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155
155화 기적의 나라
혁명의 시작은 가장 아래부터였다.
대중들부터 누군가를 깔보며 자신의 위치를 높이 하려는 마음이 사라져야만 했다.
그래야 저 위에 서 있는 이들이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테니까.
떠받드는 사람들이 사라진다면, 더 이상 기득권은 기득권일 수 없게 된다.
힘을 잃은 이들은 알아서 자세를 낮추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이들은 누군가의 위에 서는 것에 대한 환상을 버리게 될 터.
갑과 을이 아닌 동등한 인간으로서 서로를 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지금껏 사회적 시스템이 요구해 왔던 목표 지점을 지우고 싶었다.
고개를 들어야만 보였던 그곳이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알게 해 줄 셈이었다.
너무나도 바쁜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시계는 너무나도 빠르게 돌고 있었다.
명확하지도 않은 목표에 얽매여 시간에 쫓기며 사는 삶들.
사실, 닿을 수도 없는 목표였다.
닿은 듯싶으면 언제나 다시 갱신되곤 했으니까.
그래서 오늘은 그들의 시계를 멈추게 하고 싶었다.
사람들은 오늘의 경험으로 알게 될 것이다.
달리던 다리를 잠시 멈춰도.
놀라울 정도로 세상은 아무렇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그 잠시 쉬어 가는 시간 속에 생긴 여유로 주변을 돌아볼 수 있기를.
‘당신들은 모두 행복해야 할 필요가 있어.’
그 행복은 높은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기타 소리에 잔잔한 목소리가 섞이기 시작했다.
* * *
‘뭘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딸아이의 성화에 마포대교를 걸어서 건넜다.
그 무슨 ‘진흥재단’인가에 신청했으니 오늘 장사하지 못한 부분은 걱정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왠지 모를 찜찜함은 남아 있었다.
나라에서 정해 준 정기 휴일이라니…….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구경이나 하지 뭐.’
조잘대며 발걸음을 재촉하는 딸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장사하다 보니 주말과 저녁이 없었고, 그래서 직장 생활하는 딸아이와 이렇게 함께 걸을 여유도 없었다.
“아빠! 벌써 꽉 찼대.”
무슨 노래 하나 듣는데 아침부터 이렇게 고생해야 하는 거지?
요새 젊은 사람들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
노래라는 것을 들은 지도 참 오래되었다.
그만큼 바쁘게 살아온 것이겠지.
주변을 둘러보자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보였다.
바삐 걷는 사람들을 보니 다들 목적지는 같았다.
외국인들이 많이 들어왔다고 하더니 진짜 인종도 다양했다.
그 와중 자신과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도 보였다.
그들도 자신과 별반 다르지 않은 표정이었다.
멀리 있던 국회의사당 건물이 점차 가까워졌고, 사람들의 밀도는 더욱 늘어났다.
참, 이해할 수 없네.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다들 태평한 사람들처럼 보였다.
노래? 요샌 핸드폰으로도 다들 듣지 않나?
뭘 직접 듣겠다고 이렇게까지…….
신나서 통통 튀는 딸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딸아이의 성화에 새벽부터 일어나 준비하고 나왔는데도 결국 후미에 자리하게 되었다.
자신의 못마땅한 표정을 슬쩍 본 딸아이가 어색하게 미소 띠었다.
“아빠, 진짜 재밌을 거야. 전에 내가 동해 갔다 왔잖아? 그때도 엄청났거든.”
그래도 내심 눈치를 보는 그 모습에 고개를 끄덕여 줬다.
수많은 인파 속 이질적인 파라솔이 하나씩 툭 튀어나와 있었다.
특별 좌석인가?
뭔가 못마땅하면서도 편안해 보이는 자리였다.
예상대로 TV에서도 가끔 보였던 국회의원 하나가 그 자리에 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뭔가 모를 박탈감이 살짝 올라왔다.
걸어오는 내내 치밀었던 짜증이 마구 솟구치는 중
-노니까 좋지?
‘어?’
저런데 올라가도 되는 건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등장에 멍해졌고, 곧 터져 나온 함성에 화들짝 놀랐다.
딸아이가 뭐라고 하는 것도 같은데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곧, 엄청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두구두구둥 챙챙거리는 소리가 심장을 마구 때려 대는 느낌이었다.
그 두드리는 소리 하나하나가 감정을 건드려 댔다.
정말로 굉장한 경험이었다.
뭔가 뜨끔하는 느낌이 드는가 싶더니.
저 멀리 파라솔의 대단한 양반들이 슬그머니 바닥으로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지금 이곳에서 저 파라솔은 전혀 편한 자리가 아닌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쿵쾅거림에 정신없이 빠져들던 중 하얀 기타를 든 누군가가 등장했다.
얼마 전 뉴스에서 봤던 그 사람이었다.
그의 연주가 시작되자.
아직도 가슴 한구석에 남아 있던 – 오늘 장사를 못 해서 생긴 – 찜찜함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래. 정말로 바쁘게 살았지.’
하루쯤은 마음 편하게 퍼져도 되지 않나?
나라에서 허락한 휴일이지 않은가.
찜찜함이 날아가자 그 공간에 평생 느끼지 못한 여유로움이 싹을 틔웠다.
그가 노래를 시작했다.
감미로운 목소리가 가슴에 뭉클하게 내려앉았다.
싹을 틔운 여유로움에 하나둘 잎사귀가 돋아났다.
지금까지 자신은 뭘 바라보며 그렇게 달려왔던 거지?
행복은 하루 매출에 있지 않았다.
오르는 아파트값에 있지도 않았고.
얼마 전 반 토막 난 주식에 있지도 않았다.
어깨를 들썩이던 딸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아… 난 행복한 사람이었구나.’
어설프게 자신의 옷깃을 잡고 있던 딸아이의 손을 꽉 잡았다.
둘째와 종로로 간다던 아내도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을까?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난 ‘공연’이라는 것은 정말로 굉장한 느낌이었다.
자신도 모르는 새 어깨는 이미 들썩이고 있었다.
* * *
진혁의 노래가 시작된 시점 바비 댄은 이미 무대에 올라 있었다.
오늘 이 나라에서 가장 굉장한 무대지만 그 누구도 오르길 주저했던 그 위에 앉아 관객을 바라봤다.
미국의 월드 뮤직 페스티벌에서는 사실 그의 무대라고 보기엔 어려웠었다.
노래도 동해 소년이 했고, 그 음악들도 과거의 곡들을 리마스터링 한 것들이었으니까.
그랬기에 오늘의 무대를 기대했었다.
영상으로만 봤었지, 그가 해 왔던 공연을 직접 만난 적은 없었으니까.
그런데 오늘 바라본 그의 무대는 상상 이상이었다.
단 한 곡으로 이런 분위기를 만들다니.
기쁨과 행복을 알게 된 사람들의 얼굴에서 빛이 났다.
지금이라면 어린아이가 리코더로 그 악보를 연주해 댄다고 해도 모두의 행복은 배가 될 것이었다.
그 곡은 행복 가득한 이 분위기에 어울리도록 만들어진 곡이었다.
아직 앰프에 연결되지 않은 기타를 튕기기 시작했다.
저 위 옥상에서 울리는 음악에 보조를 맞춰 흥얼거렸다.
작게, 자신만 들을 수 있는 이 공연은 이런 엄청난 광경을 맞이한 자신만의 행복을 위한 노래였다.
심장이 마구 두근거렸고, 언제 느껴 봤는지 가물거리는 설렘이 넘치도록 차올랐다.
어서 저들에게 지금 느낀 행복의 가치를 선물하고 싶었다.
무대에 가만히 앉아 흥얼거리다 옆을 보자 – 어디선가 공연을 만끽하다가 달려온 – 다음 차례의 아티스트들이 보였다.
‘너희들도 얼른 오르고 싶지?’
자기 악기를 들고 잔뜩 흥분한 얼굴들.
어째서인지 가장 앞에 서 있어야 할 누군가가 보이질 않았다.
조금 의아했지만 고민할 여유 따윈 없었다.
바비가 방긋 웃으며 손짓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무대를 만났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자신들도 예상보다 훨씬 거대한 행복을 선사하면 될 터.
손짓하자마자 칼리가 달려왔고, 유레이시가 사뿐사뿐 걸어왔다.
옥상에서 펼쳐지던 그의 공연이 끝나 가는 시점.
국회의사당 앞의 무대에 조명이 켜졌다.
* * *
모두가 진혁의 음악에 빠져들어 자신만의 행복들을 찾아내며 즐거워하던 때.
잔디 광장 끝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제니스가 발길을 돌렸다.
아마도 얼마 전의 자신이었다면 저 행복에 취해 무대로 달려들었겠지.
하지만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 지금, 제니스의 얼굴은 어두워져 있었다.
이번의 공연도 정말로 엄청났다.
뒤이어 한국 전역에서 울릴 그가 뿌린 악보들은 수많은 장르를 통해 휴일 내내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 것이다.
다만.
오늘 저 무대를 보고 나서 제니스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래서, 당신의 행복은 어디에 있지?’
모든 이에게 전해진 따뜻한 감정에는 그의 이야기가 담겨 있지 않았다.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이야기해 본 제니스였기에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지금 그의 음악에선 그가 빠져 있었다.
저 해맑은 얼굴 뒤에는 과연 어떤 세상이 존재하는 걸까.
제니스가 행복에 겨워 출렁이는 물결을 헤치며 입술을 질끈 물었다.
* * *
전국에서 공연을 준비하며 영상을 통해 그들의 오프닝을 바라보던 아티스트들이 서둘러 악기를 들었다.
처음 그 파격적인 등장과 엄청난 퍼포먼스에 멈칫했던 그들이었지만, 이젠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살아오며 누군가를 무시하거나 업신여긴 경험을 부끄럽게 여기도록 만드는 포악한 꾸짖음으로 시작했다.
그렇게, 누군가의 위에 서는 것만이 목표였던 이들에게 그것이 그다지 대단하고 떳떳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려 줬다.
그렇게, 그 목표를 지우자 모두가 평등함을 느끼게 되었다.
모두가 을인 세상.
서로를 더 이상 아래로 두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나게 된 것이다.
더는 바쁘게 달리지 않아도 괜찮았다.
누군가의 아래에 있게 되지도 않을 것이고, 누군가의 위에 서야만 하는 것도 아니었다.
위만 바라보느라 지쳐 있던 이들에게 여유가 생긴 것이다.
그렇게 주위를 살피자.
행복이 그리 멀리 있지 않은 것을 알게 되었다.
오늘 이 공연을 만난 것이 행복이었고, 옆에 누군가 함께 있음이 행복이었으며, 어제 친구들과 먹었던 맥주 한 잔이 행복이었다.
아주 작은 하나하나 삶에 허락된 모든 것이 행복으로 다가왔다.
각자의 행복을 만난 사람들이 눈을 빛냈다.
판이 깔린 것이었다.
이젠 그들이 만난 행복을 향한 노래를 들려주기만 하면 될 터.
누군가는 기타를 들었고, 누군가는 믹싱 테이블의 전원을 올렸으며, 누군가는 미리 준비한 MR에 맞춰 비트를 타기 시작했다.
어디선가는 바이올린 선율이 울렸고, 또 다른 거리에선 섹소폰이 음표들을 내뱉었으며, 골목 어딘가에선 오르간 소리가 흘러나왔다.
첫 번째 대중문화의 날.
전국 곳곳에 행복의 음악이 내려앉았다.
그 누구에게 뽐내야 할 필요도 없었고, 그 크기를 서로 재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 행복은 자신만 가진 것이었으니까.
미친 듯이 쫓아다녔던 무언가가 있었던 것도 같았는데.
이 순간만큼은 모두 잊을 수 있었다.
그 무언가를 이루지 않더라도.
자신은 행복했으니까.
* * *
미리부터 자리 잡아 그 엄청난 공연을 화면으로 담고 있던 정태강도 다른 사람들과는 미묘하게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저 멀리 관객들을 스케치하는 앨런 역시 마냥 행복한 얼굴이지는 않을 것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지?’
해맑게 웃으며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해 준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의 과거를 되짚으며 충격적인 사실들을 알게 된 그들은 마냥 그의 음악을 있는 그대로 즐길 수 없었다.
뷰파인더 속 활짝 웃는 그의 얼굴이.
오늘만큼은 너무나도 슬퍼 보였다.
그의 공연이 끝났고, 국회의사당 앞에 마련된 무대에서 어마어마한 월드 스타들이 한꺼번에 등장했다.
엄청난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뷰파인더는 의사당 옥상에 걸터앉은 그의 얼굴만을 좇았다.
입에 걸린 그 미소는 언제나 그랬듯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가슴이 내려앉았다.
* * *
오전 내내 전국 각지에서 펼쳐진 거리 공연은 사람들이 이제 막 알게 된 행복을 마구 증폭시켰다.
바닥에 가지런히 깔린 보도블럭, 초록을 한껏 머금은 은행나무의 그늘, 때마침 선선하게 불어 주는 바람.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모든 것이 행복이었고, 그랬기에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기쁨 가득한 얼굴의 사람들이 거리를 걸었다.
해외에서 날아온 외신 기자들이 그 풍경을 담았다. 자신들도 이 나라의 행복을 가슴깊이 느끼며.
누군가는 국민 의식이 나태해질 수도 있다는 우려 섞인 얘기를 하기도 했고, 누군가는 이 하루가 가져올 경제적 부담을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젠 그런 이야기를 꺼낼 수가 없을 것이었다.
이념과 계층 그리고 세대를 떠나 언제 이렇게 온 국민이 행복했던 적이 있었던가.
세계 어느 나라가 이런 광경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말인가.
이 환상적인 하루는 기자들과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의 SNS를 통해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네트워크 속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기적의 나라 한국.
세상에서 이 하루만큼은 가장 행복한 나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