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142
142화 뉴스 하우스
“일단 질문지는 이건데… 아마 몇 개 빼고는 그대로 나오진 않을 거예요.”
파일을 받아 든 희철이 정신없이 돌아가는 현장을 바라봤다.
이번에 겪었던 공연하는 무대도 수많은 스태프가 움직여 만들어 내는 광경에 깜짝 놀랐었는데.
이곳에서도 차분한 앵커가 비치는 화면 바깥은 그야말로 전쟁터와 같았다.
쉴 새 없이 뛰어다니는 사람들과 시도 때도 없이 귀에 걸린 이어폰으로 대화하는 사람들.
그리고 불안해하는 자신을 케어하는 이 막내 작가님까지도, 하나하나가 저 정적인 화면을 완벽하게 만들기 위한 톱니바퀴와도 같았다.
그 안에 자신에게 할당된 8분이라는 톱니바퀴도 있었다.
귀국 4일 차.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아 얼떨떨한 상태였다.
그간 몇 번의 인터뷰도 있었지만, 짧은 질문에 짧은 답변으로 이루어진 것들이었다.
대부분 인터넷에 올라가는 기사 정도였다.
“저쪽 안경 끼신 분이 총연출님이시고, 그분께서 신호하시면 천천히 걸어서 저기 옆자리에 앉으시면 돼요. 정면의 1번 카메라와 우측 두 시 방향 2번 카메라만 신경 쓰시면 됩니다. 말씀하실 때는 앵커님을 보면서 말씀하시고, 핀 마이크가 고정된 곳은 조금 조심해서… 희철 님?”
“아… 네?”
“많이 긴장되세요?”
“네… 제가 이런 덴 처음이라서…….”
“긴장하셔도 돼요. 대중 가수로서 저 데스크에 앉는 건 지금까지 세 번이었으니까요. 희철 님이 네 번째예요.”
“와…….”
“그 임도유 님도 잔뜩 긴장하셔서 몇몇 질문에 엄청나게 당황하셨었어요.”
“지… 진짜요?”
“바짝 얼어 계셔도 되고, 버벅거리셔도 돼요. 능수능란한 모습을 바라고 저 자리에 앉히는 건 아니실 거예요.”
“네?”
“저기 앉아 계신 앵커님은 40년이 넘게 인터뷰를 진행하신 분이세요. 희철 님의 그런 모습까지 모두 상정 범위 안에 넣어 놓으셨을 겁니다.”
“아…….”
“걱정하지 마시고 그냥 흐름만 따라가시면 돼요.”
희철이 고개를 돌려 차분하게 뉴스를 전하는 주희준을 바라봤다.
도저히 60대라고는 보이지 않을 외모에 차분한 목소리 그리고 날카로운 눈빛이 번득였다.
저런 사람의 질문에 적절한 대답을 찾아야만 하다니.
“와, 미리 얘기는 들었지만, 진짜 뭐랄까… 순박하시다고 해야 하나… 때가 묻지 않으셨다고 해야 하나…….”
“아… 칭찬이시죠?”
“진짜로 80만 명 앞에서 노래한 거 맞아요? 저 손 떠는 것 좀 봐.”
“그게…….”
“저도 팬이랍니다.”
그녀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이따가 사인 부탁드릴게요!”
“아… 네. 감사합니다!”
사실 아직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너무 갑작스럽게 유명인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인지 알아보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호텔 편의점을 가도 그랬고, 지금 이 방송국으로 오는 지하철에서도 별다른 시선을 느끼진 못했다.
혹시 싶어서 챙겨 온 선글라스와 모자는 쓸 필요도 없었다.
워낙 평범한 외모였기도 했고, 다른 매체에 출연한 적도 없었기에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이 인터뷰가 더 떨리는 것이었다.
전 국민에게 얼굴을 알리는 첫 번째 방송이었으니까.
희철이 침을 꼴깍 삼켰다.
‘근데 선생님은 어딜 가신 거야.’
분명 오셨다고 했는데, 코빼기도 보이질 않았다.
이래서야 보호자로서 실격이지 않은가.
“희철 님 준비하세요. 이번 멘트 다음이에요.”
“아… 네.”
입이 바짝바짝 말라 오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설치된 거대한 카메라들을 바라봤다.
‘갈매기…….’
분주하게 바쁜 사람들 사이 고고하게 홀로 차분한 데스크로 고개를 돌렸다.
‘바다와 맞닿은 등대…….’
데스크를 매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방청객들이 보였다.
‘넘실대는 바다… 어?’
맨 앞 해맑게 웃으며 엄지를 세워 주는 누군가가 보이자, 몰입이 확 깨져 버렸다.
‘아니! 왜 거기 있냐고요!’
희철이 도끼눈을 뜨자 철저하게 방관자가 되겠다는 듯 고개를 돌려 버리는 야속한 선생님이었다.
* * *
“그럼 현장에 나가 있는 김대선 기자를 연결해 보겠습니다.”
화면이 바뀌었다는 신호가 떴고, 주희준이 프롬프트를 바라봤다.
곧, 동해 소년의 인터뷰였다.
사실은 ‘그’와 대화를 나눠 보고 싶었다.
그저 주목받기 위하여 그 시절을 이용한 것이라면 꽤 실망스러울 테지만, 아무래도 ‘그’는 그런 사람은 아닐 것이었다.
그간의 행보를 봤을 때, 어느 정도 그 방향이 보였지만 이렇게까지 노골적이지는 않았었다.
물론 직접 나서진 않았다.
하지만 그 음악 뒤에 ‘그’가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아직 거기까지는 건드리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애꿎은 강원도 청년만 두드려 맞는 것이겠지.
오늘 인터뷰로 사람들의 비난이 조금 잠잠해질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할 생각이었다.
어찌 되었건 엄청난 무대를 세계에 알리고 돌아온 주역이지 않은가.
주희준이 막내 작가와 서 있는 까만 얼굴의 까까머리 청년을 바라봤다.
아무리 봐도, 정말 순박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 * *
매주 금요일은 뉴스 하우스 끝에 교양 꼭지가 편성되어 있었고, 그래서 이날만은 방청객을 받았다.
바람잡이를 맡은 조연출의 몸짓에 방청객들이 환호할 준비를 했다.
“네. 오늘 위클리 핫이슈에 초대된 아티스트는, 여러분들도 잘 아시죠? 태평양 너머 미국에서 열린 세계 최대의 축제를 한국의 음악으로 온통 물들인 동해 소년의 정희철 님을 모셨습니다.”
방청객들의 박수가 울렸고, 까만 얼굴의 까까머리가 종종걸음으로 걸어와 자리에 앉았다.
“인사 한번 해 주시죠?”
“네? 아. 인사… 안녕하세요. 동해 소년의 정희철입니다.”
다시 울리는 박수.
주희준이 방긋 웃으며 희철을 바라봤다.
엉덩이 끝만 걸친 채 엉거주춤한 자세에 손은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아. 의자를 조금 당겨 앉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다 불안하네요. 하하.”
“네? 알겠습니다! 아…….”
황급히 의자를 당기다 어딘가 찧은 듯 미간을 찌푸리며 아픔을 참는 그의 표정에 주희준이 실소를 터뜨렸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꾸밈이 없는 모습이었다.
“많이 긴장하신 듯합니다. 심호흡도 조금 하시고 편하게 대화하시면 됩니다.”
방청석 어딘가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일단 분위기는 괜찮았다.
“네! 감사합니다.”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에 음향 담당자가 바삐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아마도 마이크 볼륨의 톤을 맞추는 중인 것 같았다.
목소리의 크기도 모두의 예상을 벗어난 것이다.
“목소리가 정말로 우렁차시네요. 마치 동굴에서 울리는 거 같아요.”
“제가 가진 최대 장점입니다.”
시선을 본인에게 당겼다.
다행히 마주친 눈동자가 더는 흔들리지 않았다. 조금 멍하긴 했지만.
주희준이 온화하게 미소 지으며 질문지를 힐끗 바라보곤 입을 열었다.
“정말로 엄청난 공연을 펼치시고 돌아오셨는데요. 이번에 처음으로 야외무대에 올랐다는 게 정말로 사실입니까? 아… 도저히 믿기지가 않아서요.”
“네!”
“하하. 그렇게 단답형으로 대답을 하시면 제가 참…….”
“네! 사실입니다!”
“아…….”
예상은 했지만, 이번 인터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수많은 관중을 앞에 두고 노래했는데, 기분이 어떠셨어요? 80만 명이라… 저는 상상도 가지 않는 숫자인데요.”
“엄청나게 좋았습니다.”
“그리고?”
“엄청나게 떨렸습니다.”
“어… 또 다른…….”
“그게… 공연하다 보니까 관객들은 저를 보지 않고, 제가 관객들을 보고 있더라고요. 그때쯤 떨림이 멈췄습니다.”
‘후…….’
역시 쉽지 않았다.
“영상으로도 엄청난 열기가 느껴지던데요. 현장은 더 굉장했겠죠?”
“네!”
“…….”
“아… 네! 뜨거웠습니다.”
‘하…….’
주희준이 눈가에 주름을 만들며 방긋 웃었다.
누가 이 앞에 앉은 순박한 청년을 세계적인 아티스트라고 여길 것인가.
아직 이 청년을 잘 알지 못하고, 부정적인 여론으로만 전해 들은 사람들에게 ‘이 정도 급이다.’라는 걸 초반에 어필해야 나중에 해야 할 부정적인 질문이 희석될 텐데.
아무리 인터뷰 초보라고 해도 호응이 이래선 아무래도 무리였다.
“전 세계가 동해 소년의 노래에 빠졌습니다. 노래하는 데 있어서 뭔가 특별한 목표라든가 팬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습니까?”
“아… 아직 그런 건 없습니다.”
“음… 있으실 것 같은데요.”
“그냥 제가 좋아서 노래하는 거라… 별 깊은 생각까지는…….”
“하하. 그저 좋아하는 것을 했던 거란 말씀이시죠? 그리고 그 음악이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고요.”
“그… 그런가요?”
“앨범도 내지 않고, 단숨에 이렇게까지 대스타가 된 경우는 전 세계의 음악사를 뒤져 봐도 찾아보기 어려울 것 같은데요. 어떻게, 무대에 서기 전에 대충 예상은 하셨을까요?”
“아뇨.”
“…….”
방긋 웃는 주희준의 눈썹이 살짝 꿈틀대자.
“그…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아… 그… 그렇다면 무대에 오르기 전에 따로 생각하신 거라도 있으셨나요? 지금 얘기가 들리기로는 연출로 미리 계획된 상황도 아니었던 걸로 알고 있는데요.”
40년간 인터뷰를 진행해 오며 자신이 말을 더듬은 적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
저도 모르게 미간에 힘이 들어갔다.
“어… 머릿속이 하얗게 돼서 그때 기억이 하나도 나질 않아서…….”
“아… 그렇군요. 그만큼 무대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셨던 걸까요?”
“그게… 엄청나게 쫄아서… 아, 겁을 먹어서…….”
“하하. 그 정도는 괜찮습니다.”
교묘하게 긍정적인 메시지를 계속해서 질문에 넣었다.
시계를 봤는데, 더는 무리였다.
“세계의 관심을 한곳에 모은 만큼 논란도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는데요.”
“네.”
그들이 원했던 질문을 시작했다.
“혹자는 욕설 파문이라는 말까지 섞어 가며 비난하기도 했는데… 그런 큰 행사에서, 그것도 외국인들 앞에서 저속한 비속어를 외친 만큼 어떤 특별한 의미를 담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희철 님의 생각을 듣고 싶은데요.”
주희준의 날카로운 시선이 희철을 향했다.
“욕한 거 말씀이시죠?”
“네.”
“그냥… 어. 욕인데요?”
“그러니까… 어떤 의미를 담으셨는지…….”
“감탄사 같은 거잖아요.”
그렇게 본인에게 도움이 되는 질문을 할 때는 멍했던 눈이 불리한 질문에 반짝하고 빛나기 시작했다.
“감탄사라는 말씀이시죠. 하지만 사회 통념상 대중들의 앞에 설 때는 도덕적인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게 공인으로서 갖춰야 할 덕목이 아닐까요? 그저 감탄사라기엔 욕설까지 필요했을까 하는 얘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궁지로 몰아야 했다.
그래야 그들이 원하는 장면이 나올 테니까.
아직은 자신이 가진 저의를 의심받아서는 안 될 때였다.
“좀 센 감탄사가 필요했으니까요. 앵커님은 평생 욕 같은 건 안 해 보셨나요?”
“하하. 저도 대학교 때는 달고 살았습니다.”
“지금은요?”
“하지 않으려… 아, 그러고 보니 간혹 하긴 하네요.”
“감정이 격해지면 튀어나올 수도 있지 않나요?”
‘이것 봐라? 이 대목에서 갑자기 활발해진다고?’
그것보다 문제는 여기서 이렇게 당당하게 나와서는 안 될 일이었다.
주희준이 생각한 베스트는, 적어도 그 말을 사용한 부분에는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며 경솔했음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그래야 그들이 더 때려 댈 명분이 사라질 테니까.
“그, 계속 제게 질문을 하시는데, 어째 서로의 역할이 바뀐 느낌인데요. 그래도 대답해 드리자면, 욕설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비지성적인 행동으로 비추어질 수 있기에 피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막 쓰면 물론 안 되겠지만, 써야 할 땐 써야 하지 않을까요? 세종대왕님이 의미도 없이 만드시진 않으셨을 텐데… 아. 이건 아닌가?”
“세종대왕님이 한글을 만드셨을 때부터 있었던 단어는 아닐 겁니다.”
“아무튼, 당시에 제 또래였던 그분들을 떠올려 봤습니다. 얼마나 답답했을지 상상이 가지 않더라고요. 거기에 가장 어울리는 가사를 붙여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네? 붙여 주셨다고요?”
“아. 우리 선생님이요!”
공식 석상에서는 처음으로 나온 말이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아직 건드리지 않은.
“아. 조진혁 님을 말씀하시는…….”
“네! 저기 앉아 계신!”
희철이 입꼬리를 올리며 팔을 뻗었고.
그 방향을 바라본 주희준은 재빨리 머리를 회전했다.
그렇게 모든 미디어의 인터뷰를 피해 가던 그가 방청석 한가운데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간은 고작 1분을 남겨 둔 상태.
서둘러 데스크의 두 번째 빨간 버튼을 눌렀다.
다음 코너인 ‘문학으로 마무리하는 일상’을 빼는 한이 있더라도 이건 절대로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작전 변경이었다.
터뜨릴 수 있다면 지금 터뜨려야만 했다.
그가 얼마나 호응해 줄지가 관건이기는 하지만, 이젠 그도 대중 앞에 자신을 드러내야 할 때였다.
어수선해진 데스크 밖 분위기가 느껴졌다.
총연출이 서둘러 여기저기에 지시하며 손짓했고, 마이크를 든 조연출이 달렸다.
인터뷰 내내 데스크만을 비추던 2번 카메라가 방향을 틀었다.
* * *
진혁은 희철에게 질문하는 앵커를 가만히 관찰했다.
말하는 하나하나에 담긴 호흡은 정말로 매력 있는 리듬이었다.
음의 높낮이가 아닌 단어의 선택과 문장의 구성들만으로 귀를 즐겁게 했다.
일단 버벅거리는 희철을 어떻게든 추켜세우려고 애쓰는 것이 보였다.
그것만으로도 호감이 생겼다.
-세계의 관심을 한곳에 모은 만큼 논란도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는데요.
이제 드디어 저 얘기가 시작되는가 싶었다.
희철이 세종대왕님을 언급할 땐 저도 모르게 키득댔다.
‘제법 말도 잘할 줄 알게 됐네?’
그러고 보니 어떻게 마무리하려고 저런 무리수를…….
갑자기 진혁을 언급하더니.
손을 뻗어 왔다.
‘아… 나한테 넘기려고 그랬구나.’
어쩐지, 그 질문을 받자마자 청산유수같이 말을 쏟아 내더라니.
수많은 사람이 보고 있을 라이브 방송.
대한민국 시사 케이블 채널 최고의 시청률.
괜찮은 무대였다.
방향을 바꾸던 카메라가 멈췄고.
마이크를 받아 든 진혁이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