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158
158화 슬픈 권능
진혁은 감았던 눈을 떴다.
눈을 떴지만, 여전히 주변은 칠흑처럼 어두웠다.
어느 곳에도 초점은 맞지 않았고, 그대로 멍하니 어둠을 응시했다.
‘왜? 걱정돼?’
어느새 마흔넷 진혁이 슬픈 표정으로 나타나 있었다.
이젠 완전하게 다른 인격이 되어 버린 그였기에,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와 모든 감정을 공유하던 때를 떠올려 보면 아마도 저 얼굴은 그런 마음인 것 같았다.
‘괜찮았어. 그 옥상에서의 공연도, 태각시에서의 공연도.’
아마도 그는 열아홉 진혁을 위로하고 싶었겠지. 그래서 사람들과 함께하는 행복을 노래했고, 가족의 소중함을 알려 주려고 했으며, 사람은 태어난 것 그 자체만으로도 할 것은 다 했다며 축복이라고 말했었다.
그렇게, 자신이 엇나가지 않게 하고 싶었을 것이다.
‘태어난 자체만으로 그 가치가 이미 증명됐다고?’
어둠 속에서 고개를 저었다.
깜빡 말려들 뻔하기도 했었다.
그 노래들을 자신이 하고 있었으니까.
그 노래에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자신 역시 행복을 느꼈으니까.
그래서 자꾸만 더 즐거운 일들을 찾으려 했던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끝은?’
대답하지 못하겠지.
그는 자신의 어둠을 마주할 용기가 없을 것이다.
지켜야 할 것이 많은 어른이 되어 버렸으니까.
그렇게 외면했던 과거였으니까.
그가 자신을 잊고,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왔던 기억을 되짚었다.
모든 기억을 공유한 것이 아니었기에 단편적인 부분뿐이었다.
열아홉 그때는 말도 몇 번 나눠 보지 못했던 그 고등학생 여자아이와 결혼을 했다.
그 과정도 상당히 단편적이었다.
그랬기에 몇몇 기억으로만 전해지는 그 장면들은 감정이 배제되자 그다지 공감되지 않았다.
‘그저 기댈 곳이 필요했던 거 아냐?’
평범한 사람들처럼 대학교를 나왔고, 그렇게 취업한 회사도 기억만으로 봤을 때 너무나도 무료했다.
그저 하루하루 살아갈 뿐.
아이가 태어난 그 순간은 기억만으로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 부분은 확실히 굉장했다.
다만, 그 이후 아등바등 살아가던 그 모습들은 그다지 와닿지 않았다.
꿈이 없는 삶이었다.
아내와 아이를 키우며 둘 모두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그 길을 걷고 또 걸었다.
간혹 작은 이벤트들이 있었겠지만, 전해지지 않은 기억들이었다.
그래, 열심히 산 것은 맞았다.
분명히 인정할 만한 삶이었다.
회사에서는 철저하게 모범적으로 행동했으며, 좋은 아빠가 되려 했고, 좋은 남편이 되려 했다.
괴로운 것들은 그때그때 표현하며 풀었다.
‘그래서 만족할 만한 삶이었나?’
그 일련의 시간 선에서 ‘자기 자신’은 얼마나 있었던 거지?
그저 어쩔 수 없는 거라며 외면한 19년의 삶을 그대로 묻어 둔 채?
열아홉 진혁이 지금 비소하는 이유였다.
‘난 나 자신을 남길 거야. 철없어 보여도 상관없어. 난 아직 어른이 아니니까.’
이런 상태를 계속해서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 자리를 돌려주기 전에.
세상에 이런 우주가 있었음을 남기고 싶었다.
괴로울 것이다.
아플 것이다.
슬플 것이다.
그만큼 이 어둠은 짙고 또 짙었으니까.
‘그래서 사람들에게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준 거야.’
마음에 여유가 생긴 그들은 그 어둠을 견뎌 낼 테니까.
어쩌면 어설프게나마 위로도 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세상에서 너무나도 유명해진 이 얼굴로는 부를 수 없는 노래였다.
‘당신은 행복을 노래해.’
마흔넷 진혁을 노려봤다.
‘난 슬픔을 노래하겠어.’
어둠 속.
진혁의 목소리가 나지막이 퍼져 나갔다.
* * *
“넌 따라올 필요 없는데.”
제니스가 인상을 찌푸렸다.
“아냐. 당연히 이 몸이 함께해야지.”
“하…….”
“지금 넌 쓸데없이 진지해. 그렇게 힘이 팍 들어가선 올바른 판단이 어렵지.”
칼리가 검지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를 이해하려고 해서는 안 돼.”
그 알짱거리는 검지를 확 잡아서 부러뜨릴 생각을 하던 제니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난 단 한 번도 다른 이의 세상을 짐작하려 하지 않았어.”
맞는 말이었다.
언제나 자신의 얘기만을 해 왔던 칼리였으니까.
“왜인지 알아?”
“내가 그걸 궁금해해야 하는 건가?”
“사람들의 아픔은 모두가 다르니까.”
“안 물었는데.”
“제니스, 너는 지금 그의 어둠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
제니스가 눈썹을 살짝 까딱였다.
별로 틀린 말은 아니기에, 더 해 보라는 듯 그의 말을 끊지는 않았다.
갑자기 칼리의 그 검지가 제니스의 눈동자를 찌를 듯 날아왔다.
“뭐 하는 짓이지?”
눈 바로 앞에서 멈춰 선 손가락을 신경질적으로 치웠다.
“내가 만약에 이대로 네 눈을 찔렀다면 엄청 아프겠지?”
“그리고 너는 맞아 죽겠지.”
“너의 아픔을 그대로 느껴 보겠다고 내 눈을 찌르면 그게 과연 같은 아픔일까?”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제니스의 미간이 좁아졌다.
“너나 나나… 아니지… 나는 쓰레기 같기는 했어도 부모는 있었으니까. 아무튼 빈민가에서 굴렀잖아.”
“그렇게 동의를 구하려고 말 끊지 않아도 돼. 일단 동의할 마음은 사라진 상태니까.”
제니스의 차가운 말에도 칼리는 방긋 웃었다.
저런 대꾸라도 했다는 것은 이미 뭔가 살짝은 궁금한 부분이 생겼다는 거니까.
참, 감정 표현이 귀여운 친구였다.
“자, 술에 떡이 돼서 골목 어딘가에서 굴렀다고 치자. 무릎은 다 까졌고, 팔도 여기저기 생채기가 났네? 피도 줄줄 나. 좀 아플 거야.”
“그런 머저리 같은 일은 너한테나 벌어질 일인 것 같은데?”
“아무튼 그렇다고 치자.”
“흠…….”
“우리 고귀하신 유레이시 공주님이 우아하게 계단을 내려오다가 굴렀어. 무릎이 까졌고, 피가 나!”
제니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
“우리야 어릴 때부터 여기저기 많이 까져 봤으니까 별일 아니거든. 대충 딱지가 앉을 거고, 시간이 지나면 아물겠지. 뭐, 염증이 생긴 것 같으면 항생제나 먹으면 돼. 재수 없으면 흉터가 조금 남을 수도 있고…….”
“그래서?”
“우리 공주님은 생소한 고통이야. 자주 겪어 보지 못해서 이 상처가 어떻게 아물지 감도 오질 않아. 고통도 고통이지만 걱정도 산더미야.”
제니스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움찔했다.
눈치챈 듯 방긋 웃는 칼리의 얼굴이 참 얄미웠다.
“너나 내가 느꼈을 고통과 공주님의 고통이 비슷할까?”
칼리가 팔짱을 끼고 턱을 올렸다.
“모든 사람은 처한 상황이 달라. 그렇기에 같은 상황 같은 고통일지라도 저마다 느끼는 크기가 다른 게 당연한 거야. 이건 진리지.”
제니스가 멍하니 칼리를 바라봤다.
평소엔 완벽하게 머저리 같다가도 간혹 이렇게 정곡을 찔러 대고는 했다.
“그러니까 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런 걱정을 하지는 말자고.”
“그런 걱정 안 했어.”
제니스가 서둘러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칼리가 방긋 웃는 얼굴이 창문에 비쳤다.
그의 말에 뜨끔한 것과는 별개로 밀려드는 짜증은 어쩔 수 없었다.
얼른 초점을 저 멀리 반짝이는 네온사인들로 옮겼다.
짜증은 났지만.
왠지 모르게 갑갑했던 마음은 조금 진정되는 것 같았다.
* * *
스테빈은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했다.
벌써 30분이나 지났다.
이 엄청난 곡을 바비 댄에게 들려줬고, 그 이후 이어져 온 침묵이었다.
“후…….”
숨소리조차 내지 않던 그에게서 낮은 한숨이 튀어나왔다.
“나에게? 이 곡을?”
“맞아. 자네에게 부탁하더군.”
바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리 가사만이라지만… 어째서 이번엔 한국어로 하지 않는 거지?”
“들어 봤잖은가. 이 노래가 지금의 그가 불러도 될 만한 분위기야?”
대중음악계에서만 수십 년을 굴러왔다.
언제나 흐름이란 것이 존재하는 법이었다.
그 흐름을 따라 대중들은 웃고 울고 고뇌한다.
세상 모두에게 판타스틱 한 삶을 선사한 그였다.
밝고 따뜻했고, 행복이 넘쳤다.
그렇게 즐거움이 가득한 세상을 노래했다.
그런 그가 갑자기 이런 곡을 내놓는다면, 그 여파는 상당할 것이다.
더욱 큰 우울감에 빠져들 수도 있었다.
“자신을 숨기려고 하는 거군.”
“맞아.”
“하… 어떻게 이런 감정을 숨겨 뒀던 거지?”
해맑게 웃는 그의 얼굴을 떠올린 바비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자신이라면 상상도 하지 못했을 일이었다.
어떻게 이런 슬픔이 있는데도 마냥 행복하고 즐거운 음악만을 해 올 수 있었단 말인가.
“해석을 어딘가에 의뢰할 수는 없어서 일단 번역기로 돌려봤어. 그 정도라면 자네가 충분히 할 수 있을 거야.”
굳은 표정의 바비를 바라보던 스테빈이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지금 이 작업은 최대한 비밀스러워야만 했다.
지금껏 수많은 가사를 써 온 바비였다.
그의 작사 능력은 정말로 굉장했다.
그 아름답게 표현된 단어들로 노벨 문학상의 후보에 오르기도 했었으니까.
“후…….”
무조건해야만 하는 일이었지만.
쉽게 고개가 끄덕여지지는 않았다.
이 거대한 슬픔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이대로 마음껏 울부짖도록 놔둬야 하는 건가?
그를 위로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탁자 위 스테빈이 내민 종이를 바라봤다.
온통, 아픔으로 가득한 단어들에 가슴이 조여왔다.
[wellaway]‘비탄’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제목에 눈을 질끈 감았다.
* * *
-세계 경제 침체에도 불구하고 한국 경제 성장 전망은 상승 곡선을 그리며…….
-관광객들의 폭발적인 증가로 10월에 업데이트 될 GDP 순위에 귀추가 주목…….
-휴일이 하나 더 늘었음에도 오히려 생산성과 경제 생산량 증가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는…….
-마음이 여유로워진 대한민국. 어려운 이들을 위한 기부 행렬이 줄을 이으며 새로운 복지 지원 단체들이…….
-대기업들이 앞장선 대중문화 예술 진흥 재단의 뒤늦은 발족식이 있었으며 재계 서열 10위권 재벌들이 대거 참여하며…….
온통 긍정적인 기사들이 포털을 가득 메웠고, 이는 첫 정기 휴일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를 보여 주는 것이었다.
가장 걱정이 많았던 영세 기업이나 자영업자들 역시 ‘손실 보전금’이 아니더라도 갑자기 치솟은 매출에 모두가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이미 휴일은 지난 지 오래였지만, 거리 곳곳은 공연하는 아티스트들로 넘쳐났다.
진정한 대중문화의 부흥기를 맞은 것이었다.
그에 따라 그 분위기를 느끼려는 외국인들의 방문은 점점 더 늘어만 갔다.
사실 제주도를 빼고는 관광자원이 턱없이 부족했던 나라였다.
일제강점기와 전쟁으로 인해 전통적인 문화유산이 유실되었고, 급격한 현대화로 온통 시멘트 천국이 되어 버린 도시들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했다.
그랬기에 관광 산업은 경제지표에서도 하위권에 머물렀었는데, 사상 최초로 선두에 서게 된 것이었다.
‘대중문화’ 하나로 갑자기 지구본의 중심을 차지하게 된 대한민국이었다.
더 고무적인 것은.
이런 휴일이 매달 있다는 사실이었다.
온통 희망의 메시지들로 가득한 한국이었다.
* * *
“그래서… 그는 자신의 감정을 절대 섞지 않았던 게 아닐까…….”
앨런의 말에 제니스와 칼리가 정신을 차렸다.
그만큼 편집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이 영상은 정말로 충격적이었고, 이 기록들로 인해 유추되는 그가 걸어왔던 행보 역시 예상을 뛰어넘었다.
그는, 과연 어떤 마음으로 음악을 해 온 것일까?
제니스가 이를 악물었다.
“분기점을 이렇게 나눠 봤는데… 처음 그가 미디어에 노출된 피아노 연주가 있고, 그 이후 영등포역에서의 공연이 있어요. 그때까지는 자신의 감정을 마음껏 표출하죠. 그리고 그 감정이 사람들을 움직이는 것을 확인한 후부터는…….”
“조심스러워졌네요.”
제니스의 말에 앨런이 고개를 끄덕였다.
“듣게 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가장 모범적인 감정들로 표현하기 시작했어요. 절대로 과하지 않게…….”
“우리에겐 엄청났지만, 그의 관점으로는 가장 무난한 음악들이었을 수도 있겠네요.”
“그가 자신의 아픔을 그대로 노래했다면 모두가 너무나도 깊은 슬픔에 빠졌을 테니까요.”
그의 음악은 그대로 사람들의 감정을 뒤흔든다.
마치 신과도 같은 정말로 굉장한 능력이었다.
그래서 정말로 슬픈 권능이었다.
그는 절대로 자신의 삶을 얘기할 수 없었다.
그 보육원 아이들처럼 모두가 슬퍼지게 될 수도 있었으니까.
그의 부모들처럼 우울증에 빠질 수도 있었으니까.
지금의 세상과는 정반대의 광경이 펼쳐졌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따뜻해졌을지 몰라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그 어둠은?
제니스의 입술이 살짝 떨려 왔다.
어떻게 해야 하지?
위로하고 싶다고 마음은 먹었었지만, 도대체 어떤 음악으로 다가가야 하는 거지?
“괜히 엉덩이를 한 대 차 버리고 싶어지네.”
제니스가 황당한 눈으로 칼리를 바라봤다.
이 머저리는 간혹 이렇게 정곡을 찌르곤 했다.
“악상이 막 떠오르는데?”
때론, 제멋대로 생각 없이 덤벼드는 놈이 명쾌한 해법을 내놓기도 했다.
제니스가 앨런을 바라봤다.
“이 영상을 보여 주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데요.”
“네? 누구…….”
“그… 다… 뭐더라?”
제니스가 미간을 좁히자 칼리가 피식 웃었다.
“다구리.”
“아. 다구리 쳐야 하거든요.”
앨런은 고개를 갸웃했고.
정태강의 눈이 동그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