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149
149화 다 같이 놀아 보자
청강 그룹 각 부서의 경력자들이 한데 모였다.
새로 신설된 ‘대중문화 진흥 재단’의 뼈대를 만들기 위한 회의가 매일같이 열리고 있었다.
이들 모두는 이 말도 안 되는 재단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대충 알고 있었다.
누군가의 ‘하루쯤 다 같이 놀았으면 좋겠는데…….’라는 말 한마디에 시작된 허무맹랑한 계획들이었다.
어쨌건 대우는 본사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좋아졌다.
무엇보다 청강이라는 대기업에 들어올 정도의 엘리트들이었다.
누군가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한다는 자부심은 훌륭한 원동력이 되었다.
유치원생이 아무렇게나 떠들어 댄 얘기라도 제법 그럴싸한 의미를 부여하고 실현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황당한 계획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우선, 정확하게 지원하려면 소상공인들의 매출에 대한 명확한 자료가 필요합니다. 업장에 따라 차등을 둬야지 뒷말이 없습니다.”
“맞습니다. 보험회사에서 처리하듯 일률적으로 계산하기엔 그 범위가 너무나 천차만별입니다. 이 부분은 세무서와도 연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선 직원들에 대한 하루 임금을 직접 계산할 것인지, 운영 필요 자금으로 빼서 대표들의 손실액으로 넣어야 할지부터 결정해야 합니다.”
“대기업 쪽의 반발은 대중들의 마음을 돌리면 주춤하게 될 것 같습니다. 소상공인들이 먼저 참여하게 된다면, 그들이 내세우는 주장을 이기적인 행태로 몰고 갈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가장 크게 반대했던 유성 그룹의 프랜차이즈들에 대한 불매 운동도 생겨났다고 합니다.”
“대기업은 제외하고 준재벌 위주로 콘택트 해서 손을 잡는 것도 방법입니다.”
“언론보다는 SNS를 통한 여론 형성에…….”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정도에서 찌라시도…….”
진봉구 이사장이 옆에서 듣고 있는데도 주눅 하나 들지 않고 자신들의 의견을 서로 제시하고 있었다.
생수를 집어 목을 축인 그가 피식하고 웃었다.
진혁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한 달에 한 번 전 국민이 다 함께 쉬었으면 좋겠어요.’
이 말이 시작이었다.
‘너무 다들 바쁘게 살잖아요. 쉬려고 해도 다른 사람들은 달리고 있으니까 마음 편히 쉬지도 못하고, 자기만 뒤처지는 것 같아서 지치고 힘든데도 또 달리기 시작해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벌기 위한 행위에 가장 많은 기력을 쏟아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억지로라도 쉬게 하고 싶어요.’
다른 때, 다른 자리였다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을 테지만.
미국에서 그 많은 사람이 오로지 놀기 위해 모인 것을 본 직후였다.
과연 대한민국에서 마음 편히 휴일을 보낼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될까?
아래에서 바라봤을 때는 피라미드처럼 보일지 몰라도.
가장 위에서 내려다본 지금 사회의 모습은 압정과도 같았다.
재벌들은 대부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다만, 대외적으로 말하지 않을 뿐이었다.
피라미드였을 때는 그래도 보였던 바로 위 계단은 사라진 지 꽤 됐다.
까마득히 닿을 수 없는 가파른 절벽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모두가 희망을 놓아 버릴 수도 있었다.
이는 곧 사회적 시스템의 붕괴를 의미했다.
그들이 더 지쳐 모든 것을 놓아 버리기 전에 조금씩이라도 밟을 계단을 마련해 줘야 했다.
지금의 경제구조로는 오래 버틸 수 없었다.
말년이 가까워진 진봉구 이사장의 가장 큰 고민이었다.
‘놀았는데 이익이 생긴다면 하루쯤은 당연히 놀지 않을까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불가능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 해맑은 얼굴에 고개를 끄덕였다.
부의 재분배.
이념적으로 항상 부딪치는 참 어려운 말이었다.
사실 그 큰 고민의 해답은 이미 알고 있었다.
죽기 전까지 자기 재산의 90%를 기부하겠다던 세계 1위의 부호가 떠올랐다.
20년간 46조라는 돈을 기부해 온 그였다.
여러 빈곤 국가에 재단을 설립했고, 세계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에 직접적으로 해결 방안을 모색하러 다니곤 했다.
이 역시도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을 쏟아부었다.
자신이라면 꿈도 꾸지 못할 행보들이었다.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는 애국 기업.
…사실은 청강이라는 기업을 대한민국 국민이 먹여 살리는 것이었다.
결국 가장 큰 이익은 가장 위로 올라오기 마련이었으니까.
국민이 없다면 청강도 없었을 터.
세계의 문제나 빈곤 국가에 지원하는 정도의 신념까지는 없었지만.
적어도 이 나라에 사는 사람들을 조금 더 재밌게 하는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사님, 돈 많으시잖아요.’
분명 어떤 산술적인 계산이나 명확한 기획안이 있었기에 나온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저 해맑게 웃으며 별 생각 없이 내뱉은 그 말이 진봉구 이사장의 가슴에 꽂혔다.
대중문화의 발전을 위한다는 표면적인 이유가 있기는 했지만.
사실 진봉구 이사장에게 전 국민 정기 휴일은 오랜 고민의 해답을 얻기 위한 첫 번째 출구였다.
부의 재분배라는 참 껄끄러운 말을 숨긴 채 압정의 끝을 조금씩 무디게 만들어 갈 포석이었으며.
그로 인해 만들어질 대한민국 대중의 역사는 훗날 훨씬 더 큰 가치로 돌아올 것이라는 확신이었다.
그가 던진 허무맹랑한 ‘놀자판’ 하나가 가져올 경제적 가치는 어마어마할 것일 터.
해방 이후, 정말로 열심히 달려온 대한민국은 잠시 쉬어도 될 때였다.
때마침 한국 대중음악의 힘이 엄청나게 커졌다.
놀아야 하는 핑계로 ‘대중문화’를 갖다 붙이기엔 완벽한 적기였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부러워할 즐거운 나라가 될 것이다.
얼토당토않은 그 엉성한 제안에 열을 올리게 된 것은, 이런 생각의 끝에서 나온 결정이었다.
바삐 움직이는 엘리트들의 모습에 진봉구 이사장이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 * *
제니스는 눈을 감고 공간 가득 퍼지는 음악에 집중했다.
제니스에게 새로운 우주를 선사했던 그 곡이었다.
처음으로 방문한 한국, 그 허름한 건물들의 옥상을 넘어 그를 마주했던 그때를 다시 떠올렸다.
이번 월드 뮤직 페스티벌에서의 무대에서 처음 선보인 그 곡을 다듬으며 생긴 루틴이었다.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게 되었던 그 순간은 정말로 기적과도 같았다.
아마도 그날 그곳에 모인 모두가 느꼈을 것이다.
그 이후로도 많은 공연과 새로운 곡들이 만들어졌지만.
제니스에겐 그 옥상에서의 ‘래빗’이 가장 강렬하게 남아 있었다.
‘어째서 이걸 이제야 알게 된 거지?’
이번 축제 기간에 그 곡을 만들고 나서 자신도 어렴풋이 알게 된 것이 있었다.
이번에 부른 ‘나의 이야기’는 철저하게 객관적으로 자신을 관조하며 만들어 낸 곡이었다.
그렇게 내면 곳곳을 무덤덤한 눈으로 바라봤었다.
제삼자의 시선으로 자신의 생을 돌아보는 경험은 정말로 신선한 느낌이었고.
문득 그 옥상의 무대가 떠올라 다시 듣기 시작했었다.
그 노래는 음원으로 나오지 않았기에 음질이 가장 좋은 영상 하나를 구했다.
그리고 시계태엽 때처럼 직접 연주하며 노래했다.
그 ‘탄생’의 멜로디를 반복해서 불렀다.
낯선 환희, 생소한 처음.
하나의 우주가 생겨난 그 기적의 순간.
세상 모두가 축복받아 마땅하다는 그 노래를 나지막이 읊조렸다.
그리고 자신의 심장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제니스 자신만의 특별한 ‘우주’를 마음껏 느꼈다.
그렇게 몇 번이고 연주하다가 비로소 알게 된 것이 있었다.
이는, 그 공연에 모여 있던 모두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부르고, 부르고 다시 부를 때마다 점점 더 진해지는 감정이 느껴졌다.
분명히 어떤 단 한 사람만을 위로하기 위한 곡이었다.
듣기만 했을 때는 몰랐지만, 직접 연주하고 불러 보며 그 감정을 헤아리다가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 감정은 수많은 갈래로 뻗어 나가는 것이 아닌, 어느 한 곳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너야.’
그때 열일곱의 제니스가 탯줄조차 자르지 못한 핏덩이를 안고 방긋 웃으며 속삭인 말.
과연, 그는 누구의 미소를 보고 싶었던 걸까?
그날 그가 연주하고 불렀던 모든 곡을 불러 봤다.
그럴수록 이 추측은 점점 확신으로 변해 갔다.
그때 그는 분명히 단 하나의 누군가를 보듬고 있었다.
오늘 내린 결론이었다.
제니스가 눈을 떴다.
원래는 이번에 만든 곡을 완벽하게 만들어서 갈 생각이었지만.
‘지금 당장 한국으로 가야겠어.’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 * *
“와…….”
진혁의 작업실에 모인 세 명의 친구가 입을 쩍 벌렸다.
“어때? 이번 신곡.”
멍한 얼굴의 셋이 고개를 끄덕였다.
“리듬은 감이 왔어?”
충기와 장하가 고개를 저었다.
감?
저 미친 엇박자를 어떻게 꾸미라고?
“어때? 키보드는?”
상정은 이미 머리를 쥐어뜯는 중이었다.
술이나 한잔하며 대화나 나눌까 해서 가볍게 찾아왔더니, 이런 묵직한 훅을 날릴 줄이야.
아직 완성된 것도 아니었고, 고작 2분에 불과한 기타 연주였지만 이미 그 자체로도 굉장했다.
여기에 진혁의 목소리가 입혀진다면 또 어떤 엄청난 곡이 탄생할지.
“다들 재밌어하겠지?”
모두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매달 신곡을 낼 거야.”
모두의 눈이 동그래졌다.
“정기 휴일 때 발표하는 거지.”
“라… 라이브로?”
충기가 물었고.
“당연하지.”
예상했던 답변이 튀어나왔다.
“전국, 아니 세계 모두가 동 시간대에 처음 맛보는 즐거움을 만나게 될 거야.”
진혁이 탁자 위에 마구 휘갈겨 그린 음표들을 펼쳤다.
“수많은 장르로 불리게 될 거야.”
“응?”
“악보 뿌릴 거거든.”
“어… 어?”
진혁이 팔짱을 끼더니.
“듣기 싫어도 들어야 할걸?”
저 해맑은 미소를 보아하니 이번에도 뭔가 재밌는 걸 계획한 듯했다.
나머지 셋이 서둘러 자기 악기 앞으로 움직였다.
원래 맥주 한잔하면서 뭔가를 물어보려 했었는데…….
‘그게 뭐였더라?’
그런 건 까맣게 잊어버렸다.
방금 그 기타 연주를 떠올리며 각자의 악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 * *
[야! 정기 휴무 대진재에서 시범 시행한대!]└대진재는 또 뭐냐?
└대중문화예술 진흥재단?
└ㅇㅇ
└거기 홈페이지 만들어졌음. 지금 개요도 떴어.
└정부가 쌩까길래 그냥 흐지부지될 줄 알았더니. 이걸 일개 재단이 한다고?
└일개 재단치고는 좀 화려하지.
└와. 아무리 그래도 이게 가능한 거냐?
└휴무에 참여하면 저걸 다 해 준다고?
└버스킹에 광고 배너?
└휴무로 인한 손실도 보장해 준다는데?
└미쳤다. 우리 사장한테도 보여 줘야겠다.
└저건 안 쉴 이유가 없겠는데?
└근데 저게 말이 되는 거냐? 나중에 딴소리하는 거 아냐?
└야. 진봉구가 자기 이름까지 걸었는데 사기 치겠어?
└하긴, 그렇겠지?
└진짜 대박이긴 하다.
└그런데, 이거 특별 이벤트는 뭐냐?
└대형 콘서트 같은 건가?
└야 뭐가 됐건 쉬는 날 매달 하나 느는 거 아냐?
└공식 빨간 날은 아니지.
└아무튼! 지방자치단체도 아니고 그냥 비영리 재단이 이렇게까지 퍼 준다고?
└아무리 청강이라도 매달 이러면 휘청할 텐데?
└창천도 끼었잖아.
└어? SJ엔터도 있다.
└ENK 그룹도 들어 있어.
└준재벌 몇 개도 껴 있음.
└준비 확실히 했네.
└그렇겠지. 대기업이 둘이나 붙었는데.
└와, 아무튼 이건 진짜 재밌겠다.
└돈 주면서 놀게 해 준다는데 누가 안 노냐고!
└문화행사 참여 인증해야 함.
└그거야 하면 되고.
└근데 이거 곽블리 작품이냐?
└뭐 신호탄을 쏘긴 했지. 그쪽은 불발 났지만.
└이러면 정부 이미지가 더 나빠지지 않나?
└그러게, 민간에서 알아서 하는 모양새는 좀 그렇지?
└아무튼 대박이다 진짜!
드디어 전 국민 정기 휴일에 대한 윤곽이 드러났다.
그것도 정부가 아닌, 아직 정식 명칭도 정해지지 않은 일개 재단의 이름으로.
시행 날짜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여러 가지 지원 방안이 제시되었고, 개인 단위부터 기업 단위까지 모두가 참여할 수 있었다.
처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곽채군이 말했을 때만 해도 현실성이 없다는 여론이 우세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적 손실.
하지만 대한민국 경제의 선봉에 선 대기업 오너들을 앞세운 대중문화예술 진흥재단의 출현은 그 여론을 잠재우기에 충분했다.
사실 하루라도 더 쉬는 건 누구나 바라는 일이었다.
단지 돈이 문제였지.
그 부분이 해결된다는 소식에 너도나도 참여 의사를 밝히기 시작했다.
한 달에 한 번, 전 국민 유급 휴일.
이 말도 안 되는 계획에.
대한민국 곳곳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 * *
“어?”
나비 계곡의 제이가 핸드폰의 알림을 확인했다.
“야… 이거 뭐냐?”
베이스를 만지작거리던 이찬이 고개를 들었다.
“왜?”
“악보 하나가 떴는데…….”
“뭐, 메일로?”
“아니… 인간 회사 공지로.”
“응?”
[다 같이 놀아보자.]짧고 명료한 제목의 공지.
“뭐야. 진혁느님이야?”
글자에서도 그의 해맑은 표정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제이가 화면 가득 그려진 음표를 바라봤다.
“와… 이거 멜로디 라인이 예술인데?”
“나머지는 알아서 채우라는 건가?”
가장 기본적인 가이드만 제시한 악보였다.
어떻게 변화시켜도 어울릴 만한 신기한 곡이었다.
막말로 트로트의 리듬을 얹어 종탁의 구성진 목소리로 불린다고 해도 완벽하게 호환이 가능할 정도였다.
“이거… 또 재밌어지겠는데?”
제이와 이찬이 입꼬리를 올리며 앰프를 켰다.
개별적으로 보내진 것도 아니고, 전체 공지에 띄웠다.
아티스트 계정을 갖고 있는 이들은 모두가 이 숙제를 확인했을 것이다.
어떠한 선별도 없었기에 누구라도 덤빌 수 있었다.
음악을 하는 모두의 눈이 반짝하고 빛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