공 역시 자신이었다.
‘어떻게 부르던 상관없지 않나?’
그의 입에서 독일어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냥 곡의 분위기에 맞춰 부른 자기 회사 상사에 대한 뒷담화였다.
노랫소리가 훨씬 더 커졌다.
여기저기서 각국의 언어들이 마구 춤을 추기 시작했다.
* * *
희철을 비추는 조명.
그 하얀 빛이 무대 바닥에 만들어 낸 원 가장자리에 하얀 기타가 살짝 걸쳐졌다.
진혁은 자기만의 공연에 심취한 관객들을 바라봤다.
익숙한 광경이었다.
희철의 공연은 언제나 저랬으니까.
술에 취한 아저씨들은 가물거리는 가사를 마구 개사해서 부르곤 했었다.
그래도, 아무 상관없었다.
그 무대에 오른 자신만 만족했으면 그걸로 된 것이었다.
누군가의 환상적인 공연을 보다 보면 누구나 했을 법한 상상.
모두가 가지고 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아니, 생각조차 구체적으로 하지 않았던 깊숙한 곳의 욕망.
‘나도 저런 무대의 주인공이 되어 보고 싶어.’
수십만 명의 관객 중 하나가 아니라.
그 수십만 명을 내려다보는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
희철의 목소리를 만나면.
누구나 무대 위 주인공이었고, 누구나 슈퍼스타가 될 수 있었다.
이는 진혁이 할 수 없는 공연이었다.
만일 자신이 노래했다면 사람들은 감탄할지언정 끼어들 엄두도 내지 못했을 테니까.
저 멀리 언덕 위 그리고 관객석을 둘러싼 초원을 바라본 진혁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저기까진 예상 밖인데?’
여기저기서 작은 공연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언어조차 다른 이들도 흥얼거리기 시작했는데.
이 노래를 들으며 자랐고, 게다가 음악 좀 한다는 사람들이 참을 수는 없었을 터.
곳곳에 뿌려진 대한민국의 밴드들은 훌륭한 중계탑이 되어 주었다.
진혁이 해맑게 웃었다.
예상보다 더 크게 뒤집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단순한 코드 진행으로만 이어지던 음악에.
거칠고 묵직한 멜로디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 * *
[와… 저거 뭐냐.]└미쳤다. 두 곡 만에 떼창이야.
└나도 어느새 따라 부르고 있었음.
└난 방금 엄마한테 등짝 한 대 맞았음. 근데, 엄마도 옆에서 흥얼거리기 시작함.
└내가 이 노래 들었었나? 아재들 노래 아님?
└나도 처음 듣는 거 같은데, 묘하게 익숙함.
└진짜 신기한 게 저기 외국 애들은 어떻게 부르는 거야?
└나도 그게 의문이다.
└지금 우리 아빠한테 이어폰이랑 노트북 뺏김.
└와, 기타 하나만 있는데도 관객석이 전부 다 부르기 시작하니까 뭔가 웅장하다.
└무대랑 관객이랑 반대로 바뀐 느낌이야.
└아무튼 진짜 굉장하다.
└어? 스톤 브레인 라이브 버스킹 떴는데?
└진짜네? 라라 미용실도 있어.
└뭐야! 관객석인가?
└얘네도 따라 부르는 거네!
└어? 인간 회사 사이트 인원 제한 풀렸다!
└사람들이 분산돼서 그런가 봐.
└이거 뭐야! 합동 공연이야?
└대박!
한 영상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여기저기로 흩어졌고, 꽉 막혀 있었던 인간 회사의 홈페이지가 다시 문을 열었다.
비록 마이너 무대가 가까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관객석의 생생한 현장을 담은 영상들이 스트리밍 되기 시작했다.
* * *
무대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자신만의 느낌으로 공연을 펼치는 관객들의 모습은 실로 굉장했다.
각국의 언어가 제멋대로의 느낌으로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언제든 어디서든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음악.
진정한 의미의 대중음악이었다.
* * *
문화라는 것은 그 당시의 시대상, 대중의 분위기를 그대로 보여 주곤 했다.
어떤 세대건 큰 사건이 터지면, 예외 없이 대중문화도 출렁였었다.
단순하고 잔잔한 리듬.
반항이라곤 없이 그대로 순응할 수밖에 없었던 세대의 음악.
기타를 치던 진혁이 고개를 흔들었다.
침략, 식민지, 투쟁, 해방, 독립, 전쟁, 독재, 민중의 항쟁, IMF, 비폭력 시위, 탄핵…….
한국은 어쩌면.
근현대사로 봤을 때.
가장 짧은 시기 가장 다이내믹한 일들을 몰아서 겪은 나라였다.
진혁의 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리듬과 아름다운 언어로 감춰 둔, 당시 젊음의 울분이 섞이기 시작했다.
거친 멜로디가 희철의 서툰 연주에 불을 지폈고.
노래하던 희철이 눈을 부릅떴다.
‘올 게 왔구나.’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바다를 향해 떠나는 버스 차창을 열고.
이를 악물었다.
-잘 있어라. 이……!
* * *
“잘 있어라. 나의… 어? 뭐?”
노래를 따라부르던 옥환이 화들짝 놀라며, 주변을 둘러봤다.
기타를 치던 손도 멈췄다.
다른 사람들은 그다지 놀라지 않은 표정이었다.
‘아차! 여기 외국이었지.’
한국말을 알아들을 리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뒤를 보자, 눈을 동그랗게 뜬 멤버들이 보였다.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었구나.’
멍한 얼굴로 무대를 바라봤다.
이게 제정신으로 할 수 있는 짓인가?
스피커에서 갑자기 거친 멜로디가 쏟아졌다.
분명 같은 곡이었지만,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다.
뭔가.
익숙한…….
‘헤비메탈?’
어쿠스틱 기타였기에 그만큼의 강렬한 느낌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포크 록을 가장한 헤비메탈이 맞았다.
드럼도, 베이스 기타도 없이 이런 파괴적인 소리를 만들어 내다니.
목소리만 큰 생초짜인줄 알았는데…….
‘응?’
멀어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조명 가장자리에 흰색 기타가 걸쳐 있었다.
‘아… 서브 기타가 있었지?’
도대체 누구길래 이런 엄청난 연주를…….
-음악을 시작한 지 몇 달 되지 않으셨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공연도 하시고 굉장하네요.
-아… 선생님이 워낙 굉장하셔서요.
예전에 봤던 아침 방송의 인터뷰가 떠올랐다.
‘진짜 굉장한 선생님이네.’
갑자기 시작된 기타 속주가 심장을 마구 때려 댔다.
억눌린 감정.
뭔가 해야 할 말이 입속에서 맴돌았다.
자꾸만 갑갑하게 만드는 이 느낌에 옥환이 숨을 들이마셨다.
후렴구가 다시 들려왔고.
-잘 있어라. 이…….
“개자식들아!”
가슴이 뻥 뚫리며 무언가에서 해방되는 기분이었다.
원곡보다 훨씬 더 잘 어울리는 가사였다.
* * *
자신들의 모국어로 맘껏 노래하던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부분에선 저 쩌렁쩌렁 울리는 저 한국어로 소리를 질러야 한다는 것을.
어설픈 발음의 ‘개자식’이 여기저기서 울려 퍼졌다.
어른들의 간섭이 도를 넘어 복잡하고 갑갑한 도시를 떠나며 차창을 열고 지르는 소리.
잘 있어라, 나의 회색 도시여.
70년대 후반 금지곡으로 지정되었던 그 곡이었다.
* * *
[어… 맞지?]└미친 건가?
└저래도 돼?
└근데 뭔가 미묘하게 잘 들어맞는데?
└야 뭐 어때? 팝송은 가사에 Fuck이나 Shit도 막 들어가지 않나?
└맞아! 랩 하는 애들도 욕 엄청나게 하잖아?
└왜 다른 노래는 안 돼?
└그래도 외국인들이 다 보는 무대에서는 좀.
└왜? 난 통쾌한데?
└맞아. 가사 흐름상 저게 훨씬 더 잘 어울리는데?
└와, 근데 분위기 바뀐 거 작살이다.
└어쿠스틱으로 이게 돼?
└완전 반전이다.
└우리 아빠 헤드뱅잉 중.
└아재들만 부르는 노래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편곡하니까 죽이는데?
└근데, 이거 원곡자는 괜찮나?
* * *
“허허…….”
원로 가수들의 눈가 주름이 쫙 펴졌다.
“맞아. 나 저렇게 소리 지르고 싶었어.”
동그랗게 떠진 눈동자들이 한곳으로 모였다.
“잡혀가서 두들겨 맞을까 봐 못 했지.”
짧은 머리를 쓱쓱 쓸어내리던 그가 진백철을 바라봤다.
“그땐 다들 그랬지.”
“아직 어렸는데… 어른처럼 굴어야 했어.”
“그래. 객기도 좀 부리고 반항도 좀 해 봤어야 했는데…….”
“정말 무서웠거든.”
“그때가 우리 전성기였는데 말이야.”
“마음껏 소리치지 못했지.”
“뭐만 하면 잡아갔으니까.”
50년을 건너뛰어 저 멀리 미국에서 불린 그 노래는 너무나도 통쾌했고, 너무나도 후련했다.
준비도 하지 못한 채 어른이 되어 버렸던 청년들.
속에 있는 얘기를 해 보기도 전에 눈치부터 봐야 했던 그 젊음이 떠오르자 모두의 눈에 물기가 어렸다.
“개좆같은 놈들! 원래 이렇게 소리치려 했었어.”
“맞아. 씨부럴 놈들.”
칠순을 넘긴 노인들이 낄낄대며 웃기 시작했다.
* * *
“어? 칼리는?”
“몰라. 걔 신경 쓸 틈이 어딨어?”
제니스가 고개를 저었다.
제일 신나서 소리치더니 갑자기 사라질 줄이야.
“근데 진짜 장난 아니다.”
제니스는 유레이시의 시선을 따라 관객들을 바라봤다.
자신이 부르는 노래에 취해 이젠 아예 무대를 바라보지도 않았다.
어느새 관객석 전체가 무대로 변해 있었다.
“그냥 어설픈 꼬맹이인 줄 알았는데, 와…….”
저렇게 많은 사람이 자기 자신만의 노래를 부르며 어수선한 가운데, 저 우렁찬 목소리는 그만의 주파수를 유지하며 전혀 묻히지 않았다.
저들이 신나게 노래할 수 있는 것은, 그 뒤를 받치는 저 목소리가 자꾸만 부추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대를 바라봤다.
드럼도, 베이스도 없는데 어디 하나 빈 곳 없이 꽉 채우는 진혁의 기타 소리는 정말로 예술이었다.
정신없이 노래하는 관객들은 조명에 절반만 걸친, 저 하얀 기타를 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어떻게 어쿠스틱 하나로 저런 무대가 가능한 거지?”
“‘그’니까.”
“아…….”
“당연한 거야.”
유레이시가 피식 웃었다.
“아… 근데… 좀 아쉽다.”
이 굉장한 무대가 메인 스테이지에서 펼쳐졌다면…….
제니스도 유레이시의 말뜻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다못해 그 근처에라도 저 소리가 닿을 수 있다면…….
제니스가 다이아몬드 스테이지를 막고 있는 언덕을 아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 * *
다이아몬드 스테이지의 관객석 뒷자리의 사람들이 조금 웅성대기 시작했다.
제대로 들리지는 않았지만, 저 언덕 방향에서 자꾸만 들려오는 소리 때문이었다.
그저 가수의 노래를 잠시 따라 하는 싱어롱(Sing a long)인 줄 알았는데, 그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다.
‘도대체 어떤 밴드가 나왔길래…….’
자꾸만 궁금하게 만드는 소리였다.
‘어? 저건 뭐지?’
거대한 무언가가 관객석 뒤 작업 차량 전용 도로에 들어섰다.
다이아몬드 스테이지 바로 정면 맨 뒤에 멈춰 서더니.
“내 너희에게 자비를 베푸노라.”
거대한 스피커가 현란하게 반짝이기 시작했다.
* * *
곳곳에 은유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가사들 사이를 적나라한 감정으로 채웠다.
부드럽게 자극적이지 않아야 했던 멜로디를 강렬하게 바꾸었다.
젊음은.
아직 책임질 것이 없었기에 자유로워야 했고.
미숙했기에 자신의 감정을 더 솔직하게 표현해야 했다.
그리고 보통 그 객기로 만들어진 문화가 가장 뜨겁기도 했다.
만일 그들이 더욱 자유롭게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면, 현재 한국의 음악은 어떻게 되었을까?
서구권에서 저항과 반항의 록 음악이 울려 퍼질 때, 국민 정서를 생각한 정부의 압박에 건전 가요나 불렀어야 했으니…….
무대 아래 마구 출렁대는 물결이 보였다.
제멋대로 방향을 틀어 자기들끼리 쳐 대는 파도에, 진혁의 강렬한 멜로디가 마구 꽂혀 댔다.
어깨만 들썩이던 사람들이 머리를 흔들어 대기 시작했다.
어쿠스틱 기타로 만들어 낸 소리였지만, 이미 그 음악은 장르라는 벽을 넘어선 상태였다.
진혁이 손대긴 했지만.
원래 그들도 이렇게 노래하고 싶었을 것이다.
더 노골적으로.
더 직설적으로.
더 강렬하게.
더 시끄럽게.
불타오르는 젊음을 가감 없이 외치고 싶었을 것이다.
월드 뮤직 페스티벌.
메인에서 가장 동떨어진 구석.
제일 작은 포레스트 스테이지를 중심으로 강력한 태풍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한국 포크 록에 빠진 사람들이 저마다의 언어로 노래하고 있었다.
이 자연현상이 정말로 굉장한 이유는.
태풍의 눈만 수만 개에 달했기 때문이었다.
진혁이 방긋 웃으며 조명 아래로 걸었다.
네 번째 곡이 끝나 갈 무렵.
그가 드디어 스크린에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