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147
147화 대국민 정기 휴일
“인기 많아지셨던데요, 장관님?”
진혁이 방긋 웃자 곽채군이 흠칫했다.
“아… 그게… 뭘 해서 그런 게 아니라… 원래부터 해야 했었을 말을 했던 것뿐인데…….”
“흠…….”
반응이 시원치 않다. 얼른 그가 원하는 답을 찾아야만 했다.
“다 자네 덕이지! 암!”
“뭘요. 장관님이 처신을 잘하신걸요.”
“아…….”
“앞으로도 잘하셔야죠?”
“물론이지!”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곽채군이 소리쳤다.
사실, 그날 자신도 함께 매장당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처음부터 이 아티스트를 이용해 먹으려고 공작을 펼쳤던 것은 자신이었다.
어쩌면 지금 자신이 살아 있는 것이 용한 정도였으니.
그날, 그 대단했던 권석엽이 침몰했다.
찍소리도 못 하고 말이다.
종이 한 장의 차이로 자신은 살아남았고, 대중들의 지지를 등에 업어 버렸다.
이번 일에 정치계도 술렁이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진영이나 이념 또는 세대를 초월한 지지자들의 면면 때문이었다.
말 그대로 갑자기 떠오른 슈퍼 정치인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지금껏 대중에게 이렇게 많은 사랑과 지지를 받아 본 적이 있었던가?
정말 꿈만 같은 하루하루를 살고 있었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지금 앞에 앉은 저 해맑은 중년은 그런 자신을 한 방에 바닥으로 패대기쳐 버릴 힘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대중이라는 힘.
“바쁘실 텐데 만나자고 해서…….”
“아닐세! 아닐세!”
화들짝 놀라 손을 파닥거리는 곽채군을 가만히 바라보던 진혁이 입꼬리를 올렸다.
“제가… 그때 왜 마이크를 드렸을까요?
“아…….”
드디어 올 게 왔다.
-내가 왜 살려 줬을까?
얼른 그의 말을 해석했다.
곽채군이 황망한 눈으로 진혁을 바라봤다.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 것일까.
그간 정치를 해 오며 ‘척하면 척’을 입에 달고 살았건만.
저 해맑은 눈동자에선 어떤 것도 ‘척’ 하고 읽히지 않았다.
“그… 필요한 게 있으니까?”
“뭐, 비슷하네요.”
“아! 그런가?”
과장되게 밝은 표정으로 진혁의 눈치를 봤다.
“장관님이 저랑 말은 잘 통하시잖아요. 그런 분 또 찾기도 힘들고… 그렇죠?”
얼른 머리를 굴렸다.
-별 이유는 없고. 네놈까지 날려 버리면 또 다른 사람을 찾아야 하니까 그게 귀찮아서 살린 거야. 그러니까 잘하자!
곽채군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척하면 척.
지금 꼬리를 열심히 흔들지 않는다면, 더 잘 흔들 놈을 고르고 나서 자신에겐 된장을 발라 버리겠다는 말과도 같았다.
곽채군이 침을 꼴깍 삼켰다.
“하하. 그렇지! 그렇지! 내가 또 자네 말 하나는 금방 알아듣지 않던가.”
어떻게든 아직 미생인 자신의 목숨을 완생으로 만들어야만 했다.
과연 완생이 될 수 있기는 할까?
하지만 지금 이 자리는 적어도 활로를 하나쯤은 열 수 있을지도 모를 기회였다.
그런 생각이 들자, 처음 선거에 나갔을 때보다 더 떨려 왔다.
“장관님도 똑같은 건 아시죠?”
-네가 한 일 대충 다 알고 있다.
“아? 아! 물론이지! 내 깊이 반성…….”
“대중들을 위해서 사실 거죠?”
-안 그럼 너도 묻어 버린다.
“물론이지!”
“다행이네요.”
-일단 이번은 넘어갈게.
방긋 웃는 저 얼굴이 이렇게까지 소름 끼칠 줄이야.
“제가 뭘 좀 하려고 하는데요.”
“아! 뭔가 도울 일이라도……?”
“당연하죠. 그래서 오늘 만난 거니까.”
“아…….”
“자, 읽어 보시죠.”
진혁이 접힌 A4 용지를 펼쳐 곽채군에게 내밀었다.
언제나 빳빳한 서류철에 잘 정돈된 보고서만을 봐 왔었다.
그런데 이렇게 꼬깃한 종이를 펼치는 경험을 하게 될 줄이야.
컴퓨터로 작성한 것도 아니었고, 그저 연필과 볼펜으로 마구 휘갈겨 쓴 글씨가 보였다.
세상 성의 없는 종이 쪼가리였지만, 곽채군에게는 어마어마한 존재감으로 다가왔다.
구겨진 그 종이를 조심스럽게 펼친 곽채군이 눈알을 굴리며 글자들을 읽었다.
“대… 대중문화의 날?”
“네! 공휴일이죠!”
“아… 아?”
“진짜로 노는 날. 택배 아저씨도, 청소 아저씨도, 치킨집 사장님도, 다 같이 노는 날이요.”
“그…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아… 아니지. 이… 이런 걸 나 혼자서는…….”
힐끗 눈치를 봤다.
진혁이 고개를 갸웃했다.
‘못 해?’라고 하는 듯이.
아차.
“내 힘 닿는 데까지는…….”
“하셔야 할 겁니다.”
“그렇지! 그렇지! 해야지. 해야지!”
사실 공휴일을 지정한다는 것은 엄청나게 복잡한 일이었다.
국회를 움직여 공휴일에 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해야 했고, 발의가 된다고 해도 각계 부처의 반대에 부닥치게 될 것이 뻔했다.
가장 주된 이유 중 하나는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추가 휴일은 생산성 감소와 경제 생산량 감소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자영업자들은 급여를 받는 직원들과 같은 혜택을 받지 못할 터.
굉장히 복합적인 이유가 발목을 잡아 댈 것이 뻔했다.
자기가 대통령이라고 해도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하는 척은 해야만 했다.
살긴 살아야 했으니까.
“그런데… 날짜가 없는데…….”
“매달 셋째 주 수요일요!”
“아… 수요일… 뭐, 뭐라고?”
곽채군이 화들짝 놀랐다.
“음… 그러니까 정기 휴무 같은 거?”
“매달?”
“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침을 꼴깍 삼키고 고개를 저었다.
“그러니까… 각 부처와 상의도 해야…….”
상의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아니, 안건을 꺼내는 즉시 미친놈 취급을 당할 것이 틀림없었다.
“기업들의 의견도 들어야 하고… 자영업자나… 또…….”
세상 어느 천지에 국가가 나서서 정기 휴무를 지정한단 말인가.
자영업자들은 난리가 날 테고.
그 전에 먼저 대기업들이 들고 일어날 것이다.
“경제적으로 엄청난 타격이 올 수도…….”
아…….
저 해맑고 살벌한 눈빛.
곽채군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려 왔다.
“음…….”
‘괜히 살려 줬나?’라는 느낌의 소리.
소름이 확 올라왔다.
“복잡하네요.”
-그런 복잡한 것들 해결하라고 살려 줬는데…….
곽채군이 움찔했다.
하지만 이건 자기가 뭘 어쩔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그… 그게… 이런 엄청난 일은 대통령이라도…….”
진혁이 방긋 웃었다.
“운만 띄우세요.”
“……?”
“어차피 장관님이 할 수 없는 일이잖아요.”
“그게… 무슨…….”
“사람들이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정도만 알 수 있게.”
“그… 그러면?”
“나머진 제가 알아서 할게요.”
“아…….”
척하면 척.
그냥 미친 척 한번 하라는 소리였다.
이슈를 만들라는 말이겠지.
곽채군이 어색하게 웃었다.
“알아들으셨어요?”
“아… 알겠네.”
아무래도, 목줄을 제대로 잡힌 모양이었다.
곽채군이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 * *
“흠…….”
“재밌지 않을까요?”
능글거리는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표정을 살피는 진봉구 이사장을 바라보던 김충기 회장이 고개를 저었다.
탁자 위 올려진 제안서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어디까지나 지금까지 제가 지원을 해 왔던 것은 저희 창천 그룹의 이익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시겠죠.”
이번에 인간 밴드를 함께 서포트하며 조금 거리가 가까워지긴 했지만, 저 여유로운 얼굴은 여전히 얄미웠다.
“이런 공익 재단은 기업의 이미지를 고려해야 하는 것인데… 반발이 거셀 겁니다.”
진봉구 이사장의 빙글대던 표정이 조금 굳어졌다.
“맞습니다.”
아무리 재계 1위,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는 대기업이라도 이 부분은 걱정될 수밖에 없을 터.
“고작 재계 서열 7위에 있는 저희에게는 상당히 부담되는 제안이군요.”
진봉구 이사장이 피식하고 웃었다.
재계 서열 7위를 강조하다니…….
얼마 전 경제지에서 발표한 그 유치한 줄 세우기가 맘에 들었던 것으로 보였다.
1년도 안 된 시점에 9위에서 7위까지 올라갔으니 그럴 만도 했다.
“저는 도울 생각입니다.”
“아마도 다른 재벌들이 물고 늘어질 겁니다.”
“예상하는 바입니다.”
“아무리 청강이라고 해도 버티지 못할 겁니다.”
가지고 있는 현금을 상당히 많이 쏟아부어야 할 테고, 그만큼 그룹의 지배 구조도 흔들릴 수 있었다.
청강은 자신들처럼 직계 하나만 있는 경우가 아니었기에, 진봉구 이사장을 끌어내리려는 누군가가 등장할 여지가 다분했다.
거기에, 결속력이 약해진 청강을 물어뜯을 다른 재벌들까지 상대해야 할 터.
“도대체 무슨 생각이십니까?”
또 저 의미심장한 미소가 진봉구 이사장의 얼굴에 걸렸다.
김충석이 미간을 좁혔다.
“사업가로서는 적당히 이름을 남기게 될 겁니다.”
“저는 모르겠지만, 이사장님은 확실히 남기시겠죠.”
“부족함 없이 살았습니다. 항상 기회가 넘쳤고, 뭘 걱정해야 할 상황도 거의 없었습니다.”
그랬을 것이다.
태어났을 때부터 한국에서 제일 부자였으니.
“인간에게 예술이 필요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인간은 영원히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번엔 철학인가요?”
진봉구가 방긋 웃었다.
“글이나 이미지만으로 전달할 수 없는 감정들을 후세에 전달하기 위해서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지식만큼이나 예술이란 인간과 뗄 수 없는 존재입니다.”
“꽤 멋진 말이긴 합니다만…….”
“그렇죠? 한참을 고민해서 깎고 깎은 개똥철학입니다. 언젠가 인터뷰 때 써먹으려고요.”
“흠…….”
“사업가로 남겨진 이름은 과연 얼마나 갈 수 있을까요?”
“지금 뭐… 예술이라도 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하하.”
김충석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원래부터 저런 사람이었다.
뭔가 뜬구름 잡는 소리를 갑자기 해 대는…….
그런데도.
그의 사업적 재능은 언제나 옳은 방향을 선택해 왔었다.
“한국 대중문화의 최대 부흥기를 이끈 사업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꿈꾸는 눈.
김충석은 진봉석 이사장의 반짝이는 눈을 바라봤다.
“백 년 뒤, 아니 이백 년 뒤쯤 청강이라는 이름이 사라졌다고 하더라도, 초등학교 역사책에 남게 될 문구입니다.”
김충석이 평소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눈이었다.
이제는 그다지 싫지 않은 눈빛이지만.
“지금 이 세대는 역사에 남을 만한 세대입니다.”
“동의합니다.”
“그 예술 역사에 이름 석 자 넣는 대가로 저 정도는 그리 크지 않은 액수라고 생각합니다.”
슬쩍 제안서를 바라봤다.
정리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고, 폰트도 알아보기 어렵게 제멋대로였다.
단어 중 오타도 몇몇 보였다.
아마도 ‘그’가 직접 만든 것이 날것 그대로 올라온 것일 터.
그나마 굵은 글씨체여서 눈에 띄는 제목을 다시 봤다.
[대국민 정기 휴일 재정적 지원 방안.]가칭 대중문화예술 진흥 재단이란 곳에서, 처음으로 해야 하는 일이었다.
대국민 정기 휴일이라…….
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발상이란 말인가.
그리고 이런 허무맹랑한 제안에 저렇게 눈을 반짝이는 진봉석이라니.
“수백억이 깨질 겁니다.”
“매달 말이죠.”
“수익 구조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공익 재단입니다.”
“적어도 그 예술적 가치가 그 정도는 되어야만 할 겁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그… 교과서엔…….”
“김충석이라는 이름도 실리게 되겠죠.”
“아뇨.”
지금 자신의 눈도 빛나고 있을까?
문득 든 생각에 김충석이 눈가 주름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창천이라는 이름을 싣겠습니다.”
자신에겐 창천이 전부였으니까.
“재계 서열 7위가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놈의 서열 7위는…….’
진봉구가 방긋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김충석이 무심하게 그의 손을 맞잡았다.
자신은 확인하지 못했지만, 무표정을 유지한 그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 빛나고 있었다.
진봉구 이사장이 방긋 웃었다.
* * *
“장관님! 어제 스타그램에 올리신 대국민 정기 휴일이라는 글은 정부의 입장인 겁니까?”
“각계 부처와 상의는 하신 건가요?”
“일각에선 인기만을 노리는 무리수라는 말도 나오고…….”
“그런 제안에 현실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자영업자들을 지원한다는 부분은 정확하게 계산이 되신 겁니까?”
“대중문화의 날이란 것은 어디서 나온 아이디어죠?”
“장관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개인적 의견이십니까?”
“법안 발의까지도 생각하신 부분이십니까?”
“청와대와 협의된…….”
“전경련과는 얘기가 되신…….”
“포률리즘에 빠진…….”
기자들에게 둘러싸인 곽채군이 바들거리는 입술로 어색한 미소를 만들어 손을 흔들었다.
“아… 곧 기회가 닿으면 자세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젠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상태였다.
한직에 불과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이렇게 대한민국 이슈의 중심에 섰던 적이 있었던가?
갑자기 그 소름 돋는 해맑은 미소가 떠올랐다.
‘일단 살고 보자.’
출당은 각오해야 했고, 장관직도 경질될 수 있었지만.
그의 정치 인생은 지금이 클라이맥스였다.
* * *
-대중문화의 날. 과연 현실성이 있는 것인가?
-인기에 취해 망언을 쏟아 낸 문화체육관광부 곽채군 장관.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성명 발표.
-전국경제인연합회 긴급 기자회견.
-각계각층에서 터져 나오는 우려의 목소리.
-대중음악에 올라탄 곽채군 장관의 무리수.
-전례 없는 포퓰리즘에 사회 지도층의 성토가 이어져.
그날.
포털 기사란은 [대중문화의 날]이 장악했다.
아직 햇살이 뜨거운 늦여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