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140
140화 키보드 워리어
기본적으로 사람들의 심리는 비슷했다.
포털 사이트 메인에 올라온 기사는 높은 신뢰도를 바닥에 깔고 만나게 된다.
그 기사가 그저 찌라시 수준의 짜깁기일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자신의 글에 책임지지 않는 인터넷 언론사들은 범람하기 시작했고, ‘아니면 말고’ 식의 추측성 기사들이 자극적인 제목을 필두로 조회 수 장사를 하고 있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들만 알고 있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렇기에.
보통의 사람은 연이어 올라오는 자극적인 제목을 누르기 마련이었고 의심 없이 그 내용에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그래서 언론은 여론을 움직이는 데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대형 언론사들이 활자 신문 시절에 가졌던 힘이 절반으로 잘려 나갔음에도 아직도 어깨에 힘을 줄 수 있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들은 대중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어떤 부분을 건드려서 자극해야 할지, 어떤 부분은 살짝 뒤로 밀어 둬서 논점을 흐려야 할지, 또 무언가는 애매한 단어로 피해야 할지.
가장 잘 알고 있는 족속들이었다.
그리고 대중의 관심을 먹고 사는 정치인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동반자’였다.
마찬가지로 대중의 관심을 먹고 사는 연예인과는 철저한 ‘갑을’ 관계이기도 했다.
‘을’을 두려워하는 ‘갑’은 없었다.
그래서 이번 ‘동반자’의 지시도 별 거리낌 없이 저지를 수 있었다.
‘을’이 감히 발끈할 리 없을 테니까.
만일 문제가 생긴다고 해도 적당한 시점에서 기사를 내리면 금세 잊힐 테니까.
그래도 되는 시대였다.
“하하. 뭐 어려운 일이라고… 그보다 장관님, 이번에 출마는 확정되신 거죠?”
-공천이야 확정이지만, 지역구가 문제지. 그래서 이번 사안이 중요해.
“아시잖습니까. 의심만 심어 두면 자기들끼리 더 부풀린다는 거. 어떻게… 메인도 꺼낼까요?”
-아직 아니야. 적당한 때를 보자고.
“네. 장관님, 이번에 좋은 자리 하나 봐 뒀는데… 언제 한번 모시겠습니다.”
-그래. 내 연락하지.
“그럼, 이 방향대로 진행하겠습니다.”
-알겠네.
“살펴 가십시오, 장관… 개 씨부럴 새끼가 인사하는데 끊고 지랄이야.”
서글서글하게 웃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쯧.”
탁자 위에 핸드폰을 던져 놓은 대국일보 편집장 명태석이 혀를 차며 모니터를 노려봤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직은 사실 별 힘도 없는 한직에 속했다.
다만 곽채군이라는 인물은 당에서의 입지도 있었고, 이번 공천도 거의 확정이었다.
이번에도 의원 배지를 단다면 최고위원이나 원내 대표까지도 노려볼 만한 인물이기는 했다.
“나이도 한 살 어린 새끼가…….”
뭐, 영 싸가지가 없기는 했지만,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됐다.
그리고.
그 ‘HB’를 건드리는 건 좀 부담되었지만, 테일 정도야 워낙 잡음이 많았던 가수였기도 했고. 큰 건도 아니고 예전에 있었던 일을 들춰 내는 정도는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아무튼 정부의 방향이 확고하게 정해진 것이다.
당근을 건너뛴 채찍으로.
감히 ‘을’인 주제에 인터뷰고 뭐고 일체 거부했던 ‘그’가 떠올랐다.
SJ 엔터테인먼트의 신인 발라드 가수였을 때 그랬고, 태각시의 축제 전에 그랬으며, 해안가 공연과 삼일절 공연 후에도 그대로 잠적해 버렸었다.
언젠가 언론의 무서움을 톡톡히 알려 주고 싶었는데…….
명태석은 문득 그가 이대로 굴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한국에서 언론사가 가진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뼈저리게 느끼도록 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대략적인 제목들도 뽑아 놓지 않았던가.
뭐, 지금은 까지 말라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세계적으로 대단해진 ‘그’일지라도 결국 권력 앞에선 굽힐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쩝…….”
정부에게 목줄이 채워질 것이고, 까게 될 기회는 영영 없을 터.
그게 약간 아쉬운 명태석이었다.
* * *
“그래도 돌아가기 전에 인터뷰 정도는 괜찮지 않나?”
스테빈의 말을 제니스가 진혁에게 통역해 전달했다.
“희철이가 했잖아요.”
“하지만…….”
“말로 전달하는 건 체질에 맞질 않아서요. 거기다 제 무대도 아니었고요.”
“자네 뜻이 정 그렇다면…….”
스테빈이 못내 아쉬운 듯 말끝을 흐렸다.
현재 한국의 여론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보고를 받았고, 그에 대응하는 인터뷰로 힘을 조금 실어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저 해맑은 표정을 보니 그런 지원 따위는 필요 없어 보이기는 했다.
“그럼 자세한 논의는 한국에서 하는 걸로 하면 될까?”
“네. 사정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닐세. 기회를 줘서 내가 고맙지.”
스테빈이 흡족하게 웃으며 진혁의 어깨를 잡았다.
이번에 직접 그의 무대를 겪으며 확신할 수 있었다.
금세기 대중문화의 트랜드는 앞에 선 이 한국의 아티스트가 이끌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 길에 자신도 함께할 수 있음에 가슴이 뛰었다.
그가 따뜻함을 노래한다면 세상은 따뜻해질 것이고, 그가 자유를 외친다면 세계 모든 젊음은 그 자유를 누리게 될 것이다.
그의 음악은 충분히 그럴 만한 힘이 있었다.
직접 노래하지 않았음에도 기타만으로 마치 신의 언어인 양 사람들의 감정을 지배했었다.
세계 음악계에 기적과도 같은 천재가 나타난 것이다.
대항하려 했을 때는 자연재해와도 같았는데, 그와 같은 방향을 보게 되자 이것이 신의 축복임을 알게 되었다.
“일단 우리와의 앨범은 그렇다고 치고, 한국에서의 활동은 계획이 잡혔나?”
제니스의 통역을 들은 진혁이 방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저항.”
“Resistance?”
“한국은 아직도 문화가 제대로 독립하지 못했거든요.”
“아…….”
대략적인 한국의 분위기는 알고 있었다.
아직도 있을지 모를 ‘연예계 블랙리스트’라는 단어도 들어 봤다.
“젊은 날의 반항, 광기, 즐거움, 기득권에 대한 저항, 투쟁, 자유로움.”
제니스의 입에서 익숙한 단어들이 통역되어 전달되었다.
“록의 언어죠.”
스테빈이 활짝 웃었다.
“그렇지. 록의 언어지.”
한때는 자신들도 외쳤던 단어들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히피 문화가 배척받으며 암흑기를 맞이했었다.
결국 기득권과 타협했고, 끝까지 그 단어들을 지키려던 밴드들은 지도층의 몰매를 맞으며 몰락의 길을 걸었다.
때마침 브리티시 인베이전이 일어났다.
정제되어 말랑해진 언어들만이 살아남았고 장르도 모호해졌다.
영국 록과 손잡아 겨우 얻어 낸 반쪽뿐인 독립이었다.
“응원하겠네.”
이번 동양에서 일어날 독립전쟁은 분명히 승리할 것이다.
“감사합니다.”
그에게 맞서고자 하는 이들은 엄청난 자연재해를 만나게 될 테니.
“그럼 한국에서 다시 만나지.”
“네.”
이 문화적 항쟁을 직접 겪게 될 대한민국을 떠올렸다.
그 나라의 대중들을 상상해 봤다.
세계 음악사에 길이 기억될 엄청난 사건이 벌어질 것이다.
얼마나 신나는 일들이 터져 댈까?
스테빈이 아이처럼 눈을 빛냈다.
* * *
공중파 뉴스, 언론사, 포털의 메인에 걸린 칼럼.
이른바 메이저라고 불리는 나팔이 울려 퍼졌고, 그 아래 걸리는 댓글들도 그 소리에 감응하는 듯했다.
다만, 그렇게 수면 위로 올라온 여론만을 보고받은 곽진철은 그 아래 훨씬 더 넓은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 세상은 훨씬 더 날것의 언어를 사용했으며, 훨씬 더 기민하게 움직였다.
메이저 언론은 자신들이 작성한 기사로 사람들을 이끌어 가려는 성향이 강했다면.
이들 커뮤니티의 게시글은 집단 지성의 향연이었다.
하나의 게시글에 수백의 댓글이 달리며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 하나의 거대한 논리와 빠져나갈 수 없는 팩트를 만들곤 했다.
애초에 익명성의 게시판에서 의심만을 키워 온 사람들이었다.
그런 그들의 습성은 이번에 포털 메인을 장식하기 시작한 기사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근데, 기레기 새끼들 분위기 왜 저럼?]└내 말이. 하루 만에 분위기가 저렇게 바뀌는 게 말이 됨?
└이거 그냥 협박용인데?
└법조계 친구 없나? 저게 가능한 얘기임?
└본인 로스쿨 재학 중. SJ 엔터테인먼트는 그간의 자료를 살펴봤을 때, 불법적인 정황으로 판단하기는 어려워 보임. 공시하고 거래했고, 공지로도 확실하게 앞으로의 계획을 말했음. 말 그대로 나머지 주주들이 선택할 시간을 줬다는 얘기임. 내가 봤을 때는 기레기들 억지임.
└현직 검사 등판. 표면상으론 법적으로 문제가 없어 보여도 억지로 엮으려면 충분히 귀찮게는 할 수 있음. 하지만 굳이 그러기엔 품이 너무 듦. 더군다나 지금 이렇게 뜨거운 관심을 받는 마당에 표적 수사할 분위기도 아님. 한마디로 ‘협박’ 맞음.
└검사? 지랄 노노.
└니가 검사면 난 판사다 새끼야.
└어디서 약을 팔아대?
└저 친구 예전에 검사됐다고 인증한 친구임.
└맞음. 진짜임. 예전 글 검색 ㄱㄱ
└어? 맞네?
└아… 죄송합니다, 검사님.
└저희집 고양이가…….
[테일이는 그 당시에 조금 억울한 측면이 있다는 기사가 돌지 않았었나?]└이 새끼들 지금 검색해 보니까 기사 다 내렸는데?
└잠깐 내가 예전에 아카이브 떠 놓은 거 있음. 나 테사랑이었음.
└오! 링크! ㄱㄱ
└기레기 새끼들 약 처먹었나? 어떻게 이렇게 말이 싹 바뀌지? 심지어 같은 기자인 경우도 있네?
└와, 이거 제대로 걸렸네.
└이 새끼들 이번엔 그냥 안 둔다. 감히 진혁느님 사단을 건드려?
└일단 여기저기 게시판에 퍼뜨려.
└내가 파일 정리 얼른 해서 올릴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고작 인터넷 커뮤니티에 불과한 사이트의 동향까지 보고가 올라갈 리 없었다.
다만, 그 ‘고작’이 가진 파급력은 과소평가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네트워크상에서의 행동력만큼은 그들을 따라갈 매체가 없었으니까.
방구석 키보드 워리어들이 분노하기 시작했다.
* * *
진혁은 아이처럼 창문에 매달려 아래를 떠다니는 구름을 만끽했다.
구름 사이사이 저 아래 끝없이 펼쳐진 바다가 보였다.
미국으로 올 때도 느꼈지만, 처음 타 본 비행기는 정말로 환상적이었다.
하늘을 날아보고 싶다는 원초적인 염원은 누구에게나 있는 법이었다.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는 세상.
직접 겪어 보니 정말로 신나는 경험이었다.
문득.
비행기를 타 보기 전 상상했던 하늘 위와 지금 직접 타 본 후 알게 된 하늘 위를 비교해 봤다.
경험했기에 더 진솔한 감정을 얘기할 수 있겠지만.
어쩌면 상상했을 때 더 굉장했던 것 같았다.
아직 경험이 적은 어린 나이였을 때 훨씬 더 큰 세상을 꿈꿨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 경험이 쌓이며 그 거대했던 세상은 점점 깎여 나간다.
결국 자신이 볼 수 있고 갈 수 있는 길만이 남기 마련이었다.
그 동해안 구석 주문진에서만 살아온 희철에게 있어서 상상 속 서울이란 정말로 굉장한 곳이었다.
그가 서울을 주제로 불렀던 그 노래는 아직도 잊히지 않을 정도였다.
그 환상 속 대도시를 향한 가감 없는 감정은 단 한 번도 그곳에 가 보지 않은 희철이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다만 직접 서울을 만난 이후 다시 불렀던 그 노래는 확실히 느낌이 달라져 있었다.
그 감정을 되살리기 위해 서울을 만나기 전 자신을 떠올려야만 했으니까.
알지 못한다는 것은 때론 더 큰 무언가를 상상하게 만들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 거대한 상상은 더 큰 감정을 불러오기도 했다.
비행기를 타기 전 상상했던 하늘과.
타 본 후 알게 된 하늘이 이토록 다른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당신을 거부하려는 거야.’
초점이 당겨졌고 비행기 창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봤다.
적당한 타협과 수많은 경험으로 무디어진 감정, 어른이기에 그냥 넘길 수 있는 많은 일, 타의 모범이 되어야만 하는 나이와 위치, 냉철한 사회를 살아가며 생긴 노하우들…….
이 많은 것을 모두 안고서는 마음껏 날뛸 수 없었다.
‘알아, 뭘 걱정하는지.’
어른이기에 할 수 있는 노파심들은 열아홉 진혁에게 그대로 전해졌다.
그리고.
마흔넷 진혁이 가장 걱정하는 것도…….
‘말했잖아. 다시 당신 삶 돌려주겠다고. 절대로 은서와 당신의 아내에게 소홀하게 하진 않아.’
의식이 완전하게 분리된 순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 상태가 오래갈 수는 없다는 것을.
언젠가는 그에게 돌려줘야 할 삶이었다.
열아홉 진혁은 자신이 사라진 상태로 겪었던 25년 인생을 존중했다.
그의 삶에 생채기 하나 내선 안 됐다.
딱 하나.
마흔넷 진혁은 아내를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며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겠지만.
그 당시 열아홉이었던 진혁은 얼굴도 가물거렸고 이름조차 모르는 그 소녀를 꼭 한번 만나고 싶었으니까.
얼른 창에 비친 얼굴에서 초점을 멀리해 아래 깔린 구름을 바라봤다.
이 부분은 마흔넷 진혁과 뻔뻔하게 눈을 마주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건 아냐.’
사랑? 연민? 그리움?
그 소녀를 만났던 당시는 그런 감정 따위를 느낄 만한 나이도 아니었다.
다만, 세상을 증오하며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있던 자신을 바깥으로 끄집어 내 준 그 소녀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은 것뿐이었다.
하얀 구름이 바다를 모두 가렸고.
진혁이 눈을 감았다.
연산홍이 화사하게 피어난 어느 봄날을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