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169
169화 그의 어둠
‘어? 왜 저러지?’
신촌 창천 백화점 앞의 터줏대감 스톤 브레인의 최옥환이 멍한 눈으로 거대 스크린을 바라봤다.
진혁의 기타 연주가 시작되었고, 잔뜩 들뜬 마음으로 관객들과 함께 즐기던 중이었다.
이번에 제시된 악보의 초반 부분이 맛깔스럽게 시작됐다.
자신도 제대로 발광할 수 있는 곡을 만들었는데, 역시나 원작자의 시작은 정말 깔끔했다.
그런데 베이스가 따로 놀기 시작했다.
베이스뿐만이 아니었다. 드럼 역시 기타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그러던 중.
신디사이저의 화음이 기타 소리를 묻으며 등장했다.
‘뭐지?’
셋이 한데 뭉치자, 기타가 따로 노는 기분이었다.
단 네 마디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결국, 스탠드 마이크를 향해 다가가던 ‘그’가 고개를 돌려 멤버들을 바라봤다.
지금까지는 전혀 볼 수 없었던 분위기였다.
문득 관객들을 돌아보니 그들 역시 이상함을 느낀 것 같았다.
기타가 빠진 연주가 계속되었다.
그런데 저 신디사이저가 내는 코드 진행이 왠지 귀에 익었다.
‘언제 들었더라…….’
분명히 들어 본 화음이었다. 아니, 들어 보진 않았지만 저런 느낌의 곡을 알고 있었다.
그리 멀지 않은 기억이다.
그런데도 떠오르지를 않았다.
뭣보다 저들이 저런 음악을 한 적이 있었던가?
한없이 깊게 내리깔리는 우울한…….
‘아!’
전혀 매치가 되지 않아서였을까?
최근 그에게 엄청난 충격을 준 그 곡이 떠올랐다.
해외에선 어느새 ‘래빗’과 비견될 정도로 떠 버린 정체불명의 아티스트였다.
하지만 한국에서만큼은, 그 곡을 언급하는 것은 암묵적인 금기였다.
지금 세상은 한국을 중심으로 행복에 취한 상태였다.
그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노래였으니까.
그것도 감히 ‘그’에게 도전한 영어권 노래였다.
한국인으로서 그건 인정할 수 없었다.
그렇게 의도적으로 언급을 피했음에도, 국내 앨범 차트 스트리밍 상위에 올랐다는 것은, 숨어서 들었던 사람이 그렇게나 많다는 증거였다.
사실, 엄청난 노래였다.
자신도 며칠째 그 늪에서 빠져나오질 못했으니.
그런데.
오늘 이 순간에, 어째서?
계속해서 이어지는 코드 진행.
우울하게 가라앉은 리듬들.
일반인은 몰라도 음악을 해 온 사람들이라면 이쯤에서 눈치를 챘을 것이다.
아니, 일반인들도 지금까지 그들의 무대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 정도는 감지했을 터.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에 당황한 관객석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혼란에 빠진 옥환이 침을 꼴깍 삼키는데.
‘그’가 다시 앞을 바라봤다.
등장한 이후.
단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얼굴이 되어 있었다.
* * *
눈치챌 수도 있을 거라 여겼다.
아니, 어쩌면 그런 티를 팍팍 냈던 것은 아닐까?
숨어 있어야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사실은 누군가 알아봐 주길 바랐던 것이었던가?
그래서 그 어둠의 파편으로 신호를 줬던 걸까?
하지만.
‘제대로 할 수 있겠어?’
그저 그 곡을 듣고 비슷한 감정을 흉내 내는 것뿐이겠지.
저도 모르게 반감이 올라왔다.
도저히 미소가 지어지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관객들을 바라봤다.
당황하긴 했어도 잔뜩 기대하는 얼굴의 사람들이 보였다.
행복하고, 즐겁고, 따뜻함이 아직 남아 있는 표정들이었다.
분명, 또 다른 어떤 반전을 떠올렸겠지.
안 됐지만.
오늘은 그럴 수 없을 것 같았다.
연산홍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그날로 어둠 속에 함께 묻어 뒀던 감정들이 마구 날뛰기 시작했다.
겨우겨우 참아 내고 있었던 충동이 고개를 들었다.
오랜 시간 숨겨 뒀던 표정이었다.
사람들이 바라보고 있을 자신의 얼굴이 무척이나 궁금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짓지 않았던 표정이었으니.
베이스는 여전히 등을 떠밀고.
드럼도 뻗은 손을 거두지 않았다.
신디사이저의 화음이 손가락을 움찔거리게 했다.
더는 참기 힘들었다.
‘재미없을 텐데…….’
진혁이 기타의 현을 건드렸다.
* * *
환호를 지르려고 준비하던 사람들이 일제히 얼어붙었다.
지금껏 항상 보여 줬던 그 미소가 그의 얼굴에서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계속해서 울리는 어두운 전주는 절대 환호할 만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이 곡이 어떤 곡인지, 아직 일반인들은 눈치채지 못했다.
다만, 우울한 느낌만큼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그의 공연에서 단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감정이 응수동 전체에 내려앉았다.
굳은 표정의 ‘그’가 기타를 잡았다.
사람들이 숨을 죽였다.
여의도에서도 처음엔 굉장한 퍼포먼스로 시작하지 않았던가?
이번에도 갑작스러운 반전을 보여 줄 것인가?
차갑게 가라앉은 분위기였지만, 일말의 희망을 품은 사람들의 눈빛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기타가 소리를 내기 시작하자.
몇몇 사람이 ‘아…….’ 비탄 가득한 탄성을 내질렀다.
이미 이 곡을 알고 있는 사람은 꽤 됐다.
겉으로 드러내 언급하지 않았을 뿐.
이 곡을 이곳에서 처음 듣게 된 이들도 갑작스럽게 시작된 어두운 분위기에 얼어붙어 버렸다.
곧, 이미 이 곡의 정체를 눈치챈 사람들과 비슷한 탄성을 지르게 되었다.
한없이 바닥으로, 바닥으로.
더는 내려갈 곳이 없을 정도로 가라앉았고.
차가운 눈빛의 ‘그’가 마이크 앞에서 입을 달싹였다.
-난 나 자신이 너무나도 싫어.
비틀리듯 올라간 입술 사이로 갈라진 목소리가 툭 튀어나왔다.
그가 세상에 처음으로 선보인 목소리였다.
파르르 떨리던 진혁의 눈꺼풀이 반쯤 내려갔다.
-모두를 우울하게 만들지.
그냥 무심하게 던지듯 내뱉는 목소리.
언어만 영어에서 한국어로 바뀌었다 뿐이지.
남몰래 들었던 그 곡이 확실했다.
구석에 남아 있던 ‘설마’가 산산조각이 되어 버린 순간이었다.
‘어째서 이 곡을?’이라는 물음은 떠올리지도 못했다.
지금 들려오는 목소리는 원곡 그 자체였으니까.
아니, 원곡보다도 더욱 짙은 우울감을 내뿜었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noname은 ‘그’일 수밖에 없었다.
* * *
평소에 음악을 듣지 않았던 사람들도 정기 휴일 덕에 다시 그 즐거움을 알게 되었었다.
그래서였을까 한국의 음원 스트리밍 횟수는 가파르게 상승 중이었다.
아니, 전 세계의 음원 시장이 호황을 맞이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 곡도 수많은 사람이 들었었다.
워낙 밝고 즐거운 분위기의 곡들이 넘쳐났었기에 홀로 뿜어내는 우울감은 그 존재감이 엄청났었다.
다만, 이 곡만큼은 서로 알려 주며 나누기보다는 홀로 들었던 곡이었다.
커뮤니티 같은 곳에서는 화제가 되기도 했고, 음악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순식간에 퍼진 곡이었지만, 그 인기는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곡은 말 그대로 너무나 우울한 곡이었으니까.
사람들은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해 왔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 곡이 갑작스럽게 세상에 울려 퍼졌다.
어딘가의 무대 스크린에서, 네트워크를 통해 전달되는 모니터에서, 핸드폰의 화면에서, 세계 곳곳 이 무대를 지켜보던 모든 이가 비탄의 탄성을 내질렀다.
너무나도 밝은 세상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지금 내려앉은 이 어둠은 정말로 검었고, 건조했고, 무거웠다.
사람들의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 * *
‘그’의 노래가 시작되던 시점, 응수동 거리의 옥상 무대들 위에는 각자의 악기를 든 아티스트들이 올라가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메인 스테이지를 향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했었다.
가장 끝자락 2층 건물 옥상에 주저앉은 제니스가 저 멀리 6층을 노려봤다.
예상은 했었다.
그가 직접 내뿜는 그 어둠이 얼마나 무거울지는.
하지만 이건 상상 이상이었다.
어떻게 이런 감정들을 숨기고 있었을까.
제니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인간 밴드의 멤버들이 힘겹게 따라가는 중이었다.
“칼리.”
옆에 서 있던 칼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 밴드의 세션들은 저 엄청난 감정을 놓치게 될 것이 뻔했다.
이미 드럼의 리듬도 흐트러졌고, 베이스도 밀리기 시작했다.
그들 역시도 이 정도까지는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칼리의 베이스가 둥둥 울리기 시작했다.
조금씩 흔들리던 리듬의 등을 받쳤다.
제니스가 기타를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작은 음표들을 더했다.
저 어둠은, 몇몇이 감당할 수 있는 크기가 아니었다.
그 둘의 신호를 시작으로.
다른 아티스트들의 소리가 하나하나 얹어졌다.
* * *
응수동 거리 중앙의 분수대 앞.
그랜드 피아노 앞에 앉은 신유정이 건반에 손을 올렸다.
다른 이들이 그 어둠을 따르기 시작했다.
이젠 자신도 그 속으로 들어갈 차례였다.
사실 두려웠다.
그저 순응하면 되리라 여겼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 깜깜한 공간을 떠올리자 정신이 아찔했다.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곳을 날아야만 했다.
갑자기 절벽이 나타날 수도 있었고, 거대한 나무가 덮칠 수도 있었다.
위험천만한 비행이었다.
낮게 한숨 쉰 유정이 눈을 감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면.
눈을 감고 가장 높이 오르면 될 터.
‘어차피 깜깜하잖아?’
그녀의 건반이 조심스러운 날갯짓을 시작했다.
영재 소리를 들었으면서도 남을 흉내나 내며 자신을 부정했던 그 시절의 어둠을 꺼내 놓았다.
* * *
임도유의 거친 허밍이 들릴 듯 말 듯 섞였고, 황지선의 백 코러스가 나지막이 울렸다.
나비계곡의 반주가 함께 울리기 시작했다.
유레이시의 맑은 목소리도 얹어졌다.
레몬티의 창명도 전자기타의 볼륨을 올렸다.
저마다의 어둠이 ‘그’의 어둠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전국, 아니 전 세계에 마련된 무대들의 스피커에 메인 스테이지 이외의 사운드가 섞이기 시작하자.
자신들의 무대를 기다리던 아티스트들이 벌떡 일어났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했던 그들이었다.
다만, 새롭게 들리기 시작한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앰프에 연결하지도 않았고, 무대 중앙으로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저 관객들과 같이 스크린을 바라보던 그 자리에 선 채.
그 비탄의 탄성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거스르지 않았다.
아니, 거스를 수가 없었다.
그저 그 어둠에 한 발짝 넣어 가만히 서 있기만 할 뿐이었다.
이 작은 소리가 저 먼 곳에 닿을 리 없었다.
이곳에 모인 관객들의 귀에도 닿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소리를 냈다.
자신에게도 감추고 싶은 작은 어둠 하나쯤은 있었으니까.
구석 어딘가에 묻어 두었던 무언가가 툭 하고 튀어나왔다.
* * *
[야! 저거 그 곡 맞지?]└…….
게시판에 처음 올라온 글을 끝으로, 더 이상 어떤 글자도 더해지지 않았다.
충격적인 무대가 계속 이어졌다.
그 어마어마한 괴물 신인의 정체가 ‘그’였다는 것도 충격이었지만, 원곡 보다도 더욱 처절한 그 어둠에 사람들은 할 말을 잃었다.
게다가.
다른 아티스트들의 소리가 얹어지자, 더욱 깊어져만 가는 감정이었다.
이번 정기 휴일도 행복하고 즐거우리라 기대했던 사람들이 멍하니 그 어둠으로 끌려갔다.
마치 감정 조절에 미숙한 어린아이와 같이 저도 모르게 울컥했다.
사회라는 것에 익숙해져 가며 어떤 것이든 참아야 하는 일이 많이 생겼다.
자신의 감정을 잘 숨기는 것이 미덕인 세상이었고.
그렇게 ‘사회성’이라는 이름 아래 감춰 두었던 ‘나쁜 감정’으로 취급받은 무언가가 꿈틀댔다.
남에게 내비치지 못한, 부끄럽다고 생각되었던 감정들.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꺼내 놓아서는 안 됐던 자아들이 깨어났다.
마음껏 분노해 소리쳐 봤던 게 언제였지?
너무나도 슬퍼서 소리 내어 엉엉 울어 봤던 적은 언제였었더라?
어른이 되어 가며 조절되었다고 여겼던 감정들은 모두가 나쁜 감정이었던가?
그럼.
눈물 쏙 빼도록 배를 잡고 웃었던 적은?
어쩌다 보니, 함께 묻혔던 감정도 아련히 떠올랐다.
누구에게나 어둠 속 숨겨 뒀던 아이는 있는 법이었다.
많은 이들이 들었지만.
쉽사리 불리지는 않았던 노래가 세상에 울려 퍼졌다.
나도 여기 있다고.
울부짖기 시작했다.
* * *
진혁은 수많은 소리에 떠밀려 더욱 깊이 숨어 있던 감정들까지 내뿜었다.
자신만이 있어야 할 공간에 다른 어둠들이 바글바글했다.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사실, 그들은 이해할 생각조차 없었다.
그저, 자기 자신들만의 어둠을 얹을 뿐이었다.
클라이맥스를 내뿜을 무렵.
진혁은 생각했다.
그들이 자신의 어둠으로 들어왔다.
어쨌든, 어둠 속 진혁은 이곳에 있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수많은 어둠이 함께 하고 있었지만, 어차피 이곳에선 보이지 않았다.
한없이 검은색에, 또 다른 검은색이 더해졌을 뿐.
결국, 어둠은 어둠이었다.
진혁의 기타가 멈추자.
모든 소리가 멎었다.
눈을 뜨자.
침울하게 가라앉은 세상이 보였다.
어쩔 수 없는 것인가.
밖으로 내비쳐서는 안 되는 감정이었던가.
예상했던 결과였지만.
다시 한번 자신이 부정되는 상황을 맞게 되자 저도 모르게 시야가 흐려졌다.
어둠 속 진혁이 씁쓸하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이래서 그대로 숨어 있으려고 했던 거였는데…….
자조 섞인 한숨을 내쉬려던 찰나.
-나는 밝기만 한 세상이 너무 싫어.
맑은 목소리 하나가 정적을 깼다.