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134
134화 지금 반항하는 거야.
바비 댄의 다섯 번째 곡이 시작될 때쯤, 다이아몬드 스테이지는 만석을 넘어섰다.
다른 스테이지에서 이동해 오는 사람들로, 지금도 관객석의 밀도는 높아지는 중이었다.
아마도 다른 메인 스테이지들의 앵콜이 끝나는 시점인 듯했다.
이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는 바비 댄이었고, 이제부턴 모든 메인 스테이지의 스크린에 그의 무대만이 비칠 시간이었다.
하위 스테이지를 제외한 제법 큰 스테이지들의 공연은 다들 막을 내렸다.
결국, 축제에 모인 관객 모두가 바비 댄의 공연을 보게 될 것이었다.
애초부터 이 축제의 목적은 정해져 있었다.
-전설의 귀환.
월드 뮤직 페스티벌의 주인공은 결국 바비 댄이었다.
모든 편의 시설들을 메인 스테이지에 모은 것도, 모든 스테이지와 연결된 동선도, 가장 넓게 만들어진 관객석도.
모두 그를 위한 안배였다.
축제를 빙자한 바비 댄의 단독 콘서트가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바비 댄은 흡족한 미소를 띠고 관객들을 바라봤다.
촘촘하게 짜인 판이었다.
자유를 외치며, 자신들의 의지로 무대를 선택해 즐기고 있었다고 생각했을 페스티벌이지만.
결국, 그들은 거대 자본이 만든 길을 그대로 걷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이번 축제에서 카폰 레코드가 제시한 길은 자신의 무대였다.
세상이 변화하며 음악의 방향도 많이 바뀌었다.
너튜브, 각종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
언제 어디서건 손가락만 몇 번 두드리면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음악을 만드는 것 또한 마찬가지였다.
컴퓨터의 발달로 누구나 손쉽게 진입하기 시작했다.
수도 없는 음악들이 마구 쏟아졌고, 그만큼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그 안에서 돋보이려면 더 자극적이어야 했고, 더 특별해야 했다.
어느 시점에서는 순수 음악과도 비견될 정도로 ‘예술’의 반열에 들어섰던 적도 있었다.
바비 댄 자신이 노벨 문학상의 후보에 올랐던 것도, 그런 상황을 잘 나타냈었다.
하지만.
최근의 대중음악은 더욱 원초적으로 변해 갔고, 그만큼 다시 천박해지기 시작했다.
히피 문화가 주를 이뤘던 록의 부흥기에 이미 겪었지 않은가.
세상은 천박하게 드러난 내면보다는 겉으로 보이는 품격을 더 중요시한다는 것을.
이대로면, 또다시 ‘예술’에게 외면당할 것이었다.
세계의 표준이 되어야 할 미국의 음악으로 대중음악의 중심을 잡아야 했다.
그리고 그 적임자는 자신뿐이었다.
올바른 감정과 고급스러운 외침으로 오염된 대중음악을 정제해야만 했다.
이제 이 축제에 모인 사람들의 눈과 귀는 모두 이 무대를 향했고.
세상을 정화할 신곡을 발표할 때가 되었다.
다이아몬드 스테이지의 모든 조명이 꺼졌다.
모든 소리가 멈췄고.
클라이맥스를 위한 잠시의 정적.
모든 관객이 두근대는 심장으로 지켜보고 있을 터.
바비가 기타를 잡았다.
기다림은 더욱 큰 기대를 낳는 법이었다.
이제 터뜨릴 시간…….
‘어?’
관객석 후미 맨 끝에서 뭔가가 번쩍이며 먼저 터져 버렸다.
* * *
처음 시작은 관객석 후미의 사람들이 고개를 돌린 것이었다.
그 거대한 스피커는.
무대를 비추던 모든 조명이 꺼진 상태였기에 더욱 화려하고 현란하게 번쩍였다.
다른 스테이지에서 다이아몬드 스테이지를 향해 걷던 사람들도 유일하게 빛나는 그곳을 먼저 바라봤다.
‘마지막 이벤트인가?’
수많은 사람의 탄성은 전염되듯 퍼져 나갔고, 마침내 다이아몬드 스테이지 관객석의 절반 가까이가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뒤로 갈수록 높아지는 지형이었기에 모두가 후미 언덕의 가장 위 홀로 빛나는 무언가를 목격할 수 있었다.
스크린도 없었기에 누군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번쩍임 앞에 사람의 실루엣이 나타났다.
삐이이이이.
잠깐의 노이즈가 울린 뒤.
-내 너희에게 자비를 베푸노라.
저 쇳소리가 섞인 – 대충 들어도 익숙한 – 거친 목소리.
‘칼리?’
모두의 머리에 물음표가 생김과 동시에.
800W급 우퍼가 네 개, 15인치 트위터가 여덟 개, 16인치 미드레인지가 여섯 개.
단독으로도 세컨드 스테이지의 음향 설비에 맞먹는 그의 F-150이 다이아몬드 스테이지를 향해 최대 출력을 뿜어냈다.
정적을 깨는 강렬한 기타 소리에.
결국 다이아몬드 스테이지를 향하고 있던 모두가 뒤로 돌아 언덕 위를 바라보게 되었다.
* * *
어쩌면 모두의 머릿속 한구석에서 그의 등장을 예감했는지도 모른다.
이미 인간 밴드의 모든 세션이 유닛으로 각자의 팀을 짜 무대에 오른 상태였기에 ‘혹시?’라는 기분 좋은 두근거림으로 무대를 바라보기도 했었다.
그렇게 대비했던 포레스트 스테이지의 관객들이었는데.
저마다 자기들이 부르는 노래에 심취하느라 미처 무대를 바라보지 못했다.
뭔가 곡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느꼈고, 뒤늦게 하나둘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동시에 울리지 못한 탄성이었다.
웅웅거리다 뒤늦게 터진 함성은 마치 도돌이표를 마구 이어 붙인 듯,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 열기의 리듬에 맞춰 그의 기타 소리가 강렬한 멜로디로 화답했다.
그의 손가락이 기타의 목을 타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어쿠스틱 기타였지만, 파격적인 곡조였기에 전혀 부드럽지 않았다.
복선도, 누구나 예상할 법한 예보도 있었지만.
대비 따위는 하나 마나였다.
거친 풍랑에 관객 모두가 휘청였다.
예견되었던 태풍은 상상 이상으로 강력했고, 너무나 거대했다.
* * *
다이아몬드 스테이지의 총책임자는 황당한 얼굴로 무대 위 바비 댄을 바라봤다.
그가 기타를 잡고 연주를 시작함과 동시에 모든 조명을 켜며 불꽃을 쏘아 올려야 했다.
그런데 엉뚱한 곳에서 먼저 연주가 시작되었다.
그 바람에 멈칫한 바비의 손만을 바라보며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조명도 켜지지 않은 거대한 무대.
그 위의 주인공도 자신과 같은 표정이었다.
굉장히 애매한 상황이 된 것이다.
지금 바비가 연주를 시작한다 해도 뒷북을 치는 느낌이고, 분명 계획했던 효과는 가져오지 못할 것이었다.
그렇다고 이렇게 마냥 멈춰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고개를 돌려 저 멀리 홀로 번쩍이는 곳을 바라봤다.
-치직. 관객들이 너무 밀집해서 진입이 어렵습니다.
-차랑 진입로 쪽도 막혔습니다.
-자체적으로 나오는 소리라서 근접하기 전엔 끊을 수가…….
진행요원들의 보고가 무전기를 타고 흘러나왔다.
모두 좋지 않은 소식들뿐이었다.
다시 바비 댄을 바라봤다.
이 축제의 피날레를 장식해야 할 포크 록의 전설은 양팔을 늘어뜨린 채 멍하니 앞만을 보고 있었다.
그가 연주를 시작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시 한번 침을 꼴깍 삼켰다.
무대 위 멈춰 선 ‘전설’이 이해되기도 했다.
지금 저 언덕 위에서 흘러나오는 기타 연주는 자신이 듣기에도 굉장했으니까.
최소 세 명 이상이 만들어 내는 기타 소리는 정말로 정교했고, 완벽하게 맞물렸다.
거세게 몰아치는가 싶다가도 무언가에 억눌린 듯 푹 꺼졌다가 다시 세차게 뿜어졌다.
이 엄청나게 다이내믹한 멜로디와 리듬이 단 한 번의 어긋남도 없이 이어졌다.
-마이너 무대의 공연이라고 합니다.
‘포레스트 스테이지?’
한국에게 할당된 무대였다.
너튜브는 먹통일 텐데?
어떻게 저 언덕 위에서 그 무대를 중계할 수 있는 거지?
아니, 뭣보다 어째서 칼리가?
지금 한국 스테이지엔 누가 올라가 있지?
수많은 물음표가 떴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바비…….’
해답을 알아낸다고 지금 이 최악의 상황이 바뀔 리는 없었으니까.
이미 일은 벌어졌고.
이젠 ‘전설’의 결단만이 남았다.
바짝 마른 입에 더 이상 고여 있는 침은 없었지만.
다시 한번 목젖을 압박했다.
* * *
처음 번쩍였을 때, 바비는 자신이 놓친 다른 연출이 있었는지 고민했었다.
지금 일어나야 할 모든 주목받을 만한 것들은 이 무대를 위한 것이어야 했을 테니까.
그래서 멈칫했고.
뒤이어 울린 목소리에 무대에 오른 이후 처음으로 얼굴에서 미소가 지워졌다.
절대, 자신을 위한 연출이 아니었다.
서둘러 연주를 시작하려다가…….
저 위에서 들려온 기타 소리에 팔을 늘어뜨리고 말았다.
얼핏 두세 명의 협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바비는 확신할 수 있었다.
저 연주는 한 명이 내는 소리였다.
절대 여러 사람의 소리가 모인 것이 아니었다.
여러 명이 저렇게나 완벽하게 연주할 수 있다면 그 또한 경악할 일이었다.
관객들의 시선과 귀를 빼앗긴 분함 따위를 느낄 새도 없이 그대로 그 연주를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어디서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지 따위는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저 몰아치는 거친 풍랑에 숨을 죽일 뿐.
‘어찌 정화할 수 있단 말인가.’
젊음의 치기 어린 반항이 소용돌이치다가 갑자기 억눌렸다.
너무나도 원초적이고 적나라한 감정에 바비의 가슴도 답답해졌다.
입에서 천박한 욕지거리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은 갑갑함이 극에 달했을 때.
거친 스트로크가 심장을 관통했다.
살아오면서 이렇게까지 후련하게 뻥 뚫린 적이 있었던가?
자신도 모르게 거친 욕설이 튀어나올 뻔했다.
연주만으로 이런 감정의 전달이 가능하다니…….
바비는 벌어진 입을 닫지 못했다.
모든 의문을 접어 둔 채 그 연주에 집중했다.
절대 따라 할 수 없는 고난도의 테크닉이었지만.
‘B-Major에, 음도는…….’
굉장히 단순한 코드 진행이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바비! 더 늦으면…….
시끄럽게 울어 대는 마스터 이어폰을 빼 버렸다.
‘내가 예술을 논할 자격이 있었던가?’
자신이 옳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모두 다 뭐였단 말인가.
세상의 시선? 고귀하고 품격 있는 누군가의 평가? 대중음악과 순수 음악의 경계? 클래식의 영속성?
바비는 고개를 저었다.
세월이 지나고 나이를 먹으며 겪은 경험들이 진리인 줄 알았는데.
어쩌면 그것에 사로잡혀 진짜 본질을 잊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었다.
록은 타협되어서는 안 됐다.
본래.
저항과 자유의 상징이었다.
그리고 치기 어린 반항은 순수했기에 천박한 것이다.
품위 있게 고상한 척하는 음악은 너무나도 많았다.
록까지 그럴 필요는 없었다.
자신은 로커이지 않은가.
틈도 없이 촘촘하던 연주에 의도적인 틈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누구라도 들어오라는 듯.
저렇게 손짓하는데 그 내민 손을 잡지 않을 수는 없었다.
기타를 잡기 전 먼저 손을 뻗어 총책임자를 저지했다.
눈을 마주쳤고 고개를 저었다.
눈치가 빠른 사람이니 지금 이 제스처가 뭘 뜻하는지는 잘 알 것이었다.
이 축제의 피날레는 다이아몬드 스테이지가 아니었다.
바비가 기타를 잡았다.
모든 조명이 바비를 비추며 켜지지도 않았고, 무대 뒤에서 폭죽도 터지지 않았다.
눈을 감고.
거세게 몰아치는 태풍에 몸을 실었다.
그대로 순응하며 손가락을 움직이자.
심장이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그래. 이게 록이지!’
중절모를 벗어 던졌고.
조명이 비치지 않아 어두운 그의 얼굴이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밝은 미소가 번졌다.
* * *
젊음은 그랬다.
충동적이고, 상대의 입장보단 자신의 처지가 더 중요하고, 그랬기에 어리석은 선택을 하기도 했다.
뭘 잘 몰랐고, 신중하게 골랐다고 생각했던 길은 매번 멀리 돌아가곤 했다.
그래서 세상이 제시한 길을 따르는 것이 안전해 보였는지도 모른다.
그중 별종들은 있기 마련이었다.
더 무모하게 부딪쳤고, 평평한 길보단 거칠고 험한 길에 흥미를 느꼈다.
아직 젊어 서툴렀지만, 노골적이고 거칠게 불을 뿜었고.
그 설익은 뜨거움은 안전한 길 위의 미지근한 이들에겐 위로가 되어 줬다.
그게, 록이었다.
한때.
뜨거워지기도 전 강제로 미지근해야만 했던 젊음이 있었다.
전 세계가 대중문화 부흥기를 맞이할 때, 반대로 암흑기를 맞이해야 했던 이들이 있었다.
이 무대는.
그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미지근함 속에 뜨거움을 숨겨 담았던 그들에게 주는 작은 선물이었다.
세월은 지났지만.
아직도 세상은 ‘누군가’들의 의도에 의해 끌려가고 있었다.
작게는 이 축제 역시 그랬다.
의도가 빤히 보이는 여러 가지 장치.
애초부터 맘에 들지 않았다.
‘당신은 주저했을 거야.’
어쩌면 열아홉 진혁도 준비되지 않은 채 어른이 되어 버린 걸 수도 있었다.
따뜻한 마음, 어울림, 지친 이들을 향한 위로…….
단 한 번도 자신의 이야기는 하지 못했다.
‘당신의 경험에 이끌려 만들어 낸 음악들이었지.’
열아홉 진혁은 뭘 잘 모르고 싶었다.
그래서 조금 더 충동적으로, 조금 더 무모하게 소리쳐야 했다.
영등포역의 즉흥 공연, 산부인과에서의 콘트라베이스. 사무실에서 흥얼거린 콧노래.
그랬을 때 ‘기적’은 일어났었다.
진혁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맞아. 지금 반항하는 거야.’
세상 가장 다이내믹한 포크 록이 그래스 밸리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