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136
136화 짖어 댔다
“줄까?”
“아…….”
테일이 황금색 무언가를 내밀었다.
“근데, 그거 미리 먹어야 효과가 있는 거 아닌가요?”
“그래?”
“후…….”
창명은 테일의 목소리가 울리던 무대에 오르지 못해 주저하던 희철을 바라보며 속으로 했던 소리를 다시 되뇌었다.
‘이젠 도망치지도 못해.’
상황을 들어 보니 지금 이 축제 모든 무대에서 포레스트 스테이지의 소리가 울리고 있다고 했다.
80만 명을 앞에 둔 공연.
사실 꿈만 같은 일이다.
단, 자신들을 보러 온 사람들이었다면 말이다.
지금 무대에 올라 이 환상적인 분위기를 잘라야만 하는 역할은 정말 악몽이었다.
졸지에.
역사상 최고의 축제에서 최악의 피날레를 맡게 될 줄이야.
어느 정도 뒤집힐 수도 있다는 건 예상했지만…….
이건 천지개벽의 수준이었다.
‘하… 이건 악역이잖아.’
수십만 명 앞에 서는 무대는 언제나 상상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문득 희철이 예상 관객 수에 놀랐던 때가 떠올랐다.
그때 그의 500명과 자신의 500명이 다름에 비소했던가?
지금 자신에게 다가오는 수십만 명과 희철이 바라보는 수십만 명은 또 다를 것이다.
창명이 고개를 저었다.
작년 인천에서 열린 록 페스티벌의 관객이 6만 명이었다.
이 무대보다도 훨씬 더 큰 무대였다.
그런데…….
언덕과 초원까지 새까맣게 몰려든 관객들을 바라봤다.
아마도 저 언덕 너머에는 지금 눈에 보이는 인원의 열 배 정도는 더 있을 것이다.
이곳을 바라보지 않는다 뿐이지 모두가 자신의 목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세계 정상급의 아티스트들까지.
정신이 아찔했다.
3월 1일 고속도로 위에서 펼쳐진 무대를 부러워했었다.
회사에서 그들의 공연을 영상으로 만나며 얼마나 아쉬워했는지.
자신에게도 그런 기회가 생긴다면…….
몇 번이고 중얼거렸었다.
‘일단 올라가자.’
갑작스러운 기회였고.
악역은 확실했지만.
그래도 도망칠 수는 없었다.
창명이 떨리는 다리에 힘을 줬다.
* * *
[와, 진짜 어마어마하다. 이게 진짜 처음부터 계획된 거라고?]└외국 커뮤니티에선 이미 기정사실로 되었음. 스테빈 찬양하고 난리도 아님.
└진짜 갓끼 님 클라스가 지릴 뿐이다.
└동해 소년도 진짜 굉장하다. 쟤 데뷔한 지 몇 달 되지도 않았잖아?
└진짜 매력 있는 목소리임. 저 시끌벅적한 데서도 쟤 목소리는 묻히질 않아.
└진혁느님 연주도 워낙 대단하지만, 결국 노래는 쟤 혼자 부른 거잖아.
└그러고 보니 보컬 중에 동해 소년만 신인이야.
└그러게? 그렇게 욕했는데 이런 무대를 만들어 낼 줄이야.
└생방송 오늘 아침에 댓글이나 쓰러 가야겠다.
└이미 거기 게시판 터졌음.
└외국 애들한테는 이미 한국의 밥 딜런이라는 칭호도 생겼음.
└그 자막이 현실이 됐네.
└잠깐. 이게 마지막 팀이 아니잖아?
└아! 레몬티.
└까먹고 있었다.
[이 순간 가장 불쌍한 한국 인디 씬의 기둥.]└창명이 도망간 거 아님?
└만약 도망갔대도 이건 인정.
└누구라도 도망감.
└한국 대표라서 마지막 무대였는데, 이거 진짜 어떻게 수습하냐.
└이건 제니스도 수습 못 함.
└인정.
└지금이야! 얼른 튀어!
└너희가 오를 무대가 아냐!
└진짜 어떡하냐 걔네들.
└아, 딱 여기서 피날레로 끝나는 게 완벽한데.
└얘들아, 아무리 그래도 응원은 하자.
└세상에, 레몬티가 쩌리로 취급당하는 무대가 있다니.
└그래도 작년 인천 록 페스티벌에서는 헤드라이너였는데.
└고인의 명복을.
└야! 고인 드립은 좀.
└아무튼, 좀 짠하다.
* * *
조명 바깥, 드럼이 세팅되었고, 메인 앰프와 악기들이 연결되었다.
평소라면 훨씬 더 빨랐을 작업이었지만, 떨리는 손들은 그렇지 못했다.
기타를 멘 창명이 조명 밖에서 희철의 등을 바라봤다.
무대에 오르기 전보다 훨씬 더 넓고 높아 보였다.
단 한 번의 공연으로 레벨 자체가 달라진 것이었다.
웃음이 나올 타이밍이 절대 아닌데 피식하고 웃고 말았다.
이제 희철에게 있어서 500명이라는 숫자는 어떤 의미가 되어 있을까?
마지막 곡이 시작되었다.
희철이 만들었다는 그 곡이 잔잔하게 울렸다.
여전히 기타는 서툴렀고.
자세도 어정쩡했지만.
자신 있게 내지른 목소리는 예전보다 훨씬 더 큰 울림을 가져왔다.
꾸밈없이 순수한 그의 목소리가.
바다를, 파도를, 구름을, 하늘을 노래했다.
창명이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후, 하고 내뱉으니 달짝지근하면서 쌉싸름한 우황청심환의 향기가 진동했다.
그러고 보니.
희철은 이걸 먹었던가?
쓸데없는 물음을 던지며 기타를 꽉 잡았다.
군대라는 곳이 있는 한국에서 특히 통용되는 말이 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창명의 손가락이 움직이며 환한 조명에 들어섰다.
어쿠스틱 기타의 맑은 소리에.
날카로운 기계음이 섞이기 시작했다.
* * *
자신들만의 무대에 빠져 있던 사람들 모두가 가장 가까운 스피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저 만만한 목소리와 감정을 공유하던 중이어서 그랬을까?
청량하게 펼쳐진 바다가 눈앞에 보이는 것만 같았다.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에 끈적한 짠내가 섞인 듯한 느낌도 들었다.
지금까지의 젊음과는 사뭇 다른 감정이 밀려왔다.
도시와는 동떨어진, 어느 구석지고 좁은 동네의 청년이 자신의 세상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세상이 낯설지 않았다.
넓게 펼쳐진 수평선과 끝없이 높은 하늘의 이야기였다.
그가 바라본 수평선은 모두가 아는 수평선이었고.
그가 바라본 하늘 역시 고개를 들면 누구나 볼 수 있는 하늘이었다.
국가로 나뉘어 있었지만.
결국 세상은 같은 풍경을 공유하고 있었다.
이곳에도 별은 뜨고, 그 작은 동네에도 별은 떴다.
이리저리 방향을 달리했던 관객 모두가 같은 곳을 바라보며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 * *
언제나, 누구에게나 행운과도 같은 기회는 오기 마련이었다.
갑자기 닥쳐 온 기회를 잡으려면.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만 했다.
준비되지 않은 이는 그대로 그 기회를 날려 버릴 수밖에 없다.
‘나는 준비되어 있었던가?’
창명이 희철의 옆에 다가섰다.
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를 잡는다고 했다.
그것도 그 피지컬이 ‘소’였기에 가능한 소리였다.
치와와가 뒷걸음질 치다가 쥐를 잡겠는가.
어쨌거나 뭐가 되었건 준비되어 있어야 기회란 것도 있는 법이었다.
이 까무잡잡한 까까머리는 저런 굉장한 감성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자신이 대표로 있는 인디 레이블.
지금껏 올랐던 무대들.
15년간 발표해 온 앨범.
국내에서 활동하는 인디 밴드 중 록 페스티벌 역대 최다 헤드라이너.
한국 인디 씬의 기둥.
이런 것이 준비였던가?
한국에서 이 무대를 바라보고 있을 사람들을 생각하니 숨이 턱턱 막혀 왔다.
테일 선배와 황지선 누님이 나눈 대화를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린 여기서 철저하게 신인이야.
사실, 처음부터 정체가 밝혀졌던 것은 자신뿐이었다.
문득 자신을 돌아봤다.
어느새, 자존감은 바닥이고 자존심만 머리 꼭대기에 올려놓은 관종이 되어 버렸다.
그러니 무대가 두려울 수밖에.
‘준비’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을 지웠다.
처음 결성했던 날의 ‘레몬티 차일드’만을 떠올렸다.
아무것도 없던 시절.
순수하게 무대에 오르는 것만이 목표였던 그 스무 살.
관객들은 아무 기대도 하지 않았고, 그랬기에 떨리면서도 더 편했던 첫 공연.
지금.
사람들은 우리에게 뭘 기대하고 있을까?
창명이 고개를 돌렸다.
희철의 옆에서 해맑게 웃고 있는 그가 보였다.
비교 대상 자체가 아니지 않은가?
그 누가 우리에게 기대한단 말인가.
레몬티는 오늘 한국 스테이지의 라인업에서 가장 가벼운 이름이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보잘것없음을 인정하자.
기타를 연주하는 손이 가벼워졌고,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턱을 치켜들자.
멋도 모르고 자기가 최고인 줄만 알았던 젊음의 무모한 자신감이 샘솟았다.
뭐든 될 수 있었고, 무엇이든 할 수 있었던 사고뭉치 펑크 밴드.
창명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희철의 잔잔한 파도가 철썩이고 있었다.
이제 이 무대를 받아야 할 때가 왔다.
‘나도 알아! 동해 바닷가!’
강렬한 일렉트릭 사운드가 터져 나왔다.
잔잔한 파도가 높게 일렁이기 시작했다.
‘이게 대한민국 펑크야!’
아무리 유행이 지난 장르라지만.
본래, 가장 미친 듯이 뛰어노는 장르는 펑크록이었다.
창명이 모니터 스피커를 밟고 뛰어올랐다.
* * *
한때, 한국에서는 인디 음악의 저변 확대를 위해 주말 음악 순위 프로그램에 인디 밴드를 위한 코너를 마련했던 적이 있었다.
그렇게 한국의 밴드 문화가 한 걸음 발전하는 줄 알았는데.
생방송에서 사고가 터져 버렸다.
저녁 시간 온 가족이 함께 보는 프로그램에서 중요 부위를 노출해 버린 것이다.
흥에 취한 젊음의 치기로 넘기기엔 너무나도 큰 사건이었다.
대중들에게 보여 줄 수 있는 ‘자유’는 책임질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허용된다.
당시의 사건은 인디 음악에 대한 대중들의 싸늘한 시선에 정규 방송에서 쫓겨나는 대가로 책임을 질 수밖에 없었다.
그 후 인디 음악은 다시 지하로 처박혀야 했고.
몇 년 동안이나.
퇴폐적이고, 통제되지 않는 고삐 풀린 망아지들의 음악으로 대중에게 인식되어야만 했다.
실력이 조금 있는 이들은 서둘러 메이저 기획사와 계약을 맺기 시작했고.
결국 보컬만 남은 채 팀들은 와해되곤 했다.
인디였던 과거를 세탁해야 하는 상황도 종종 생겼다.
실력자들이 하나둘 사라졌고.
그렇게 한국의 인디 신은 사람들에게 외면받는 영역이 되어 갔다.
그러던 중.
‘드림캐쳐’라는 인디 레이블 전문 기획사의 등장은 아직 지하에 남아 자유롭게 음악을 하고 싶은 이들에겐 오아시스나 다름없었다.
홍대에 자리했던 라이브 클럽이 대부분 EDM 전문 클럽으로 탈바꿈하며 더 이상 설 무대가 없어진 밴드들이 모여들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어쩌면 아이돌이 장악한 한국의 근대 대중음악 한가운데, 밴드 음악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그 회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금은 너무나도 유명해진 ‘나비계곡’도 그 레이블에서 첫 앨범을 냈었고, 박재경 역시 SJ 엔터테인먼트에 들어가기 전 ‘드림캐쳐’에서 활동했었다.
실력 좀 있는 인디 밴드들은 모두가 그 회사로 몰려들었고.
국내에서 열리는 모든 록 페스티벌이 ‘드림캐쳐’와 공동으로 주최해야 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그래서 뽕이 좀 찼던가…….’
뛰어올랐다가 바닥에 착지한 창명이 입술을 질끈 물었다.
모두가 레몬티 차일드를 선구자로 생각했지만.
사실, 자신은 비겁자였다.
당시 먼저 메이저로 올라간 임도유를 보며 겁이 덜컥 났었다.
음악 프로그램의 무대에 오르면 아이돌 팬들에게 냉담한 반응을 받아야 했고, MR의 사용을 강제당하기도 했으며, 뭣보다 그곳에선 다시 꼬리가 되어야만 했다.
자신은 바닥부터 다시 기어 올라갈 자신이 없었던 ‘겁쟁이’였다.
그래서 남겨졌다.
인디 음악을 끝까지 지키겠다는 명분은 사실 변명에 불과했다.
비겁한 겁쟁이가 할 수 있었던 건.
또 다른 비겁자들을 모으는 것이었다.
메이저로 가기엔 애매한 실력으로 그 중간 어귀에서 변명 거리를 찾던 이들을 모은 것뿐이었다.
그들에게도 명분은 필요했으니까.
가지 못한 게 아니라, 자유롭게 음악을 하고 싶어서 남은 것이라는…….
배고픈 자신들은 예술을 향해 달리는 것이며, TV 속 그들은 긍지를 버리고 자본을 향해 무릎 꿇은 것이라 비난하기도 했다.
그렇게.
비겁한 제자리걸음을 정당화하려 했다.
더 엇나갔고, 더 과격해졌으며, 더 파격적인 퍼포먼스로 그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어필했다.
‘그게 정답이었던가?’
사실 그 모든 것은 바닥에 깔린 자존감을 감추려는 발버둥에 불과했다.
인디에선 그런 처절한 날것을 좋아했으니까.
자신은.
다른 장르들과 함께 경쟁하며 대중들의 앞에 서는 것이 두려웠던 한낱 겁쟁이에 불과했다.
갑자기 서게 된 무대.
갑자기 맞닥뜨린 엄청난 대중들.
갑자기 닥쳐 온 메이저.
이 엄청난 무대 위에서, 겁이 많은 개가 할 수 있는 건.
벌벌 떨리며 내려가려는 꼬리에 힘을 주어 빳빳이 세우고, 송곳니가 더욱 잘 보이게 으르렁대는 것뿐이었다.
온 힘을 다해.
창명이 짖어 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