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163
163화 메시아
세바스티아노 교황이 동글동글한 에어팟 충전기를 만지작거렸다.
저 터프한 친구가 얘기한 인물이 행한 기적들은 정말로 굉장한 이야기였다.
과장 따위를 덧붙일 인물이 아니었다.
사실에 근거한 이야기가 확실했다.
하지만.
“그래요. 그렇게 보일 수 있겠군요. 리버풀의 기적도 굉장했죠. 하느님의 은총이 함께했기에…….”
두 노신부가 성호를 그었다.
지금 교황의 자리에 앉은 그로서는 이 정도의 발언이 최선일 것일 터.
만일 세례를 받은 가톨릭 신자였다면 공식 석상에서 엄청난 찬사를 보낼 수도 있었겠지만…….
간지러운 입을 겨우 진정시킨 세바스티아노 교황은 씁쓸한 미소로 자신의 진심을 표현했다.
강요셉 신부님은 그런 교황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방긋 웃어 주었다.
“혹시… 제 지위가 필요하신 겁니까?”
10년 만에 갑작스럽게 찾아온 친구들.
얼굴이나 보자고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것은 아닐 것이다.
더군다나 8기통 전동 휠체어까지 끌고.
한 국가의 지도자로 지내 온 10년은 상대의 속내를 짐작하는 능력을 익히는 데 충분한 시간이었다.
“네.”
교황이 고개를 저었다.
박수는 보내 줄 수 있겠지만, 직접적으로 언급은 할 수 없었다.
전 세계 가톨릭의 지도자가 신을 배제한 기적적인 현상을 대놓고 인정할 수는 없었으니까.
자신의 지위가 필요하다는 것은 결국 대외적인 메시지를 원하는 것일 터.
저 터프한 친구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떤 부탁일지는 모르겠지만…….”
“저기… 세바스티아노?”
바티칸에서 아니, 세계 그 어떤 이도 이렇게 감히 교황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는 없었다.
실로 불손한 행동이었지만 교황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턱을 쓸었다.
오랜만에 듣는 자신의 세례명.
지금 저렇게 자신을 불렀다는 것은 종교적 지위를 떠나서 수십 년도 더 전에 허물없이 서로를 대했던 그때로 돌아가겠다는 말과도 같았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저 터프한 친구의 표정이 상당히 재밌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 때문인가?
왠지 들어서는 안 될 것 같지만, 호기심 가득했던 젊은 시절의 표정이 얼굴에 떠올랐다.
“말해. 요셉, 베네딕토.”
교황의 허락에 두 노신부가 소년처럼 방긋 웃었다.
“제니스가 그 기적의 뮤지션을 위로하고 싶어 해.”
유치하게 반짝이는 ‘V8’을 쓰다듬으며 베네딕토가 말했다.
“음… 그래서?”
“많은 사람이 도와주길 원해.”
“제니스라면 그의 힘만으로도 엄청나게 많은 사람을 끌어들일 수 있지 않나?”
“더… 훨씬 더 많은 사람.”
세바스티아노의 미간이 좁아졌다.
“설마…….”
리버풀의 기적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계태엽’의 원곡은 그레고리안 성가였다.
이번엔 대놓고 성가를 만들어서 부를 참인가?
그렇게 14억 가톨릭 신자들을 끌어들일 생각인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불린 노래는 뭘까?”
요셉의 말에 세바스티아노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흠… 안 돼, 그건.”
세상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은 ‘성경’이었고, 세상에서 가장 많이 불린 노래는 ‘성가’였다.
아마도 그 영역을 이용하겠다는 말인 듯했다.
그렇기에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그런데 미소 띤 요셉이 고개를 저었다.
베네딕토는 장난치듯 전동 휠체어를 이리저리 조작해 흔들어 댔다.
‘잘못 짚었나?’
“성가를 떠올렸군.”
“음…….”
“성가보다 훨씬 더 많이 불린 노래들이 있는데?”
“응?”
“어떤 종교인이더라도, 아니 종교가 없다고 하더라도 즐겨 듣고 즐거운 마음으로 불러 본 겨울의 노래들.”
“아…….”
세바스티아노의 눈이 반짝하고 빛났다.
신앙의 영역과 애매하게 닿아 있지만, 일반적인 관점에서는 종교를 떠난 축제기도 했다.
자신의 위치를 잘 알고 있는 친구들이었다.
뭐가 되었건, 자신에게 누가 되는 부탁을 하지는 않을 터.
이 정도의 영역이라면 괜찮을 것 같았다.
“내가 뭘 하면 되는 거지?”
세바스티아노 교황도 아이처럼 입꼬리를 올렸다.
뭔진 몰라도 상당히 재밌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 * *
“여기 이렇게 모인 이유가…….”
충기가 동그래진 눈으로 모여 있는 아티스트들을 바라봤다.
제니스와 칼리 그리고 유레이시. 황지선과 임도유, 레몬티의 창명, 나비 계곡의 제이, 테일, 종탁…….
“어… 상황은 이해했는데… 우린 아직 그 다큐멘터리라는 것도 보지 못했고…….”
제니스가 세 명의 중년인을 빤히 바라봤다.
당신들은 정말로 전혀 느끼지 못했었나?
노골적인 눈빛이었다.
“일단 기시감이 들었던 건 맞아.”
상정이 입을 열었다.
“문득 떠올랐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뭔가 이상하기는 했어. 지금 여기서 세운 가설이 맞을 수도 있어.”
안 그래도 정기 휴일이 시작되기 전 자신들도 비슷한 얘기를 나눴었다.
“하지만 너무 간 것 같은데? 그냥 쉐도우 복싱만 하게 될 수도 있잖아.”
자신의 친구가 그런 어둠을 가지고 있다고 치자.
그렇다고 한들 겉으로 내뱉지도 않았는데 그에 대한 노래를 하겠다고?
당사자는 표현하지도 않았는데?
“그렇지 않아?”
주변을 둘러보니 나머지 아티스트 중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이도 보였다.
“진혁이가 그런 노래를 만들어서 부른 것도 아니고…….”
제니스가 말없이 앰프의 전원을 켰다.
아직 한국까지는 닿지도 않았을 노래였다.
그렇기에 이 곡을 들려줄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었다.
덤비기도 전에 무너질 수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 어둠에 대항할 음악이 만들어지는 중이었다.
뭣보다 이제는 이 짙은 어둠을 알아야만 했다.
그래야 더욱 진심으로 덤벼들 테니까.
아마, 여기 모인 모두는 처음 듣는 노래일 것이다.
핸드폰의 블루투스가 연결된 것을 확인하고.
“들어 봐.”
재생 버튼을 터치하며 볼륨을 올렸다.
* * *
“어…….”
상정은 얼른 손을 들어 눈을 비볐다.
맺혀 있던 눈물을 손등으로 훔쳤지만, 시야는 다시 흐려졌다.
옆에서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자신만 그런 건 아닌 모양이었다.
심장이 너무 조여 와서 미칠 것만 같았다.
이렇게까지 먹먹한 슬픔을 경험한 적이 있었던가?
바닥을 알 수 없는 깊은 어둠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턱이 덜덜 떨려 왔고.
결국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수많은 아티스트가 모인 스튜디오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여기저기서 떨리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여기 모인 모두는 이 곡을 처음 만난 것 같았다.
그 노래는 덤덤히 툭툭 뱉는 목소리, 간간이 들리는 호흡 소리조차 깊게 내려앉아 있었다.
누굴 원망하지도, 분노하지도 않았다.
다만, 당연하다는 듯이 자기 자신을 저주했다.
혼자인 자신은 당연했고, 외톨이임이 당연했으며, 있어야 할 곳은 어둠 속이 당연했다.
마지막까지 자조하던 나지막한 목소리는.
결국 마지막에 울부짖었다.
더욱 처절하게.
끝까지, 어떠한 희망의 음표 하나 담기지 못한 곡이었다.
“어… 이게 래빗이 부른 노래라고 어떻게 단정할 수 있지? 그는 영어로 노래한 적이 없어.”
유레이시가 부정하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목소리 톤도 조금 다른…….”
“진혁이 맞아.”
창명이 애써 부정을 하나 더 올리려 했지만 충기가 단호하게 끊었다.
상정과 장하도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영국 곡을 커버한 적이 많았어. 그래서 그 특유의 억양이 기억나. 지금 이 노래는 진혁이가 부른 게 맞아.”
충기의 말에 모두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게 아니더라도…….”
이렇게 엄청난 노래를, 그가 아니라면 또 누가 만들고 부를 수 있단 말인가.
지금까지의 ‘그’가 해 왔던 음악보다도 더욱 선명한 감정들.
“후…….”
말을 잇지는 않았지만, 모두의 머릿속은 비슷했을 것이다.
이 짙은 어둠의 곡은 그의 곡이 확실했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새로운 천재의 탄생으로 생각하겠지만.
그의 곁에서 함께 음악을 해 오고, 그의 과거를 알게 된, 여기 모인 아티스트들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그들이 봤던 그 편집되지 않은 다큐멘터리 속의 어둠이 맞았다.
“우린 뭘 해야 하는 거지?”
상정이 제니스를 바라봤다.
“가장 중요한 거.”
제니스가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 * *
가장 먼저 반응이 온 곳은 영국의 인디 아티스트들이었다.
“확실히 영국식 발음이야.”
“그런데 표현이 미국식이지 않아?”
“스테빈이 가사에 손을 대지 않았을까? 그 양반 은근히 영국 음악에 열등감 있잖아.”
“제니스는 아니지?”
“목소리가 절대로 아니야.”
“도대체 누구지?”
“진짜 농담인 줄 알았는데… 래빗과 비교해도 될 정도 아닌가?”
모여 떠들던 인디 아티스트들의 공간에 순간 정적이 내려앉았다.
사실 모두가 은근히 느끼고는 있었다.
다만 그들에게 있어서 래빗이란 일종의 성역과도 같았기에 언급하지 않았던 것뿐이었다.
누군가는 ‘래빗 이상’이라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였다.
그만큼 충격적인 곡이었다.
어쿠스틱 기타와 피아노 하나로 이렇게나 엄청난 전율을 만들어 내다니.
“근데, 그 링크 걸린 게시물 또 삭제됐던데?”
“이쯤 되면 누가 일부러 지우는 걸로 봐야 하는 거 아냐?”
“게시글이야 또 올리면 되고. 어차피 이런 명곡이 뜨는 건 시간문제야.”
일반인들이야 눈에 띄는 곡을 먼저 듣겠지만, 하위권의 밴드일수록 자신과 비슷한 순위의 곡들을 눌러 보곤 했었다.
자신보다 못하면 그거대로 위안이 되었고, 자신보다 잘하면 그건 또 그거대로 자신의 가치를 올려 칠 수 있었다.
그렇게 밑바닥의 곡들을 클릭하다가 듣게 된 노래였다.
인터넷의 발달로 세상은 거의 딜레이 없이 트랜드를 공유하게 되었다.
한국발 행복의 메시지가 세계로 퍼지는 데는 시차가 전혀 다른 나라들이 조금 늦게 알게 되었을 뿐, 채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그렇기에, 온 세계는 즐거움과 설렘으로 가득 찬 상태였다.
대중들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대중음악이었다.
자신이 트랜드를 주도할 수 있는 정도의 천재가 아니라면, 어디까지나 그 흐름을 따라야만 했다.
그렇기에 음원 사이트들에는 행복하고 밝은 노래들만이 가득했다.
그런데 그 틈새에 끼어 있던 이질적인 어둠을 발견한 것이었다.
마치 운명처럼.
본래 록은 저항이라던가.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는 이 엄청난 곡은 몇몇 인디 아티스트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모두가 밝고 행복하고 즐거운 와중 뜬금없이 등장한 엄청난 크기의 블랙홀과도 같은 어둠.
아직 젊음의 객기를 간직한 이들을 자극하기에 아주 좋은 노래였다.
거기에 그 음악은 감히 그 ‘성역’에 비견될 정도로 완벽했다.
지금 마구 업데이트되는 즐거운 음악들을 모두 삼켜 버릴 정도로 거대한 블랙홀이었다.
리듬 파트 하나 없이 멜로디로만 이루어져 있었지만, 그 호소력 짙은 목소리가 더해지자 드럼이나 베이스가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빈틈 하나 없이 꽉 채웠다.
마지막, 그 울부짖는 한 소절은 그래서 더욱 가슴을 찢어 놓았다.
세상의 트랜드를 지배한 절대자에 대한 반항심에.
거기다 도시 괴담급의 방해 공작으로 보이는 몇몇 목격담 – 게시물이 삭제됐다든지, 곡의 재생 횟수가 초기화됐다든지 – 들로.
즐거움 가득한 세상에 조금 무료해진 반골들의 지지를 받게 된 것이다.
‘이게 록이지.’
마치 독재자의 무자비한 점령에 맞서는 레지스탕스들을 향해 내려온 메시아와도 같았다.
조용히, 하지만 급격하게 퍼지기 시작한 [wellaway]였다.
* * *
“후… 내가 벌써 이런 처지에 놓인 거야? 응?”
레이햄이 자신의 매니저인 짐 니콜라스를 노려봤다.
“나 작년 앨범도 1위 찍고 내려왔어. 비록 한 주 만에 내려오기는 했지만 말이야. 캐럴? 내가 벌써 캐럴이나 불러야 할 정도로 밀려난 거야? 응? 짐, 뭐라고 말이라도 좀 해 봐.”
선글라스로 가려진 눈은 보이지 않았지만, 나머지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이었다.
언제나처럼 과묵하게 스테빈의 의사를 전달만 하러 온 것일 터.
어차피 그가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다면 들어야 하는 것이 맞긴 했지만.
조금이라도 투정은 부려야 했다.
결국 저 빌어먹을 악보를 확인할 수밖에 없겠지.
이 바닥에서 스테빈의 힘은 절대적이었으니까.
“줘 봐.”
손을 내밀자 그가 태블릿을 넘겼다.
“레이햄, 네가 맡을 파트는 바리톤이다.”
중저음의 목소리에 레이햄이 눈썹을 치켜떴다.
“뭐야? 합창이야? 젠장…….”
한물간 아티스트들이나 부르는 캐럴도 모자라서, 솔로도 아니고 합창이라니?
카폰 레코드에서 퇴물로 찍힌 이들을 모아 놓기라도 했나?
레이햄이 이를 악물었다.
분노로 턱이 덜덜 떨릴 정도였다.
부릅뜬 눈으로 태블릿 화면을 노려봤다.
“어… 어?”
보컬 파트의 이름을 다시 확인했다.
이번 축제 이후 다시 최정상을 차지하며 제2의 전성기를 맞게 된 그 이름이 확실했다.
“제니스?”
짐 니콜라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유레이시?”
두 번째 이름에 레이햄의 눈이 동그래졌다.
“칼리?”
이 인간까지?
왜?
“너는 거기 코러스 파트야.”
분노로 솟았던 이마의 핏대가 가라앉았다.
코러스? 이런 인간들 사이라면 들러리라도 상관없었다.
“그런데… 왜 굳이 내가 여기……?”
그들만으로도 충분히 호화로운 구성이었다.
거기에 지금 확인했지만, 한국의 유명 아티스트들도 이름이 올라 있었다.
여기에 굳이 자신의 이름을 올려야 할 필요가 있었을까?
“넌 미국 토크쇼용이야.”
“응?”
“그래도 너는 입담 하나는 확실하잖아.”
“아…….”
말 그대로 홍보용 얼굴마담이란 말이었다.
심야 토크쇼에서 불쾌한 질문에 대놓고 중지를 내밀었던 제니스, 여자 게스트를 향해 성적인 농담을 하던 진행자의 코를 박살 냈던 칼리, 충격적인 커밍아웃으로 아직은 공식 석상에 오르기 어려운 유레이시.
방송용 이미지로만 따져 보면 그래도 두루두루 무난하게 자리를 지켜 온 자신이 더 유리하기는 했다.
“나서서 홍보하려면 목소리는 넣어야 하니까.”
“아…….”
레이햄이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완벽하게 들러리일 뿐이었지만…….
악보를 다시 살폈다.
이 정도의 호화로운 이름들로 가득 찬 앨범에 자신의 이름을 걸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가치가 있었다.
음표들을 확인하며, 멜로디 라인을 따라 나지막이 흥얼거리던 레이햄이 탄성을 내질렀다.
‘이거 곡도 장난 아니잖아?’
겨울이 다가올 때면 세계에서 매년 울려 대던 캐럴의 역사를 다시 쓸 정도의 명곡이었다.
문득.
엄청난 스트리밍 횟수를 자랑하는 몇몇 캐럴이 떠올랐다.
발표된 지 수십 년이 지났음에도 쌀쌀해질 때면 어김없이 차트를 역주행하는 그 곡들.
그 세계 최고의 시즌송들 사이에, 비록 코러스일 뿐이지만 자신의 목소리가 들어가게 되는 것이었다.
“노… 녹음은 언제……?”
“지금 당장.”
레이햄이 벌떡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