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16
16화. 담장
창천 그룹 본사 최상층.
김충석 회장은 오늘 있었던 진봉구 이사장과의 기 싸움을 떠올리다가, 인상을 찌푸렸다.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재벌 1위 청강 그룹.
재계 서열에서도 한참 밀리는 자신들에게 있어서, 이번의 승리는 짜릿했어야 했다.
그 좋은 분위기를 망쳤다.
“후···.”
머리를 쓸어올린 그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핸드폰을 노려보다가 집어 들었다.
“지금 충기 어딨어?”
-킹덤 오브 스타에 가셨습니다.-
“그 새끼 사고 안 치게, 감시 잘해.”
-네. 경호 셋 붙였습니다.-
“딴 데, 안 새게 잘 지켜봐.”
-네, 알겠습니다.-
김충석 회장이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번 앨범은 대충 접고, ‘딴따라’ 생활을 마무리시킬 생각이었다.
미국 지사 적당한 자리에 꽂아 넣고, 몇 년 지나다 보면 사람들에게서도 잊힐 것이다.
“어디서 그딴 자식이 튀어나와서···.”
이를 부드득 갈며,
벽에 걸린 전대 회장들의 사진을 노려봤다.
***
클럽 입구에는 평일임에도 사람들이 붐볐다. 긴 줄은 멀리까지 이어졌고, 입구를 지키는 보안 직원들은 저마다 바삐 움직였다.
다만, 그 입구에서 몇 걸음 옆에는, 굳게 닫힌 고급스러운 문이 있었는데,
그 문은, 직원 두 명만이 우뚝 서서 지키고 있었다.
그쪽을 향하는 길목,
덩치 큰 직원들이 두 중년인을 막아서고 있었다.
“아니, 거, 참··· 그 중년 나이트나 가시라니까요?”
“얘기가 되어 있다고 했는데?”
“아니, 우리는 얘기 들은 게 없다고요.”
하루에도 몇 번씩 ‘내가 누군데!’라는 사람이 등장하곤 했다.
명품을 치렁치렁 감았어도, 이 클럽의 VIP 전용 출입구로 들어설, ‘깜’이 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하물며, 이렇게 후줄근한 중년이라니.
덩치가 큰 중년인이 난처한 듯 눈가에 난 상처를 긁었다.
막아선 남자들은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중년인이 상처를 긁으려 손을 들어 올린 순간, 모두 깜짝 놀라며 움찔했다.
덩치도 상당했지만, 뭣보다 얼굴의 깊은 상처가 주는 위압감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여차하면 힘으로 쫓아내야 하는데, 그런 상황까지는 절대 가고 싶지 않은 이들이었다.
그때, 클럽 내부에서 보안 팀장이 뛰어나왔다.
긴장하고 있던 남자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강남 클럽 보안계의 전설. 양구철.
듣기로는, 전국구 폭력 조직 행동대장 출신이라고 했다.
간혹 운동 좀 했다고 건들거리는 이들을, 단숨에 제압하는 모습은 가히 예술이라고 해도 좋았다.
그가 저벅저벅 걸어왔다.
“아. 팀장님! 여기 이분들이 자꾸···.”
팀장이 손을 들어 그의 말을 막았다.
그리고, 깍듯하게 고개를 숙였다.
“형님. 오랜만입니다.”
“어. 잘 지냈냐?”
뜬금없는 상황에 주변 직원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연락을 늦게 받아서, 조금 늦었습니다.”
“뭐 늦을 수도 있지. 하마터면 중년 나이트로 갈 뻔했지만···.”
중년인의 말에 구철이 고개를 돌렸고,
그들에게 비아냥거렸던 사내가 서둘러 시선을 피했다.
구철은 방금 시선을 피한 직원의 인상착의를 기억한 후,
입구에 설치된 CCTV를 바라보며 턱짓했다.
팀장의 행동이 뭘 의미하는지 알게 된 직원들이, 화들짝 놀라 후다닥 움직였다.
CCTV를 가리라는 지시.
원칙상 완전히 가리지는 못하지만, 자신들이 몸으로 막아, 사각지대를 만들 수는 있었다.
’VIP’중에서도 자신이 노출되기를 꺼리는 특급들이 간혹 요청하던 것.
직원들이 각자 위치에 자리한 것을 확인한 구철이, 중년인들을 안내하며 걸음을 옮겼다.
곧, VIP룸까지 직통으로 연결되는 입구로 팀장과 두 중년인이 사라졌다.
멍한 표정의 직원들이 갸우뚱하며 굳게 닫힌 문을 바라봤다.
***
서경진은 ‘킹덤 오브 스타’의 입구에 늘어선, 줄 한가운데서 주변을 살폈다.
오늘은 그 EDM의 황제 ‘크리스 제리’가 오는 날.
홍대에서 DJ로 활동하고 있는 그에게 있어서, 이번 그의 방문은 놓칠 수 없는 이벤트였다.
그와 함께 온 동료 DJ 다온이 인상을 찌푸렸다.
“뭐야 저 아저씨들? 그냥 들어가네? 저 문은 뭐지?”
그녀의 말에 자신들이 들어갈 입구와는, 전혀 다른 ‘그들만의 입구’를 바라봤다.
이 ‘킹덤 오브 스타’를 몇 번 방문한 적이 있는 경진은, 저 굳게 닫힌 문이 가진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전에, 재벌가 방계인 친구 덕에, 딱 한 번 저 문을 열고 들어가 본 적이 있었다.
같은 클럽이지만, 전혀 다른 공간.
저 문으로 들어가야만 드러나는 VIP전용 플로어가 떠올랐다.
“저기 들어가는 거면, 보통 사람이 아닌 거야.”
“그래?”
“어디 재벌이나, 유명 연예인 정도? 저기 들어가면 화장실에서 막 테일 만나고 그런다?”
“오···.”
줄이 조금 줄어들었고, 둘은 서둘러 앞사람을 따라갔다.
“아. 아까 저 아저씨 중 한 명이, S클레스에서 내리긴 했다. 기사도 딸렸던데?”
“거봐. 보통 사람이 아닐 거야.”
경진은 자신들과는 딴 세상에서 사는 아저씨들에게는 별 관심이 없었다.
슬쩍 주변을 살폈다.
혹시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까 마스크를 썼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동종업계 사람이 종종 눈에 띄었다.
그들 모두 ‘크리스 제리’를 보러 온 것일 터.
오늘은 어떤 레퍼토리를 가지고 왔을까?
그의 믹싱은 정말로 대단했다.
새로운 리믹스를 발표할 때마다, 서울 시내 클럽의 모든 레퍼토리를 뒤집곤 했었다.
그런 그의 신보를 직접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특히 오늘의 플레이 리스트에는 미발표 믹싱도 있다고 했잖은가?
다른 DJ들도 자신 만큼이나 들떠 있을 것이다.
“오빠. 다음 차례에 우리도 들어갈 수 있겠는데?”
다온이 신난 표정으로 말했다.
경진은 발을 동동 구르는 동료 DJ를 바라봤다.
그녀는 사실상, 비쥬얼 DJ.
그만큼 예쁘고, 화려했다.
그에 비해 실력은 고만고만했다.
오늘도, 그저 유명한 DJ가 한국에 왔다니까 따라온 것뿐이리라.
‘제리의 음악을 알기는 할까?’
자신이 곡을 분석하고, 템포를 쪼개고, 믹싱에 대해 고민할 때, 그녀는 그저 어떡하면 더 예뻐 보일지 신경 쓰고 있었을 것이다.
실력도 없고, 그렇다고 자신만의 레퍼토리를 고민하지도 않는,
그저, 외모만으로 따낸 유명세는 경진에게 있어서 왠지 모를 불쾌감을 주었다.
선배들이 만들어준 플레이 리스트를 틀어대며, 가슴이나 흔들어대는 가짜 DJ.
어쩌다 시간이 겹치는 바람에 그녀의 에스코트를 맡았고,
조금 짜증이 난 경진이었다.
“후···. 들어가자.”
클럽 입구의 남자가 손짓했고,
경진이 그녀의 등을 살짝 밀었다.
***
“그···. 형님께서 부탁하신 거라서 여기까지는 들어 올 수 있지만, 룸까지는 어렵습니다.”
“흠.”
“입구 쪽 CCTV는 가렸으니까 얼굴이 남지는 않으실 겁니다. 2층 내부를 비추고 있는 카메라는 모두 모조품입니다.”
“아···. 땡큐.”
“저도 못 뵌 걸로 하겠습니다.”
“무슨 뜻인지 알았어.”
“근데, 오늘은 경호가 셋이나 붙어있었습니다. 불러낼 방법이 있겠습니까? 통화도 안 되신다고···.”
“뭐, 지금부터 방법을 찾아 봐야지.”
“모쪼록, 룸 안에서만···. 밖까지 소란스러우면 저 혼자 커버하기가···.”
워낙 쟁쟁한 사람들이 모인 프라이빗한 장소였다.
이 클럽에서도 상당한 위치에 있는, 보안 팀장인 구철도 이 공간에서는 목소리를 높일 수 없었다.
그의 사정을 이해한 장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도록 노력하지.”
“네. 저곳입니다.”
가장 구석 VIP룸을 가리켰고,
그 앞에는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 셋이 보였다.
여동생 김우희가 언질은 넣어놓는다고 했다.
직접적으로 통화하며 말하기엔 어려워, 지인을 통해 전달했다고 했던가?
그 대단한 형들이 감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직접 장하가 연락할 수도 없었다.
그녀도, 장하의 이름을 거론하지는 못했을 터.
그 대단한 분들에게 장하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으니까.
뭣보다,
남을 통해서는 친구의 의중을 확실하게 알지 못했다.
우선, 직접 얼굴을 보고, 그의 눈을 확인하며 물어야 했다.
언제나 속마음과 다른 말을 던지는 친구였기 때문이다.
만일, 거절한다 해도,
그의 눈동자가 조금이라도 흔들린다면, 납치라도 할 작정이었다.
그 꼴사나운 ‘거짓 왕자’ 행세는 더 이상 봐줄 수가 없었다.
뭣보다,
진혁이 돌아왔다.
“고생했다. 여기서부터는 내가 알아서 할게.”
“네. 형님. 만나서 반가웠습니···?”
깍듯하게 인사하던 구철이 화들짝 놀랐다.
2층 VIP 플로어 중앙 난간에 만들어진 간이 디제잉 박스.
그 무대에 장하와 함께 들어온 중년인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어?”
간혹, 술을 한잔한 VIP 중 몇몇은, 흥에 겨워 자신들이 클럽을 컨트롤 하고 싶어 하곤 했다.
그들을 위해 마련된 믹싱 테이블이 자리한 무대.
테이블 위의 ‘DJX-900NXS2’는, 언제든 메인 사운드에 간섭할 수 있도록 세팅되어 있었다.
물론 저 장비를 다룰 수 있는 음악인들만이 만졌었고,
간혹 만취한 비 음악인 VIP가 무대에 설 때는, 적당한 선에서 보안 직원들이 출동하여 제지하곤 했었다.
그 무대, 믹싱 테이블 앞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진혁.
“아차···. 저 미친 새끼.”
장하가 서둘러 주변을 돌아봤다.
시끄러운 EDM이 뇌를 때려대는 곳.
진혁에게는 정말로 생소한 장소일 것이다.
음악에 있어서는 앞뒤 안 가리는 진혁을 잘 알고 있는 그였다.
이미 눈이 돌아가 있을 것이 분명했다.
말리기엔 늦었다.
주변을 돌아보던 장하의 눈에 동물 가면들이 보였다.
VIP룸으로 가는 복도에 비치된 가면들.
아마도 신분을 노출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리라.
‘이 새끼가 무슨 동물을 좋아했더라···.’
자신이 쓸 사자 가면을 손에 든 장하가 입꼬리를 올렸다.
***
“이사님. 한 잔 받으세요.”
지난달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일으킨 배우 한주승이 양주병을 들었다.
충기는 능글거리는 그를 한 번 노려본 뒤 양주잔을 들었다.
현재 ‘EMP기획사’의 이사이기도 한 충기에게는, 별로 맘에 들지 않는 인간이었다.
오늘은 기획사 소속 가수인 ‘테일’이 자신을 불러서 따로 만든 자리.
이 룸에는 테일과 자신, 단둘만이 있어야 했다.
테일도 이 인간을 달가워하지 않았으니, 자신의 일정을 알고 있는 다른 이가 정보를 흘렸을 것이다.
아마, 이사인 자신보다 더 높은 사람이 보냈을 가능성이 컸다.
“저 이번 드라마는 제끼고···, 음반 하나만 내면 어떨까요?”
역시,
바라는 것이 있었다.
“니가?”
“에이. 저번에 저 뮤지컬 작업 한 거 보셨잖습니까? 저도 제대로 하면 테일이만큼 합니다.”
조용히 맥주를 마시던 ‘국민 꿀성대’ 테일이, 고개를 돌려 입을 가리고 피식 웃었다.
그래도, 연예계 선배.
대 놓고 무안을 줄 수는 없었다.
“그···. 부회장님도 제 노래가 괜찮다고···. 이사님도 꼬박꼬박 앨범 내시지 않습니까?”
그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고,
충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EMP기획사의 대주주.
말속에 둘째 형이 등장했다.
표면상 이사 자리를 줬을 뿐이지, 실제로 충기가 가진 권한은 거의 없었다.
“후···.”
‘이사님도 꼬박꼬박 앨범 내시지 않습니까?’
‘개나 소나 다 내는데 나는 왜 안돼?’라는 말속에, ‘개나 소’가 자신을 뜻하는 것일 터.
의도를 정확히 인지한, 충기의 인상이 구겨졌다.
이런저런 사정을 알고 있는 한주승이 둘째 형까지 거론하며, 신경을 긁었다.
당장 폭발할 것만 같았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여기서 사고를 친다면, 그걸 빌미로 또다른 족쇄가 채워질 것이다.
대중들에게서 인지도가 올라간다면,
담장을 벗어날 수도 있을 거라 여겼는데, 지금 자신은 더욱 높은 담장 안에 갇혀 있었다.
그가 하는 음악 활동은 항상 통제되어 있었고, 무엇하나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이번에도,
충기가 작곡한 곡을 넣으려 했지만, 작은형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그딴 저열한 가사를 지껄이겠다고? 창천의 셋째가?’
다른 작곡가의 곡만으로 앨범을 꾸릴 수밖에 없었고, 맘에도 없는 발라드를 불러야만 했다.
집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어느새 충기는, ‘창천’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씨발. 이미 결정이 난 거 아냐? 작은형이 그렇게 말했으면?”
참고 참았던 욕이 튀어나왔다.
겉으로는 당황한 듯 보이는 한주승이었지만, 속으로는 웃고 있을 것이다.
처음부터 이 기획사의 실세를 파악하고, 그쪽에 줄을 댄 녀석이었다.
아마, 이 자리도 둘째 형이 일부러 충기의 옆에 붙여놓은 것일 터.
“뭐. 형이 다른 말은 안 해?”
“부회장님이 걱정을 많이 하십니다. 이번 앨범 활동은 적당한 선에서···.”
기다렸다는 듯 대답하는, 한주승의 말에 충기가 이를 갈았다.
의뭉스러운 말로 전해지는 압박.
이번 부정적인 기사로 인해, 이번 앨범 활동을 접는 것으로 결정이 난 것이리라.
이미 2년 전에 경험했던 일이었다.
아주 작은 흠집조차도 용납하지 못하는, 대단한 집안.
양주를 입에 털어 넣었다.
쓰게 미소진 충기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연예계는 그랬다.
언제나 하이에나 같은 것들이 득실거렸고, 실력보다는 연줄이 더욱 중요했다.
그런 면에서, 충기는 남들보다 출발선이 훨씬 앞서 있었다.
본인이 원한 것도 아니었는데···.
뒤에서 하는 손가락질을 모를 리 없었다.
그래서, 모든 지원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음악을 하려고 했는데,
‘창천’은 그걸 인정하지 않았다.
억지로 정상에 올려놓았고,
그가 실패할 기회조차 주질 않았다.
그의 음악 생활은,
이대로,
꼭두각시가 되어 광대 짓이나 하다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막을 내릴 것이다.
충기가 더 반응을 보이지 않자 한주승이 몸을 일으켰다.
“저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충기가 대답 없이, 작게 고개를 까닥였다.
그가 문밖으로 나가고,
“저, 이사님?”
충기의 표정을 살피던 ‘테일’이 조심스럽게 그를 불렀다.
“어. 뭐 할 말 있다면서?”
“그, 부사장님께 연락이 왔었는데요.”
“우희가?”
“네.”
2년 전 프로포폴 의심 기사가 난 후, 핸드폰까지 관리되고 있었다.
결백했지만,
아니면 말고 식의 기사는, 해명 기사를 내기도 전에 싸그리 사라져버렸다.
온갖 가십만을 남긴 채.
‘아니! 수사하라고 해. 난 절대 한 적 없으니까.’
경찰의 수사 단계부터, 돈을 써서 무마시켰던 형들은,
충기의 결백을 믿지 않았다.
“무슨 말이길래?”
직접 전화해도 될 텐데,
이렇게 건너 전해지는 말이라면, 형들의 귀를 피해야 한다는 뜻.
“아직도 담장을 넘고 싶냐고···.”
충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천재가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이 마지막 기회라고 하면, 아실 거라고···.”
황급히 고개를 들어, 밖으로 나가는 문을 바라봤다.
마치, 어린 시절 보았던 거대한 담장이, 그 자리에 있는 것만 같았다.
아주 오랜 시간, 잊고 지냈던 감정이 그의 가슴을 세차게 두드렸다.
있는지도 몰랐던,
호수와 같이 잔잔하게,
자리를 지키고만 있었을 뿐인,
충기의 심장이 넘실대기 시작했다.
***
경진은 입구를 지나자마자, 갑자기 사라진 다온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아! 어딜 간 거야.’
이미 ‘크리스 제리’의 무대는 시작된 상태.
잔뜩 짜증 난 얼굴로 북적거리는 플로어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애도 아니고, 지 혼자 놀다 가겠지.’
뭣도 모르는 후배를 챙기기엔, 지금 흘러나오는 곡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예술이었다.
단 한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 후배가,
보안용 엘리베이터를 잘못 타,
‘VIP 플로어’로 올라갔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열광하는 인파 속을 비집고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