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143
143화 대국민 어그로
어느 한 분야에서 정점을 찍은 이들의 눈은 비슷한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삶을 온전히 비추곤 했다.
당당하게 마주 볼 수 있는지, 아니면 일말의 부끄러움에 눈동자가 흔들릴지.
진혁과 마주친 눈은 전자였다.
그 신념이 가득한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마이크를 받았다.
“아, 뜻밖의 손님이 저기 계셨네요. 뭐라고 소개를 해 드려야 할까요? 발라드 트리오 J.H의 맏형? 인간 밴드의 리더? 아니면 동물 가면 밴드의 토끼? 동해 소년이라는 월드 스타급 싱어송라이터를 키워 낸 숨겨진 조력자? 어느 하나도 가볍지 않은 수식어인데요. 조진혁 님을 소개합니다.”
화들짝 놀란 방청객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환호와 갈채가 이어지는 와중에도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희철 님의 인터뷰를 직접 보러 오신 건가요?”
“네. 보호자로 왔습니다.”
“저희가 조진혁 님께도 인터뷰 요청을 드렸었는데요. 아, 퇴짜를 맞긴 했습니다.”
진혁이 방긋 웃었다.
“제가 말로 표현하는 걸 잘하지 못해서요.”
“하하. 황지선의 캔버스는 저도 애청자입니다. 그때 보니 방송 체질이시던데요?”
“꾸며 낸 겁니다.”
주희준이 멈칫했다.
“그땐 그런 이미지여야 했으니까요.”
“그럼 지금은요?”
당황해선 안 되는 순간이었다.
저런 대답이 나온 이상, 어쩌면 오늘 엄청난 폭탄이 터질 수도 있으니.
“앵커님 앞에선 진솔하게 얘기해야 할 것 같아요. 눈빛이 워낙 날카로우셔서요.”
“제 눈이 그렇습니까?”
“다들 그렇게 느끼시지 않나요?”
방청객 곳곳에서 웃음이 터졌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도 주희준은 진혁의 눈동자를 살폈다.
결심을 굳힌 눈.
흔들림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오늘 자신이 어떤 질문을 하느냐에 따라 엄청난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긴장을 늦춰선 안 될 순간이었다.
그저 농담이나 따먹다가 그를 보내야 하는지, 아니면 그의 심중을 이대로 드러나게 해야 하는지…….
그 갈등에 잠시 멈칫했고.
“그 가사에 대해서 묻고 싶으신 거죠?”
그가 먼저 찔러 왔다.
잠시의 멈칫함이 부끄러울 정도로 저돌적인 물음에 얼른 답을 골랐다.
“다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희철 님이 방금 조진혁 님께서 가사를 쓰셨다는 말을 직접 하는 바람에… 공식적으로 허락받은 인터뷰는 아니지만, 의미를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판은 깔아 줬다.
이미 마지노선은 넘긴 상태였고, 지금 나오는 대답에 따라 다시는 뒤를 돌아볼 수 없을 수도 있었다.
그가 입꼬리를 올렸다.
장난기 가득한 표정에 주희준이 잠시 넋을 놓았다.
도저히 40대에게서 나올 만한 표정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식스팩이 선명한 사람한테 돼지라고 놀리면 화를 낼까요?”
“대답을 바랐는데, 갑자기 나온 질문이 어렵네요. 아마 저였다면 그다지 화가 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럼, 그 소리를 듣고 화를 내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아…….”
선생님이나 제자나 인터뷰하는 앵커에게 이렇게나 어려운 질문을 던져 대다니…….
지금 저 질문의 의도를 충분히 알았기에 주희준은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끊어야 할까?’
마흔이 넘은 성인이라면 아마도 선은 지키지 않을까?
설마 전 국민이 보고 있는데 충동적으로 행동하지는 않겠지?
생각이 있다면 조금 참았다가…….
“개자식이란 욕을 했죠. 제가 썼고, 동해 소년이 불렀어요.”
‘아… 무슨…….’
주희준이 화들짝 놀라며 보도국장을 바라봤다.
입이 쩍 벌어진 것을 보니,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은 아니었다.
“그걸 듣고 화내거나 찔리면, 그게 진짜 개자식인 거죠.”
‘아…….’
미처 대비하기도 전에 결국 터져 버렸다.
그 미국 무대에서의 애매한 뉘앙스가 아니었다.
작정하고 KO를 노린 카운터 펀치였다.
경고를 이렇게 들이받아 버리다니.
“아, 물론 그 시대에 대고 소리친 겁니다.”
이 자리에서 그에게 마이크를 건넨 것부터가 자신의 실수였을까?
“근데, 세월이 이렇게 지난 지금도 저 소리를 듣고 화나는 분들이 있을까요?”
거침없이 나오는 노골적인 언어들의 향연.
아니었다.
저 폭탄은 어디서 터져도 터질 폭탄이었다.
“만약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개…….”
국민 앵커로 자리 잡은 지 40년.
수많은 방송 사고를 겪어 봤지만.
생방송 인터뷰 진행 도중 눈앞이 노랗게 변한 것은 처음이었다.
* * *
“그러니까, 그놈들이 직접 움직이진 않을 거야. 이렇게 살살 긁어 대면서 알아서 기길 원하겠지. 그들이 연예계에 자주 쓰던 수법이야.”
“이거 대중음악의 덩치가 커지니까 족쇄 채우겠다는 거잖아요. 진혁이는 괜찮을까요? 걔도 눈치가 있는데…….”
“저번에 곽채군 장관 대하는 거 봤잖아. 자기도 생각이 있으면 막 나가지는 않겠지.”
“하긴, 열아홉 살 꼬맹이도 아니고…….”
“그렇지. 그래도 회사도 다니면서 사회생활 해 본 놈이잖아.”
“그럼 일단은 우리도 상황을 좀 봐야겠네요. 어? 어라……?”
동구가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봤다.
“맞아. 그러니까 계획을 잘 세우고, 대비도… 왜?”
“이거…….”
“응?”
“계획이나 대비 같은 거 다 소용없겠는데요?”
“뭐?”
석준이 서둘러 동구의 시선을 좇았고.
“아… 이 또라이…….”
그 화면을 확인한 순간 입이 쩍 벌어졌다.
* * *
대국 일보의 편집국장 명태석이 멍한 얼굴로 TV를 바라봤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아귀엔 흠집 내기용으로 만들어 둔 보도자료들이 구겨져 있었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놈이…….’
본래 사람이란 가진 것이 많아질수록 그걸 잃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는 법이었다.
그렇기에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욱 신중해지고 자신의 감정을 갈무리할 줄 알아야 했다.
제멋대로 살아가는 이들치고 제대로 된 결말을 보는 이들은 없었으니까.
세상 돌아가는 걸 어느 정도 알 나이였다.
게다가 그는 데뷔 1년도 채 되지 않아서 엄청난 위치에 올랐다.
나이도 마흔다섯이었다.
일개 회사원이었던 그는 단숨에 슈퍼스타가 되었다.
한순간에 많은 것을 손에 쥔 것이다.
그런 이가 자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사춘기 소년처럼 돌발적인 행동이라니.
멋도 모르는 젊은 치기에서나 나올 만한 반골 기질이 아닌가.
후폭풍이 두렵지도 않은 것인가?
“하…….”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핸드폰의 진동에 화면을 바라봤다.
아마도 기사의 방향성을 묻는 아랫사람들의 전화일 터.
아직 곽채군에게서는 연락이 없었다.
저 강력한 크로스 펀치에 그로기라도 된 것인가.
지금 곧장 비난 기사를 쏟아 낸다면 그 욕설의 방향에 서 있었다는 걸 만천하에 밝히는 꼴 이었다.
분명, 곽채군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겠지.
이마를 짚었다.
아무래도 한 걸음 뒤에서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 같았다.
핸드폰을 들었다.
“우선… 모두 대기해.”
일단은 자신들부터 살고 봐야 했다.
* * *
[미쳤다! 이거 실화냐?]└와 진혁느님 진짜 노빠꾸네.
└주희준 앵커님 어버버한다!
└개그로 시작했다가 반전 스릴러에, 이거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근데 이거 진짜 지능적인 부분 아니냐? 이제 진혁느님은 대놓고 건들지도 못할 거 아냐.
└언론이 가만히 있겠어? 불타오르는 분위기에 기름 부은 걸 수도 있어.
└와, 동해 소년이 무대에서 부른 거랑 파급력 차이 보소.
└근데 진짜 맞는 말이지 않나? 지금 화나는 놈들이 진짜 개자식들이지.
└이거 어떻게 흘러가는 거냐.
└정치 끼면 재미없는데.
└축제 분위기였는데 갑자기 전쟁터가 돼 버렸네.
└와, 팝콘부터 챙겨야겠다.
└뭔 헛소리임. 우리도 참전해야지.
└당연하지! 팝콘은 무슨.
└이건 대한민국의 문화 혁명임.
└갓끼님을 따르라!
└갓끼!
원래부터 진혁의 존재를 알고 있던 사람들까지도 어리둥절하게 만들 만한 엄청난 사건이었다.
누군가는 몇 년 전 공중파에서 있었던, 인디 밴드의 노출 사건까지 들먹이며 또다시 닥칠 수도 있는 인디 문화의 암흑기를 걱정하기도 했지만.
생각 없는 또라이의 일탈과 지금의 사건을 동일선상에 올린 그 글은 그대로 악플의 융단폭격에 삭제되었고.
만일, 이 일로 방송 출연에 문제가 생긴다고 해도.
└진혁느님이 언제는 공중파에서 음악 했었나?
공중파가 대중을 만나는 유일한 창구였던 그때와 언제 어디서건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지금은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이미 밴드 음악에 취해 있는 대한민국이었고, 인간 회사의 활약으로 공연 문화는 정착된 상태였다.
사실상 그에게 가할 수 있는 제제란 거의 없다고 봐야 했다.
금요일 저녁.
이 엄청난 사건에도 언론들이 멈칫하는 사이, 네트워크 세상이 먼저 불타올랐다.
* * *
라이브.
언젠가는 ‘본방사수’라는 말이 있기도 했다.
몇몇 재방송을 제외하고는 무언가를 보기 위해선 그 시간에 그 채널을 고정해야만 했다.
그랬기에, 같은 시간에 전 국민이 함께 울고 웃었다.
하지만 지금은 결과를 알 수 없는 스포츠 경기가 아니고서는 굳이 미디어가 정해진 시간에 끌려다녀야 할 시대가 아니었다.
자기가 원하는 시간에 자기가 원하는 주제의 방송만을 골라서 보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동 시간 순간 시청률이란 것은 ‘조회 수’라는 것에 밀려 버리고 말았다.
그런 시대에서 CTBS의 뉴스 하우스가 지켜온 9%대의 시청률은 그 의미가 컸다.
‘이 시대 공정함의 대명사’가 가진 그 파급력은 세대를 불문하고 너도나도 주희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했다.
그렇기에 이번 뉴스 하우스가 일으킨 방송 사고는 어마어마한 반향을 일으켰다.
음악을 즐겨 듣는이도, 평소 전혀 관심이 없었던 이도, 조진혁이라는 이름을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머릿속에 각인시킬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는 혀를 차기도 했고, 누군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누군가는 통쾌함에 주먹을 꽉 쥐었으며, 누군가는 박수 치며 환호하기도 했다.
어쨌거나, 그 거대한 삼일절 무대에도 그다지 관심을 주지 않았던 사람들까지 이 대책 없는 뮤지션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이었다.
한마디로.
제대로 어그로를 끌었다는 말이다.
“어때?”
그 당사자가 해맑게 웃었다.
“어떻긴 뭐가 어때, 이 미친 새끼야!”
“아… 그때 비행기에서 그 눈빛 봤을 때부터 묶어 놨어야 했는데.”
“이거 수습은 어떻게 하냐?”
보통의 마흔다섯 살 어른들 셋은 화가 많이 난 모양이었다.
“이젠 궁금해서라도 모두 다 내 음악을 들어 볼 거야.”
세 명의 어른들이 황당한 표정으로 나이만 많은 철부지 하나를 바라봤다.
“지금도 엄청나게 많이 들어.”
“뭘 더?”
“무슨, 애국가라도 만들게?”
철부지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자. 잘 들어 봐.”
그 천진난만한 얼굴에 나머지 세 명의 어른들이 한숨을 내쉬었다.
“삼일절 그날, 냉동 화물차 아저씨는 바쁘게 운전해야 했어. 서울 한복판에서 갑자기 막힌 도로는 굉장히 짜증 났지. 겨우 우회해서 조금 늦게 치킨집에 통닭을 건넸지. 치킨집 사장님은 얼른 닭을 튀겼고, 오토바이를 탄 배달 기사가 도착했지만, 아직도 준비되지 않은 양념 반 후라이드 반에 짜증이 났어.”
얘가 또 뭔 소리를 하는 거지?
할 말을 잃은 셋의 동공이 풀리기 시작했다.
“그 사람들에겐 그저 다른 날보다 조금 더 바쁜 빨간 날이었어.”
철부지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팔짱을 꼈다.
“전국이 어마어마하게 떠들썩했는데 말이지.”
눈을 지그시 감고 고개를 젓는다.
“하나도 놓치기 싫어.”
이 말도 안 되는 소리에 할 말을 잃은 어른 셋이 멍한 눈을 했다.
하지만 저 장난기 넘치는 얼굴을 바라보자니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말도 안 돼. 그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
하지만 치킨집을 경영했던 어른 한 명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돼! 전부 다 함께 즐겁게 놀 거야.”
저 환상에 빠져 허우적대는 철부지에게 어른으로서 해 줄 말은 산더미였는데…….
당연히 가능한 일이라는 듯 해맑게 웃는 얼굴을 마주하자 아무도 입을 열 수 없었다.
마치 열아홉 그때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잠깐, 지금 이 얘기가 아니잖아?’
깜빡하면 그대로 넘어갈 뻔했다.
“아니, 근데 그거랑 뉴스 하우스에서 욕한 거랑 뭔 상관이야?”
치킨집을 경영했던 마흔넷 어른의 일갈에 철부지가 심오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상관이 있지!”
너무나도 당당한 철부지의 표정에 어른 셋이 당황했다.
“겁을 줘야 하거든.”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너는 좀 알아듣게…….”
“아, 이놈은 진짜 또라이구나.”
철부지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키득거렸고.
뭔가 이야기의 맥락은 벗어났지만, 마지막 말에는 동의한 어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그럼, 그렇게 전달해도 되겠습니까?”
주희준이 불도 붙이지 않은 담배를 입에 물었다.
“네, 대표님. 시간과 장소는 다시 알려 드리겠습니다. 네… 네, 알겠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끊어진 핸드폰을 천천히 내려놨다.
피지도 않을 담배를 오물거리다가 허탈하게 웃었다.
진땀 빼는 인터뷰가 끝나고 나눴던 대화가 기억났기 때문이었다.
‘세상이 너무 바빠요.’
어째서 이렇게까지 무리수를 뒀는지 물었다. 그 물음에 그는 방긋 웃으며 저렇게 대답했었다.
그 천진난만한 미소가 떠오르자 저도 모르게 고개가 저어졌다.
눈을 감고, 그와 나눴던 이야기들을 끄집어내 복기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