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148
148화 초자연적 존재
기억의 시작은 다섯 살쯤이었다.
기댈 곳이 없음이 서러웠고, 사람의 품이 그리워 슬펐다.
울고 또 울었다.
그 또래 아이의 표현 방법은 단지 그것뿐이었으니까.
그 울음은 전염병과도 같았다.
아이가 울면, 주변 모든 아이가 함께 울어 댔다.
세상이 떠나갈 듯 그렇게 모두가 목놓아 울었고.
놀라서 달려온 어른들도 슬픔에 잠겨 눈물을 흘렸다.
그 아이가 울 때마다 벌어졌던 일이었다.
겁에 질린 어른들은 귀신 들린 아이라며 손가락질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격리되었다.
홀로 갇혀 지내야 했던 그 지옥 같은 어둠 속의 하루하루가.
이 생애의 첫 기억이었다.
* * *
진혁은 눈을 감았다.
세상 속 외면되어 그늘에 가려진 소수를 떠올렸다.
그간의 공연들은 모두가 보기에 정말로 성공적이었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열광하고 즐거워했으니까.
다만, 그런데도 함께 즐기지 못한 이들은 그 수배가 넘었다.
인원으로 따지자면 훨씬 더 많기에 소수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지만, 그들은 함께 공감하지 못했기에 소수가 되었다.
엄청난 무대를 다시 만든다고 해도, 그 또한 함께하지 못한 그들은 더욱 소외될 것이었다.
삶에 치어 바둥대다 대중문화에서 한 발짝 멀어진 사람들.
그들에게도 여유를 주고 싶었다.
기타를 들고 부드러운 콧노래로 그들을 위로하기 시작했다.
‘모두를 구할 수는 없어.’
마흔넷 진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알아.’
아무리 세상 물정을 모른다고 해도 불가능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다만.
‘단 한 사람이라도 더 즐거웠으면 좋겠어.’
진혁이 기타의 현을 건드리기 시작했다.
‘그게 날 존재하게 하니까.’
그들의 치열한 삶을 이해하고 싶었다.
그리고 모두가 함께 웃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아주 높은 곳에 있는 이들이던, 아주 낮은 곳에 있는 이들이던.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즐거웠으면 좋겠다는, 고집과도 같은 음악이 흘러나왔다.
열아홉 진혁이 방긋 웃으며 마흔넷 진혁을 바라봤다.
‘어땠어? 마음껏 울어도 봤을 거고, 맘껏 성질도 부려 봤을 거 아냐.’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니었다.
그저 웃는 것만이 허락된 자신에게, 더 이상 잔소리는 하지 않았으면 하는 어깃장이었을 뿐이었다.
기타 한 음에 희망을 담았고, 콧노래 한 음절에 즐거움을 담았다.
소풍날을 기다리는 아이의 설렘을 붓고, 눈물이 쏙 빠질 만큼의 웃음을 섞었다.
기쁨, 사랑, 자신감, 열정, 용기, 행복함, 재미, 신남.
온통 긍정적인 감정들만을 떠올렸다.
자신은 그래야만 했기에.
‘알아들었으면, 가만히 좀 있어.’
슬픈 눈으로 바라보는 마흔넷 진혁을 노려봤다.
* * *
“야. 근데… 넌 진혁이랑 계속 연락하고 지냈었지?”
충기의 말에 상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야 사는 데도 가까웠고… 애들 엄마끼리도 친했으니까.”
“우리야 워낙 오랜만에 만난 거라서 사실 잘 모르겠는데… 진혁이가 그때도 저렇지는 않았지?”
“뭐가?”
“문득 든 생각인데… 쟤 울거나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거 본 적 있냐?”
“음… 술 먹고 예전 얘기하면서 운 적도 있고, 은서 엄마 쓰러졌을 때도 엄청나게 힘들어하긴 했었지. 뭐, 걔도 인간인데…….”
“음악을 다시 하고 나서는?”
“어… 그게…….”
상정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미간을 좁혔다.
“그때 왜 너한테 찾아와서 처음으로 음악 하자고 했을 때 말이야. 그다음에도 뭔가 감정적인 부분을 보인 적 있었어?”
“어… 그야… 그 후로는 그럴 만한 일이 없어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우리 어릴 때도 진혁이는 항상 웃었어.”
“그… 그렇네?”
“이번에 음악 활동 하면서도 항상 웃기만 해.”
“아…….”
항상 즐겁고 재밌고 행복한 표정이었다.
좋아하는 음악을 다시 만났기에 그런 것이라 여기면 크게 이상 할 것도 없긴 했지만.
“밝지 않으면 절대로 안 되는 것처럼… 평소에도 그렇잖아?”
문득 생각해 보니 음악을 잃었었던 그 시기 동안 진혁은 다양한 감정을 가졌었다.
슬퍼하기도 했고, 괴로워하기도 했으며, 짜증도 부렸었다.
하지만 지금은?
“물론 그게 잘못됐다는 건 아니지만…….”
“강박증 같은…….”
상정이 입을 달싹였고, 충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썩 어울리는 단어였다.
“절대로 슬프거나 괴로운 노래는 부르지 않아. 음악을 잃고 가장 많이 느꼈을 감정들일 텐데도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어.”
이번에 따로 팀을 만들어 자신들의 음악을 해 봐서 더 잘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음악을 만든다면, 그런 생생한 경험에서 오는 감정들을 더 먼저 떠올리지 않았을까?
“물론 음악은 엄청나. 완벽해. 다만, 지금껏 진혁이가 자기 감정을 내비친 적이 있다고 생각해?”
“아…….”
그러고 보니 진혁의 음악은 언제나 다른 사람들을 위하는 방향이었다.
“리메이크나 커버는 제외하더라도, 진혁이가 직접 만들었던 곡들도 결국은 다른 이들을 즐겁게 하기 위한 노래들이었어.”
“그야…….”
“항상 밝았고, 희망만이 가득한 노래들.”
사실 노래를 듣는 사람들에겐 전혀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곁에서 항상 같이 지내 온 이들에게는 어떤 기시감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그 엉뚱함과 기발함 그리고 대범함에 가려져 있었지만…….
“문득 생각해 보니 즐거움만을 남겨 둔 채 나머지 감정들 자체가 도려내어진 느낌이야.”
“음… 듣고 보니 그렇기도 하네.”
줄곧 정신없이 끌려다니느라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었지만.
계속 같이 지내 왔던 상정이었기에 조금 되짚어 보니 그 감정적 변화가 확실하게 느껴졌다.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한 번에 변할 수 있지?
음악이 돌아와서 다시 찾은 자신감이라기엔 너무나도 큰 변화였다.
어차피 사람 속이란 겉으로는 알 수 없는 법이었다.
그게 아무리 오래된 친구일지라도.
이렇게 추상적인 추측만으론 의구심만 늘어날 뿐이었다.
“한잔 마시면서 얘기해 보자.”
“그래야겠다.”
충기가 스틱을 내려놨고, 상정도 신디사이저의 전원을 껐다.
문득 떠오른 기시감이 가져다준 불안감은.
쉽게 넘길 만한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 * *
[곽블리 무리하는 거 아니냐?]└지금 지지율 뽕에 취해서 감당도 안 되는 정책 내놓은 거야.
└맞아. 저게 가능할 리가 없음. 전경련까지 갈 것도 없이 소상공인들에서 컷임.
└대체 공휴일 하나도 간당간당하게 통과되는데, 매달 정기 휴일이라니, 말이야 방구야.
└뭔 공중 부양만큼이나 황당한 얘기를 저렇게 떠들어 대나.
└아무래도 우리가 너무 띄워 줬나 봄. 저거 정신 차려야 됨.
└장관 경질설까지 나오던데?
└음, 그건 좀. 그래도 진혁느님 따까리 아님?
└그래도 곽블리가 정부에서 자리를 잡고 있어야지 진혁느님이 뭘 해도 도움이 될 텐데.
└경질은 막아야 함.
└아. 좀 가만히만 있어도 지지율은 계속 올라갈 텐데 왜 저럼?
└그러니까. 나대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근데, 진짜 국가에서 정기 휴무 정해 주면 재밌긴 하겠다.
└뭐 노는 날 하나 더 생기는 건 좋긴 하지. 근데 자영업자들은 어쩌라고? 직원들 월급은 그대로 나가고, 문을 안 닫으면 휴일이라 임금도 더 줘야 하는데?
└맞아. 일단은 돈이 문제임.
└대기업이나 공기업은 몰라도 못 쉬는 곳이 더 많을걸?
└지금도 좆소는 대체 공휴일은 안 쉬는 데가 태반임.
└아무튼 어그로는 신선했다.
└정부랑 국회랑 양쪽에서 미친놈처럼 까이더만.
└아, 정치인 중에 호감형 하나 나오나 했더니 그게 똥패였을 줄이야.
└뭐, 황당하긴 해도 재밌는 아이디어기는 해.
└좀 안 됐다. 이제 날아오르는가 했는데.
└그 왜 안쓰러운 동네 바보 형 같음.
└일단 장관 경질 분위기는 막아 보자.
└그래, 아직 써먹을 데는 많아.
곽채군 장관을 가장 지지하던 사람들도 이번 사태에선 황당한 분위기를 이어 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대책도 없이 떠벌리고 있으니 그저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수밖에 없었다.
내심 상상만으로는 즐거운 안건이었지만, 그게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실망스럽기도 했다.
그렇게 부정적이기만 한 여론이 형성되던 중.
[어? 인간 회사 들어가 봐. 이게 대체 뭔 소리지?]└나도 지금 그거 보고 화들짝 놀랐음.
└미친. 이거 뭐냐 진짜?
└인간 회사가 그 말도 안 되는 정책을 지지한다고?
└대중문화예술 진흥재단은 뭐 하는 데냐? 이런 단체도 있었나?
└초대 재단 이사장이 대박이야. 진봉구?
└뭐야! 청강?
└대박! 청강이 인간 회사 후원이었어?
└야! 창천도 있음.
└오. 대기업들이 대놓고 밀어주네?
└정기 휴무일마다 대국민 무료 콘서트?
└매달?
└각종 문화 행사 모두 무료라는데?
└경제적 지원 방안까지도 준비 중이래.
└이거 진짜 미쳤다.
└곽블리 사고 제대로 쳤는데.
모두를 술렁이게 만든 뉴스가 하나 터져 버렸다.
부정적이기만 하던 여론의 호수에 커다란 바위 하나가 거대한 파장을 일으켰다.
* * *
“야! 이런 건 먼저 상의를…….”
“음… 아저씨한테 말하면 뭐 뾰족한 수가 나오나요?”
“아니. 그래도 명색이 여기 대표가…….”
“동구 아저씨가 대표잖아요.”
서동구가 키득댔고 얼굴이 빨개진 윤석준이 씩씩거리며 노려봤다.
“이러려고 곽채군 그 인간 살려 준 거야?”
어쩐지, 그 자리에서 곽채군을 살린 것은 조금 어색하기는 했다.
진혁의 성격상 모든 사건의 진실을 알고도 그냥 넘겼을 리는 없었으니까.
“뭐… 겸사겸사.”
“이거 어디까지 진행된 거냐?”
일은 이미 터졌고, 발을 빼기엔 너무 늦어 버렸다.
“이사장님이랑 창천 회장님이 재단을 만드셨고요. 뭐, 자세한 건 아직 잘 몰라요.”
“아니, 네가 지른 거 아냐?”
진혁이 방긋 웃었다.
“전 그냥 한 달에 한 번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다 놀았으면 좋겠다는 정도만 생각했죠.”
“뭐?”
“곽채군 장관님도 그렇고, 그 재벌 아저씨들도 뭔가 많이 복잡하다고 하던데… 제가 뭘 알아야죠.”
윤석준이 이마를 짚었다.
“그래서… 넌 뭘 하려고 정기 휴무를 만든 건데?”
“매달 신곡을 낼 거예요.”
이마를 꾹꾹 누르던 윤석준의 눈이 동그래졌다.
“신곡?”
“매달 그날 직접 무대에서 발표할 거예요.”
“매달?”
“제가 놀자고 했으니까 제가 무대에 올라가야죠.”
“아…….”
해맑게 웃는 진혁을 황당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일단 1차적으로는 그렇고…….”
“뭐… 2차도 있냐?”
진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원래 그렇잖아요. 시즌 1이 잘되면 시즌 2를 만들고, 이게 계속 잘되면 시즌 10도 될 수 있는 거지.”
“야! 이게 무슨 사골처럼 우려먹는 미드도 아니고…….”
아차. 정작 중요한 걸 빼먹고 또 저 해맑은 미소에 말려 버렸다.
“그… 정부 쪽도 진행이 되는 중이냐?”
“흠, 힘들지 않을까요?”
“뭐?”
“세상에 어떤 나라가 매달 정기 휴무를 만들어요. 생각을 좀 해 보세요.”
의외로 상식적인 대답이 나오자 윤석준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저 인간에게 생각 좀 하라는 말까지 듣게 될 줄이야.
뒤에서 멧돼지가 킥킥거렸지만 그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그럼 다 꽝이라는 말이잖아!”
“에이…….”
“에이! 뭐!”
“진봉구 이사장님이 그러더라고요.”
“응?”
“돈이면 안 되는 게 없다고.”
“그거야…….”
석준이 방금 대충 보고 던졌던 서류를 바라봤다.
-소상공인 경제적 지원 방안
얼핏 봐도 엄청나게 의미심장한 목차가 눈에 띄었다.
하긴, 그 재벌가 양반들이 – 앞에 있는 이 해맑은 철부지처럼 – 아무런 대책 없이 끼어들지는 않았을 터.
천천히 그 페이지를 펼쳐서 읽어 내려갔다.
점점 동공이 커졌고 마구 지진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멍한 얼굴로 고개를 들어 해맑게 웃는 인간을 바라봤다.
저 인간과 엮이더니 그 냉철하다는 재벌들도 정신이 나간 건가?
도대체 이게 말이 되는 건가?
저도 모르게 가슴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이 늙은 심장은 왜 또 벌컥대고 지랄인 거지?
“그러니까 인간 회사가 동원할 수 있는 현찰 전부 다 꺼내 달라고요.”
“아…….”
“뭐, SJ 엔터테인먼트도 한 다리 걸치시든가.”
“아……?”
“제 덕에 꽤 버셨잖아요?”
‘아… 삥 뜯으러 온 거였구나.’
방긋 웃는 그 미소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 * *
“네, 자료는 잘 받았습니다.”
앨런이 노트북 화면의 폴더명을 확인했다.
“어떻게… 그곳은 찾으셨습니까?”
-지금 네 번째 동네에 진입하는 중입니다.
“아… 아직이군요.”
-워낙 작은 동네들이 산발적으로 있는 곳이라서요. 이제 세 군데 남았습니다.
“며칠 내로 저도 한국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네. 그 전에 찾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벗어 뒀던 안경을 다시 썼다.
정태강이 보내온 폴더들을 한곳에 모아 저장했다.
희뿌연 안개에 가린 듯 막막했던 가정들이 모이고 모여 어설프게나마 길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간 지구상 모든 생명에 대한 ‘사실적 탐구’를 해 온 그였다.
그렇기에 그 본질은 언제나 가장 상식적인 선에서 출발했다.
그래서 제자리를 맴돌고 있었던 것이었다.
자료가 한데 모인 폴더의 폴더명을 입력하려 마우스를 클릭했다.
지금은 상식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말도 안 되는 판타지 소설이라고 생각하며 접근해야만 했다.
상식으로는 절대로 설명되지 않는 존재임을 인정하자 짙은 안개가 조금씩 걷히기 시작했다.
키보드에 손을 올리고.
천천히 한 글자 한 글자 두드렸다.
[supernatural being]초자연적 존재.
지금은 이 단어가 아니고서는 설명되지 않는 일들이 너무 많았다.
인간으로 접근해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