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154
154화 등장
이곳에서 바라보는 여의도는 이렇구나.
진혁이 활짝 웃으며 끝없이 펼쳐진 사람들을 바라봤다.
군데군데 형형색색 파라솔이 예쁘게 배치되어 있었다.
마치 파도 위에 떠 있는 예쁜 부표 같은 느낌이었다.
제법 생각한 대로 그림이 나와 준 것 같았다.
‘오늘 같은 날 감히 갑질을 해?’
진혁의 한쪽 입꼬리가 더욱 올라갔다.
고개를 돌려 가장자리에 자리한 충기와 눈을 맞췄다.
‘시작할까?’
진혁이 팔을 펼쳤고, 곧이어 어마어마한 드럼 소리가 잔디 광장을 울려 댔다.
무자비한 포악함.
그 굉장한 포효가 거친 리듬으로 뿜어져 나왔다.
지금까지 해 왔던 ‘인간 밴드’의 음악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리듬이 마구 폭발했다.
환호하던 관중이 모두 숨을 죽일 정도의 압박감이 여의도 전체에 내려앉았다.
그의 스틱이 하나하나 움직일 때마다 누군가의 위에 서며 어깨에 힘을 줬던 순간들이 문득문득 가슴을 때렸다.
뭐가 그리 잘났길래?
넌 그렇게 대단한 인간인가?
그 작은 우월감을 위해 다른 이를 내려다본 거야?
그렇게 챙긴 우쭐함은 안녕한가?
계속되는 꾸지람에 사람들이 움찔했다.
뭣보다.
저 파라솔 아래 숨은 이들의 표정이 가장 볼만했다.
진혁이 어깨를 으쓱하며 옆에 선 장하를 바라봤다.
드럼의 포악한 으르렁거림에.
둥둥.
더 깊이 때려 대는 낮은 멜로디가 섞이기 시작했다.
드럼의 리듬과는 또 다른 직설적인 소리가 관객의 심장을 울려 댔다.
그 누구도 감히 대항할 수 없는 묵직함이 얹어지자 축제 분위기였던 사방이 고요해졌다.
국회의사당 돔을 배경으로 그 옥상에 오른.
오직 그 포악한 드럼 소리만이 여의도 전체를 때려 댈 뿐이었다.
* * *
충기와 장하가 눈을 맞췄다.
그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처음 진혁의 악보를 받았을 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리듬이었다.
그저 즐겁고 행복한 멜로디인 줄 알았기에 그에 어울리는 리듬을 준비했었다.
그렇게 진혁에게 들려줬는데, 단번에 까였다.
그리고 진혁이 직접 스틱을 잡았었다.
‘먼저 꾸짖어야 할 필요가 있어.’
무자비하고 포악하게.
진혁의 스틱이 마구 움직였었다.
그때 느꼈던 그 감정을 떠올리며 충기가 혼신을 다 쏟으며 스틱을 휘둘렀다.
‘이젠 발목을 잡아선 안 돼.’
진혁이 날뛰기로 마음먹었다.
그가 가려는 길에 자신이 걸리적거려서는 안 됐다.
이를 악물고.
모든 역량을 쏟아부었다.
* * *
모두가 멍한 눈으로 국회의사당 위를 바라봤다.
난간 끝에 설치된 안전 펜스가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우측으로는 드럼이 세팅되어 있었고, 그 옆엔 덩치가 상당한 베이시스트가, 그 좌측으로는 키보드가 자리 잡았다.
그리고 가운데 그가 서 있었다.
충격적인 등장에 관객들이 환호를 질렀고, 뒤이어 어마어마한 드럼 소리가 뿌려졌다.
소리를 지르던 관객들은 드러머의 압도적인 퍼포먼스에 순간 숨을 죽였다.
‘뭐지? 이 엄청난 압박감은?’
명확히 전해지는 감정들에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나도 그랬다고?’
매번 갑을 욕했으면서도 언젠가는 자신도 갑과 다름없는 행동을 했었다.
그렇게 자신들은 고개 숙인 ‘을’이면서도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갑’이기도 했었다.
좀 더 높은 위치에 있던 이들은 그 꾸짖음을 더욱 명확하게 들을 수 있었다.
일부러 높게 만들어진 VIP를 위한 자리는 걸리는 것 하나 없는 음향이 직접 귀를 때려 댔으니까.
그랬기에 파라솔 아래 가시방석에 앉아 있던 VIP들은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파라솔 안쪽에서 한번 휘감기며 울려 대는 드럼 소리의 잔향이 더욱 그들을 움츠리도록 만들었다.
도저히 그 ‘상석’에 계속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항상 당연한 듯 차지해 왔던 특별한 좌석은 이곳에선 단두대와도 같았다.
몇몇 의원이 눈을 질끈 감고 그 높은 자리의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천천히 아래로 내려왔다.
공연이 시작되고 단 1분도 채 되지 않아 자발적으로 대중과 섞이게 된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정답이었다.
지금 이곳에선 자신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다.
아니, 언젠가는 얼마나 특별했었지?
모두가 다 같은 인간인데, 누군가는 위에 서고 누군가는 고개를 숙여야만 하는 것인가?
어쩌면 인류가 만들어 낸 세상에 당연하게 자리 잡은 사회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시스템상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계급’이라는 단어는 적어도 이곳에서만큼은 전혀 통용되지 않았다.
모두가 평등해야 할 이곳에서 이렇게 눈에 띄게 ‘갑’이어서는 안 됐다.
비참하게 끌어내려지기 전에 서둘러 내려와야만 했다.
바닥에 발이 닿고서야 그 낯 뜨거움이 조금 진정될 수 있었고, 겨우 고개를 들어 그 국회의사당의 돔 부분을 바라볼 수 있었다.
방금까지 ‘감히 저런 짓을!’이라며 화들짝 놀랐던 이들이었지만.
다시 바라보니 어쩌면 이 음악은 저 위가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했다.
명확하게 전해지는 호통에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렸다.
언제나 누군가의 위에 군림하기만 해 왔던 이들이 자발적으로 몸을 낮췄다.
절대로 거스를 수 없는 꾸짖음이었다.
어느새, 모든 VIP가 바닥으로 내려왔다.
베이스의 소리가 섞일 즈음, 그 VIP자리에 앉아 있는 이는 하나도 남지 않았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특별한 장소에 마련된 가장 특별한 자리는.
가장 편하고 높은 자리임에도 그 누구도 앉지 못하는 자리가 되어 버렸다.
그 비어 있는 형형색색의 파라솔은 이곳 모두가 철저하게 평등하다는 상징이 되었다.
* * *
관객들은 이 압도적인 박력에 몸을 떨어 댈 뿐이었지만.
음악을 하는 이들은 전율에 소름이 올라왔다.
그 악보를 받아 든 모두는 이런 시작을 꿈도 꾸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그런 즐거운 멜로디 앞에 저런 포악한 리듬을 붙일 수 있지?
자신들이 준비한 음악들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충격적인 등장만큼이나 정말로 엄청난 전주였다.
원래 공연을 시작했어야 했을 몇몇 밴드도 그리고 그 앞에 모인 관객들도, 핸드폰 속의 그 포악한 독재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렇게 계속되는 꾸지람 속.
키보드의 선율이 섞이기 시작했다.
부드러우면서도 다정하고 따뜻한 멜로디가 잔뜩 움츠렸던 이들의 마음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 * *
이곳 국회의사당 건물 앞에는 무대가 만들어져 있었다.
그가 자신과 함께하는 것을 허락한 무대.
사실 누구라도 올라 보고 싶었겠지만, 실제로는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는 무대였다.
그랬기에 그 무대에 오르겠다고 지원한 아티스트는 몇 되지 않았다.
상당히 거대했고, 높게 세워진 스크린은 거대한 그 건물의 입구를 완전하게 가린 상태였다.
그 주변엔 작은 천막이 있었는데, 그 안에는 그 비어 있는 무대에 첫 번째로 오를 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바비가 활짝 웃으며 스테빈을 바라봤다.
“예상하지 못한 얼굴이군.”
스테빈이 멍한 얼굴로 바비를 바라봤다.
“아, 사실은 나도 전혀 예상 못 했어. 그런 따뜻한 멜로디를 뿌리고 이렇게 포악하게 굴 줄이야.”
“…….”
바비와 스테빈이 테이블에 마련된 모니터를 바라봤다.
이곳에서 홀로 높은 자리에 선 독재자가 턱을 치켜들고 등장했다.
저 웅장한 건물에 너무나도 잘 어울렸고, 그 뒤의 하늘색 돔이 더욱 그를 거대하게 만들어 줬다.
“정말로 굉장하군.”
바비 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한국에 와서 바로 그를 만나 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때도 느꼈지만, 그는 음악으로 얘기하는 이였고, 그렇기에 이번 이벤트가 끝난 후 찾아볼 생각이었다.
스테빈도 그런 마음이었는지 아직 그를 만나지 않았다고 했다.
“바비.”
“응?”
“자넨 어떤 느낌이야?”
“느낌?”
“월드 뮤직 페스티벌에서 처음으로 래빗을 인정했잖아.”
“그렇지.”
“그 이후로 자네가 느낀 감정 말이야.”
스테빈이 미국 음악의 전설이자 오랜 친구를 바라봤다.
그 역시 천재의 반열에 오른 이였다.
비행기에서 제니스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며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반항적이야. 그러면서도 따뜻하고. 자신이 전하려는 감정을 완벽하게 뿜어내지. 언어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 음악만으로 명확하게 전해지는 메시지는 악기만 달라졌을 뿐, 마치 순수 음악의 그것을 떠올리게 해. 몇 세기를 거쳐 후대에 전해지는 영속성을 가진 예술의 영역 말이야.”
“흠…….”
“다른 대답을 원했나?”
“나도 느끼는 것 말고, 천재들만이 느낄 수 있는 뭔가를 기대했는데.”
“그래?”
바비가 모니터 속 활짝 웃는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여전히 해맑은 표정이었다. 얼핏 비치는 주름만 아니었다면 정말로 아이와도 같은 느낌이었다.
“음… 가장 놀라운 것은 저 나이에도 때가 묻지 않았다는 거야.”
스테빈도 바비의 시선을 따라 모니터 속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국적을 불문하고 저 나이대면 생겨났어야 할 관념들이 전혀 보이지 않아. 저런 자유로운 사고방식은 머리가 굳어 버린 이들에게서는 절대로 나올 수 없는 거니까. 나이를 먹으면 쌓인 경험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제약이 있거든. 이건 해도 되고, 이건 피해야 하고, 이건 너무 나간 것 같고… 그런데 그런 느낌이 없어. 완벽하게 자유로워. 그게 그의 음악에서 그대로 묻어나.”
“마치, 아이같이 말이지.”
“오. 맞아. 멋도 모르는 순수한 아이가 마음껏 상상하는 세상을 펼쳐 놓는 것 같아.”
“동화 속에 나오는 피터팬같이?”
스테빈의 말에 바비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과연 설득될까 싶은 음악으로 사람들을 휘어잡아. 그래서 더 대단해 보이는 거야.”
“그렇군…….”
“어? 이제 시작하려는 건가?”
모니터 속 그가 마이크 앞에 서서 아래를 둘러봤다.
그리고 기타를 잡았다.
드디어 그 세상에 뿌려진 음표들이 흘러나올 차례였다.
둘은 숨을 죽이고 모니터를 바라봤다.
* * *
대한민국의 헌정 질서를 수호하는 걸어 다니는 입법 기관들이 모인 장소.
국가의 많은 대소사가 이곳에서 결정되지만, 어쩌면 하는 일 하나도 없이 서로 삿대질만 해 대는 부정적인 곳으로 비치기도 하는 곳이었다.
어쨌거나 한국에서 기득권으로서 가장 상징적인 곳이기는 했다.
그 건물 가장 위 옥상에서 벌어진 헌정 사상 최초의 공연은 참으로 거침없었고, 노골적이었다.
그 가차 없는 일침에.
은근슬쩍 대중에 섞여 든 기득권들이 눈치를 보는 중이었다.
그간 금배지의 반짝임으로 수많은 특권을 누려 왔던 이들이 처음으로 대중과 눈높이를 같이했다.
그 파라솔 안에서 바라봤다면 이런 느낌을 알 수 있었을까?
대중 속에 섞이자.
자신들이 얼마나 별거 없는 존재였는지를 처절하게 경험할 수 있었다.
이렇게 자신이 철저하게 을이었던 적이 있었을까?
이 순간 하등 쓸모도 없이 눈칫밥만 먹고 있는 금배지를 바라봤다.
이렇게나 보잘것없었던가.
대중의 눈으로 저 국회의 꼭대기를 바라본다는 것은 정말로 신선한 경험이었다.
저 거대한 건물이 대체 뭐라고…….
누군가에겐 예의를 말하며 손가락으로 찔렀고, 누군가에겐 원리원칙에 대해 설교하기도 했으며, 누군가에겐 별것도 아닌 걸 트집 잡아 호통치기도 했다.
눈치도 채지 못하게 서서히 가슴으로 스며든 멜로디에 조금씩 일반 대중이 되어 가자 그 모든 기억이 너무나도 부끄럽게 느껴졌다.
저 천재지변급 독재자 앞에선.
자신도 힘없는 민중이 될 수밖에 없었다.
저 음악 앞에선 모두가 평등했다.
이제야.
기득권을 바라보는 대중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다.
형형색색 파라솔 아래 숨죽였던 이들이 모든 것을 내려놓는 순간.
서울 중심의 섬을 완벽하게 점령한 포악한 독재자가 마이크 앞에 섰다.
이제야 자신의 음악을 들을 준비가 되었다는 듯이.
턱을 높게 치켜들었다.
* * *
지금까지 그가 등장했던 이벤트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었다.
이렇게 처음부터 충격적인 무대를 선보이다니.
언제나 다른 팀들에게 기회를 주고 마지막에 등장하곤 했었는데, 이번엔 이 이후의 공연을 전혀 생각하지 않은 파격적인 시작이었다.
그렇기에 전국에서 대기하던 아티스트들은 침을 꼴깍 삼키며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저런 엄청난 무대를 만난 관객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까?
심지어 그들의 등장 이전 한국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부산의 나비 계곡이나, 오랜 기간 한국의 록을 이끌어 온 임도유 밴드와 이번 미국 축제에서 각성한 레몬티조차도 각자의 무대에서 그의 음악을 들으며 입술을 질끈 물고 있었다.
아직, 그가 등장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그저 기타가 빠진 전주만으로 만들어 낸 엄청난 분위기였다.
느낌상 이제 그 음표들이 등장할 때였다.
과연 자신이 뿌린 그 악보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전국 모두의 시선이 모인 가운데, 그가 등장했다.
활짝 웃으며 턱을 들고 주먹을 쥐어 하늘을 향했다.
모두가 갑이 되길 포기한 세상.
가장 높은 위치에서 오로지 홀로 당당한 그의 등장에 여의도가 떠나갈 듯 함성이 울렸다.
그가 발로 바닥을 굴렀다.
일정한 박자에 사람들이 모두 그를 따라 했다.
쿵. 쿵. 탁.
-점프.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명령.
모두가 일제히 뛰어올랐다.
마치 여의도 전체가 들썩이는 것 같았다.
쿵. 쿵. 탁.
모두가 또다시 뛰어오르는 순간 그의 기타가 울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