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159
159화 괴물 신인
완연한 가을로 들어서는 때, 대한민국은 늦여름의 그 열기를 그대로 머금은 채 여전히 뜨거웠다.
이렇게 신나게 하루하루를 보내 본 적이 있었던가.
출근길에 지하철에서 만난 5분간의 즐거움을 선사해 준 광대의 모자에 오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넣어 주자 발걸음은 더욱 가벼워졌다.
매일 아침 챙겨 먹었던 아이스 아메리카노보다 가성비는 더욱 뛰어났다.
회사로 걷는 도중 저 멀리 들리는 통기타 소리에 귀를 쫑긋 세우기도 했고, 자신과 비슷한 표정의 사람들과 반갑게 인사 나누며 회사로 들어갔다.
기분이 좋으면 많은 것이 즐겁게 다가오는 법이었다.
버벅거리는 회사 컴퓨터의 부팅 시간도 그다지 짜증 나지 않았고, 아침부터 쌓여 있는 업무 목록도 차근히 살펴보니 꽤 재밌어 보였다.
이유 없이 들들 볶아 대던 과장님도 딱 필요한 부분만을 짚어 줬고, 핀잔보다는 칭찬이 늘었다.
출근이 이렇게 기대되고 신나는 일이었던가?
하루하루가 즐거움의 연속이었다.
마음의 여유가 생겼고, 불우 이웃을 돕는다는 한 단체에 매달 만 원씩을 후원하기로 했다.
동료 중에는 5만 원씩 후원하는 친구도 있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운 없고 지지리 궁상맞은 인간인 줄 알았었는데, 사실은 꽤 여유로웠고 행복한 삶을 사는 중이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즐겁게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벌써 두 번째 정기 휴일이 다가왔다.
‘이번엔 뮤지컬도 보러 가 볼까?’
또 어떤 즐거움을 만날 수 있을까.
일주일이나 남았는데 벌써 마음이 콩닥대기 시작했다.
힘겹게 부팅을 마친 컴퓨터가 바탕 화면을 띄웠고, 시계를 보니 아직 업무 시간 전이었다.
인터넷 창을 띄웠다.
해외 게시판에 뜬 한국에 대한 코멘트들을 읽는 것은 요새 생긴 취미 중 하나였다.
최근 ‘국뽕’의 치사량을 한참 넘어서게 만든 세계의 여론이었다.
모두가 한국을 부러워했고, 그들의 목표는 돈을 모아 휴가를 내 한국의 그 ‘정기 휴무’에 동참하는 것이었다.
영어 공부도 할 겸 게시판만 둘러봐도 절로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요새는 어설프게 한국어로 얘기하는 통에 영어 공부도 잘되질 않았다.
이 또한 어깨를 더욱 치솟게 했다.
‘어?’
오늘도 상당히 많은 ‘Miracle Korea’가 있었지만, 어제와는 뭔가 다른 이질적인 게시물 하나가 눈에 띄었다.
‘괴물 신인?’
어제 처음으로 등장했다는 해외 신인의 싱글 앨범을 소개한 게시글을 바라봤다.
대충 읽다가 댓글로 스크롤을 내렸다.
‘감히 진혁느님과 비교를?’
역시나 엄청난 욕을 먹고 있었다.
궁금함에 그 싱글의 성적을 확인했다.
한참을 눌러야 보이는 바닥 페이지, 그것도 최하위에 머물러 있는 그 앨범명을 보곤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어그로도 적당히 끌어야지.’
제대로 비아냥거려 줄 생각으로 게시글을 다시 클릭했지만, 이미 삭제된 후였다.
* * *
프로모션도 없었고, 가벼운 바이럴 마케팅도 없었다.
그저 싱글 앨범 하나가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에 업로드되었을 뿐이었다.
그 흔한 신인 소개도 없었고, 그랬기에 재생 횟수도 하루 동안 100회를 넘지 못했다.
‘noname’
그저 아티스트의 이름이 특이했고, 발표한 회사가 카폰 레코드였기에 이 정도의 반응이라도 있었다고 봐야 했다.
아무리 신인이라고 하더라도 그 카폰 레코드에서 아무런 프로모션도 넣지 않았다니.
아니 뭣보다 스테빈이 정말로 아무것도 아닌 아티스트의 앨범을 미국 본사의 이름으로 세상에 내놨다고?
그것도 저렇게 건성건성?
그 부분이 더 의아했다.
저 밑바닥에 깔려 버린 그 곡이 그래도 100회 근처의 재생 횟수를 기록하게 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세계적인 팝 칼럼니스트 콜렌즈 제퍼슨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월드 뮤직 페스티벌 이후 소속 아티스트들이 속속들이 새 앨범을 발표하거나 준비하기 시작했고, 콜렌즈는 그 덕에 나름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는 중이었다.
거기에다 한국의 그 어마어마한 대중문화 붐에 여기저기서 그 나라 대중음악의 평론을 요구하기도 해서 그 바쁨은 배가 되어 있었다.
간혹 머리를 식히기 위해 저 바닥에 깔린 무명들의 노래를 듣곤 했었다.
기본조차 되지 않은 날것의 감정들은 때론 그의 머릿속을 맑게 만들어 주곤 했었다.
그러다가 걸린 음악이었다.
‘어……?’
잔잔한 어쿠스틱 소리가 흘러나왔고, 그 음울한 선율에 귀 뒤가 뻣뻣해졌다.
툭툭 던지는 그 음표 하나하나가 깊은 울림으로 내려앉았다.
전주가 시작된 것만으로 이미 그의 입이 쩍 벌어지게 만든 것이다.
수많은 음악을 들어 온 콜렌즈였다.
그렇기에 첫 시작만 들어도 그 곡의 성격을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이렇게 첫 소절부터 자신의 눈을 동그랗게 만들다니.
잔잔하게 또는 묵직하게 울리던 기타에 피아노가 얹어졌다.
‘뭐… 뭐야?’
강렬하기 정말로 어려운 조합이었다.
어쿠스틱 기타에 피아노라니.
그런데도 심장이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귀에 대강 걸어 놓았던 헤드폰을 꾹 눌렀다.
어떤 잡음도 허락하고 싶지 않았다.
처음 듣는 이때, 온전히 이 감정들을 느끼고 싶었다.
분석은 그다음이었다.
머릿속을 비우고 그 암울한 멜로디에 집중했다.
리듬 파트 하나 없이 멜로디만으로 한없이 낮게 깔리던 그 어둠에 거칠고 덤덤한 목소리가 스며들었다.
‘아…….’
탄성과 함께 벌어진 입은 다물어지질 않았다.
이런 괴물이 어디서 튀어나온 거지?
어떻게 이런 목소리가 가능하지?
스테빈은 어째서 이런 엄청난 신인을 아무런 프로모션도 없이 그냥 툭 던진 거지?
서둘러 고개를 저었다.
이런저런 궁금증들을 얼른 머릿속에서 밀어내고 온전히 음악에 집중했다.
가슴을 꽉 채워 대는 낮은 울림.
비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슬픔 가득한 어둠들.
그 속에서 작은 괴물이 자조하듯 미소 지었다.
이미 그 늪에 빠져든 콜렌즈의 눈동자가 젖어 들었다.
더 깊이 빠져들었다가는 자신조차 저 어둠에 먹혀 버릴 것만 같았다.
서둘러 눈가를 훔쳤다.
헤드폰을 벗은 후, 그 무너진 감정을 진정시키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다시 들어야만 했다.
하지만 겁부터 덜컥 났다.
서둘러 컴퓨터의 음향을 외부 스피커로 변경했다.
오디오 앰프의 볼륨을 올리고 다시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두 번째 재생.
감정을 배제한 채 순수하게 음악적인 테크닉에 집중했다.
보컬, 음역, 편곡, 발성, 깔끔하진 않지만 노련한 기타 연주, 거기에 더해진 피아노 연주, 어느 하나 나무랄 것이 보이질 않았다.
‘이게 신인이라고?’
신인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언뜻 떠오르는 뮤지션도 없었다.
지금껏 최고라 칭해지는 아티스트들의 음악들을 해체해 온 자신이었다.
최근 해체가 불가능한 한국의 아티스트가 하나 있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그는 예외였고.
어쨌거나, 자신이 아는 한 이런 엄청난 색깔을 가지고 있는 아티스트는 없었다.
저 피아노도 그의 연주일 것이다.
저 정도의 느낌과 감정을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둘일 리는 없었다.
철저하게 한 사람의 감정이었다.
곡이 끝났고, 콜렌즈가 서둘러 핸드폰을 들었다.
그다지 좋아하는 인간은 아니었지만, 지금 물어야만 했다.
이렇게 즐겁고 행복하게 들떠 있는 세상에.
어째서 이런 짙은 슬픔을 풀어 놓은 것인지.
* * *
소파에 누워 있던 진혁이 눈을 떴다.
눈동자가 잠시 흔들리더니 팔을 들어 자신의 손가락을 바라봤다.
동그래진 눈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오랜만에 자신의 의지로 몸을 움직이는 감각을 만끽하며 일어났다.
탁자 위.
열아홉 진혁이 던져 둔 악보를 바라봤다.
자신의 감정을 고스란히 담은 곡이었다.
‘미안해.’
마치, 어린아이의 등을 토닥이듯 악보 위에 손을 올렸다.
아마도 자신의 감정을 마구 쏟아 낸 후 홀가분해졌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이런 빈틈이 생겼고, 마흔넷의 자신이 깨어날 수 있었던 것일 터.
열아홉 진혁도 알고 있을 테지만, 이 둘의 인격은 이미 오래전에 형성되어 있었다.
서로가 몰랐을 뿐.
마흔넷 진혁이 외면해 왔던 많은 것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성당에서 수녀님에게 음악을 배운 이후 눌러 두었던 어둠이었다.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들을 의식적으로 밀어뒀었다.
-넌 세상을 치유할 능력을 받았어. 이건 정말로 기적이야.
지금은 하늘의 별이 되었을 그분의 말 한마디에.
세상에서 가장 저주스러웠던 아이는 축복받은 아이가 되고 싶어졌었다.
밝고, 아름답고, 즐거운 목소리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려고 했던 것은 그런 이유여서였다.
그랬기에, 언제나 재밌는 것을 찾는 것이라며 그 진짜 목적을 희석했다.
진혁에게 밝은 음악이란 자신의 존재 이유와도 같았던 것이었다.
축복받은 아이가 되려고 달리다가 저주받은 채 그대로 남겨진 아이를 잊고 말았다.
자기 자신조차도 잊어버린 그 공간, 어둠 속 진혁의 슬픔은 더욱 짙어만 갔을 것이다.
단 한 번도 위로받지 못했으니까.
단 한 번도 제대로 울어 보지 못했으니까.
그가 울부짖은 음표들을 차곡차곡 모았다.
외면했던 우주가 찬란하게 펼쳐졌다.
응수동의 그 공연에서, 태각시의 그 축제에서, 그를 위로하려 노래했지만 부족했었다. 그가 가진 어둠의 깊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렇게까지 되어 버렸으니.
다시 눈을 감으면 열아홉 진혁이 깨어날 것이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서둘러 그의 곡들을 살폈다.
그의 깊은 어둠을 이해해야만 한다.
세상 어떤 누구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이건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아마도, 그는 자신의 모든 어둠을 쏟아 내고 그대로 떠날 생각인 듯했다.
그렇게 아무런 위로도 받지 못한 채, 저주받은 아이로서 사라지게 둘 수는 없었다.
‘너도 행복이란 걸 알아야 해.’
시계를 바라봤다.
새벽 4시.
피로가 몰려왔다. 하지만 잠들어서는 안 됐다.
지금 눈을 감으면 언제 또 마흔넷의 정신으로 눈을 뜰 수 있게 될지 모르니까.
먼저, 그의 어둠을 느껴야만 했다.
소파에 기대어져 있던 하얀 기타를 들었다.
악보를 펼쳐 놓고.
잊으려 했던 어둠을 직시했다.
마흔넷 진혁의 손가락이 조심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스테빈의 미간이 좁아졌다.
이미 두 번의 전화를 외면했다.
곧, 문자 알림이 울렸다.
[noname. 제가 띄워 버릴까요?]‘하…….’
이 노련한 평론가는 눈치가 정말로 빠른 녀석이었다.
스테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핸드폰을 들 수밖에 없었다.
“콜렌즈, 오랜만이네.”
-제가 정곡을 찔렀네요. 맞죠?
스테빈이 쓰게 웃었다.
사실 완성된 이 곡은 정말로 엄청났다.
단 한 번이라도 듣게 된다면 빠져나올 수가 없을 것이다.
프로모션도 필요 없을 것이다.
라디오 몇 군데만 돌리면 한순간에 미국 전역에 퍼질 만한 곡이었다.
“흠…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지?”
-누구죠? 누군데 이렇게 감추려고…….
“들어 봤으면 알 텐데…….”
-어… 짐작은 했습니다.
스테빈은 이 엄청난 곡이 조금이라도 늦게 알려졌으면 했다.
지금껏 음악 사업을 해 오며 일부러 바닥에 묻힐 방법을 찾게 될 줄이야.
어차피 언젠가는 세상을 물들일 곡이었다.
지금껏 그가 대중 앞에서 불러 온 그 따뜻한 곡들보다 훨씬 더 강렬하고 완벽했으니까.
지금까지도 천재였지만.
지금 이 곡은 그 ‘지금까지’를 아득히 넘어선 경지였다.
그렇기에.
세상은 비탄에 빠져 버릴 것이 분명했다.
너무나도 따뜻한 세상이었고, 너무나도 즐거운 세상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은…….
그래서 누구도 관심을 보이지 않도록 저 밑바닥에 넣어 둔 것이었다.
-근데 앨범을 내셨잖아요. 그 의도가 궁금한데요?
“낼 수밖에 없었어.”
앨범 유통을 거절할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지금 이 세상은 개인이 곡을 내놓을 방법이 너무나도 많은 세상이었다.
오히려 자신이 유통해 주겠다고 하며 이렇게 바닥에 숨겨 두는 것이 더 시간을 끌 수 있을 것 같았다.
-숨겨 두신 거군요?
역시 예리한 면이 있는 친구였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즐겁게 두고 싶어.”
-회장님 입에서 나온 소리치고는 참 의외네요. 이렇게 성공이 확실한 신인을 숨겨 둔 이유가 그런 이유라니…….
“뭐라고 해도 할 말은 없는데… 조금만 기다려 줬으면 좋겠어.”
맞는 소리였다.
아마도 얼마 전의 자신이었다면 세상이고 뭐고 돈이 되는 곡을 이렇게 처박아 두지 않았을 테지.
-어? 와… 정말로 그런 이유예요?
“부탁하네.”
스테빈이 낮은 한숨을 섞어 말했다.
평소의 그라면 절대 내뱉지 않을 만한 말이었다.
-…….
상대도 이런 반응에 적잖이 놀란 기색이었다.
-뭐…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대신 나중에 공개하게 된다면 최초 인터뷰는 약속하시죠.
“가능하다면 그렇게 하겠네.”
-회장님 입에서 ‘가능하다면’이라는 말이 나오다니… 도대체 누군지 정말로 궁금해지네요. 아무튼 오늘 여러 번 놀랍니다. 일단 제가 먼저 따로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고맙네.”
-인터뷰는 약속하신 겁니다, ‘가능하다면’!
“알겠네.”
스테빈이 핸드폰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는 깊이 한숨 쉬었다.
시간을 끈다고 해도 과연 이 짙은 어둠을 희석할 만한 무언가가 나타나기는 할까?
제니스? 바비? 유레이시? 칼리?
고개를 저었다.
격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내려놓은 핸드폰이 또다시 울려 댔다.
‘어?’
의외의 발신자를 확인하고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