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152
152화 VIP
누군가는 사랑을 말했고, 누군가는 유쾌한 삶을 담았다. 성공을 암시하는 가사를 붙이기도 했고, 희망찬 내일을 노래하기도 했다.
수많은 감정이 그 음표들과 어우러졌다.
9월 셋째 주.
그날만을 기다리며 아티스트들은 그 곡을 깎고 또 깎았다.
전혀 다른 경험과 환경을 가진 사람들이 너무나도 다양한 감정들을 쏟아 냈지만.
결국 모두가 도착한 지점은.
행복이었다.
애초에 처음부터 그렇게 정해져 있던 멜로디였다.
그 악보를 받고 처음으로 머릿속에 음악을 떠올리는 순간, 이미 도착 지점은 결정되어 있었다.
그랬기에 전혀 다른 언어들로, 전혀 다른 문체와 단어들로 쓰인 그 노래들은.
완벽하게 달랐음에도.
완벽하게 같았다.
절대 거스를 수 없는 포악한 독재와도 같았다.
* * *
제니스는 며칠째 그 음표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자신이 비행기를 타고 날아오는 동안 세계에 뿌려진 악보.
어떤 식으로 변화를 줘 봐도 결국 만나게 되는 것은 구름 한 점 없는 ‘맑음’이었다.
장조를 단조로, 리듬을 좀 더 그루브하게, 아니면 미친 듯이 빠르게, 아예 음정 자체를 흔들어 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원 멜로디가 머릿속에 남아 있는 한 결국 만나게 되는 것은 따뜻한 행복이었다.
사실 엄청난 곡이었다. 이렇게나 따스하게 전달되는 행복이라니.
다만, 그 노골적인 강제성이 잠시 잊고 지냈던 그의 반골 성향을 깨웠다.
그렇기에 쉽게 자신의 기타를 들지 못하는 중이었다.
“제니스! 들어 봐!”
키보드에 손을 올린 종탁이 눈을 감고 허밍을 시작했다.
그리고 경쾌하게 울리는 4박자의 멜로디가 그의 손가락을 타고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조금 느린가 했는데, 가사 한 음절 한 음절이 찰지게 꺾이며 느려진 리듬 사이사이를 가득 채웠다.
본래 알던 종탁의 구슬픈 창법과는 또 다른 맛이었다.
절로 흥이 났다.
젊은 사람들도 나이 든 어른들도 그대로 어깨를 들썩거릴 통통 튀는 느낌이 구성지게 흘러나왔다.
정신없이 오늘만을 위해 살아가자는 지극히 단순한 메시지도 상당히 명쾌했다.
그리고.
그 지향점은 결국.
행복이었다.
제니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왜? 별로야? 전 게 더 좋았나?”
“아니. 괜찮았어.”
“그래? 그런데 표정이 왜…….”
“흠…….”
제니스의 미간이 좁아지자 종탁이 후다닥 달려왔다.
“뭐가 문젠데? 리듬을 좀 더 당겨 볼까? 응? 아니면 가사가 별로야? 너무 직설적인가?”
함께 트로트 작업도 했었다.
그리고 당시 제니스의 트로트에 대한 이해력은 상당했었다.
그때도 제니스의 조언이 많은 도움이 되었지 않았는가.
“아니야. 진짜 괜찮았어.”
“괜찮은 게 아닌데?”
종탁이 주방을 향해 몸을 돌렸다.
“맥주?”
“아니 소주.”
“오케이.”
앨범 작업까지 함께했었다.
이젠 대충 그 표정만 봐도 그 속을 짐작할 수 있었다.
제니스의 얼굴은 평소 그답지 않게 무언가 생각이 참 많은 얼굴이었다.
후다닥 달려간 종탁이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고 즉석 조리 식품을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마음 같아서는 어딘가의 맛집에라도 데려가고 싶었지만.
한국에 도착한 이후 밖으로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 제니스였다.
띵.
조리가 끝났음을 알려 주는 맑은 소리에 조촐한 술상을 마련한 종탁이 테이블에 쟁반을 올려놨다.
“자. 우리 제니스는 왜 아직도 기타를 잡지 않는 걸까?”
한국에 오자마자 스튜디오를 원했던 제니스였다.
그래서 곧장 자신의 집으로 데려왔는데.
지금껏 악보만을 노려볼 뿐 아직 아무런 작업도 시작하지 않고 있었다.
그저 천재의 기행이라고 보기엔 그 표정이 조금 심각해 보였다.
“뭔가 있지?”
“넌 래빗을 어떻게 생각해?”
“굉장하지! 그런 사람과 동시대에 살고 있다는 게 엄청난 영광일 정도야. 더 말이 필요한가?”
“그렇지…….”
묘한 뉘앙스의 대답이었다.
소주를 한 모금 들이켜고 인상을 쓰는 제니스를 가만히 바라봤다.
“내가 처음 그의 음악을 들었던 것은 ‘시계태엽’의 원곡이었어. 정말로 굉장했지.”
종탁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 그에게 그 곡의 해석을 해 준 것이 자신이었으니까.
“그리고 너와 함께 한국으로 와 두 번째로 그를 만났어. 그 옥상에서.”
“굉장했지.”
“그날, 그의 음악은 정말로 엄청났어. 음… 뭐랄까, 어른 같은 느낌? 전달되는 감정 역시 그랬고. 음…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
“mature? 이 단어 맞지? ‘성숙하다’라는 말?”
저렇게 말이 길어진다는 것은 알맞은 한글로 된 단어를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종탁이 말하자 제니스가 ‘오!’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거야. 아무튼 그날 내가 만났던 우주는 정말로 굉장했어. 그리고 그 산속의 축제 역시 최고였어.”
“그러고 보니 거기서도 나랑 같이 있었네?”
“맞아. 그 축제에서도 그는 어른이었어.”
“정말 재밌었지.”
“그리고 함께했던 그 전국 합동 공연도 정말 최고였어.”
제니스는 원래 서론을 이렇게까지 길게 얘기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만큼 본론을 꺼내기에 주저하는 느낌이었다.
계속 기다려 주려고 생각하던 종탁이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술잔을 들던 제니스가 멈칫했다.
종탁이 방긋 웃으며 잔을 마주쳤다.
“이런 스타일 아니잖아?”
종탁의 말에 제니스의 눈동자가 떨렸다.
“지금까지 그가 불렀던 곡들을 그대로 따라가 봤어.”
소주를 입에 털어 넣고는.
“삶의 소중함을 알게 해 줬고, 서로 어울릴 수 있도록 응원해 주기도 했고, 가족의 의미를 일깨우기도 했어. 모든 생명에는 엄청나게 큰 가치가 있다고 얘기했지.”
제니스는 다시 채워지는 술잔을 가만히 바라봤다.
“마치, 누군가를 설득하려는 듯이…….”
“응?”
“여기서 혼동이 왔어.”
“무슨…….”
제니스가 얼굴을 쓸어내렸다.
“미국의 그 축제부터 그런 느낌이 확 지워졌거든. 아, 그 천재적인 음악성은 그대로야. 다만, 설득이 아닌 통보하는 느낌?”
“어… 그… 내가 천재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는데… 뭐가 달라졌어?”
제니스가 미간을 꾸욱 눌렀다.
뭔가 또 단어를 찾는 모양인데, 이번엔 종탁도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그래. 미국 이전까지는 어른으로서 아이에게 얘기하며 어루만지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아이가 자기 멋대로 하겠다고 표독스럽게 노려보는 느낌이야. 마치 사춘기같이.”
“진혁 님이? 래빗이?”
종탁이 쟁반 옆의 악보를 가리키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시 제니스를 바라봤다.
“응. 맞아.”
제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는 모르겠는데… 확실해.”
종탁은 맞장구를 칠 수도, 그렇다고 그 말에 반박할 수도 없었다.
일단 저 악보를 만나고 곡을 만들어 연습하는 동안 전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었기에 고개를 저으려 했었지만.
제니스의 저 단호한 표정을 앞에 두고 보니 분명히 자신이 모르는 뭔가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그래서 아직 기타를 들지 않은 거야.”
확실하게 이해하진 못했지만, 이 부분에선 고개를 끄덕여 줄 수 있었다.
“지금 맘에 안 든다는 거잖아?”
“그렇게까지는…….”
“아냐. 분명히 그런 뉘앙스였어. 너 지금 이 음악이 맘에 들지 않는 거야.”
“어… 그건…….”
“사실 뭔가 모호하긴 한데… 뭔가 뜬구름 잡는 소리인 것 같기도 하고… 근데 왠지 그냥 나온 소리는 아닌 거 같네.”
종탁이 탁자 위 악보를 들었다.
“그럼, 그냥 노래해.”
“응?”
“저 음표로 뭘 만들려고 하지 말고.”
그 악보를 뒤집어 탁자에 내려놨다.
완전하게 하얀 뒷면이 위를 향했다.
“찔러 봐야 정확한 걸 알 수 있지.”
“아…….”
“그냥 직설적으로 맘에 안 든다고 해.”
종탁의 말에 제니스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보다 더 명확한 대답은 없었다.
어쩌면 그를 향한 반항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래 보고 싶어졌다.
이 악보가 아닌 다른 음악으로 그가 목표하는 것에 덤벼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네가 만든 노래가 설득력이 있으면…….”
종탁이 주먹을 들었다.
“나도 같이 부르고.”
제니스가 피식 웃으며 그 주먹에 자신의 주먹을 갖다 댔다.
“자신 있어.”
소주.
한국의 술은 참 맑은 느낌이다.
딱 네 잔 들이켰는데.
음악 하기 좋은 적당한 취기가 맴돌았다.
제니스가 서둘러 자신의 하얀 기타를 들었다.
* * *
“하하. 뭐 넓지 않습니까. 다만 이제 가을로 접어드는데 잔디가 상하진 않을지…….”
“그거야 다시 심으면 되지요.”
“어쨌거나 대통령 취임식도 아닌데 광장이 가득 차겠어요.”
“세계가 지켜본다지 않습니까. 이건 허락해 줘야죠.”
“진짜 국가의 보물입니다. 하하.”
곽채군이 앞에 모인 의원들을 바라봤다.
야당 여당 할 것 없이 꽤 다채로운 이들이 자리했다.
대부분 국회에서 목소리가 좀 먹히는 중진 의원들이었다.
사실 대충 예상은 했던 결과였다.
정치적인 이념을 떠나서 경사스러운 일임은 틀림없었으니까.
거기다 이렇게 압도적으로 대중을 사로잡은 그에게 반기를 들려면 정말로 확실한 논리가 필요했다.
그리고 이 앞에 앉은 사람들은 그런 모험을 할 만한 인물들은 아니었다.
“그럼… 그 광장을 무대로 쓰는 것에는, 크게 이견들이 없으신 거죠?”
“물론이죠. 안 그래도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했는데, 이제라도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당은 제가 제대로 단도리하겠습니다.”
“하하. 간혹 이렇게 뜻이 정확하게 맞는 일도 있군요. 저희도 찬성입니다.”
곽채군이 활짝 웃으며 손뼉을 짝 쳤다.
“법적인 부분에서 임시적 예외를 두긴 해야 하니 그럼 내일 본회의에서 바로 처리하는 걸로 해도 될까요? 의원님들?”
“물론입니다.”
“하하하.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요.”
이런 조합으로 이토록 화기애애하게 얘기가 끝난 적이 있었던가?
곽채군이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다들 이번 기회에 숟가락 하나라도 얹어 보려는 속셈이 뻔히 보였기 때문이었다.
어쨌건.
하달된 임무는 완수했다.
“그런데… VIP석은 몇 석이나 준비하실 겁니까?”
“아…….”
“아무래도 100석 정도는 마련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슬슬 참석 인원 확인도 해야겠군요.”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곽채군이 어색하게 미소 지으며 의원들을 바라봤다.
이런 얘기가 나올 것 같아서 얼른 자리를 뜨려고 했는데…….
늦어 버렸다.
지금 앞에 모인 인물들은 당연히 자기 자리가 있을 것이라고 여길 터였다.
지역구 노인회관 잔치에서도 상석을 보장받는 이들이니…….
곽채군은 티 나지 않게 한숨을 쉬며 침을 꼴깍 삼켰다.
지금까지 자신이 봐 온 그의 성정상 분명히 그런 것 따위는 준비도 하지 않았을 터.
아니, 오히려 그런 특별한 대우를 해 줘야 한다는 사실에 반감이 있을 가능성이 더 컸다.
“아직 햇살이 조금 뜨거우니 파라솔도 설치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 그게…….”
“사람들이 많이들 모일 테니까 저희가 들어갈 동선도 확보해야 하겠죠?”
“하하… 뭐…….”
“아무튼, 기대되네요.”
“에이 거기까지 하시죠. 장관님이 어련히 알아서 준비하시려고요.”
“그게 주최 측에…….”
“아이고, 장관님 또 겸손하게… 주최 측이야 장관님이 한마디 하시면 그렇게 해야 하는 입장 아닙니까?”
곽채군이 속으로 진땀을 뻘뻘 흘렸다.
이 인간들이 뭔가 오해를 단단히 하는 모양이었다.
“하하. 그렇죠! 그렇죠! 곽 장관님께서 키우신 거나 다름이 없으시지 않습니까.”
“아… 그게…….”
사실, 그가 자기를 키운 것이나 다름이 없는데…….
“그렇죠! 장관님 없었으면 이런 엄청난 일들이 가당키나 했겠어요?”
“맞죠. 아무튼 장관님만 믿겠습니다.”
자기들 가운데 배치해 달라는 말이다.
지금껏 자신이 경험했던 두 번의 무대를 떠올렸다.
무대 바로 앞까지 빡빡하게 들어찬 인파가 눈에 선했다.
그 가장 앞에 생뚱맞은 VIP석이라니…….
눈앞이 막막해졌다.
어쨌건 본회의는 통과시켜야 했다. 그러려면 앞에 앉은 이들의 힘은 필요한 것.
언제는 실현이 가능한 공약만 말해 왔던가?
“하하. 제가 잘 마련해 보겠습니다.”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 갔지만.
눈가에 영업용 주름을 잔뜩 만들며 방긋 웃었다.
* * *
“당연히 준비했죠!”
응?
잘못 들은 건가?
“그게…….”
“높은 분들 오실 줄 알고 미리 준비했어요.”
“아…….”
“한 100석쯤이면 되겠죠?”
“뭐… 그… 그렇긴 한데…….”
저 활짝 웃는 얼굴을 보니 억지로 하는 것도 아닌 것 같았다.
“모두가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해 드릴게요.”
잠깐.
저 표정 언젠가 본 것 같은데…….
“기대하세요!”
아…….
그날 파주의 한정식집에서 봤던 그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