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135
135화 한국 대표 밴드
갑자기 터져 나온 어쿠스틱 기타의 솔로 무대.
사람들은 그 신들린 연주에 그대로 휘말렸다.
마구 터져 나오는 젊음의 패기는 그 시기를 지나온 사람에겐 누구라도 아련한 시절이었으니까.
맘껏 젊음을 누리며 삐뚤어진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추억에 빠졌고.
그렇지 못하고 세상에 순응했던 사람들은 아쉬운 마음에 더 빠져들었다.
맘껏 뜨겁게 불타오르는가 싶더니 갑갑하게 짓누르기 시작했고.
절정에 달하자.
모두의 입이 주문을 외우듯 달싹였다.
아까 들었던 그 한국말이 입속에서 맴돌았다.
뻥 하고 가슴이 뚫리는 쾌감에는 그 언어가 주는 어감이 가장 잘 어울렸다.
언덕 위.
포레스트 스테이지의 관객석을 벗어나 가장 후미에 자리한 사람들이 갸우뚱하며 뒤를 돌아봤다.
저 멀리, 또는 근처의 작은 앰프에서만 들려오던 소리였는데.
훨씬 더 큰 소리가 어느 순간부터 들려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뒤를 돌아보자.
번쩍이는 자동차 한 대가 보였고, 그 뒤로 엄청난 인파가 모여들고 있었다.
더 이상 그들은 후미가 아니었다.
* * *
희철은 이미 기타에서 손을 뗀 지 오래되었다.
어찌 저 엄청난 연주에 똥물을 튀긴단 말인가.
그 어지러웠던 악보들이 떠올랐다.
-응, 그건 신경 안 써도 돼.
신경 쓰고 싶어도 자신의 실력으론 감도 잡지 못할 음표들의 향연이었다.
-넌, 너의 목소리만 내면 돼.
희철이 마이크를 잡았다.
그 당시의 상황, 그 젊음의 괴로움, 그렇게 탄생한 음악들.
사실 그 어지러운 음표들만큼이나 감이 오질 않았다.
다만 지금 선생님이 내뿜는 감정만큼은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거칠고 아름다운 멜로디에 자신의 목소리를 얹기 시작했다.
* * *
무대를 볼 수 있는 이들은 하얀 기타를 멘 그의 정체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동양인의 생김새라 당장 알아보지 못했던 이들도 커뮤니티를 통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지금은 무대를 직접 보지 못하는 청중들이 훨씬 더 많아진 상황이었다.
신들린 기타 연주에 빠져 미처 물음표를 띄우지 못했던 이들 중엔 바비 댄의 깜짝 이벤트라 여긴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다이아몬드 스테이지는 여전히 깜깜했다.
뒤늦게 축제 관련 커뮤니티 게시판을 확인한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이게 한 명의 연주라고?’
그리고 그 주인공은…….
-신을 경배하라!
언덕 위 칼리가 소리쳤다.
그랬다.
그 ‘래빗’이 무대에 오른 것이다.
환호가 터짐과 동시에 다이아몬드 스테이지의 거대한 스피커도 울리기 시작했다.
조명도 들어오지 않아 아직도 어두웠지만.
분명히 그 방향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신들린 어쿠스틱 연주에 또 다른 화음이 끼어들기 시작했다.
전해지던 감정은 더욱더 거세게 몰아쳤고, 사람들의 심장이 쿵쾅대며 뛰었다.
두 기타의 호흡이 완벽하게 들어맞는 순간.
묵직한 저음의 목소리가 언덕 위 스피커에서 터져 나왔다.
이미 포레스트 스테이지를 즐기던 관객들은 이 목소리의 주인공을 알고 있었지만, 이제 막 이 무대를 접한 사람들은 또다시 혼란에 빠졌다.
‘보컬은 또 누구지? 그리고 이 언어는?’
뭔가 엉성하면서도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주파수의 목소리가 낮게 깔리며.
메인 보컬의 자리를 남겨 둔 채 관객들에게 손짓하는 느낌이었다.
그 거부할 수 없는 손짓에.
사람들이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언제 이런 환상적인 연주에 맞춰 노래해 볼 수 있단 말인가.
언어 따윈 상관없었다.
이 음악이 주는 느낌은 온전히 알고 있었으니까.
모두가 각자의 언어로 자신의 젊음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갑갑하게 내려앉는 부분에선, 어쩔 수 없이 얽매였던 세상의 시선이 가슴을 눌러 댔다.
답답한 부분이었지만, 사람들은 이다음 멜로디를 알고 있었다.
이제 이 꽉 막힌 가슴이 뻥 터질 순간이었다.
뭐가 되었건 크게 외쳐야 했다.
자신만의 가사로 노래하던 이들이 잠시 멈칫했고.
-이 개자식들아!
언덕 위 칼리의 스피커의 소리와 언덕 너머 관객들의 목소리가 함께 울려 퍼졌다.
‘아…….’
다이아몬드 스테이지, 아니 이젠 모든 메인 스테이지의 관객들이 그 통쾌한 주문을 알게 된 것이다.
후렴구가 다시 들려왔고.
답답함의 끝에.
그래스 밸리에 모인 모두가 소리쳤다.
다이아몬드 스테이지의 거대한 스피커에서도.
전설의 목소리가 관객들과 함께했다.
* * *
미처 상황을 파악하지도 못하고.
친구의 피날레를 응원하러 다이아몬드 스테이지에 도착한 스테빈이었다.
이 엄청난 난장판을 벌인 주인공은, 의심할 여지 없이 ‘그’일 것이다.
멍한 표정으로 무대 위, 어둠 속의 친구를 바라봤다.
언젠가 본 얼굴이었다.
아주 먼 옛날, 낡은 창고에서 들었던 엉망진창의 기타 소리가 기억났다.
조율도 엉망이었고, 통기타의 한쪽 귀퉁이가 부서져 소리도 둔탁했었다.
정제되지 않은 언어와 음정으로 알콜 중독자인 아버지를 힐난하던 열네 살 소년.
입술은 터져 있었고, 눈두덩이는 부어 있었지만.
맞다.
그때도 저렇게 빛나는 얼굴이었다.
아마, 이십 대 초반까지도 유지되었던 얼굴이었던 것 같다.
어느새 삶은 윤택해졌고, 인기는 더욱 많아졌으며, 모두에게 추앙받는 존재가 되어 가면서…….
잃었던 얼굴이었다.
높이 올라갈수록 아래는 더욱 아찔했다.
두려움이 생기자 눈치 봐야 할 것들이 늘어만 갔고, 친구와 자신은 그게 올바른 길이라며 합리화했다.
감정은 절제하는 것이 미덕이라 여기며.
가짜 성숙함으로 포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것이 진짜 본모습이라고 여기기 시작했다.
스테빈의 눈이 촉촉하게 젖어 들었다.
‘나도 그땐 저런 표정이었을까?’
바비의 음악을 퇴짜 놓은 음반 회사 사장의 차에 펑크를 내고 킥킥댔을 때?
빨간 줄로 죽죽 그어진 가사를 그대로 라이브 무대에서 불러, 관계자들의 입이 쩍 벌어졌을 때?
바비가 조금 잘나가기 시작하자 고주망태가 되어 찾아온 ‘아버지’라는 짐승의 코에 한 방 먹였을 때?
잊고 있었던 젊음이 생각나자 지금 자신의 모습이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후렴이 다시 돌아왔고.
고개를 돌린 바비와 눈이 마주쳤다.
‘너도 해 봐.’
그가 활짝 웃었다.
‘가슴이 뻥 뚫릴걸?’
바비가 마이크에 입을 가져갔다.
그의 인생에서 저렇게 어두운 무대가 있었던가?
아니, 뭣보다 누군가의 기타에 서브로 들어갔던 적은?
그런데, 어째서 저렇게 빛나는 거지?
스테빈의 입이 달싹였다.
벌써 두 번이나 들었던 언어였다.
뜻은 알지 못했지만.
분명 좋은 의미의 단어는 아닐 것이다.
‘하긴, 이 맥락에서 바른말이 나와선 안 되지.’
눈을 부릅뜨고.
이젠 노화로 쉬어 버린 목소리로 세상을 관조하는 관념들에게 소리쳤다.
“이! 개자식들아!”
이렇게 통쾌하다니…….
바비와 눈이 마주친 스테빈이 활짝 웃었다.
* * *
칼리는 몰려든 관객을 흡족하게 바라봤다.
어째, 자신의 공연 때보다도 훨씬 많은 것 같았다.
저 멀리 플래티넘과 크리스탈 스테이지의 인원들은 불 꺼진 무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리 들었던 피날레 공연의 연출이 기억났다.
바비 댄의 공연이 모든 메인 스테이지에 울린다고 했던가?
아마, 저 무대들의 스피커에서도 이 음악이 흐르고 있을 것이다.
살짝 아쉬웠다.
저 무대들만 아니었다면 모두가 자신을 향했을 테니까.
아무렴 어떤가.
모두가 그의 부름에 응답하고 있지 않은가.
‘그나저나, 이 목소리는 언제 들어도 끼어들고 싶단 말이지.’
세상 만만한 목소리.
어떤 목소리가 덧붙더라도 어울리는 음색이었다.
다이아몬드 스테이지에선 그 ‘전설’조차 그에 맞춰 노래하고 있지 않은가.
곳곳에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이 보였다.
저마다 마구잡이로 불러 대고 있었지만, 모두가 다 잘 어울렸다.
칼리가 입꼬리를 올리며 마이크를 들었다.
‘여긴 내 구역이다.’
칼리의 목소리가 젊음의 반항을 부추기기 시작했다.
* * *
어딘가에선 헤비메탈로.
어딘가에선 블루스로.
어딘가에선 얼터너티브로.
어딘가에선 멜로딕 데스메탈로…….
앰프가 준비된 이들이 즉흥적인 공연을 펼쳤다.
자신만의 느낌으로 해석된 곡들은 장르를 초월한 지 오래였다.
그들이 소리를 키워 노래한다고 해서 관객들이 그들만을 바라보는 것도 아니었다.
다들 자신만의 무대를 만들어 노래하는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멜로디와 리듬이었기에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섞기만 하면 됐다.
그렇게 세계 곳곳의 언어로.
반항하기도, 투덜대기도, 짜증도 내다가 한순간 모두의 언어가 통일되었다.
누가 정해 준 것도 아니었는데.
이 구절은 무조건 이렇게 불러야 했다.
가장 통쾌한, 입에 착 붙는 주문 같은 소리였다.
모두가 정신없이 노래하는 중, 깜깜했던 세 개의 메인 스테이지가 환하게 밝아졌다.
대형 스크린이 동시에 켜진 것이다.
까까머리에 까맣고 앳된 동양 소년이 노래하고 있었다.
그리고 하얀 기타를 현란하게 연주하는.
‘그’가 해맑게 웃었다.
* * *
“그래, 세컨드 스테이지 쪽도 영상 연결이 가능하지? 바로 연결하고……. 그래, 아직 공연 중인 곳은 서드 스테이지던가? 아니야. 굳이 그들의 공연까지 끊을 이유는… 아… 그들도 이 곡을 부르는 중이라고? 마이너 스테이지들도? 음원은? 어떻게 소리를 가져간 거지? 아… 인간 회사… 그래. 일단 꺼져 있는 스크린은 모두 그 화면으로 채워.”
스테빈이 끊어진 핸드폰을 바라봤다.
자신이 굳이 나서지 않아도.
그래스 밸리는 이미 한국 스테이지의 음악으로 가득 찬 상태였다.
“허허…….”
뭐라도 더 크게 만들어 보려고 했는데.
이건 숟가락 하나 올린 정도밖에는 되지 않았다.
바비 댄의 공연을 기획했을 때만 해도 메인 스테이지 세 곳의 동원 인원을 60만 명까지 잡았었다.
그만큼이 최대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축제에 모인 모두가 그 작은 포레스트 스테이지의 음악에 취한 상태였다.
마지막 날 집계 인원 약 80만 명.
무려 80만 명이 모두 다 그들의 노래를 부르는 중이었다.
관객뿐 아니라 아티스트들까지…….
이미 이 축제는 그의 음악을 뒤집어쓴 상태였다.
이런 공연은 살아오며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무대 위 보컬의 노래를.
듣는 것을 넘어서 자신만의 언어로 불러 대게 만들다니.
그저 따라 부르는 수준이 아니었다.
관객 모두가 자신만의 무대에서 공연에 열중하는 중이었다.
스테빈이 피식하고 웃었다.
감히, 대항할 생각을 했다니…….
이 얼마나 가소로운 치기였던가.
그가 전야제 날 버스킹을 했던 그때부터 이미 결과는 정해져 있었을 것이다.
인정하고 나니 이리도 편한 것을.
이제 세상의 대중음악은 ‘그’를 중심으로 돌아갈 것이다.
마치 그렇게 정해져 있었다는 듯 아주 자연스럽게.
고개를 들어 다이아몬드 스테이지의 거대한 스크린을 바라봤다.
그는 여지없이 해맑게 웃고 있었다.
* * *
[스테빈의 재평가.]-처음부터 마지막에 한국을 피날레로 세울 생각이었던가? 마이너 스테이지에 올린 건 페이크?
└애초에 기획된 연출이란 말이지?
└그렇지 않고서 칼리의 등장부터 바비 댄까지 가능할 리가 없잖아?
└어쩌면 처음 전야제 때부터 기획된 걸 수도 있어.
└래빗이 이렇게 등장할 줄이야.
└스테빈 다시 봤는데?
└하긴, 저건 절대 우연으로는 불가능하지.
└근데 정말 대단하다.
└한국의 음악이 이렇게 다이내믹했던가?
└그 나라 남자 대부분이 태권도 유단자야.
└거긴 다들 총 쏠 줄 알아. 모두가 군인 교육을 받는다고 들었어.
└그 나라의 근대 역사도 꽤 다이내믹해.
└최근 한국 음악을 알게 됐는데, 굉장히 다양했고 다들 실력이 있었어. 괜히 ‘래빗’ 보유국이 아니었어.
└어쨌거나 이번 월드 뮤직 페스티벌은 정말 놀라움의 연속이네. 스테빈으로서도 지금까지 중에 최고의 축제일걸?
└맞아. 이런 빅 이벤트를 숨기고 있었다니. 정말 즐거워 보인다.
└관객 모두가 주인공으로 보여. 공연은 무대를 바라봐야 한다는 관념들이 뒤집힌 것 같아. 저 넓은 초원 모두가 즐겁게 즐기고 있어.
└바비 댄도 신났는데? 최근에 그가 중절모를 벗어 던진 적이 있었던가?
└모든 스테이지가 다들 신났어.
└인간 회사 사이트 아니었으면 이 멋진 장면들을 놓칠 뻔했네.
└진짜 이번 월뮤페는 역대급이다.
해외 커뮤니티의 게시판에서 찬사가 쏟아졌다.
‘그’가 등장할 수도 있겠다는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엄청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그랬기에 더 큰 충격이었고, 고스란히 기분 좋은 흥분을 불러왔다.
전 세계가 스테빈의 엄청난 기획에 혀를 내둘렀다.
어떻게 막판까지 숨길 수 있었지?
그리고 그의 성격상 메인 스테이지라면 몰라도 제일 구석 마이너 스테이지에서 ‘그’에게 피날레를 맡기다니?
모든 것이 예상을 뛰어넘었다.
그렇기에 네트워크상의 관객들 역시 더욱더 뜨겁게 달아올랐다.
누가 봐도.
이번 월드 뮤직 페스티벌은 역대급으로 성공한 축제였다.
* * *
진혁의 연주와 희철의 목소리에 모든 관객이 함께 노래했다.
잘 짜인 동선도 이젠 의미가 없었고.
스테이지별로 나뉜 관객석도 의미가 없었다.
산이건 들이건 그저 음악만 들려오면 그곳은 그대로 공연장이 되었다.
이미 할당되었던 삼십 분이 넘어 버린 공연이었다.
이 환상적인 공연이 이제 끝날 때가 다가온 것이었다.
관객 모두의 시선이 포레스트 스테이지를 향했다.
‘어?’
문득 공연 순서를 확인한 관객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마치 이대로 축제가 마무리되는 느낌이었는데…….
‘어? 한 팀 더 남았는데?’
‘이게 피날레가 아니었나?’
* * *
포레스트 스테이지의 무대 아래.
바들거리며 떨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졸지에.
월드 뮤직 페스티벌에 모인 모든 관객 앞에서 피날레를 장식해야 할 처지가 된.
(표면상)한국 대표 밴드.
레몬티 멤버들이 사색이 되어 무대와 관객들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동해 소년’의 마지막 곡이었다.
얼른 올라가 악기를 세팅하며 듀엣으로 무대를 이어받아야 했다.
창명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떨리는 손을 들어 얼굴을 감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