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156
156화 다구리
-프랑스 국민 가수 발렌틴의 환상적인 무대
-독일 밴드 아반타시아 노이바우텐! 남이섬을 찢었다!
-동해 소년과 샬롯의 듀엣! 주문진 해변 사람들 가득 참!
-광안리 나비 계곡 진짜로 예술임.
-대박! 차일드 애플 대전에 떴음!
-레몬티 홍대 점령!
-종탁이 때문에 종로 어르신들 난리 남!
-신유정 청강 의료원 앞에서 피아노 치고 있음.
-임도유 밴드…….
-테일 등장…….
네트워크에선 현장 중계가 한창이었다.
인간 회사의 홈페이지에서도 대략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지만, 워낙 많은 점이 찍히기도 했고, 그 불친절한 지도는 점을 누르기 전까지는 누가 어디서 공연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게시판을 통해 유명한 아티스트들의 위치가 공유되는 중이었다.
다만, 위치를 알았다고 해도 직접 보러 갈 수는 없었다.
대부분이 두세 곡만을 불렀으니 움직여 봐도 이미 끝나 있을 테니까.
어쨌든, 가장 가까운 곳으로 달리는 것이 최선이었다.
어딜 가든 행복은 더욱 배가 되었고.
환한 얼굴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으니까.
계속되던 공연들이 하나둘 막을 내렸고, 사람들은 이곳저곳에 마련된 다른 문화 행사를 만났다.
일반적인 사람들로서는 평소 접하기 어려웠던 사진전이나 미술 전시회 또는 뮤지컬이나 연극, 모든 것이 오늘 하루는 무료였다.
공짜 싫다는 사람은 없었다.
더군다나 행복에 가득 차서 마구 들뜬 마음들이었기에 너도나도 근처의 행사들을 찾기 시작했다.
대중음악으로 시작했지만.
오후부터 사람들은 다른 대중문화들을 체험할 수 있었다.
한국 전체에 문화 부흥기가 도래한 것이다.
여유가 없는 나라.
항상 바쁜 나라.
빨리빨리의 나라.
일 중독자들의 나라.
경쟁 중심의 나라.
한국을 지칭하는 말들이었다.
다만, 그런 ‘성실한’ 사람들이 하루의 여유를 알게 되자.
한국은 세상 그 어떤 나라보다도 더 잘 노는 사람들로 가득 차게 되었다.
말 그대로 정말로 ‘노는 날!’이었다.
* * *
한국에서 가장 권위적인 건물의 앞은 헌정 사상 초유의 광경들이 펼쳐졌다.
분수대에선 삐에로 복장을 한 슬랩스틱 코미디언이 입에서 불을 뿜으며 저글링을 하고 있었고, 의사당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선 마술 쇼가 펼쳐졌다.
잔디 광장 곳곳에서 들려오는 각종 음악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였다.
여의도 공원까지 이어지는 공연들에 사람들은 여의도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버스킹 문화를 생소하게 여기던 사람들도 너무나도 즐겁게 공연들을 접할 수 있었다.
거리 공연이란 온전히 관객의 만족도에 따라 그 가치가 결정되곤 했다.
시큰둥하게 듣다가 그냥 발걸음을 옮긴다거나 천 원권 지폐 몇 장을 꺼내기도 했고, 간혹 만 원권이 올려지기도 했다.
인간 회사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후원 시스템을 이용했지만, 어디까지나 지금 모인 사람 중 대다수는 오늘 처음으로 이런 문화를 만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 기분이 엄청나게 좋았다.
모두의 마음은 행복으로 가득했고, 그랬기에 마주치는 모든 것이 너무나도 고맙고 아름다웠다.
자연스럽게 열린 지갑에선 평소라면 꺼내기를 망설였을 색의 지폐들이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공연을 하는 이도.
공연을 즐기는 이도.
모두가 행복해졌다.
팍팍하게 살았던 사람들의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자신이 행복함을 알게 되자 다른 사람을 돌아볼 수 있었다.
그저 지나쳤을 모든 것이 새로운 의미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저 공연을 준비하기 위해 얼마나 엄청난 노력을 해 왔을까.
4분가량의 곡을 위해 몇 수십 밤낮을 연습했을 것이다.
그렇게 흘렸을 땀에 대한 가치라고 생각하니 전혀 아깝지 않은 돈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가진 가치에 대해 생각할 줄 아는 여유를 찾게 된 것이다.
활짝 웃으며 엄청나게 행복한 휴일을 만끽하는 사람들로 전국이 가득 찼다.
* * *
“아… 정말로 엄청나네요.”
정태강이 앨런을 바라봤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적당한 벤치에 자리를 잡고 행복에 겨워 휴일을 만끽하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기록하는 자로서 이 엄청난 광경은 실로 가슴 뛰는 장면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다만, 이제부터 둘이 나눠야 할 대화로 이 공연의 의미를 다르게 해석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럼, 처음 그 인터뷰부터 시작할까요?”
앨런의 말에 태강이 태블릿을 터치했다.
블루투스로 연결된 이어폰을 한쪽씩 나눠 끼웠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해석을 부탁할게요.”
“네.”
발음은 서툴렀지만 듣는 것만큼은 거의 완벽해진 앨런이었다. 다만, 신조어나 비속어는 아직도 공부 중이었다.
사실 요약된 내용은 이미 받아 봤다.
하지만 직접 듣는 것은 처음이었다.
태블릿의 녹음 파일이 재생되었다.
-그러니까 1981년도부터 1990년도까지 새희망 보육원의 원장으로 계셨다는 말씀이시죠?
-네. 뭐 기억이 가물거려서 정확하게는 모르겠는데, 그쯤 될 겁니다. 그런데 이거 어디에 나가는 거죠?
-아. 다큐멘터리에 쓰이게 될 텐데 아마 선생님을 특정할 만한 부분은 제외될 겁니다.
-흠… 아무튼 취재비나 넉넉하게 넣어 주쇼.
-네. 영치금으로 넣어 드리겠습니다.
앨런이 일시 정지를 눌렀다.
“춘천 교도소에 있다고 했죠?”
“네. 죄명은 횡령에 기부금 착취, 아동 학대도 몇 걸려 있습니다. 지금 진행 중인 건에는 성폭행도…….”
“쓰레기군요.”
“그렇죠.”
태강이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플레이를 눌렀다.
-그… 삼동이라고 있었어요. 걔가 울면 보육원 애들이 다 같이 자지러져. 때리고 어르고 해도 멈추질 않아. 애들뿐만이 아냐. 선생들까지도 분위기가 완전히 가라앉았거든요. 어떤 여선생은 통곡해 대더니 얼마 후엔 출근도 안 하더라고. 무슨 귀신에 씌었나 해서… 아. 진짜로 내 이름이나 그런 건 안 나오는 거죠?
-네. 특정될 부분도 뺄 겁니다.
-이거 괜히 퍼지면 제가 좀 곤란해서요.
-걱정하지 마시죠.
-아무튼, 귀신에 씌었나 해서 두들겨 패기도 하고…….
-세 살짜리를요?
-예? 아… 뭐…….
-계속하시죠.
-뭐, 그땐 다들 그렇게 키우지 않았나? 거… 감당이 안 되니까 그랬지. 결국엔 골방에 가뒀다니까? 깜깜한데 혼자 두면 그래도 좀 잠잠하더라고. 어… 근데 그 애가 어떻게 컸길래 이렇게 취재까지…….
-그건 나중에 알게 되실 겁니다.
-아… 뭐 판사나 검사 그런 건 아니죠?
-네. 아닙니다. 그래서, 처음 왔던 때부터 4년간 그런 학대가 있으셨다는 말씀이신가요?
-에이. 그게 애들 잔뜩 보살피면서 좋은 일 하다 보면…….
-하…….
-나도 맘이 좀 그랬지. 나도 사람인데! 아무튼 그러다 보니 애가 어느 순간부터는 말도 안 해. 울지도 않아. 일절 소리 자체를 안 내더라고. 근데 또 밥은 먹어. 그래서 다른 애들하고 어울리게 뒀는데 가끔 무슨 귀신 같은 소릴 내더란 말이야. 그게 어찌나 섬뜩하던지…….
-혹시 노래 같은 느낌이었던가요?
-에이. 말도 못 하던 애가 무슨 노래를…….
-그래서요?
-찜찜하던 차에 거기 주문진 성당에서 위탁 보육을 한다는 말을 들은 거야. 뭐 그래도 십자가도 있고 그 뭐냐… 신부님이나 수녀님도 있을 테니까 귀신이 떨어지지 않겠나 하는 마음이었지. 그래서 보냈죠.
-거기까진가요?
-뭐… 그런데 영치금은 얼마나…….
“후… 그래서 영치금은 넣으셨나요?”
“네.”
“얼마나…….”
“이천 원요. 천 원짜리가 딱 두 장 있더라고요.”
“그것도 아깝네요.”
앨런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옛날이었고, 산골에 처박힌 보육원이라도 저렇게 엉망진창인 인간 같지도 않은 놈에게 아이들의 성장을 맡기다니…….
당시의 아이들을 생각하자 입술이 파르르 떨려 왔다.
“여기서 녹음을 끄긴 했습니다만…….”
태강의 말에 미간을 잔뜩 찌푸린 앨런이 계속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들이 그런 말을 자주 했다더군요.”
“어떤……?”
“‘저렇게 무섭게 울어 대니까 애미 애비도 자살했지…….’라고…….”
앨런이 바닥을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건 직접 확인하셨나요?”
“네… 호텔에 있는 노트북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태강과 앨런이 그가 노래했던 국회의사당 건물을 바라봤다.
그 뒤로 노을이 예쁘게 물들어 있었다.
항상 해맑게 웃던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세상에서 인간만이 가지는 가장 큰 고통이 뭔지 아시나요?”
앨런의 말에 정태강이 고개를 저었다.
“자기의 감정을 반대로 표현해야 하는 고통입니다.”
“아…….”
“아무리 아프고 괴로워도 겉으로 내색하지 않으며 늘 웃고 있어야만 하는 고통.”
“혹시… 혹시 말입니다. 뭐 처음부터 저는 비과학적으로 접근하기는 했습니다만. 자신이 내는 소리가 상대방을 괴롭게 만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면… 그러니까… 지금 하신 말씀이…….”
앨런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어쩌면 그래서 항상 밝고 즐거운 음악만을 할 수밖에 없는 걸 수도 있어요.”
태강도 이미 짐작하고 있었던 부분이었다.
행복에 가득 차 환하게 웃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만일, 그가 슬프고 암울한 노래를 불렀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세상을 행복하게 하고, 정말로 신나게 만들고, 진심으로 위로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절대로 치유받을 수가 없어요.”
“아…….”
자신을 드러낼 수 없으니 그 누구도 그가 가진 어둠을 모를 터.
그 긴 시간 동안 밖으로 내지 못하고 쌓이기만 한 어둠은 얼마나 짙고 두터울까?
얼핏 안타까운 마음은 있었었다.
다만, 이렇게 정리되어 확연하게 그를 짐작하니 더욱 가슴이 아려 왔다.
“얼른 들어가서 다시 정리해 보죠.”
“네.”
행복한 원색이 가득한 이곳에.
두 다큐멘티스트가 회색을 머금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뭐냐, 제니스?”
“뭐가?”
“어째서 무대에 오르지 않은 거지?”
칼리가 씩씩거리며 제니스를 노려봤다.
“정리가 안 돼서.”
“제대로 설명해.”
“내가 왜?”
“그 표정!”
칼리의 손가락이 제니스의 얼굴을 향했다.
“오늘 이 나라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 표정 말이야!”
“너도 성질났잖아.”
“그건 너 때문이고! 감히… 감히…….”
“그를 부정하냐는 말이지?”
당장 멱살이라도 잡을 듯 씩씩거리던 칼리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조촐한 술상을 봐 오던 종탁도 멈춰서 침을 꼴깍 삼켰다.
제니스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다니.
“제대로 설명할 수 없어. 나도 정리가 되지 않았거든.”
“흠.”
칼리가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종탁! 술!”
“어? 아! 어!”
탁자 위에 소주와 과자들이 펼쳐졌다.
병째 들이켠 칼리가 ‘크으’ 입을 쓱 닦았다.
“뭔지 알아.”
이번엔 제니스의 눈썹이 살짝 꿈틀댔다.
세상 생각 없어 보이는 놈이 저런 의미심장한 말을 뱉다니.
“내가 항상 내 멋대로 나만을 위한 음악을 해 왔으니까. 그래서 뭔가 이상한 거 알아.”
과자를 하나 집어 먹더니.
“오! 쉣! 이거 뭐야! 뭔데 이렇게 맛있어! 새우를 튀긴 거야?”
“그래서?”
한 주먹 쥐어 입으로 가져가려는 칼리를 제지하며 제니스가 물었다.
“그는 항상 다른 이를 위해 노래해.”
의외였다.
이 머저리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제니스의 눈이 동그래졌다.
“뭔가 있는데, 그걸 모르겠어. 조금의 힌트라도 있다면 그를 위한 음악을 해 보고 싶어.”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자신만이 느낄 수 있는 거라고 여겼는데…….
“뭐 힌트가 있대도 내 능력만으로는 가당치도 않겠지만…….”
칼리가 소주병을 들어서 까딱거렸다.
마치 부딪치라는 듯.
마치 함께하자는 듯.
“그거 그렇게 먹는 거 아니야.”
제니스가 소주잔을 들어 그 까딱이는 병에 통 갖다 댔다.
“나도 끼워 주나?”
종탁도 소주잔을 들이밀었다.
“많을수록 좋아. 감히 신에게 덤벼드는 거니까.”
칼리가 먼저 병나발을 불었고, 나머지 둘이 소주잔을 비웠다.
“우리 말고도 있을 거야.”
칼리의 말에 제니스가 입꼬리를 올렸다.
“당연히 그렇겠지. 너 같은 머저리도 느낀 거니까.”
“모아 보자.”
“그… 한국말로…….”
두 월드 스타가 한국어 선생님을 바라봤다.
“다… 다구리?”
종탁의 말에 두 외국인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벤져스도 다구리 쳤어. 그치?”
“그렇지.”
“지금 한국에 누구누구 들어와 있지?”
“일단 다 불러 보자.”
“종탁! 너는 한국 애들 좀 찾아봐.”
“알았어.”
셋이 저마다 자기 핸드폰을 터치하기 시작했다.
* * *
정말로 꿈만 같았던 휴일이 저물어 갔다.
온전히 쉬었다는 기분은 이런 것일까?
바쁘게 살아오며 그동안 알지 못했던 ‘문화’를 알게 된 사람들은 어째서 역사 속에 ‘예술’이 존재해 왔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음악 없이 살 수 있을 것 같나요?’
이런 질문에 제법 그럴싸한 대답을 내놓을 준비가 된 것이다.
오늘 모두가 느낀 이 감정들은 절대 문자로 된 기록물로 남길 수 없는 것이었다.
그 사실들을 서술할 수는 있겠지만, 절대 이 모든 것을 그대로 전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가장 비슷하게 전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이 음악들일 것이다.
후대 그리고 그 후대에선 이 음악으로 이날의 기적을 떠올리게 될 터.
오랜 오해들이 있었다.
문화 예술이란 사람들이 먹고살 만해서 떵떵거리며 즐기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벼랑 끝의 절망에서 오히려 빛을 발하며 곳간이 텅 빈 상황에서도 인간을 버틸 수 있게 해 주곤 했다.
바둥바둥 살아가던 사람들이 작은 것들의 행복을 알게 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조금 더 부드러워질 것이고, 조금 더 따뜻할 것이며, 조금 더 남을 배려하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다른 이를 위로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길 것이다.
그만큼, 이 정기 휴일의 의미는 정말로 거대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