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145
145화 협박
세 어른의 황당한 시선을 온몸으로 만끽하던 진혁이 흐뭇한 표정으로 입꼬리를 올렸다.
정말이었다.
미국에서 그 기사를 봤던 순간부터 빡쳤었다.
무대에서 그 노래를 부른 이상 불편해할 누군가가 있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아직도 그 억압이 남아 있을까?’
그들이 어떤 식으로 나올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런데 언론을 이용해 여론을 선동하는 꼴을 보고선 그 치졸함에 혀를 내둘렀다.
게다가 직접 덤비지도 않고 주변 사람들을 물어뜯었다.
그 부분에서 진짜로 화가 났던 것이었다.
사실 진영이니 이념이니 하는 거창한 의미는 없었다.
그 시대의 젊음이 너무 답답해 보였고, 그래서 – 조금 과격한 표현을 섞긴 했지만 – 자유의 나라라는 미국에서 선보였던 것뿐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발끈하다니.
여론을 조장하고, 확실하지도 않은 기사들을 마구 만들어 냈다.
이런 게 어른의 방식인 건가?
그렇다면.
정면으로 맞서 줘야지.
‘그게 록이지.’
여론이라…….
결국 대중들로 인해 만들어지는 것 아닌가?
어디까지나
대중을 움직이는 것은.
자신의 전문이었다.
* * *
“자.”
진혁이 핸드폰을 테이블에 올려놨다.
대한민국 지도 곳곳에 붉은 점이 박혀 있었다.
“지금 이 점 하나하나에 사람들이 모여 있을 거예요.”
권석엽이 이를 부드득 갈며 노려봤다.
“적으면 스무 명, 어… 저기 부산엔 나비계곡이라는 밴드가 공연하네요? 아시죠? 유명한 밴드니까. 아마 못해도 몇천 명은 모였겠네요.”
진혁이 손가락으로 전국 대도시들에 뿌려진 붉은 점들을 쓰다듬듯 움직였다.
“이 점을 모두 합하면 이 순간에도 수만 명의 대중이 라이브를 만나고 있어요. 아, 직접 가지 않고 영상으로 즐기는 사람까지 치면 몇 배로 늘어나죠.”
가만히 지켜보던 곽채군이 흠칫했다.
자신은 그 광경을 직접 목격했으니.
“하아… 별 시답잖은 협박이군.”
“대… 대표님…….”
사색이 된 문체부 장관 곽채군이 끼어들었다.
세종시에서 있었던 공연에 대해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던 것은, 언젠가 자신이 써먹을 아이템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조금 얼버무리며 축소해서 보고했었다.
실제로 순식간에 동원됐던 사람들의 숫자는 실로 어마어마했었다.
지금 그가 한 말은 결코 ‘시답잖은 협박’이 아니었다.
“어허. 장관은 빠져 계시죠. 어디 딴따라 하나 제대로 잡질 못해서 이런 대접이나 받게 만들고 말이야!”
“대표님, 저 말은 진짜일 수도…….”
“뭐? 길바닥에서 노래하는 데 모여 봐야 얼마나 모인다고! 어디서 말 같지도 않은…….”
“그… 그게…….”
“어허! 쯧!”
문득 과거에 있었던 어마어마했던 공연이 떠오르기는 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삼일절에 있었던 공연이야 정부의 협조도 있었고, 철저하게 기획된 공연이 아니었던가.
대대적으로 했던 예고와 그날의 의미가 주는 분위기를 탔으니 그런 광경이 연출된 것이었다.
혹시 싶은 노파심에 보좌관들을 시켜서 네트워크의 동향도 살폈었다.
하지만 그 어떤 징조도 없었다는 보고뿐이었다.
갑작스럽게 그런 장면이 연출될 수 있을 리 없었다.
‘거짓말도 믿을 만하게 해야지.’
힐끗 핸드폰 화면을 바라봤다.
물론 공연하는 곳이 있긴 할 것이다.
하지만 저렇게 많은 공연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고?
그저 지도에다가 점들만 잔뜩 찍은 것이 아니고?
‘어디서 되지도 않을 뻥카를…….’
고개를 들어 방긋 웃는 딴따라를 노려봤다.
“지금 자네를 두려워해야 한다는 말인가?”
“아뇨.”
“또 무슨 말장난을…….”
“대중을 무서워해야죠.”
“뭐? 말 같지도 않은…….”
잠깐, 저 확신에 찬 눈은 대체 뭐지?
정치로 이 자리까지 올라온 권석엽이었다.
뭣보다 사람의 눈만큼은 확실하게 읽을 줄 알았다.
저건 확실히 뻥카는 아니었다.
뭔가가 있기는 했다.
‘아차.’
고전적인 수법을 깜빡했다.
“뭐 하는 짓이지? 녹음이라도 하는 건가?”
그렇다고 하더라도 퍼뜨리기 전에 충분히 대처할 수 있었다.
조작으로 몰아갈 수도 있었고, 여차하면 밖에 있는 보좌관들을 시켜서 저 핸드폰을 뺏어도 될 일이었다.
파주 끄트머리에 자리한 이 고급 음식점엔 오늘 저녁 자신들만 예약이 되어 있었다.
주희준의 입만 잘 막으면 될 터.
“아… 녹음이요? 설마요.”
그가 핸드폰 화면의 지도를 확대했다.
“어? 여기도 점이 하나 찍혀 있네요?”
경기도 북부 어딘가에 홀로 찍혀 있는 붉은 점을 꾹 눌렀다.
“와, 진짜 유명한 사람인가 보다. 공연 시작한 지 이제 20분밖에 안 됐는데도 시청 인원이… 2만 명이 넘어가네요? 보세요! 계속 늘어나죠?”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권석엽의 눈썹이 꿈틀댔다.
고개를 돌리자 사색이 된 곽채군이 보였다.
“제가 녹음한 거 트는 건 별로 안 좋아해서요.”
“뭐?”
다시 시선을 옮겨 나이에 맞지 않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을 노려봤다.
“록은 라이브죠.”
딴따라가 일어났다.
“그것도 게릴라가 제맛이랍니다!”
고개를 꾸뻑 숙이곤.
“오프닝 감사했습니다.”
허리춤에 찬 체인을 철그덕거리며 문 쪽으로 몸을 돌리자, 미닫이문이 벌컥 열렸다.
그리고.
“대표님!”
사색이 된 보좌관이 들이닥쳤다.
* * *
[망원동에서 출발하는 차 두 자리 남음.]└지금 당장 가능합니다.
└5분만 기다려 주실 수 있으세요?
└불발되면 제가 탈게요. 지금 망원역 대기 중입니다.
[합정역 2번 출구 카니발 네 자리! 3분 후 출발 예정!]└저요!
└바로 앞 두 명이요!
└저 갑니다!
└여기까지 마감되었습니다.
[신촌 쪽 남는 자리 있으면 바로 달려감!]└지금 출발해요. 창천 백화점 앞임. 흰색 경차요!
└저 5분 안에 뛸게요!
[영등포역 택시 조각 구함!]└손!
└손!
└다 찼나요?
└아직 한 자리 남음!
└저요!
└마감!
[대화역 출발하는 사람 없나요? 기름값 드림!] [종로는 어려울까요? 일단 출발해 봅니다!] [마포구청…….] [부평…….] [……!]20분 전 커뮤니티 게시판의 상황이었다.
* * *
파주 끄트머리.
임진각을 향해 달리다 보면 표지판도 없는 샛길이 하나 있었다.
그 샛길을 따라 산으로 조금 오르다 보면 굉장히 넓은 공터가 나오고, 딱 보기에도 고급스러운 한옥이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었다.
평소라면 이곳이 시끌벅적해질 이유가 없었다.
프라이빗한 고급 음식점이었고, 그만큼 조용한 것을 원하는 높은 사람들만 찾는 곳이었으니까.
하지만 오늘은 샛길 초입부터 사람들로 미어터지고 있었다.
샛길뿐 아니라 그 주변 숲도 사람들로 가득했다.
이미 그 한옥 건물을 중심으로 주변이 사람들로 가득 찬 상태였다.
한옥의 대문 바로 앞에 주차되어 있던 3.5톤 윙바디 트럭의 화물칸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천천히 하늘을 향해 뚜껑이 올라갔고.
내부에 설치된 무대와 스피커가 드러나자 그 뒤 한옥 대문이 열렸다.
그가 방긋 웃으며 트럭 무대로 올라 드럼에 기대어 있던 하얀 기타를 들었다.
무대 중앙으로 움직여 마이크 앞에 섰다.
“오프닝 어땠어?”
온갖 찬사가 여기저기서 쏟아졌다.
누군가에 대한 욕설이 섞이기도 했고, 그저 함성만을 지르기도 했으며, 목이 터질 듯 ‘갓끼’를 외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기타 소리를 확인하던 그가 연주를 시작했다.
“그러니까 투표를 잘하라고.”
얼마 전 미국의 축제를 뜨겁게 달궜던 그 곡이 흘렀다.
“회색 도시 갑니다!”
그가 입꼬리를 올리며 노래하기 시작했다.
‘어?’
열광하던 사람들이 눈을 크게 떴다.
분명 포크 록이었던 그 곡이 완벽하게 펑크록으로 바뀌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국의 무대에서 느꼈던 다 같이 놀자는 분위기가 절대로 아니었다.
훨씬 더 강렬하고 자유분방하게 튀어댔다.
그 동해 소년의 무대와는 완전히 다른 무대였다.
거칠게 뿜어지는 포효에 목소리를 섞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노래가 절정으로 치달았고.
“잘 있어라.”
마구 목을 긁어 대며 갑갑함을 노래하던 그가 마이크를 관객들에게 내밀었다.
기타가 멈췄고.
숨죽이던 관객들이 가슴 가득 공기를 채웠다.
“뭐라고?”
그가 귀에 손을 갖다 대며 눈을 감자.
-야! 이 개자식들아!
온 산이 들썩일 정도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양손을 옆으로 편 채 어깨를 으쓱한 그가 마이크를 입에 가져갔다.
“대중 무서운 줄 모르고 말이야.”
기타를 잡은 그가 뛰어올랐다.
그에게 집중하느라 등장한지도 몰랐던 나머지 멤버들이 각자의 악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함성은 더욱 커졌고, 어느새 산 전체를 뒤덮을 정도로 가득 찬 사람들이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 * *
“이… 이게 대체…….”
테이블이 흔들리는 착각까지 들 정도의 엄청난 함성이었다.
권석엽은 사색이 되어 보좌관을 바라봤다.
“모…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 들어와서… 바로 뛰어 올라왔는데…….”
“뒤… 뒷길은?”
“듣기로는 전부 막혔다고 합니다. 길뿐만 아니라 산 쪽도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일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대체 뭘 한 건가!”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서 종일 인터넷 분위기를 살폈었다. 만일 어떠한 낌새라도 보인다면 바로 보고를 했을 테지만,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다만.
그가 도착한 이후로는 살피지 않았을 뿐이었다.
고작 20분 만에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다.
“아무래도, 저 난리가 끝나기 전까지는…….”
보좌관이 고개를 숙였다.
저 트럭을 주시했어야 했는데… 그저 납품 차량이겠거니 했던 게 실수였다.
“주 사장, 자네도 이렇게 될 줄 알고 이런 자리를 만든 건가?”
“아뇨…….”
시선을 내리고 말하던 주희준이 바로 옆 그가 앉았던 자리를 바라봤다.
아직도 그 번쩍이는 체인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아… 조금 눈치는 챘던 것 같습니다.”
고개를 들어 권석엽을 바라봤다.
“그런데, 말리지는 않았습니다.”
피식 웃고는.
“저도 공범인 것 같네요, 대표님.”
주희준이 허리를 곧게 폈다.
“저 공연이 계속되는 한 밖으로 나가시기는 어렵겠는데요, 대표님.”
“뭐… 뭐?”
천천히 일어나며.
“저는 그냥 즐기기로 했습니다.”
“뭐야?”
발작적인 외침에 주희준이 피식 웃었다.
넥타이를 풀며 밖에서 들려오는 음악에 섞인 환호를 감상했다.
“제가 갓끼 님의 열성 팬이라서요.”
주희준이 보좌관을 지나쳐 문을 향해 움직였다.
“아!”
잠시 멈춰 뒤를 돌아보며.
“기자회견 준비하셔야겠는데요?”
방긋 웃어 주었다.
* * *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곽채군은 지금 벌어진 일들에 정신이 혼미한 상태였다.
내년 총선.
공천권을 가지고 있는 인물을 바라봤다.
잔뜩 일그러져 바들바들 떨고 있는 그의 얼굴은 그간 봐 왔던 그런 위엄 있는 표정이 절대로 아니었다.
완벽한 패배.
겹경사가 될 줄 알았던 자리가 공개 단두대가 놓인 곳일 줄이야.
서둘러 오늘 그 ‘오프닝’에서 자신이 했던 말들을 떠올렸다.
권석엽이 그때그때 말을 자르며 윽박지르는 바람에 큰 실수는 없었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직 자신이 살 수 있는 기회는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선을 살짝 내리니 심하게 떨리는 그의 다리가 보였다.
이미 패닉 상태임이 분명했다.
이제 그의 정치 인생은 끝난 것과도 같았다.
자신의 입으로 여론 조작을 시사했으며, 대중을 업신여겼으니.
더군다나 그 모든 것이 라이브로 사람들에게 전달되었다.
이건 그냥 묻을 수 있는 수준의 일이 아니었다.
곽채군이 벌떡 일어났다.
“뭐야? 장관은 왜 일어나?”
“어… 그게…….”
더 늦기 전에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여기서 침몰하는 배를 붙들고 있을지.
아니면, 새롭게 불어오는 기류에 올라탈 것인지.
평소라면 저렇게 노한 얼굴의 권석엽을 똑바로 쳐다볼 수 있었을까?
곽채군이 허탈하게 웃었다.
그래도 자신에게는 선택지가 남아 있지 않은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그와는 달리.
곽채군이 넥타이를 풀었다.
“뭐? 뭐야? 지금 뭐 하는 짓…….”
“그러니까! 왜 사람 말을 자르고 지랄이야.”
“야! 곽채군!”
“뭐! 왜!”
화들짝 놀라 눈이 동그래진 권석엽을 싸늘하게 바라봤다.
“잘 가십시오, 대표님.”
고개를 살짝 숙이곤.
“저는 살고 봐야겠습니다.”
넥타이를 던지며 후다닥 밖으로 달렸다.
* * *
노래하던 진혁이 뒤를 바라봤다.
무대 바로 뒤 엄지를 치켜든 주희준이 후련하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 헐레벌떡 달려 나오는 곽채군이 보였다.
진혁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애처로운 표정의 그가 되지도 않는 몸짓으로 덩실거렸다.
마치, 자기만큼은 살려 달라는 듯.
노래의 후렴구가 시작되었고, 다시 클라이맥스가 다가왔다.
진혁이 그를 향해 손짓했다.
엉거주춤 무대에 다가왔고.
“잘 있어라!”
순간 모든 음악 소리가 멈췄다.
관객들은 다시 외칠 준비를 했고, 그에게 마이크를 내밀었다.
“뭐라고?”
아주 잠깐의 정적.
“야! 이 개자식들아!”
살기 위한 그의 처절한 절규가 스피커를 타고 터져 나왔다.
망연자실한 그의 눈을 바라보며 진혁이 방긋 웃었다.
‘협박은 이렇게 하는 거지.’
다시 쾅쾅 울리기 시작한 음악 소리에 무대를 누비기 시작했다.
* * *
“야! 뛰어!”
“근데 이거 확실한 겁니까? 요새 워낙 음성 조작이니 뭐니… 그 왜 성대모사도 있고…….”
“방금 곽채군 장관이 직접 등장했단다! 이거 실제 상황이야! 저기 권석엽 대표가 있는 게 확실해!”
“아…….”
“방금 인간 회사에서 나온 그 ‘오프닝’ 이제 빼도 박도 못 해! 권석엽은 이제 끝났다고!”
여기저기 언론사들이 파주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