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160
160화 저주받은 아이
일요일 오전 영국의 리버풀 그리스도 대성당 앞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제대에서 내려온 지 한참이나 된 베네딕토 신부님은 조금 떨어진 곳 벤치에서 미사의 시작과 끝을 감상하곤 했다.
이젠 보행 보조기로도 불편한 허리를 달래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저 멀리 전동 휠체어를 탄 노인이 보였다.
‘저걸 구해야 하나…….’
마음먹은 순간, 마치 값비싼 스포츠카를 바라보는 젊은이처럼 심장이 두근댔다.
역시 애나 노인이나 ‘탈것’에 대한 로망은 비슷한 법이었다.
“왜? 저거 사고 싶어서요?”
한참 듣지 못했던 반가운 목소리에 신부님이 방긋 웃었다.
“응. 사 줘, 8기통으로.”
“그 나이에 버거울 텐데.”
단정한 차림의 제니스가 베네딕토 신부님의 옆에 앉았다.
“미국에서 했던 공연 잘 봤다.”
“직접 오시지.”
“허허. 갔다 오는 길에 그분을 만나러 떠나게 될지도 모르는데?”
“뭐, 아직 정정해 보이는데요?”
“아! 요셉 그 친구도 안식년이라서 여기 왔어. 자넬 꼭 보고 싶어 하더군.”
“아…….”
제니스가 미사가 끝나고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행복해 보이는 표정들이었다.
베네딕토 신부님은 그런 제니스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상당히 많은 것을 덜어 낸 듯 보였는데, 뭐가 그렇게 막혀 있지?”
“흠…….”
“얘기하려면 얼른 해 봐. 내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쿨럭!”
“하… 요샌 또 무슨 드라마에 빠졌길래…….”
어설픈 연기에 제니스가 피식하고 웃었다.
헛기침해 대던 베네딕토 신부님이 방긋 웃으며 양손을 내밀었다.
어서 얘기하라는 듯.
“상당히 깊은 어둠을 만났거든요.”
성당에는 한 번씩 들어가 보긴 했었다. 하지만 세례를 받지는 않았고 그렇기에 고해성사 같은 것은 해 본 적도 없었다.
이런 기분일까?
속마음을 마음껏 터놓고 싶은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는 것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약한 모습을 보여도 될 존재가 환히 웃고 있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아름다운 우주를 만나게 해 주고 싶은데… 도저히 감이 잡히질 않아요.”
제니스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아티스트들과 그 완성되지 않은 다큐멘터리를 함께 봤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 어둠의 깊이를 감히 짐작할 수 없었다.
말을 시작하기도 전에 어둠 속에서 혼자가 되어야만 했고, 태어나서 만난 모든 이에게 저주받은 아이라고 손가락질받으며 아장아장 걷는 아이가 울었다는 이유로 매질을 당해야만 했다.
뭣보다 가장 괴롭게 느껴졌던 것은, 단 한 번도 그 어둠을 밖으로 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쌓이고 쌓였을 그 고통을 구석에 밀어 두고 매 순간 행복한 미소로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어 줬던 그를 떠올리며 모두의 가슴이 무너져 내렸었다.
“감히 짐작으로는 다가설 수가 없어요.”
베네딕토 신부님이 괴로워하는 제니스를 가만히 바라봤다.
그리고 주름 가득한 손을 들어 그의 금발을 쓰다듬었다.
그 표독스럽고 언제나 자신감 넘쳤던 아이가 이렇게 약한 모습이라니.
“이제 제법 아이다워졌구나.”
리버풀 뒷골목에서 처음 만났던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이런 약한 모습은 보인 적이 없었다.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 버린 아이였다.
“우리는 결혼을 할 수가 없지. 그렇기에 아이도 없어.”
“…….”
“하지만, 배우자를 잃은 이를 진심으로 위로하고, 아이를 잃은 부모 앞에서 함께 눈물 흘리지.”
눈가의 주름이 더욱 깊어졌다.
“그들 이상으로 슬퍼하기도 해. 직접 겪지 못했으니까 감히 짐작으로 말이지.”
“…….”
“때론 겪지 않았기에 상상 속 슬픔은 더욱 커지기도 해.”
저 멀리 리버풀 대성당을 바라보는 신부님의 눈이 회한에 가득 찼다.
그동안 수많은 기쁨과 슬픔을 마주했던 곳이었다.
“완벽하게 이해해야만 위로할 수 있는 거라면, 난 평생을 거짓으로 살아온 걸까?”
제니스가 고개를 들었다.
“난 아직도 리버풀 빈민가의 그 꼬마의 삶을 이해하지 못해. 얼마나 큰 고통이 있었을지 얼마나 엄청난 시련을 겪었을지… 그런데…….”
제니스와 시선을 맞췄다.
“너는 나와의 만남으로 여기까지 왔어.”
베네딕토 신부님이 방긋 웃었다.
“누군가를 짐작한다는 것은 그것에 진심인 이상 ‘감히’라는 말을 붙이지 않아도 돼. 사실 나는 평생 저분을 짐작하며 살아왔거든.”
신부님이 성호를 긋고 대성당 앞에서 자애롭게 양팔을 펼친 석고상을 바라봤다.
“난 언제나 진심으로 모든 것을 짐작해.”
떨리던 제니스의 눈동자가 멈췄다.
신부님이 제니스의 어깨에 팔을 올렸다.
“8기통이다. 약속했어.”
“다치실 텐데…….”
제니스가 피식 웃었다.
* * *
연산홍이 만발한 것을 보니, 봄이다.
아마도 처음 성당에 도착했던 그날인 것 같다.
바다가 보이는 얕은 동산 위의 성당.
어슴푸레 해가 지고 있는 저녁 시간, 바다를 향해 자애로운 미소를 띠고 있는 성모상이 붉게 물들었다.
서둘러 주변을 둘러봤다.
눈이 동그랗던 하얀 아이가 저 사철나무 사이에서 튀어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오빠는 처음부터 없었던 거라면서?
당시 삼동이라는 이름을 가진 어린 소년은 말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눈만 껌뻑였던 기억이 났다.
-있다가 없어진 게 더 짜증 나는 거거든?
소년보다 먼저 이곳에 있었던 아이였다.
부모에게 버려진 순간을 생생히 기억하던 아이.
그랬기에 더욱 뚜렷한 증오로 그리움을 숨겼다.
-내가 자기 인생에 실패작이었대.
-와 씨! 가지 말라고 옷깃을 잡았다가 싸대기를 맞았다니까?
-한 일주일쯤 지나니까 울 힘도 없더라.
아마도 소년이 말을 할 줄 모른다는 사실을 이미 전해 들었던 듯, 대답도 없는 상대에게 조잘조잘 얘기해 댔다.
-파양돼 봤어?
누가 누가 더 불행한지 경쟁이라도 하자는 듯 자기 이야기를 쏟아 냈다.
그 상대가 말을 할 줄 모르는 소년이었기에, 언제나 승리는 소녀의 것이었다.
-매일 숙제 검사하는 기분이더라.
다른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당연하다는 듯이 가지는 부모의 사랑도 이 아이는 눈치 보면서 노력해서 얻어 내야만 했다.
나이에 맞지 않게 꽤 성숙한 소녀였다.
-내가 그게 안 돼서 쫓겨난 거야.
세상과 단절되어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던 소년을 끊임없이 두드렸다.
당시의 소년은 함묵증이라는 병을 앓고 있었다.
함묵증이란 뇌와 발성기관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데도 심리적 요인에 의해 말을 하지 못하는 일종의 정신 장애였다.
그렇게 항상 혼자만의 세상에서만 있었던 소년이었는데.
-아, 이번엔 진짜 성질 죽여야 하는데.
잠시도 쉬지 않고 재잘대는 소녀를 만난 것이었다.
아마도 그 며칠이 지금껏 살아오며 들었던 말보다 더 많은 말을 들었던 것일 수도 있었다.
-이번에 가는 집에선 진짜로 공손하게 해야지! 말도 고운 말만 쓰고!
파양 후 재입양까지 딱 일주일의 시간 동안만 성당에 위탁된 것이라고 했다.
소년에겐 처음으로 생긴 또래 친구였다.
-아! 멸치 진짜 싫어! 여긴 무슨 전부 멸치만…….
대답 한번 하지 않았지만, 소녀는 소년을 채근하지 않았다.
그냥 조잘거릴 뿐이었다.
4일째 되던 날, 혼자 숲에 앉아 있던 소년은 어느새 자신이 그 소녀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소녀의 재잘거림은 태어나 처음으로 느껴 본 위로였기 때문이었다.
꽉 막혀 고일 대로 고인 무언가가 터져 나왔고.
그 순간.
아무 의미 없이 마냥 흐르기만 하던 시간에 의미가 부여되었다.
닫혀 있던 마음에 처음으로 감정이라는 것이 피어난 것이다.
온통 회색이던 세상에 화려한 색들이 칠해지기 시작한 날이었다.
표정이란 것이 얼굴에 생겨났고.
해맑게 웃으며 소녀가 나타날 사철나무 사이를 바라봤다.
하지만.
기다리고 또 기다려도 소녀는 오지 않았다.
분명히 일주일이라고 했는데.
새로운 양부모의 일정이 당겨져 4일째 되던 날 소녀를 데려간 것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감정이란 것이 생겨난 날.
아홉 살 소년은 대비하지 못한 헤어짐의 슬픔을 알게 된 날이었다.
붉게 물든 성모상 뒤의 사철나무에 다가섰다.
‘이렇게 낮았던가?’
저 안에 숨으면 그대로 자신만의 아지트가 되곤 했었는데…….
연산홍 꽃밭 사이로 소년과 소녀가 마주 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처음 자신에게 감정을 알려 줬던 소녀.
지금 열아홉 진혁의 시간은 딱 그곳에서 멈춰 있었다.
그날 수녀님께 오르간을 배웠고, 음악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어둠 속의 진혁은 그날 숨을 죽여야만 했다.
저주받은 아이에서 축복받은 아이가 되어야만 했으니까.
그렇게 축복받은 아이의 어둠 속에 꽁꽁 숨어서 10년을 보냈다.
그렇기에 어둠 속 소년에게 가장 따뜻했던 순간은 그 소녀와의 나흘이었다.
태어나 단 한 번 받아 본 위로라는 감정.
그 그리움에.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 들었다.
* * *
오랜만에 꿈을 꿨다.
이젠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촉촉하게 젖은 눈가를 훔치며 눈을 떴다.
눈을 뜬 진혁의 미간이 좁아졌다.
분명히 이 스튜디오에 누군가 들어오진 못했을 것이다. 비밀번호는 자신만 알고 있었으니까.
테이블 위 어지러이 흩어진 악보들도 그대로였고, 소파에 기대 놓은 기타도 그대로였다.
모든 것이 잠들기 전과 같은 듯한데도 뭔가 모르게 미묘한 이질감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보다 푹 잔 것 같은데도 굉장히 피곤했다.
‘이 나이 든 몸으로 너무 무리했나?’
열아홉까지는 함께 성장했지만, 그날 그 사고 이후로는 혼자 25년을 살아온 몸이었다.
음악을 할 수 없게 된 그는 더 이상 축복받은 아이일 수가 없었다.
그저 보통보다 조금 못한 삶을 근근이 살아왔을 뿐.
테이블 위 악보들을 바라봤다.
그 어둠 속에서 느꼈던, 절망, 좌절, 증오, 슬픔들이 음표를 통해 되살아났다.
모든 사람은 감정의 소리를 낼 수 있었다.
다만, 그 감정을 다른 이에게 이해시키는 것은 별개의 일이었다.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이해시키는 능력이 탁월했다.
그렇기에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통제할 수 없는 감정을 마구 내뿜었을 것이다.
자신의 소리가 상대의 감정을 흔든다는 것도 알지 못한 채.
꽁꽁 싸인 몸이 불편해 울었고, 배가 고파 울었으며, 날이 더워 울었고, 기저귀가 가득 차서 울었다.
이 울음소리 하나하나가 부모의 감정을 뒤흔든다는 것을 알았다면, 아마도 울지 않았을 것이다.
그 본능적인 울음에 동조하여 우울증에 걸려 나란히 죽음을 선택하게 될 줄 알았다면 결코 소리를 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기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래서 계속 울었다.
어렴풋이 사람의 언어를 이해할 때쯤,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자신이 저주받은 아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소리가 사람들을 슬프게 만들고, 우울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즐거운 일이 없었던 아이였다.
그래서 슬피 울었던 것뿐이었는데, 매를 맞았고, 어둠 속에 갇히고 말았다.
그래서 그때는 자신이 내는 소리가 무조건 슬픈 것으로만 알았었다.
그래서 마음을 닫았던 것 같다.
성당으로 가서 그 소녀를 만나기 전까지 모든 감정을 감춰 뒀었다.
그 응어리가 모이고 모여서 어둠 속 아이가 된 것이다.
소녀의 위로로 다시 감정이 생겨났다.
그리고 수녀님의 도움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다른 방법도 알게 되었다.
처음 만난 오르간은 정말로 굉장했다.
그렇게 처음으로 ‘음악’을 만났다.
수녀님에게 처음으로 배웠던 쇼팽의 에튀드가 시작이었다.
자신이 내는 소리가 무조건 슬픔만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어둠 속 소년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어지게 되었다.
다시는 저주받은 아이가 되어선 안 됐으니까.
그렇게 숨어 있던 인격이었다.
결국 떠나야 한다면.
적어도 이런 우주도 있었다는 것을 남기고 싶었다.
그리고 홀가분하게 다시 어둠 속으로 돌아갈 셈이었다.
지금 이 몸이 살아온 삶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으니까.
어쩌면.
유서와도 같은 곡들이었다.
‘받아들일 수 있을 거야. 그만큼 즐거워진 세상이니까.’
진혁이 기타를 들었다.
* * *
[이거 들어 봐.]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에 도착한 제니스가 핸드폰을 바라봤다.
평론가라는 인간들 자체를 싫어했던 제니스였지만, 그래도 이 인간은 정신이 제대로 박힌 인간이어서 연락을 주고받기는 했었다.
‘신인인가?’
이전의 제니스를 아는 이들이라면 그에게 곡을 추천하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음악에 대한 자부심은 엄청난 것이어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음악은 아예 듣지도 않았다.
혹여나 듣게 되더라도.
과격한 표현으로 욕하는 것은 기본이고, 감정이 격해지면 핸드폰을 집어 던지기도 했었다.
요새 많이 유해진 제니스였지만, 그래도 예전의 성격은 아직 남아 있었다.
그런 제니스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인간이 보낸 메시지였기에 고개를 갸웃하며 링크를 터치했다.
‘카폰 레코드?’
다른 지사도 아닌, 미국 본사의 신인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바닥에 있다니…….
‘noname?’
아티스트의 이름을 확인하며 헤드폰을 귀에 걸치고 그 곡을 터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