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165
165화 순수 음악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의 메시지.
그가 그 후렴구를 흥얼거리는 영상이 SNS를 타고 퍼졌다.
공식적인 메시지는 아니었지만, 언제나 근엄하고 인자한 모습의 그가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노래하는 장면은 순식간에 화제가 되었다.
그 짧은 영상은 세계 가톨릭 신자들은 물론이고, 조금 이른 연말 분위기에 들뜬 사람들 역시 그 멜로디를 흥얼거리도록 만들기에 충분했다.
제니스, 칼리, 유레이시라는 세기의 천재 삼인방과 최근 떠오르는 한국의 뮤지션들이 대거 참여했고, 무엇보다 누구나 따라 부르기 쉬운 후렴구는 중독성이 상당했다.
단 한 번만 들어도 그대로 뇌에 박혀 종일 흥얼거리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이젠 간주 부분만 어디서 흘러나오면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올 정도였다.
역사상 이렇게 빨리 사람들에게 퍼진 곡은 없었다.
물론 카폰 레코드라는 거대 음반사가 작정하고 밀어줬기도 했고, 이미 검증된 아티스트들이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는 했다.
어쨌거나.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전 세계에 이 축복의 노래가 흐르게 될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 * *
‘와…….’
진혁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굉장히 잘 만들어진 곡이었다.
그런데 뭔가 익숙한 멜로디에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아는 곡이었나?’
언젠가 떠올렸을 멜로디일 수도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선 항상 음표들이 돌아다녔으니까.
그냥 듣고만 있기엔 아까운 노래였다.
기타를 들고 방금 들었던 멜로디를 연주했다.
쌀쌀해진 거리,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이젠 많이 사라진 구세군 냄비, 예전 같지 않은 연말 분위기를 떠올렸다.
눈을 감고 전주를 반복했다.
바삐 걷던 사람들이 잠시 멈춰서 고개를 돌린다.
저도 모르게 음악을 향해 발이 움직였고.
진혁의 목소리가 얹어지자 추위에 굳어 있던 얼굴이 활짝 피기 시작했다.
간주가 계속되는 동안 사람들은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 굉장한 후렴구.
진혁은 방긋 웃기만 할 뿐 소리를 내지 않았지만, 모두가 알아서 그 멜로디를 흥얼거린다.
몇 번이고 반복해 연주해도 질리지 않는 후렴구였다.
까까머리 제자가 떠올랐다.
‘제법인데?’
오랜만에 과거의 명곡이 아닌데도 연주해 보고 싶은 곡을 만났다.
흐뭇하게 미소 지으며 눈을 떴다.
즐거움이라는 것은 더하고 또 더해도 과하지 않았다.
그래서 자꾸만, 자꾸만 부르고 싶어졌다.
진혁이 피식 웃었다.
그렇게 즐거움만을 찾으며 잊어버린 괴로움들은?
괴로움이 없었다면, 즐거움은 존재하는 것인가?
어둠이 없었다면, 빛이 존재할 수 있는가?
어쩌면, 그렇기에 괴로움과 어둠은 더욱 위대한 것이 아닐까?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감정들이 존재하기 위한 시작점이니까.
이렇게.
애써 명분을 세웠다.
사실 진혁 자신도 놀랐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진솔한 자신만의 감정을 담아 본 것이었기에.
작정하고 자신을 드러내니 정말로 엄청난 곡이 만들어졌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를 노래했다.
깊은 어둠 속, 존재하기를 포기했던 그 작은 소년을.
곡을 만들었고, 녹음했으며, 그렇게 앨범을 냈다.
사실, 그렇게 ‘나’의 진짜 우주를 남기면 뭔가 마음이 편해질 줄 알았었다.
하지만 그 공허함은 채워지질 않았다.
지금도 ‘noname’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있기 때문일까?
아직도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는 것인가?
진혁이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조금은 후련할 줄 알았는데…….’
진혁의 기타가 방금 그 캐럴과는 결이 전혀 다른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나지막이 단어들을 내뱉었다.
자신을 저주하고, 괴롭히고, 부정했다.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세상에 속하고 싶은 아이의 투정이었다.
결국.
철저하게 숨었으면서도.
그저 누군가는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말도 하지 못했던 그때 만난 그 소녀가 자꾸만 떠오르는 것이었다.
어둠 속에 숨어 있던 자신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어 줬던 유일한 인간이었다.
진혁의 기타에서 아련한 멜로디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석양에 물든 성모상, 그 옆에 만연한 연산홍, 말을 하지 못하는 소년, 조잘대는 소녀, 사철나무 뒤의 아지트.
어둠 속 진혁이 세상과 맞닿았던 유일한 순간이었다.
* * *
[이 곡은 우울증에 걸린 아티스트의 내면적인 고백 같아.]└확실히 나도 그렇게 느꼈어. 가사를 떼어 내고 기타 리프의 연결만 봐도 굉장히 우울해. 거기에 더해지는 피아노는 말할 것도 없고.
[낙태된 아이들을 대변하는 게 아닐까?]└가사의 흐름이 왠지 그런 느낌이야. 축복받은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를 말하잖아. 이 노래는 낙태에 대한 경각심을 나타내고 있어.
└와. 그렇게도 해석이 되는구나. 듣고 보니 그렇네?
[내가 봤을 때는 이별이야.]└오. 나도 그 생각했는데.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이랑 이어지는 걸 바라보는 감정 같아. 그러니까 완벽한 좌절에서 이어진 절규라고 할까? 그런 느낌도 있어.
└맞아. 짝사랑이 흑화하면 저럴 수 있지.
[자살에 대한 감정이 느껴지는 거 같기도 한데?]└마지막에 살고 싶다고 하잖아. 자살을 앞에 둔 이가 울부짖는 느낌 같은데? 약간 은둔형 외톨이의 자기 합리화 같은?
피아노 선율도 그렇고…….
순수 음악과 대중음악의 경계는 무엇일까?
대중음악은 대중성과 오락성, 상업성에 기반을 두고 있고, 순수 음악은 예술성과 심미성에 그 기반을 둔다고들 말한다.
역사 역시 수백 년의 영속성을 가진 순수 음악에 비해 대중음악은 매우 짧았다.
대중음악은 대중이 좋아할 만한 곡으로 그들에게 공감을 얻어 내기 위한 곡이기에 당시의 유행에 크게 영향을 받았으며.
순수 음악은 유행보다는 자신의 감정을 여과 없이 고집대로 전달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말하자면, 역사만 뺀다면 ‘연기’와 ‘실제’의 그 애매모호한 차이점이라고 말 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스테빈이 듣기에 이 곡은 순수 음악에 가까웠다.
공감되지는 않지만, 이해하고 싶은 이야기.
역대 클래식 거장들의 음악이 그러했듯 많은 이들이 이 곡을 해석하며 재현해 내려 노력할 것이다.
벌써 저렇게 커뮤니티들이 뜨거운 것을 보면 말이다.
이 엄청난 관심은 절대로 일회성으로 끝날 현상이 아니었다.
지금껏 대중음악계를 주물러 왔던 스테빈이었기에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아마도 그는 ‘noname’인 채로 이 앨범의 활동을 마칠 것이다.
그렇기에 전설이 될 테지.
무수한 해석이 쏟아질 테고, 무수한 커버곡들이 만들어질 것이다.
서로가 자신의 해석이 옳다고 말하기 위해 더욱 굉장한 연주를 해댈 테지.
결국 아티스트들은 내면의 어둠을 내보이는 데 거리낌이 없어질 것이다.
모든 순수 음악은 베토벤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베토벤의 음악 이전을 ‘고전파’, 이후를 ‘낭만파’라고 불렀다.
아마도 이번 ‘noname’의 등장으로 음악의 역사는 변곡점을 만나게 될 것이다.
베토벤의 ‘운명’이 떠올랐다.
-따다다단.
클래식 음악 중에서 가장 유명한 소리였다.
이 두드림 하나로 음악의 역사를 갈랐다.
누군가는 이렇게 해석하기도 했다.
「근원에서 나오는 소리.」
뱃속에서 태아가 두드리는 소리이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이며, 소나기가 두드리는 소리라는 말을 했었던가?
어쨌거나 그 소리를 한번 들었던 사람들은 몸과 마음에 깊숙이 새겨져 절대로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대충 맞는 말일 것이다. 스테빈 자신 역시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릴 적 들었던 그 음절을 절대 잊을 수 없었으니.
이 ‘비탄’의 절규가 그랬다.
누구나 가지고 있을 어두운 구석을 헤집는다.
마치, ‘너희도 그렇지 않아?’라는 듯.
사회성이라는 명목하에 절반 이상 꾸며 낸 겉모습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세상이었다.
그 인격의 구석, 가장 감추고픈 그 어떤 어둠의 감정을 깨우는 절규였다.
한번 들으면 결코 잊을 수 없는 그 ‘운명’의 첫 두드림 같은…….
스테빈이 고개를 젓고는 모니터를 바라봤다.
아직 이번 주 집계가 나오지 않았지만, 제니스의 캐럴은 1위에 오를 것이다.
과연, 이 천재지변에 얼마나 대항할 수 있을까.
자신이 할 수 있는 수단은 모두 동원했다.
전 세계 가장 많은 인원에게 메시지를 던질 수 있는 종교적 지도자도 가세했다.
스테빈은 이 단어를 참 싫어했었다.
하지만 이젠 ‘운명’에 맡기는 수밖엔 없었다.
* * *
청강 의료원의 VIP 병동 대강당.
최고의 설비로 단장된 무대 위에는 진봉구 이사장의 애장품인 ‘스타인 웨이’의 커스텀 그랜드피아노가 자리하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반짝반짝해야 할 피아노는 이곳저곳에 흠집이 나 그 광택이 죽어 있었다.
기울어 있는 뚜껑에는 발자국도 보였다.
진봉구 이사장은 한 번씩 이 흠집들을 보며 자신을 돌아보곤 했었다.
그를 처음 만났던, 그날의 굉장한 꾸짖음의 흔적이었다.
실로 가슴 뛰는 일 년이었다.
이 굉장한 순간들을 후대에 온전히 전할 수 있을까?
2002년의 월드컵만 해도 벌써 흐릿해진 영광이었다.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검은 물체에 새겨진 거친 흔적들은.
이 모든 순간이 온전히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에 남겨 놓은 얼룩들이었다.
피아노의 곁을 천천히 걷던 진봉구 이사장이 건반 앞에 멈춰 서서 무대 아래의 금발 청년을 바라봤다.
익히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최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해진 캐럴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환자의 안정은 병원이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지.”
“알고 있습니다.”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유창한 한국어는 꽤 듣기 좋았다.
그래서인지 – 어차피 결과는 정해졌지만 – 조금 더 대화를 나누기로 마음먹었다.
“충분한 설명이 더해진다고 해도 원칙은 원칙이네.”
금발의 청년이 방긋 웃으며 무대로 올라왔다.
피부색을 떠나 이제는 그의 미소와 많이 닮게 된 얼굴이었다.
그래서 건반의 자리를 허락했다.
“좋은 피아노네요.”
“그렇지. 지금은 값을 매길 수도 없어.”
진봉구 이사장은 깊게 새겨진 흠집 하나를 손가락으로 쓸며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제니스가 건반을 하나 눌렀다.
이 무대에서 벌어졌던 기행은 이미 신유정에게 들었었다.
비싼 피아노일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이 엄청나게 비싼 피아노 위를 뛰어다녔을 그를 떠올리자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리고 그 흔적을 고스란히 남겨 둔 이 괴짜 재벌이 존경스러웠다.
“연주해 봐도 되겠습니까?”
진봉구 이사장이 어깨를 으쓱해 보이곤 손을 뻗어 허락을 표했다.
자리에 앉지도 않은 제니스가 길쭉한 손가락을 건반 위에 얹었다.
눈을 감았고.
이를 악물었다.
눈썹이 파르르 떨리자 입술도 떨려 왔다.
그 절망의 어둠을 깊이 머금은 그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한 음 한 음.
끌어 올린 모든 감정을 담아 표출하기 시작했다.
그의 어둠은 짐작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리버풀 뒷골목의 핏덩이를 떠올렸다.
매 맞으며, 좀도둑질로 연명하던 꼬맹이를 떠올렸다.
온통 원망만이 가득했던 그 소년을 떠올렸다.
그렇게, 그 어둠을 표현했다.
비탄의 단어가 툭툭 던져졌다.
나지막이 갈라진 음성은 너무나도 건조했고, 그랬기에 더욱 짙었다.
당장이라도 절규하고 싶은 감정을 꾹꾹 눌렀다.
쌓이고 쌓여 터지기 일보 직전.
건반에 올려진 손가락이 멈췄다.
영원히 지속될 듯했던 현의 떨림이 여운을 남기며 사라지자.
거대한 대강당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입술을 파르르 떨던 제니스가 천천히 입을 벌렸다.
소리는 나오지 않았지만, 목의 핏대는 있는 대로 솟아 있었다.
더는 벌어질 수 없을 정도로 턱이 열렸고.
눌리고 눌린 감정이 한 번에 폭발하듯 쏟아졌다.
거친 울부짖음이 강당 전체를 울려 댔다.
세상 모든 것을 집어삼킬 어둠의 절규였다.
모든 힘을 다한 제니스의 목소리가 툭 하고 끊겼고.
그의 거친 숨소리만이 공기를 떨게 할 뿐이었다.
그 떨림이 진정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후…….”
제니스가 고개를 들고 눈을 뜨자, 그제야 진봉석 이사장은 참았던 숨을 내뱉었다.
“도… 도대체…….”
눈가의 물기를 훔친 제니스가 굳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의 어둠입니다.”
“무… 무슨…….”
“제가 멋대로 해석했고, 그렇기에 그 어둠에 닿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보다 훨씬 더 깊은 것은 확실합니다.”
“…….”
“도움이 필요합니다.”
제니스가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