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137
137화 피날레.
‘무대 체인지……?’
청년이 순박하게 펼쳐 놓은 바다와 하늘에 빠져 있던 스테빈이 정신을 차렸다.
‘아차.’
이대로 환상적으로 인상 깊은 마무리를 생각했었다.
그런데.
‘한 팀이 더 있었지.’
완전히 잊고 있었다.
‘뭐였더라… 레… 레몬?’
처음 초대장을 보냈던 그 밴드였다.
스크린에선 거친 기타 소리를 내며 무대 위로 뛰어오르는 그가 보였다.
스테빈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한국 스테이지에 모든 것을 몰아주며 축제를 완벽하게 성공적으로 끝내기 직전이었다.
저 마지막 밴드가 과연 ‘그’만큼 대단한 무대를 만들 수 있을까?
한국에선 잔뼈가 굵은 밴드라고 듣긴 했었지만.
비교 대상이 방금 자리를 내준 ‘그’였다.
아마도 ‘로니아’나 ‘제니스’ 그리고 ‘칼리’까지 동원한 ‘바비 댄’이어도 장담할 수 없었다.
다행히 장르는 펑크록이었다.
적절한 지원만 있다면 연출로 분위기를 띄울 수는 있을 터.
서둘러 공용 무전기를 들었다.
“모든 무대 연출자들 잘 들어! 지금 피날레 진입이다.”
펑크록은 터져야 할 부분이 명확했다.
“먼저 포레스트 스테이지 책임자는 세트 리스트 연출 포인트 기획서 공유하고…….”
수많은 경험을 가진 연출자들은 충분히 라이브로 호응이 가능할 것이다.
“포인트마다 남은 폭죽 전부 쏟아부어. 불꽃 연출 팀 얼른 포레스트 스테이지로 움직여! 바로 이동이 가능한 레이저 차량이랑 조명들도 전부 그쪽으로!”
무대 체인지가 완전히 끝나기 전에 준비를 마쳐야 했다.
이렇게 성공적인 축제를 막판에 망칠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마지막은 최고의 무대로 만들어야 했다.
사람들의 머릿속엔 그 마지막이 각인될 테니까.
밴드의 실력은 평균 이상만 되어도 괜찮았다.
스테빈의 지휘 아래 이 페스티벌에 남은 총역량을 모두 쏟아부을 테니까.
‘20년 만인가?’
“나도 움직이지.”
자신이 직접 현장을 뛰어다니게 되는 상황까지 발생하다니.
왠지 모를 흥분 상태에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 * *
희철에게 질세라 거친 파도를 마구 불러 대던 창명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기타 치던 손을 멈췄고.
고개를 돌려 희철을 바라봤다.
마지막 소절은 저 까까머리의 몫이었다.
-나만의 낭만이여.
모든 조명이 꺼졌고.
창명의 심장은 더욱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희철과 눈이 마주쳤다.
자신도 실감이 나지 않는지 예의 그 어리숙한 얼굴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좀, 뿌듯해하며 거들먹거려도 될 텐데.
너무나도 순박한 얼굴에 창명이 피식 웃었다.
두근거리던 가슴이 살짝 진정되었다.
주먹을 들어 희철에게 내밀었다.
‘최고였어.’
두 주먹이 맞닿았다.
그 주먹 위를 두 손이 감쌌다.
“피날레네?”
그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기대할게, 한국 대표!”
애써, 지우고 또 지웠는데…….
그의 말에 창명의 심장이 다시 쿵쾅거리며 숨이 가빠졌다.
‘아… 엄지 올리지 말라고…….’
남의 속도 모르는 그가 응원의 손짓을 하며 멀어졌다.
진정된 줄 알았던 다리가 다시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어둠 속 멤버들의 얼굴을 바라봤다.
하얗게 질린 얼굴들.
‘후…….’
판은 있는 대로 커졌고.
이제 무대 위엔 자신들만 남았다.
꼴사납게 짖어 대야 할 테지만.
‘해야지 뭐, 별수 있나.’
창명이 기타를 잡고 이를 악물었다.
드럼의 발 베이스가 둥둥 울리며 신호를 줬다.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꽉 주고.
코드를 잡고.
피크를 움직였다.
찢어지는 기타 소리가 울리자.
‘왁! 깜짝이야!’
지금까지의 무대에선 없었던 조명이 번쩍하며 터졌고, 그와 동시에 폭죽이 여기저기서 쏘아 올려졌다.
현란한 레이저가 관객석에 수놓였고, 무대 앞에선 불꽃이 터져 나왔다.
메인 스테이지만큼이나 어마어마한 연출에 관객들이 소리를 질러 댔다.
‘잠깐, 사운드가 원래 이렇게 컸었나?’
기타를 연주하며 옆을 살피니.
무대만큼이나 큰 스피커들이 트럭에 실린 채 그들의 음악을 뿜어내고 있었다.
어리둥절할 시간이 없었다.
그간 헤드 라이너로 섰던 무대들을 모두 합친다고 해도 이 정도의 연출은 없었다.
겁먹은 개가 왕왕 짖어 대기만 해도.
사람들을 열광시킬 무대였다.
창명이 스탠드 마이크를 향해 점프했다.
그에 맞춰 쏘아진 폭죽이 그래스 밸리 하늘에서 터지기 시작했다.
올해 역대급 월드 뮤직 페스티벌의 피날레 무대가 시작되었다.
* * *
[저 한국 밴드는 누구지?]└레몬티라는데? 한국에서 계속 활동해 오던 밴드야.
└제법 중견 밴드였네? 꽤 하는데?
└와, 래빗갓을 제치고 헤드 라이너를 차지했어?
└지금 검색해 보니까 한국 인디 신의 기둥이라는데?
└스테빈이 아무한테나 마지막 무대를 맡기진 않았겠지.
└와, 에너지가 보통이 아니야.
└그보다 조명 터지는 거 봐. 이건 흥분할 수밖에 없겠는데?
└맞아. 화면으로 봐도 이렇게 환상적인데 저기 있는 사람들은 미칠 지경이겠다. 저거 봐 다들 미쳐서 뛰어놀잖아.
└카폰 레코드도 이제 한국 진출인가? 그래서 헤드 라이너를 저 밴드로 한 거야?
└응? 뭐가 그렇게 돼?
└저 보컬이 한국을 대표하는 인디 레이블 사장이래.
└아. 그래?
└일본 지사 철수하고 손절 친다는 소문이 있던데, 한국으로 바로 진입하려는가 본데?
└하긴, 지금 세계에서 가장 핫한 나라잖아.
└이젠 더 굉장해졌지.
└맞아. 이번 축제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저 한국 스테이지니까.
└철 지난 펑큰데도 진짜 신난다.
└맞아. 한국도 이런 펑크 밴드가 있었네?
└뭣보다 한국어 어감이 너무 좋아.
└그 딱딱 끊기는 맛이 있어!
└아무튼 피날레까지도 예상 밖이네.
└이번 월뮤페 진짜 굉장하다.
└완전 한국의 독무대야.
└스테빈이 진짜 대인배지. 일본에서 그런 수모를 겪었는데 말이야.
└맞아. 정말 생각도 못 했다니까.
└그걸 또 꽁꽁 숨겼다가 마지막 날에 이렇게 터뜨리다니.
└진짜 스테빈이 굉장한 거야.
└괜히 문화 권력의 정점이겠어?
└오! 보컬 웃통 찢었다.
└난 한국이 조용한 나라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
└와! 당분간 또 펑크 붐이 일겠는데?
└진짜 신난다!
* * *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었다.
밤하늘에 화려하게 펼쳐진 폭죽에 용기가 생겼고.
소리치며 뛰어오르면 어김없이 터져 나오는 불꽃에 몸은 더 가벼워졌다.
이는 멤버 모두가 느끼는 심정이었다.
벌벌 떨며 이를 악물고 짖어 대는 것밖에 하지 못할 줄 알았던 개는.
어느새 우두머리 사자가 되어 무대를 누비며 포효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몇 날 며칠이고 노래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주먹을 치켜들자 어디선가 또 폭죽이 쏘아 올려졌다.
월드 뮤직 페스티벌을 구성하는 모든 것이 자신을 위해 움직였다.
마치 세상의 중심이 된 것 같은 기분.
정말로 최고였다.
너무나도 아쉬운 마지막 포효를 끝으로.
기타를 벗어 던지고, 넘실대는 관객들을 향해 날아올랐다.
남아 있던 모든 불꽃이 터지자 모든 곳이 대낮처럼 밝아졌고.
그래스 밸리 전체에서 떠나갈 듯한 함성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 * *
“야. 쟤 우냐?”
“누나, 놔둬요. 아마 밤새 울걸요?”
지선과 테일이 어깨를 들썩이는 창명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사실 그가 짊어졌어야 할 부담감은 그들로서도 짐작하지 못할 정도였다.
졸지에 힘도 하나 못 쓰는 한국 대표가 되어 이리저리 끌려다녔다.
내색하진 않았지만, 마음고생도 많았을 것이다.
그 ‘진혁’이 뒤집어 놓은 무대 바로 다음에 올라야 한다니.
얼마나 두려웠을까.
얼마나 겁났을까.
그 엄청난 압박을 모두 견뎌 내고, 마지막까지 모든 열정을 쏟아 냈다.
어쩌면, 최악으로 끝났을 수도 있을 무대를 환상적으로 끝마쳤다.
그 북받치는 감정을 어찌 참을 수 있을까.
보안요원들에게 둘러싸여 대기실로 돌아오자마자 아이처럼 터뜨린 울음은 충분히 이해되고도 남았다.
바라보는 자신들도 가슴이 먹먹했으니.
“와… 근데… 우리 진짜 굉장했다. 그치?”
황지선이 창밖 무대를 바라봤다.
아직도 흥분이 가시지 않은 관객들이 여기저기서 어울리고 있었다.
곳곳에서 버스킹이 벌어졌고, 흥에 겨운 이들이 춤을 춰 댔다.
“진짜, 꿈만 같다.”
“그 양반이랑 엮이면 그렇더라고요.”
테일도 지선의 시선을 따라 밖을 바라보았다.
지금까지는 한국 안에서만 벌어졌던 일들이었기에 실감하지 못했는데.
이번 공연으로 확실히 알게 되었다.
세계의 음악은 어느새 한국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엔 당연하다는 듯 ‘그’가 서 있었다.
“자자! 우리도 뒤풀이해야지!”
황지선이 창명의 어깨를 꽉 잡았다.
“가서 좀 놀면서 울어!”
어깨가 더 들썩이기 시작했다.
“아! 왜 애를 더 울려요!”
“나이 서른도 더 넘은 사내새끼가…….”
“울 만하지! 나라도 울겠다. 그리고 우는 데 남자 여자가 어딨어요?”
“근데 진혁이는 또 어디 갔냐?”
지선이 머리를 긁적이며 딴청을 폈다.
“아까 전화받고는 진행요원들이랑 어딜 가던데…….”
“아…….”
지선이 입구 쪽을 바라봤다.
어디로 갔을지 예상되긴 했다.
마지막에 모든 지원을 한국 스테이지에 쏟았다.
그 의미는 아마도 완벽한 패배를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니, 패배가 아니라 거부할 수 없는 순응이겠지.
“SJ 대표님들도 그쪽으로 갔다던데요?”
“그래?”
지선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얼마나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을지.
그 얼굴이 상상되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 *
“네. 맞습니다. 레몬티를 제외하면 모두 우리 회사 애들입니다.”
석준이 방긋 웃었다.
사실 계약서 하나 작성하지 않았지만, 인간 회사에 등록되어 있긴 했고.
인간 회사는 어디까지나 SJ 엔터테인먼트의 자회사였다.
이젠 덩치가 훨씬 더 크긴 했지만, 그래도 부모는 부모 아닌가.
틀린 말은 아니었다.
천천히 소파에 등을 기대며 다리를 꼬았다.
맞춰졌던 서로의 거리가 멀어지자 상대의 몸이 앞으로 쏠려 왔다.
확실히 이 자리의 주도권은 자신에게 있었다.
스테빈의 그 무의식적인 행동에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질 뻔했지만, 겨우 참아 냈다.
“정말 놀랐습니다. 한국의 음악이 이 정도로 대단하게 발전했을 줄은…….”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그 포크 록 무대에서 흘러나온 곡 대부분이 40년 전 곡입니다.”
“아… 그 당시에도 굉장했군요.”
스테빈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래, 저 표정이 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 ‘미스터 조’에게는…….”
“안 그래도 얘기해 놨습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해 본다고 하더군요. 뭐, 제 말 한마디면 꿈뻑 죽는 녀석이라서… 제가 키웠거든요.”
“아! 그렇습니까?”
“조금 전에도 공연 끝나자마자 신나서 찾아 대는데… 무슨 애도 아니고…….”
석준이 짐짓 근엄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한국에서 처리해야 할 일들도 많은데, 자기 공연은 꼭 보러 와야 한다고 해서… 바쁘지만 어쩌겠습니까. 제가 챙겨야죠. 거, 살살 하라니까 축제를 아주 뒤집어 놓기나 하고… 허허. 아직 배울 게 많은 놈입니다.”
산통 깨는 멧돼지도 밖에 내쫓았겠다, 있는 대로 기분을 내는 석준이었다.
“그럼, 단독 콘서트에 대한 부분은 기대해도 되겠군요.”
“물론입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하. 제가 부르면 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뛰어오는 놈이라서…….”
반짝이는 스테빈의 눈을 보며 한껏 턱을 세웠다.
그 문화 권력의 정점이 자신에게 매달리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너무 나갔나? 이 시끼가 안 한다고 하면 어떡하지?’
뭔가 약간, 아니 많이 불안하긴 했지만, 지금이 아니면 누리지 못할 호사였다.
석준이 짐짓 손목시계를 바라보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무슨 바쁜 일이라도…….”
“아… 저를 찾는 사람이 워낙 많아서… 아직 ‘3분’ 정도까지는…….”
십 년 넘게 묵혀 뒀던 뒤끝이 작렬하려는 순간.
노크 소리와 함께 갑자기 문이 열렸고.
“회장님, 모셔 왔습니다.”
‘어라?’
석준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어? 아저씨도 와 계셨네요?”
지금 나타나면 안 되는 인물이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미국엔 언제 왔어요? 연락하시지.”
‘네가 안 받았잖아. 그리고 너 빼곤 나 여기 온 거 다 아는데…….’
석준의 동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남의 속도 모르고 해맑게 웃는 얼굴 뒤로, 멧돼지 한 마리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얄미운 표정으로 등장했다.
정말 한 대 치고 싶은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