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139
139화 청년과 성인 사이
“이건 그냥 경고야.”
“경고요?”
“잘 좀 생각해 봐, 멧돼지 시끼야!”
“아! 진짜 그냥 설명하면 되지, 꼭!”
동구가 성질을 팍 냈지만, 석준은 아랑곳하지 않고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야. 잘 봐 봐. 인간 밴드 멤버들은 하나도 안 건드렸어.”
“어… 그렇네요?”
“막말로 충기나 장하만 건드려도 쓸 기사가 한 트럭인데 말이야.”
석준이 핸드폰의 화면을 톡톡 두드렸다.
“테일이 저건 아마도 예전부터 캐비닛에 있던 걸 그냥 들춘 거야. 저거 크게 터뜨릴 생각도 없어. 저거 제대로 터지면 법무부 쪽도 몇 죽어 나갈 텐데? 적당히 겁만 주는 용도야. 그리고 음저협이나 음산협이나 때 되면 저렇게 두드려 맞는 거 한두 번이야? 그냥 서열 정리 정도라고.”
“아… 그럼 우리는요?”
“야. 너 그때 주주들한테 공지 띄웠잖아? 기억 안 나? ‘토끼’급 초대형 신인이라는 멘트 넣었지? 그때 우리 거래할 때 분명히 공시도 했고, 그 순간부터 내부 정보가 아닌 거야. 뭐, 보기에 따라서 도의적 책임이야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거 법적으로 해석하면 복잡한 문제거든. 어차피 진흙탕 싸움 될 걸 이렇게 덤빈다? 귀찮기 싫으면 알아서 기어라! 딱 그 정도라고.”
“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까도 말했다시피 HB는 아직 하나도 안 건드렸어. 우리 주식 누구 줬어? 진혁이 계약금으로 줬잖아? 사실 건드리려면 없는 것도 그럴싸하게 만들어 내는 게 저놈들 일인데, 그걸 놓쳤다고? 그건 이번 싸움으로 얻어 낼 전리품에는 상처를 내지 않겠다는 의미야. 결국 저 기사들을 만들어 낸 뒷배가 원하는 건 진혁이라는 거지.”
“와…….”
감탄하는 멧돼지의 얼굴을 잠시 감상한 석준이 미간을 좁혔다.
이 정도로 갑자기 언론의 기조가 바뀌었다는 건 뭔가 윗선의 노선이 정해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메인에 올라온 기사 대부분이 친여 성향의 언론사였으니까.
이렇게 일사불란하게 역할을 나눠 동시에 터뜨리는 일은, 그 정도 급이 개입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온통 긍정적인 분위기였지 않은가.
“정부라…….”
그렇게 진혁을 회유하던 인간들이 갑자기 노선을 경고로 변경했다는 것은 누군가가 자극을 줬다는 얘기였다.
분명, 한국에서 뭔가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아마도 이번 공연과 관련된 어떤 다툼이 벌어졌다는 말인데…….
“개자식들… 진짜… 갑자기 왜 그러지?”
동구가 중얼거린 욕설에 석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그거였구나.”
“네?”
“진백철 그 양반… 다 늙어서 불타올랐군…….”
머릿속에 한국의 상황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이거… 머리 좀 아프겠는데…….”
적당히 굽히면 쉽게 넘어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문제는 온갖 감정이 응어리진 ‘노장 아티스트’와 타협이라는 단어 자체를 잘 알지 못하는 ‘해맑은 녀석’이 선봉에 선 당사자라는 것이었다.
저들이 보낸 경고에 두려움 따위를 느낄 만한 인간들이 아니었다.
그리고 권력이 가진 자존심은 때론 상식 밖의 일을 일으키곤 했다.
그들은 언제나 상식 위에 존재해 왔으니까.
“아무래도… 피바람이 불겠는데.”
“네?”
“경고가 통하지 않으면 되든 안 되든 찍어 누를 거야.”
그간 그들이 해 왔던 방식이었다.
“들어가게 되면, 일단 숙이고 상황을 좀…….”
석준의 말에 동구가 도끼눈을 떴다.
“이… 이 시끼 눈깔이 왜 그래?”
“거! 아는 척은 엄청나게 하더니 고작 대책이 그거요?”
“이 멧돼지 시끼가 진짜! 이게 얼마나 복잡한 일인데…….”
“그딴 말은 나도 하겠다!”
“이 시끼가!”
“아, 뭐! 다 털리면 다시 시작하면 되지! 어차피 예전에 태각산 축제 망했으면 우리 지금 개털 아뇨?”
“그게 말이라고…….”
“아니! 진혁이는? 걔가 언제 누구 서포트 받아서 떴나? 자기 혼자 기타 들고 너튜브만 찍었어도 일억 뷰는 거뜬했을걸?”
“어…….”
“걔가 언제 이것저것 재고 노래하던 애였나?”
석준이 움찔했다.
들을수록 맞는 말이긴 했기 때문이었다.
“지금이 무슨 70년대도 아니고, ‘너 노래하지 마!’ 이러면 못 하는 시댄가?”
“그… 그렇지?”
“우리나라는 말이오! 원래 민중이 더 센 나라 아냐?”
“너 말이 점점 짧아…….”
“지금 누가 누굴 겁내야 하는데! 삼일절 그 광경을 보고도 뎀벼? 뎀비길?”
“하긴…….”
“뭘 숙여, 숙이긴! 콱 들이받아 버리지! 어디 우리 진혁이를 가지고 협박해?”
때론 생각이 좀 없는 게 명쾌한 해답을 가져오기도 했다.
석준이 멍한 눈으로 포효하는 멧돼지를 바라봤다.
“그래? 안 그래?”
“어… 그렇긴 한데…….”
석준의 손이 투실한 멧돼지의 볼따구를 잡았다.
“그건 반말이고 시끼야!”
동구의 볼살을 꼬집어 흔들어 대던 석준의 눈빛이 빛나기 시작했다.
* * *
바다 건너 축제의 열기가 식기도 전, 대중 음악계의 굵직한 의혹들이 하나씩 터지기 시작했다.
한국 스테이지에 올랐던 아티스트에 대한 관심이 최고조에 올랐던 시기였기에 더 주목받았고, 그 열기는 그대로 언론사들이 원하는 쪽으로 방향을 돌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기사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들이 많았는데.
연이어 때려 대자 댓글들의 반응도 조금씩 변화했던 것이었다.
만일 진혁과 그 멤버들까지 끼어 있었다면 조금 다른 문제가 됐겠지만, 철저하게 그들은 배제하고 주변을 털어 댔다.
먼저 돈에 민감한 사람들의 감정을 건드렸다.
[교묘한 SJ 엔터테인먼트. 법망을 빠져나갈 구멍을 미리 만들어 둔 정황 포착.]└이건 좀 아니지 않나? 그냥 거저먹은 거잖아?
└아무리 공시했다고 해도 부정거래 아니야?
└맞아. 공지도 애매하게 했더구만.
└SJ 실망이네.
그리고 이미 터질 대로 터졌던 과거의 사건을 다시 들먹였다.
[테일의 재판과 관련된 또 다른 증언]└근데 집행유예 나오지 않았나?
└초범이 아니었을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잖아. 상습범이면 처벌이 더 컸겠지.
└맞아. 일반인이었으면 저게 집행유예로 끝날 일인가?
└뭐, 연예인이 특권도 아니고.
└구치소에서도 호화롭게 생활했다던데?
그리고 마지막으로 은근슬쩍 ‘유교’가 기반인 국민 정서를 자극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한국의 대중문화, 이대로 괜찮은가.]-표현의 자유라는 탈을 쓰고 책임지지 못할 언어들을 내뱉는 국내 래퍼들의 가사가 도를 넘기 시작하며 청소년들의 바른 언어 사용에 해를 끼쳐 오며… 비속어는 물론이고, 알아듣지도 못할 줄임말에…….
대중문화라고 함은 나라의 전체적인 수준을 나타내기도 하므로 기본적으로 올바른 방향을 지향해야 함이… 때문에, 드라마 같은 곳에서 흡연 장면들도 사라지는 마당에 무분별한 욕설이나 비속어 사용이 문제가… 대한민국에선 아직 합법화되지 않은 문신 또한 대중들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하여…….
거대 언론사들의 기사와 칼럼들이 뿌려졌고 –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 사람들의 머릿속엔 며칠째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던 한국 스테이지의 영상이 떠오르게 되는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그저 노래로 들었을 때는 너무나 통쾌한 단어였지만, 국민의 정서에 있어서는 ‘나쁜 말’이라는 인식이 더 지배적이었다.
더군다나 그 ‘말’을 세계의 젊은이들이 그대로 배워서 불러 대고 있었다.
언론은 그 부분에 집중하여 세계적인 스타가 출현했다는 긍정적인 소식에 깜빡 잊고 있었던 그 반감을 더욱 부추겼던 것이었다.
그저 열광하던 사람들의 머릿속에 ‘그래도 도는 넘지 말아야지.’라는 인식을 심어 주는 데 성공한 것이다.
딱 이 정도까지의 거부감만 있으면 됐다.
머리를 숙이고 들어왔을 때 써먹으려면 너무 많은 생채기를 내선 안 됐으니까.
이번 축제로 세계적인 스타가 되어 버린 ‘동해 소년’의 뒤에 진혁이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그 무대를 트집 잡는다는 것은, 진혁을 타깃으로 삼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기사가 나간 후 여론 변화 추이를 조사한 보고서를 앞에 둔 곽채군이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이건 게임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다.
진백철과 원로들이 그런 식으로 나온 김에 ‘그’에게도 지금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확실하게 알려 줘야 했다.
평소 국가 행사에 비협조적이었던 테일을 노골적으로 때려 댔고.
진혁의 소속사인 SJ 엔터테인먼트를 흔들었다.
그저 의혹만 몇 개 던졌을 뿐인데 이미 그 회사의 주가는 내려가기 시작했다.
갑자기 황금기를 맞이한 대중 음악계였다.
지금 돌아가는 분위기는 이제 막 타오르기 시작한 불꽃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후배들을 끔찍하게 생각하는 진백철이 과연 이런 노골적인 공세를 얼마나 버텨 낼지.
“네, 대표님. 지금 보고서 보고 있는데, 하루 만에 여론이 기울고 있습니다.”
-저도 대충 봤습니다. 그래서 기자 회견은 언제 한다고 합니까?
“곧 연락이 오겠죠.”
-선을 그었다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우리 당의 정체성과 무관하지는 않습니다. 당시의 시대상이 다시 도마 위에 오르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차일드 애플처럼 너무 커 버린 후엔 손 쓰기도 어렵습니다. 한번 겪어 봤지요?
“네. 대표님.”
-총선이 바로 내년입니다.
곽채군의 눈썹이 꿈틀댔다.
공천.
장관직을 내려놓은 뒤, 자신의 거취를 생각해야 할 때였다.
“최대한 빠르게 수습하겠습니다.”
-네. 그러셔야 할 겁니다.
끊어진 핸드폰을 바라보던 곽채군이 굳은 표정으로 보고서를 넘겼다.
일단 귀국한 후 상황을 보며 강도를 조금씩 높여 갈 생각이었다.
여차하면 사용하지 않을 생각으로 철저하게 매장해 버릴 계획까지도 있었다.
‘국위선양이라…….’
그것도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어야지 붙일 수 있는 말이었다.
걸림돌이 된다면.
하등 쓸모없는, 그저 노래나 부르는 딴따라일 뿐일 테니.
곽채군이 비릿하게 미소 지었다.
* * *
“그럼 한국에는 언제쯤 들어오실 생각이십니까?”
“늦어도 한 달 안에는 들어갈 겁니다. 이번에 맡은 캠페인만 마치고 바로 가겠습니다.”
“그럼, 그때까지 최대한 진행하고 있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미스터 정.”
앨런과 정태강이 손을 맞잡았다.
“그… 방향은 확실히 정하신 거죠?”
“저는 일단 그렇게 확신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한국에서 뵙겠습니다.”
앨런의 대답에 정태강이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
이번 무대로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가 직접 노래하지는 않았지만.
그 편곡과 가사는 분명 진혁이 손댄 것이었고, 그 의도가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사회의 시스템을 조롱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지도층에 대한 반감이었다.
차근히 정리해 보니, 그간의 행보도 언뜻 그런 느낌이기는 했다.
누군가가 찍어 올린 영상 속 강남역 앞에서의 버스킹도 그랬고, 응수동의 옥상 공연 때도 정해진 틀을 부정하는 분위기가 강하게 풍겼다.
태각시의 축제에선 점점 희미해져 가는 가족이라는 개념을 자신의 방식대로 감쌌다.
해변 합동 공연과 삼일절에는 일본이라는 과거의 분노를 끄집어내 분열해 가던 세대를 이어 붙이며 전 국민의 화합을 꾀했다.
노골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하나하나의 의미를 따져 보자면 대한민국의 시스템이 이뤄 내지 못한 기본적인 사회적 문제들을 짚었기도 했다.
달리 말하자면.
그 시스템을 만들고 고쳐 나가는 지도층을 향한 꾸지람과도 같았다.
그간은 알게 모르게 느껴진 것이라면.
이번 무대는 노골적이었다.
당시를 겪지는 못했지만, 수많은 자료로 알 수 있는 사실들이었다.
그 대중문화의 암흑기는 정부의 삽질로 인해 대중문화를 침묵하도록 만들었던 시기였다.
그 시대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원색적인 단어로.
사실 아직도 알게 모르게 문화에 대한 탄압은 이뤄지고 있었다.
아직 당시의 권력을 계승한 이들이 각계 지도층에서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감히 선전 포고를 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조금 어른스러운 메시지였다면, 이번의 느낌은 그 비공개 리허설에서 들려왔던 열아홉 살 치기 어린 젊음의 목소리와 비슷했다.
멀어지는 앨런의 등을 바라봤다.
외국인인 그가 바라보는 한국의 시대상과 자신이 느끼는 지금의 상황이 같은 온도로 느껴질지 궁금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앨런이 바라보는 시선이 더 객관적이기에 더 정확할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어제 한국 언론의 분위기를 보고 고개를 갸웃하던 그가 떠올랐다.
‘이거 재밌어졌네요.’
침중한 자신과 달리 굉장히 흥미로운 표정이었다.
‘래빗에게 명분이 생겼어요.’
신나 했다.
‘이렇게 때려 대면 반항할 수밖에 없으니까.’
방긋 웃었다.
‘열아홉 살 래빗이 원했던 판이 깔렸네요!’
아이같이 해맑은 미소를 짓던 앨런을 떠올린 정태강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짐을 챙겨 한국행 비행기가 기다리는 게이트로 향했다.
문득, 그 조진혁이라는 아티스트가 대 놓고 무언가를 비판하기 시작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지 떠올려 봤다.
삼일절에 벌어졌던 그 경이로운 광경이 떠올랐다.
‘조용히 있던 사람을 잘못 건드린 거지.’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기록하는 자로서 이 휘몰아치는 격랑은 정말로 흥분되는 일이었다.
흐르는 대로 따라가기만 해도 굉장한 스토리가 될 테니.
이제야 앨런의 해맑은 웃음을 똑같이 얼굴에 담은 정태강이었다.
* * *
“야… 이거 분위기가 좀…….”
“응?”
“너 기사 아직도 안 봤어?”
“응?”
“지금 SJ 엔터고 테일이고 난리가… 진짜 아무것도 몰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해맑은 표정으로 바라보는 친구의 얼굴에 충기는 자신의 이마를 짚었다.
“아무튼 이번에 우리가 했던 공연이 누군가의 심기를 건드린 거 같다.”
“그래?”
“앞으로 좀 귀찮게…….”
“이제 조금 재밌겠다.”
“뭐?”
“발끈해야 좀 패는 맛이 있지.”
“어… 그러니까…….”
“혼내 줄 거야.”
누가 누굴 혼낸단 말인가?
세상 무서운 말을 내뱉으며 입꼬리를 올리는 친구의 얼굴을 바라보던 충기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축제 중간 상정이 말했던 그 ‘똘기 가득한 진혁의 표정’을 직접 보게 된 것이다.
진짜로 열아홉 그때의 표정과 똑같았다.
세상 무서운 것이 없었던.
청년과 성인 사이의 그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